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3장 그리스도인이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찬 516)
1. 사사기는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정작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을 겪고 살아간 이스라엘의 이야기다.
이점에서 사시기는 오늘날 복음 안에서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누리도록 허락을 받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근심과 불안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지적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사기가 지적하는 문제는 두 가지다.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적당주의에 빠졌던 실패와 가나안 사람들의 풍속과 우상숭배를 받아들인 배교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안식 대신 전쟁을 주셨고 평안 대신 가시를 주셨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이고 징계는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징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엎드려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을 때, 응답하사 구원자(사사)를 세워 구원해주시는 구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사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고통을 겪고 살아가는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2. 이스라엘 백성이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도 남겨두시겠다고 말씀하신다(1~4).
하나님께서는 이 남겨진 가나안 사람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고(1,4) 가르치려고 의도하셨다(2). 새로운 세대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고 따라서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타락해가는 단계를 보여준다(5~7). 처음에는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 거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자식들을 그들의 자식들과 결혼시키기 시작했고 마지막 단계는 그들의 신들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잊혀지기 시작했다.
3.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 아래 8년 동안 두셨다.
‘리사다임’은 두 배로 악하다는 뜻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두고 붙여준 별명일 것이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결과는 두 배로 악한 왕 구산의 압제 하에 들어가 그를 섬기는 것이었다. 고통이 깊어졌을 때에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기억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소개된 갈렙의 사위 옷니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옷니엘이 사사로 다스리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평안을 주셨다.
4. 40년이 지나자 이스라엘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12).”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이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가 되어 무려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압제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다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억하여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왼손잡이’는 오늘날의 의미와는 달리 오른 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모압 왕 에글론은 비둔한 자였다(17). ‘비둔했다’는 표현은 통제하지 못하는 그의 탐욕을 보여주는 표현일 수 있다. 에훗은 공물을 바칠 때,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겠다고 하고 신하들을 물러가게 하고는 다락방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숨긴 칼로 에글론을 찔러 죽였다. 탐욕스런 군주는 왼손잡이 에훗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고 에훗은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고 모압 군대의 용사 1만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고 모압을 굴복시킨다. 나라는 다시 80년동안 평안을 누리게 된다.
5. 3장의 마지막 한 구절에 등장하는 소사사(인물과 활동에 대해서 비교적 언급이 적은 사사들을 소사사로 분류한다) 삼갈이 있다(31).
그는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인 사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갈의 이야기는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 연장이나 도구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하려는 모든 사람의 입을 닫게 한다. 오병이어 같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그리고 어린 아이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당신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지는 않는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탓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에 주신 사명을 뒤로 하고 적당히 살고 있지는 않는가? 가나안이라는 이 세상의 풍습에 빠져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적당히 혼합된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함께 돈과 성공이라는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어느 새 통제 불가능한 탐욕의 종으로 살아가는 에글론 같은 존재로 살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금생에서 누리게 하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면서 사명을 감당하고 살기를 구하자.
7.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금생의 은혜와 유익들을 풍성히 누리고 살게 하옵소서.
이 세상의 모든 유혹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저희들이 가진 형편과 처지를 탓하지 않고 저희 자신을 온전히 주께 드려 주신 사명 감당하고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개혁주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