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조명
바늘이 지나간 자리
그냥 헝겊 쪼가리였을 것이다
바늘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잘 보이지도 않은 바늘귀
기다란 실을 거느리고
야무지게 오가더니
어느 순간 모양을 갖춘다
무엇이든 놓아버릴 나이에
생각지도 않게 바늘을 잡고
무딘 손가락 찔려가며
한 땀 한 땀 시간을 깁는데
늘 더디 가던 시곗바늘이 달음질을 친다
길다던 동지섣달의 밤은 왜 그리 짧던지
삶이 매듭진 자리
꿰매고 깁는 그 자리는
죄다 희로애락의 바늘이 지나간 자리였구나
잘 익은 시간
가을 길을 걷는다
오래 묵은 나무들 사이로
오래 묵은 웃음들이 흘러간다
덩달아 춤사위로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가을 잎새들
훌쩍 지나간 세월이라지만
함께 엮어낸 이야기로 말할 것 같으면
영남 알프스를 열댓 번은 더 넘었을 길이다
오래될수록 깊어지고 질겨지는 인연
그 안에 담긴 우여곡절 또한 만만치 않을 터
그래도 손 놓지 않고 이어온 그 가슴 가슴들이
신불산의 단풍보다 곱고
간월재 하늘정원 억새밭보다 넓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파래소에서
세상 끝날까지 여일하기를 기원하며
이젠 두 다리로 서기엔 힘이 부족해 지팡이를 짚고
서로에게 기대어 서서
가을 사진을 찍는다
가을 깊은 골에서
우리들의 잘 익은 시간이 저물고 있다
말랑말랑한 열쇠
한 공간에 우리가 있습니다
살짝만 기울여도 맞닿을 거리인데
우리 사이 공간이 무한대로 넓어지고
침묵만이 공간을 꽉 채웁니다
침묵에 짓눌린 공기를 가르려
소리를 만들어 보지만
육성이 아닌 소리는
화답할 수 없어 공허만 키웁니다
공허함을 먹고 자라던 벽은
문 하나 만들고
단절의 자물쇠를 채웁니다
혼자만의 공간에 풍덩 빠지기 전에
소통을 위한 열쇠를 구합니다
어떠한 문이라도 열 수 있는
말랑말랑한 열쇠
어디에 있을까요?
조우
그날
쨍한 햇살 아래 모든 것이 투명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
멈추어 선 반세기의 세월을 반추했다
그동안 잊힌 것이 아니라 묻혀 있었나 보다
하나의 기억을 잡아당기니 조랑조랑 딸려 나오는 먼 얘기들
깊숙이 눌러졌던 여러 감정도 꼬리를 물고 되살아나
그리움의 길이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붉어지는 눈시울
먹먹한 가슴으로 다시 안겨 오는 지난날들
마주 잡은 손안에서
서로의 기억들을 꿰어맞춰 한 시절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래었다”고
다 하지 못했던 말들과 다 듣지 못했던 말들이 제자리를 찾고
그게 또 믿기지 않아서
두리번거리다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올 한 해 너와의 조우에 방점을 찍는다
단정 지을 수 있는 삶은 없다고
이제는 삶의 계획조차도 무의미하다는 너의 말에
“그렇다”를 되뇌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름진 너의 눈은 여전히 투명하고
투명한 너의 눈에서 나를 찾고 있다
연두
소생하는 대지가 열어놓은 길
봄으로 가는 연두가 들어선다
아른아른 오는 그대여
바람도 설렘을 한가득 품고 와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에
연두를 풀어놓는다
대지를 품으면서 중심에 서지 않는
눈부시게 하기보다 눈 뜨기 좋게 하는
시선을 끌지 않더라도 그 빛으로 충분한
여~린 연두
첫 마음은 여리다
새싹도 새순도 여리다
여리기에 견디어 내는 걸까
연두를 통하지 않고
봄에 이를 수 없다
계절을 다 살아낼 수 없다
흐림, 그 안에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사위는 다 같이 고즈넉해진다
내려놓은 마음에서 품어 나오는 저마다의 향기로
고요는 더욱 풍성해진다
어제보다 무겁게 서 있는 나무들
차분해지는 나뭇잎들 사이로
뿌옇게 떠오는 기억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
흐린 날이면
그리움도 한 발짝 먼저 와서
넓고 깊게 자리를 잡는다
흐림이 들여놓은 묵직한 그리움
멀리 떠나온 나그네는
자신의 생각을 접고
마냥 흐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쉬이 저녁이 오고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시작始作, 그리고 시작詩作
시작始作은 낯섦과 긴장을 준다. 그러기에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뭔가를 시작하는 것은 처음일 수도 있고 반복일 수도 있다. 그 반복도 엄밀히 따지면 그때마다 또 하나의 첫 시작일 수 있다. 매일 시작하는 아침, 매일 시작하는 일과, 매일 시작하는 많은 것들이 아주 조금씩 다른 환경과 시간, 다른 마음 등을 갖게 한다.
시작이 없으면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시작의 중요성에 관해 얘기하고 특히 처음 시작에 온 마음을 쓴다. 시작에 이어오는 과정 또한 결과의 질과 결을 결정하기에 매우 중요하지만, 그 또한 시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얼마 전에 둘째 손주가 태어났다. 첫 손주를 보았을 때와 같은 감동은 다소 줄었지만, 가슴 가득 기쁨이 밀려왔다. 갓난아기를 다시 안아보고 돌보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아기의 세상살이 그 시작에 동참하는 기쁨도 잠시, 굳어버린 머리와 손이 두서없이 서두르기만 했다. 어쩌나!
내 아이와 시작했던 오래전 기억을 소환하고, 첫째 손주 돌보던 경험을 하나둘 꺼내 놓으며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찾아 아기와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젠 두 번 다시 이런 갓난아기와의 시작은 오지 않을 것이기에.
시작詩作, 시를 짓는 시작 또한 늘 낯섦과 긴장,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처음 시를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꽤 오랜 시간 혼자서 끄적이며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추스르곤 했다. 그런 열망이 간절해서였는지 우연한 기회에 모 기관에서 하는 문예 창작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첫 강의 날의 설렘과 긴장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뭐든 시작한 것을 십 년만 지속할 수 있으면 그 분야에 대해 문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첫 말씀은 강렬하게 내 가슴에 와 꽂혔고 이후로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골 대사가 되었다.
어찌하다 보니 시를 만난 지 이제 20년을 훌쩍 넘겼다. 시를 만나 행복하기도 했지만, 고통과 좌절 또한 비껴가진 않았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등단하면서 들은 말 중에 마음에 새겨둔 말이 있다. 시와 삶이 동떨어지지 않게, 거짓은 쓰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더디게 가더라도 진실한 삶을 살고 진심으로 시 쓰기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눈을 깊게 뜨고, 어떤 것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대상을 보려 한다. 진솔한 삶을 통해 건져 올리는 따뜻하고 소박한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가 닿기를 희망한다.
시작詩作을 새롭게 시작始作하기를 소망한다. 미진하기에 더 간절하다. 여전한 낯섦과 긴장은 설렘과 두려움을 불러낸다. 그러나 그 낯섦과 긴장은 나를 깨어 있게 할 것이며, 시를 향해 가는 여정에 도반이 될 것이다.
시인조명평
성숙해진다는 것
- 조경옥 시인의 시들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긴 수명을 가지고 있는 거북이나 오랜 시간을 버티고 살아온 거목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죽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노화는 슬픈 일이다. 소멸의 운명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어쩔 수 없는 불행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을 피하려고 헛된 노력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것은 노욕이 되고 자신의 추함만을 드러낼 뿐이다. 앞으로 다가올 소멸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노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가질 때 노화는 삶의 완성으로 가는 성숙의 과정이 된다. 조경옥의 시는 바로 이 노화와 성숙이라는 화두를 생각하게 해준다.
누구에게나 연두색 새싹처럼 어린 시절은 있었다.
소생하는 대지가 열어놓은 길
봄으로 가는 연두가 들어선다
아른아른 오는 그대여
바람도 설렘을 한가득 품고 와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에
연두를 풀어놓는다
…(중략)…
첫 마음은 여리다
새싹도 새순도 여리다
여리기에 견디어 내는 걸까
연두를 통하지 않고
봄에 이를 수 없다
계절을 다 살아낼 수 없다
- 「연두」 부분
새싹과 새순은 여리지만 여리기에 견디어 낸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여린 것이 견딤을 통해 강인해질 때 봄은 오고 비로소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돌보아야 하는 어린아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바람과 설렘을 한가득 품고” 온다. 그리고 그 기대와 희망으로 삶의 세파를 견디게 하는 젊음의 힘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풋풋한 새 생명도 시간이 오면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고 어김없이 노년을 맞이해야 한다. 시인은 바로 그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가을 길을 걷는다
오래 묵은 나무들 사이로
오래 묵은 웃음들이 흘러간다
덩달아 춤사위로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가을 잎새들
훌쩍 지나간 세월이라지만
함께 엮어낸 이야기로 말할 것 같으면
영남 알프스를 열댓 번은 더 넘었을 길이다
오래될수록 깊어지고 질겨지는 인연
…(중략)…
세상 끝날까지 여일하기를 기원하며
이젠 두 다리로 서기엔 힘이 부족해 지팡이를 짚고
서로에게 기대어 서서
가을 사진을 찍는다
가을 깊은 골에서
우리들의 잘 익은 시간이 저물고 있다
- 「잘 익은 시간」 부분
시인은 두 개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하나는 계절로서의 가을이고 또 하나는 초로의 인생 시간으로서의 가을이다. 같은 또래 지인들과 가을 산행을 하면서 시인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성찰한다. 그리고 저물어 가는 “잘 익은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쇠약해진 몸을 서로 기대어 의지하며 오래 알고 지내 그래서 편하고 즐거운 “묵은 웃음”을 흘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신록과 같았던 젊은 시절의 왕성한 생명력은 없지만, 세상을 편하게 바라보고 늙어가는 서로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늙어간다는 것이 결코 서러운 일이 아니라 익어가는 성숙의 과정임을 느끼게 된다.
이 성숙의 시간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그려내고 있다.
어제보다 무겁게 서 있는 나무들
차분해지는 나뭇잎들 사이로
뿌옇게 떠오는 기억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
흐린 날이면
그리움도 한 발짝 먼저 와서
넓고 깊게 자리를 잡는다
흐림이 들여놓은 묵직한 그리움
멀리 떠나온 나그네는
자신의 생각을 접고
마냥 흐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쉬이 저녁이 오고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 「흐림, 그 안에」 부분
시인에게 “흐린 날”은 이제 저물어 가는 시간을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배경이 된다. 저물어 가는 시간을 더 쉽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것을 “서두르지 않아도 쉬이 저녁이 오고”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흐린 날 흐린 기억은 뿌옇게 떠오르고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라고 시인은 느낀다. 그것은 사물이 뿌옇게 보이는 노안이 올 때 사물을 마음으로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잊히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안타까움도 더 커져 간다. “흐림이 들어놓은 묵직한 그리움”이 바로 그것이다.
시인은 나이가 들면서 즉 성숙해지면서 진정한 그리움의 의미를 알게 된다. 다음 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
멈추어 선 반세기의 세월을 반추했다
그동안 잊힌 것이 아니라 묻혀 있었나 보다
하나의 기억을 잡아당기니 조랑조랑 딸려 나오는 먼 얘기들
깊숙이 눌러졌던 여러 감정도 꼬리를 물고 되살아나
그리움의 길이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붉어지는 눈시울
먹먹한 가슴으로 다시 안겨 오는 지난날들
…(중략)…
올 한 해 너와의 조우에 방점을 찍는다
단정 지을 수 있는 삶은 없다고
이제는 삶의 계획조차도 무의미하다는 너의 말에
“그렇다”를 되뇌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름진 너의 눈은 여전히 투명하고
투명한 너의 눈에서 나를 찾고 있다
- 「조우」 부분
시인은 길에서 우연히 어릴 적 친구와 조우한다. 그 조우를 통해서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많은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 기억을 떠올리면 연달아 많은 지난날의 추억들이 새롭게 되살아난다. 시인은 이것을 “먹먹한 가슴으로 다시 안겨 오는 지난날”이라고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리움의 길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시인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또 잊고 사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운다. 친구와의 우연한 조우가 없었다면 시인은 이 많은 추억들을 다 잊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이 잊거나 잃고 살아온 것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어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살아온 세월이 많은 성숙한 노년에 이 그리움이 더 많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늙어가는 시기는 한 편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단층처럼 쌓인 이 잊혀 가는 기억들이 있어 더 그리움이 커지는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그리움이 있어 “주름진 너의 눈은 여전히 투명하고 / 투명한 너의 눈에서 나를 찾고 있다”와 같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젊은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서로 간의 이해와 사랑이 가능하게 된다.
이 성숙의 시간을 통해서 시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무엇이든 놓아버릴 나이에
생각지도 않게 바늘을 잡고
무딘 손가락 찔려가며
한 땀 한 땀 시간을 깁는데
늘 더디 가던 시곗바늘이 달음질을 친다
길다던 동지섣달의 밤은 왜 그리 짧던지
삶이 매듭진 자리
꿰매고 깁는 그 자리는
죄다 희로애락의 바늘이 지나간 자리였구나
- 「바늘이 지나간 자리」 부분
시인은 나이 들어 바느질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무딘 손길로 바느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한 땀 한 땀 시간을 깁는” 것과 같은 기다림과 정성 들인 노력의 과정이었다. 그 속에 희로애락의 모든 삶의 순간들이 바느질 자리처럼 삶의 매듭을 형성하고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하지만 “동지섣달의 밤은 왜 그리 짧던지”라고 한탄하는 것처럼 주어진 인생의 시간은 길지 않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시적 사유와 적절한 비유가 잘 조응하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