산노래의 중흥기
우리 산에서 산노래의 중흥기는 1970년쯤인가 싶다. 포크를 기반으로 하는 아름다운 노래 보급에 온 힘을 다한 전석환 선생님의 노력으로 젊은이들에게 노래 부르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 영향으로 산에서도 모이는 곳마다 캠프 송과 산노래가 어우러졌다.
전석환 : 1935년생, 연세대학 종교음악과 졸업, 1962년 쟈니브라더스의 멤버로 잠시 활동, 쟈니는 전석환 님의 애칭이다. 1965년부터 YMCA에서 싱어롱 Y를 이끌며 우리나라 청년에게 노래 문화를 전파한 분이다.
7080 노래 문화의 선구자로 1972년 전석환 작곡집 '노래는 즐거워'와 1집 앨범을 제작하였다.
'노을(쉐그린), 오솔길(쉐그린), 여름밤의 꿈(탑 트리오), 새벽(골든 탑), 석별의 정' 등의 주옥같은 캠프 송 수록
그외 '정든 그 노래' 해군 군가 '앵카송' 등 창작곡 외에 민요, 포크 등의 수천 곡 노래를 채보하고 번안 개사하여 대중에 소개하고 보급하였다.
(관련 자료)
[2013년 뉴스메이커 박성서 평론]
http://www.newsmak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4556
[1966년 동아일보 기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051900209205006&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05-19&officeId=00020&pageNo=5&printNo=13716&publishType=00020
강홍석 님의 '개나리 고개'
양천종 님의(경기고교 산악반) '산으로, 또 산으로~', '스키어의 노래'
김정태 님의(한국산악회) '산, 산, 산(산, 산, 산들이 부른다~)'
백경호 님의(고려대 60학번, 한국산악회) '그리운 산정(비치보이스의 sloop john B 개사곡)'
작자미상 '클레멘타인 개사곡(엄마 멈마 나죽으면…)'
일본 산노래 개사곡 '산 사나이'
외국 개사곡 '산 아가씨'
이항녕 님의(홍익대 총장) '산우가(푸른 하늘 흰 구름, 시원한 바람…)'
이은상 님의(한국산악회 회장) '산악인의 노래'
이만수 님의(연세대학 산악부 66학번, 에코클럽) '저 높은 산(아름다운 저 산이 우리들을 부를 때…)'
70년 이전에 산 사람들에게 알려져 불러지던 산노래들이다. 함께 부르던 캠프 송은 더욱 많았으나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알피니스트로 활동하던 분들의 기록에서 당시 산 사람들의 노래 문화를 잠깐 찾아보았다.
1969년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사망한 10동지 '조난조사보고서'에서 1969년 2월 3일, 당시 대원이었던 한덕정 님의 행동일지
낙원동에 자리 잡은 숙소(조양여관)에서 10여 일을 등반준비에 뛰다 보니 출발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공동장비, 식량, 개인장비, 기타 모든 준비는 오늘로써 끝이다. 내일 출발에 앞서 각자 개인 운행구 점검을 하며 몇몇 대원들은 부모님, 친구, 연인에게 출발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모여 그간 우리 대원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기타반주에 맞추어 불렀다. 클레멘타인 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설악산에 묻어 주
앞산에다 묻지 말고 설악산에 묻어 주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 주
친구들이 찾아오면 산에 갔다 전 해주
노래가 끝나자 임경식과 변명수가 "앞으로 약 보름간은 산에서 보내야 하니 서울에서 마지막 자는 밤을 거리 구경이나 나가자"고 하기에 숙소를 나섰다.
흰 눈이 소복이 내리는 종로를 지나 무교동에 들어섰다. 여기저기서 술 취한 취객들이 미끄러운 길가를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경식이가 "이 복잡한 거리를 떠나 내일은 설악의 품에 안길 테니 그곳에 영원히 묻힌들 한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변명수는 "그렇고 말고, 우리 아주 그곳 설악산에 별장을 짓고 별을 벗 삼아 그곳에 살까요?"라고 말을 받았다.
숙소로 돌아오니 만수, 종철이의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설악산에 묻어 주"하는 구슬픈 노래가 기타반주에 맞추어 들려오고 있었다.
동아방송에서는 1966년부터(?) 일요일 아침 시간에 '취미의 광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하였다.
낚시, 바둑, 여행, 등산 등의 취미를 주제로 방송하였는데 장수 프로그램으로 70년까지도 계속했던 모양이다.
70년쯤 등산에 대한 내용을 방송할 때면 산 노래와 캠프 송을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덕분에 일요일 아침에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가끔 캠프 송과 산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70년부터는 가수 김홍철 님의 데뷔로 요들송이 방송 전파를 타며 등산 세계에 요들송이라는 또 하나의 음악장르를 선물하였다.
그해에 산노래 음반 두 장이 제작되었다. 하나는 동아방송에서, 또 한 장은 음반제작 종사자들의 산악모임인 음반산악회에서 만든 산노래 앨범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한 산노래 만의 앨범이 아닌가 싶다.
음반산악회에서 만든 산노래 앨범에는 '산 사나이, 에델바이스, 산으로 가자, 설악산 노래' 등을 포함하여 14곡의 산노래가 수록되었었다. 나도 한 장을 갖고 있었으나 세월 사이에 후배 누군가가 영원히 빌려 가 버렸다.
LP 수록 곡 1. 산사나이(불루벨즈) 2. 자이안트(불루벨즈) 3. 에델바이스(한상일, 불르벨즈) 4. 설악산의 노래(불르벨즈) 외
또한 70년부터
이정훈 님의(고령산악회) '설악가', '즐거운 산행길',
어센트 클럽의 '산행(하루의 산행을 시작하세…)',
김태호 님의(서울고등학교 산악반, 마운틴빌라) '설악아 잘 있거라.',
백경호 님의 '아득한 산정(아득히 솟아오른 저 산정에…)'숨은벽 찬가' 등,
멋진 창작 산노래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어 토요일 저녁 캠프와 일요일 저녁 하산길 쉼터에서는 그룹별 산노래 합창이 풍성하였다.
74년에는 안상갑 님이(크로니 클럽) '산 이야기'라는 애틋한 산노래를,
77년에는 산에서 부르던 이정훈 님의 산노래 '즐거운 산행길'에 요들을 덧붙인 노래가 김홍철 님의 음반 타이틀 곡으로 발표되기도 하였다.
로망의 시대에 alpinism을 시작하며 산으로 자연을 알고 alpinism으로 자아를 찾았다.
그 사이에 우쿨렐레와 산노래 화음을 어우르며 함께 사는 삶의 가치까지 깨달았으니 얼마나 즐겁고 멋진 인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