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내적 공허에서 탐색하는 서정적 자아
--이미숙 시집 『손끝으로 말하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전 부이사장)
1. 삶의 궤적에서 인식하는 자아성찰
현대시의 형태나 분류는 다양한 형상으로 감응할 수 있지만 대체로 발현하는 특징은 서정적인 자아의 개념에서 시의 위의(威儀)를 음미하게 되는데 시인은 그의 정서나 사유(思惟)의 중심을 물길어 올리듯이 펼쳐내는 묘미를 갖게 한다.
일직이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시는 항상 기쁨이거나 슬픔이거나 간에 그 자체 속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시인이 삶의 궤적(軌跡)이나 실생활(real life)에서 몸소 체험한 희비(喜悲)의 상황들이 재생하면서 이상(理想)의 세계에 접근하려는 인간적인 욕구가 시인들의 뇌리(腦裏)에서 항상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시창작의 원류가 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탐색하거나 추구하려는 안온한 정서의 흡인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경향이 명징(明澄)하게 나타나는 것을 간과(看過)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 이미숙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손끝으로 말하다』를 정독해보면 이와 같은 서정적인 정서가 그의 시정신이며 시혼(詩魂)으로 관류(灌流)하고 있어서 그가 발원하고자 하는 시적인 주제는 언제나 서정적인 자아를 탐구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우선 그의 작품 「내 나이 쉰셋」 중에서 ‘깜빡깜빡하는 머리 / 지나치는 말에 이유 달지만 / 비워지는 한쪽이 있어 / 투명해지는 나를 본다’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나이 쉰셋이 되어서야 비워지는 한쪽이 있어 / 투명해지는 나를 본다‘는 자아를 인식하는 지적인 사유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평범한 삶에서 이제 ’건드리지 않아도 눈물 흘릴 것 같다‘는 어조(語調)가 바로 인생과 존재의 자아의식을 깊이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풀포기 헤치듯 머리를 헤치며
가을은 날을 세우고
낙엽은
베일까 두려워 거꾸로 파묻힌다
버거운 삶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어도
그 길에서 꽃을 보고 새소리를 듣는다
슬픔이 배어있는 그의 웃음
귓등으로 흘려보고
허수아비 없는 빈 들에
수런수런 빛살 받은 낙엽은
내 몸에 붙은 한기를 털어내려
모닥불을 지핀다
--「빈들」 전문
이미숙 시인은 우선 ‘버거운 삶 /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어도 / 그 길에서 꽃을 보고 새소리를 듣는다’거나 ‘내 몸에 붙은 한기를 털어내려 / 모닥불을 지핀다’는 시적인 전개와 결론이 ‘빈들’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융합시키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가을의 시간에서 낙엽과 허수아미를 대칭하여 빈 들판에서 추출할 수 있는 허무의식이거나 공(空)의 개념에서 그는 ‘버거운 삶’이라는 인생행로에서도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어도 / 그 길에서 꽃을 보고 새소리를 듣는다’는 위안을 가미하는 시법은 작품의 전개를 묘미있게 승화하는 그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 「세월」 중에서도 ‘삶 또한 하나의 길 / 호흡을 멈춘 물길들이 / 스스로 파도를 만들어 / 막아서는 갯바위에 부딪혀 / 자신의 움직임으로 흔적을 만든다’는 어조는 그의 인생 궤적에서 창출한 긍정적인 진실이 그의 내면에 잠재해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인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씽씽 달렸던
긁히고 패인 상처투성이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멈췄다
신나게 달렸던 그 패기 어디 가고
제 몸 가누기조차 힘들다
녹슨 부속들을 갈고 닦아
닳고 헐거워진 몸에 끼워 조인다
작은 부속들이 시동을 켠다
바퀴들이 굴러간다
아직 종착지에 머물고 싶지 않아
다시 달린다
--「다시 달린다」 전문
이미숙 시인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치닫는 인생 현장에서 회감(回感)하는 진정한 고백이며 성찰하는 어조를 현현하고 있다. 그는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상황 설정에서부터 ‘긁히고 패인 상처투성이’를 이제 수리하고 재정비하여 다시 달리는 새로운 지향점의 생활방식을 천명하고 있다.
그는 ‘나도 한때 / 팔랑팔랑 다닌 적 있었지 / 이제 꽃도 뭐도 아니야(「습관」 중에서)’라는 넋두리가 참으로 아쉽게 울리는 그의 삶에 대한 언어가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물 한 모금 먹지 못해 / 말라비틀어진 몸 / 지나가는 빗방울에 / 몸 적시고 / 버선볼처럼 누덕누덕 덧댄 / 곱씹는 삶이 / 도톰하다(「이끼」 전문)’든지 ’바다는 / 속을 다 내어준다고 하지만 / 깊고 검은 그 속 / 얼마나 희생을 강요하는지 / 먹히고 먹는 삶 / 조심조심 걸어가지만 / 어이쿠, 돌부리에 걸렸네(「오늘」 중에서)‘ 그리고 ’감나무 집 할머니 / 삶이 묻어있는 행랑채 / 뾰족한 불빛도 새어들지 않는다 / 모든 게 뭉게졌다(「물도리동 민박」 중에서)‘는 등으로 삶을 회억(回憶)하면서 존재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시법에 심취(深醉)하고 있는 것이다.
2. 자연 서정의 시적인 동화(同化)
이미숙 시인은 친자연적인 동화에서 시적인 발상이나 주제의 탐구를 하고 있다. 그는 만유(萬有)의 자연에서 교감할 수 있는 순정적인 자연관을 통한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적시하고 있다.
푸른 산 끊어진 곳에
집 두서너 채
빽빽한 가지 안은
칡넝쿨 부여잡고
봉우리에 오르니
한 덩이 태양은 나직이
머리 위에 있고
온 세상은 텅 빈 것 같다
산들은 올망졸망
손바닥 안에 널리고
탁 트인 가슴 내밀어
힘껏 소리 질러 봐도
돌아오는 메아리 허공중에 여운만 남긴 채
산 아래로 가라앉는다
--「산에 오르니」 전문
우리들이 상시(常時)로 대할 수 있는 자연은 산과 들, 강, 바다 등 지천에 널려있는 시창작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는 산에 오르면서 만끽(滿喫)하는 자연의 흥취(興趣)에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인 이미지의 재생은 ‘푸른 산 끊어진 곳에 / 집 두서너 채 / 빽빽한 가지 안은 / 칡넝쿨 부여잡고 / 봉우리에 오르니 / 한 덩이 태양은 나직이 / 머리 위에 있고 / 온 세상은 텅 빈 것 같다’는 상황 설정이 ‘텅 빈’이라는 공허의식에서 다시 ‘힘껏 소리 질러 봐도 / 돌아오는 메아리 허공중에 여운만 남’아 있는 허무의 이미지가 우리들을 공감으로 흡인(吸引)시키고 있다.
그의 ‘등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불구불 틀어 올린 길 / 온 힘을 다해 올라 보지만 / 어긋지게 토를 다는 다리 힘 / 거친 숨소리에 떨어’지는 자연 친화에서 그가 발산하는 생동감은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적 상황은 작품 「오솔길」 중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데 ‘바람 한 줄기 가르마를 탄다 / 가끔은 낯모르는 사람과 / 이마를 맞대고 걸어야 하지만 / 지금은 낯이 익어 / 팔짱을 끼고 서서 / 별 할 말 없는데도 주거니 받거니 /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 / 허벅진 농담 한 두 마디 주고받는 길’이라는 어조는 어쩐지 무언(無言)의 교감으로 산과의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되는 것이다.
크고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푹 나눠 주는 법 없다
투박한 마음을 같이 나눈 파도에
매끈하고 둥근 모양들이
물 밖으로 나 앉았다
보채기라도 하듯
파도는 연신 목마름을 달래 주었고
작고 앙증스런 돌
선명한 그림과 함께 윤이 났다
가슴을 다 열어젖힌 그
느닷없는 친구들의 방문에도
불쑥불쑥 던지는 질문에도
쉼표를 찍는 이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갈고 닦는 일에 열심이다
--「바닷가에서」 전문
이젠 바닷가로 가보자. 그는 이 ‘바닷가에서’ 응시(凝視)하는 바닷가의 풍광은 ‘보채기라도 하듯 / 파도는 연신 목마름을 달래 주었고 / 작고 앙증스런 돌 / 선명한 그림과 함께 윤이 났다’는 다소 안온하고 정돈된 사유로 정감적인 시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사유는 ‘크고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 푹 나눠 주는 법 없다’는 상황 설정은 이미숙 시인의 시법에서 감지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도량(度量)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결론으로 적시한 ‘불쑥불쑥 던지는 질문에도 / 쉼표를 찍는 이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 갈고 닦는 일에 열심이다’라는 어떤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를 사랑한다. 그러나 자연 친화에서 우리 인간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병폐를 규탄하기도 한다. 그것은 ‘밤새 누가 오구굿을 했는지 / 곱게 접은 연꽃이며 양초 돼지머리 / 백사장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는 다소 고발성 짙은 시사적(時事的)인 문제에까지 그의 정서는 예리하게 현현하고 있다.
그는 다시 작품 「우포늪」 중에서도 ‘생을 구하는 자맥질에 한 생이 사라지고 / 늪을 헤집는 물갈퀴 이불 걷어내면 / 거꾸로 박힌 왕버들 벙글벙글 웃는다’는 ‘여백의 미덕’과 ‘생의 여유로움’을 산과 물 등에서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직선일 수 없는 삶 / 웃거나 침묵한다 / 응달진 계곡 / 마른 풀잎 소리 없는 주검으로 / 흔적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 봄 언덕 /웃음으로 게워 낸 새싹 / 품을 파고드는 칼바람에 덜미 잡혀 / 엉거주춤 웅크리고 앉아 / 잔설에 묻혀/수그리고 있는 마른 풀잎 보며 / 어줍잖은 행동으로 / 괜스레 너스레 떤다 (「언덕」 전문)’는 ‘언덕’의 이미지, 특히 ‘봄 언덕’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산과 바다 그리고 늪 등과 같이 정감적인 그의 순수한 대사물관을 엿보게 하고 있다.
3. 화훼류(花卉類) 그 미감(美感)의 언어
이미숙 시인에게서 절대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지천에 만발한 꽃에 대한 미감의 언어이다. 그는 ‘봄을 알리고픈 성급함에 / 숨죽인 목련이 환한 마음으로 피어나다 / 고개를 치켜들고 도리질을 하(「꽃샘」 중에서)’는 봄에서부터 ‘여름내 북적이는 꽃밭에 / 오붓하게 둘러앉은 낮은 자리 / 도란도란 꽃 이야기(「채송화」 중에서)’ 그리고 ‘수줍게 떨고 있는 가을 여인 / 낯선 사내는 성급함에 / 그녀의 낭창한 허리를 꺾어 / 코를 박고 입술을 훔친다(「코스모스 2」 중에서)’까지 일년내내 계절별로 화사한 표정으로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미소와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이처럼 화려하게 피는 꽃들은 계절적인 시간성과 동행하면서 우리들에게 온갖 미감의 언어로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있어서 모두가 심취(心醉)하고 착목((着目)된 자리마다 시인의 시선은 다채로운 이미지를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내 얼 부풀었던 질척한 마당에
외길 보도블럭 흐트러질라 맥문동이 감싸 안고
빛바랜 목련은 헐렁한 옷을 벗어 던졌다
봄바람 났는지 빨간 입술 명자나무
뭇 벌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쫀쫀한 개나리 수다 떨어도
벌들이 언제 다녀갔는지
명자나무 노란 꽃술 입맞춤에
부러워 안마당을 기웃거리다 지쳐 시들고
발아래 숨죽여 있던 꽃잔디
부스스 기지개 켠다
유월 목단이 오월에 만개하고
머리 무겁게 이고 있는 불두화
부처님 오신 날 하얀 마음으로 피워
세속 부정 털어내려는지
동그랗게 터 잡은 사철나무 아래
작약이 큰소리로 웃는 바람에
강보에 싸여 있던 장미꽃 고개 내민다
피었다 하면 향기 가득 담을 넘는
백합은 아직 조용하고
비비 꼬고 있던 더덕 몇몇
기댈 때 마땅치 않아 코 박고 기어다닌다
--「우리 집 마당」 전문
이미숙 시인의 마당에는 형형색색의 화훼류가 만발하고 있다. 대체로 살펴보아도 맥문동, 목련, 명자나무, 개나리, 꽃잔디, 목단, 불두화, 사철나무, 작약, 장미꽃, 백합, 더덕 등이 꽃천지를 이루고 있어서 식물원이나 어느 화훼단지를 거닐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꽃들이 철마다 다른 묵언의 표정을 선물하고 있어서 하나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이렇게 작품에 등장하는 꽃들은 저마다의 꽃말과 상징하는 이미지가 다르게 형상화하는 것이 꽃에 대한 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개나리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았다’, 붉은 장미는 ‘열렬한 사랑’이라는 등의 꽃말로 우리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몰래 피운 꽃 떠났어도 / 기다림은 남아 있다 (「벼꽃」 중에서)’거나 ‘아름다운 / 꽃잎을 품은 씨앗들 / 긴 여정으로의 만남이 새롭다(「어느 날」 중에서)’는 등의 어조와 같이 꽃들이 풍겨주는 시적인 묘사는 다채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수리 쪼아대는 햇볕의 등쌀에
봉오리 빙그레 꽃잎을 열다
깜짝 추위에 오금 저려
다시 며칠을 기다렸을까?
옅은 화장
얇은 옷차림도
꽃잎이어라
꽃 보고 싶으면
내려 보세요
복수초가 눈을 헤집고 오돌오돌 떨고 있어요
허공으로 오는 꽃은 추위를 타네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꽃비가 내리는 4월에
꽃 무덤 속으로 기어드는 개미처럼
사박사박 꽃 속으로 ...
--「꽃 보러 가자」 전문
여기에는 봄 햇살과 빙그레 열고 있는 꽃봉오리와 꽃잎의 상황은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화전놀이(봄에 경치가 좋은 산이나 강에서 꽃잎을 따서 전을 부쳐 먹으며 노는 부녀자들의 놀이)하는 정경(情景)을 상상하게 하는 꽃구경 또는 곷마중이다. 그러나 꽃샘추위가 와서 ‘다시 며칠을 기다렸을까?’ 눈을 헤집고 오돌오돌 떨고 있는 꽃을 보면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라는 기다림의 미학이 김미숙 시인이 ‘꽃 보러가’는 상황이지만 그는 ‘꽃비가 내리는 4월에’는 이러한 기다림이 만개한 꽃의 화사한 미소와 더불어 그의 심려(心慮)와 기우(杞憂)가 해소될 것으로 느껴진다.
그는 다시 ‘어깨를 두드린 낯선 기억들 / 문을 열고 나온 / 당신들의 도도한 꽃 웃음이 / 섭섭한 속을 채워 줍니다(「봄맞이」 중에서)’라거나 ‘뒤숭숭한 마음 체념으로
옭아매고 / 잔뜩 움츠린 모습 / 구부정하니 서 있어도 / 내년에도 그 꽃은 피울 것이다(「봉숭아」 중에서)’ 그리고 ‘꽃 시절은 잠시 / 스스로 눈물 닦아내고 / 갈고 닦은 각시의 촉 / 뜨거운 여름날에도 / 꺾이지 않는 파랗게 날 세운 각시붓꽃(「각시붓꽃」 중에서)’ 등과 같이 꽃과의 다양한 사연들이 시흥(詩興)을 한결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4. ‘엄마의 봄’에서 반추하는 사모의 애환
우리들은 어머니에 대한 정감을 영원토록 망각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내 생명의 모태(母胎)이며 지금까지 존재를 영위하게 한 은총(恩寵)의 시원이기 때문이다. 이미숙 시인도 작품의 발상이나 주제의 천착(穿鑿)에서 모정(母情)에 대한 이미지가 불망(不忘)의 대상으로 그의 내면에 깊게 잠재하면서 수시로 그의 사유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인 김남조 선생도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기가 온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고 어느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영원히 동행하는 포근한 쉼터이며 생존의 지표여서 내 몸 전체를 관류하는 사모(思慕)의 대상이다.
봄을 캔다
짙어진 나물 냄새
코가 벌름거린다
바람이 옷깃을 툭 치고 지나간다
꽃잎이 발등에 앉았다
열여덟 엄마의 시간에
꽃신을 신고 말을 건다
자잘한 소리들이 주변을 맴돈다
잡초는 때를 가려 올라오고
빈둥거리던 호미
엄마 손에 이끌려
해가는 줄 모른다
--「엄마의 봄」 전문
이미숙 시인은 ‘엄마의 봄’에서 지난 날 엄마와 함께 봄나물을 캐던 유년의 시간들이 그의 전신을 엄습하고 있다. 이처럼 회상하는 엄마에게서 생성하는 한 편의 작품이 간결하면서도 절묘(絶妙)한 표현이 남다르게 각인되고 있다. 그는 바람이 옷깃을 툭 지나가면서 발등에 꽃잎을 떨어드리는 장면이나 ‘봄을 캔다’ 또는 ‘열여덟 엄마의 시간에 / 꽃신을 신고 말을 건다’는 등의 어조는 참으로 함축적인 어머니와의 무언의 대화가 귓전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장가가서 살림 난 아들 / 길들여진 엄마 손맛 잊지 못한 투정 / 굽은 등 하늘 받쳐 업고 / 절룩절룩 휜 다리 텃밭 일군다 (「엄마 손맛」 중에서)’는 상황과 같이 그의 사모곡(思母曲)은 계속되고 있다.
엷은 신문지 황소바람 막던 시절
웃음꽃 피는 날들이 걸어 들어온다
올망졸망 대여섯 아이들
목젖의 떨림에 창백해지시던 어머니
밭이랑보다 깊은 세월
해바라기 씨앗처럼 박혀 있고
당신의 작은 몫까지 내어주시던
깔깔거리며 웃던
둥지마저 떠나
꿉꿉한 감옥에서
허탈감에 젖어 있을 어머니
오래 머문 온기는 머리카락을 서게 했고
들썩이는 어깨는
머리카락 흔들었다
--「빈자리」 전문
그러나 지금 이미숙 시인 곁에는 그토록 사랑하고 애달파하던 어머니는 ‘빈자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올망졸망 대여섯 아이들 / 목젖의 떨림에 창백해지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둥지마저 떠나 / 꿉꿉한 감옥에서 / 허탈감에 젖어 있을 어머니’로 변해 있음에 애상(哀傷)의 깊은 심저(心底)가 그의 사유에서 모정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들은 더욱 공감의 세계에 몰입되게 하고 있다.
이처럼 ‘빈자리’의 공허감이나 허무의식이 바로 우리들 생명이나 존재의 의미에서 소멸한 뒤의 고독감이 이미숙 시인의 숭엄한 인생관으로 형상하는 시법이 많은 이미지를 제공하면서 지혜와 철학적인 탐구를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숙 시인은 이 밖에도 향수를 재생하면서 할머니와 아버지, 손녀 등의 가족에 대한 애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작품들도 많이 대할 수가 있다. 가령 ‘행여나 자식에게 짐 될까 / 괜한 걱정 널었다 걷었다(「할머니」 중에서)’거나 ‘어찌 그 한 많은 세월에 / 갇혀 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 몸이 기억하고 몸이 말을 하는 / 할머니의 굽은 다리(「남의 속도 모르면서」 중에서)’ 그리고 ‘굽은 다리가 익숙해진 할머니 / 지팡이가 떨린다(「봄날에 중에서)’는 등과 같이 할머니에 대한 애정도 그의 뇌리에서 다수의 이미지를 재생시키는 애환의 사랑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숙 시인이 ‘장에 가신 아버지 마중 간다고 / 저녁 해를 따라간 아이 / 보이지 않는다 / 가로등 불빛은 / 흙발로 땅을 파고 있다--중략--철렁 내려앉았던 가슴 가다듬고 / 원망할 대상도 없는 긴 한숨 / 등에 업힌 아이는 / 엄마의 따뜻한 체온에 잠이 든다 (「순간의 외출」 중에서)’라는 상황과 어조와 같이 장에 가신 아버지와 엄마의 따뜻한 체온이 상호 대칭을 이루는 화해의 시법에 공감하게 된다.
5. 나가면서
이미숙 시인은 절대적인 서정시인이다. 그가 시적인 원류로 출발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외적인 사물이미지에서 친자연적인 서정에 시점(視點)을 맞춘다는 것은 응시하는 매체(媒體)들이 그의 정서와 사유에서 평범하고 안온한 정심(靜心)의 정감이 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는 시정신(poetry)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이 시집 『손끝으로 말하다』를 통해서 그의 삶의 궤적을 재생하면서 인생의 존재와 성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내적으로 탐색하고 있으며 외적으로는 자연 친화의 서정에서 순수한 정감으로 섭리의 순응과 긍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만유의 꽃에 대한 이미지의 창출은 미감이나 미학적인 시심(詩心)으로 그의 사유를 더욱 풍부한 시법으로 유도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특히 어머니에 대한 영원한 효적(孝的)인 사모의 정을 통해서 생명과
존재의 이해에서 인생의 의미를 재해서하는 화해의 시법을 구사하는 특징을 감동 깊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을 명민(明敏)하게 적시해 둔다.
멀쩡한 참말에 어깃장을 놓는다
잊어버렸던 기억
되새김으로 아웅다웅 대꾸를 한다
자질구레한 싸움에
미운 정 한 움큼 더하고
따뜻한 어우름으로
서로의 마음을 꾸며
고운 정 한 움큼 더한다
은밀하게 가렸던 벽이 허물어지고
냉랭했던 안방에 온기가 돈다
묵은 감정 싹 씻고
보듬어 재운다
--「화해」 전문
이미숙 시인은 이 ‘화해’와 같이 삶을 통해서 생성하는 이 세상 모든 고뇌와 갈등들을 결론처럼 ‘은밀하게 가렸던 벽이 허물어지고 / 냉랭했던 안방에 온기가 돈다 / 묵은 감정 싹 씻고 / 보듬어 재운다’는 어조와 같이 그가 시를 창작하고 시인이 된 전환점은 이러한 ‘화해’의 정신과 집념이 결집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교훈도 그의 생존의 의미 중심에 굳게 자리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셸리는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며 하나의 시는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이미숙 시인도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체험에서 진실과 진리로 표현할 수 있는 인생 의미의 기록인 시에의 지향점은 바로 인간성 추구인 인본주의(humanism)의 구현에 그 정점을 두고 창작에 임하는 진실을 대할 수가 있어서 앞으로 시창작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