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가을이었다. 시제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고향을 찾아 가고 있었다. 목포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영암 독천을 지나 미암면을 돌아서자 이정표가 우회전 하라고 되어있었다. 예전에는 계곡면 둔주포를 거쳐 마산면 맹진에서 우회전하여 장촌리까지 갔는데 낯선 길을 안내하여 머뭇거렸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바다였고 어릴 적에 여기까지 와서 망둥어(문저리)도 낚고, 낙지도 잡고, 다슬기(비틀이)도 줍고 바다가재(쏙대기)도 잡고 게도 잡아 허기도 달래고 반찬거리도 만들었다. 어느 추석 무렵이었다. 친구들이랑 망둥어 낚시를 왔다.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개펄에서 갯지렁이를 잡았다. 허리에는 소주(2홉들이)병을 차고 보릿대모자 속에는 풋고추와 된장과 미끼를 넣고 머리에 썼다. 된장과 미끼는 물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닷물이 가슴 차는 곳까지 들어가서 낚시를 했다. 망둥어는 멍청했다. 미끼를 끼워 물에 담그면 담그자말자 소식이 온다. 밀물이 한창 밀려올 때가 가장 잘 잡힌다. 밀물이 주춤하면 입질도 뜸해진다. 이때가 술시였다. 잡은 망둥어를 망태에서 꺼나 배를 가르고 바닷물에 내장을 버리고 헹군다. 보릿대 모자 속에서 고추와 된장을 꺼내고 허리춤에서 술병을 들어 올려 이빨로 병뚜껑을 딴다. 그리고 잔도 없이 고개를 하늘로 향해 재끼고 콸콸콸 목구멍으로 술을 퍼붓는다. 대여섯 모금 마시고 망둥어에 된장과 풋고추를 얹어 입에 넣고 씹는다. 그리고 술병을 옆 친구에게 건낸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운전대를 우로 꺾어 포장된 도로로 들어선다. 파란 바닷물이 넘실대고 망둥어가 헤엄쳐 다니던 그 곳에 누런 벼 이삭들이 가을바람에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었다. 냇가를 따라 갈대가 운집하고 있었고 내가 사열대에 올라 사열하고 다다른 곳은 공세포였다. 그 곳이 이렇게 변했다. 내 몸도 강산이 변한 것 못지않게 변했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났던 곳에 백발이 무성하고, 그 백발도 다 빠져 깊게 파인 주름살만 흉물스럽게 몸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마음이다. 마음은 지금도 초등학교에 머물고 있다. 그 시절에서 친구를 찾고 선후배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동문은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강산은 변해도, 나이는 먹어도, 세월은 흘러도 마음은 언제나 동문에 묻혀있어 오늘도 이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