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99355F3D5BE24FF633)
宋나라의 눈물 정순태 지음 *경제력과 문화의 만개는 한 나라의 융성의 지표가 된다. 하지만 군사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경제적 번성은 한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영원한 제국같았던 로마의 화려한 문명과 번영도 로마 시민으로 구성된 로마군단이 붕괴되고, 게르만족 출신의 용병이 국방력을 대체하면서 자멸하였다.
*동양 문명의 발상과 중심을 이루던 중국 대륙에서도 경제적으로 번영하던 국가가 허약한 국방력으로 민족적 굴욕을 감수하다, 비참한 종말을 맞은 예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족(漢族)의 국가였던, 송(宋)나라가 대표적인 예이다.
*송나라(960년~1279년)는 진(秦),한(漢), 명(明)나라와 함께 한족이 세운 통일왕조이다. ★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할 만큼 경제적으로 번창했고, 문치주의에 의한 문화정치를 펼쳐, 예술과 사상, 실용기술이 두루 발달했다. 나아가 이모작의 확대 등 농업 기술의 발전과 상업의 장려로 문화적, 경제적인 풍요를 누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융성했던 송나라가 한족 자신들이 업신여기던 오랑캐인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의 발말굽에 짓밟히다 멸망하고 말았을까?★
*저자는 중국의 자존심인 한족의 통일국가가 어떻게 이민족의 굴욕적 수탈과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리다 멸망하고 말았는지 그 원인을 추적한다.
*그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당시의 송나라가 처했던 상황과 대비하면서 역사적 교훈을 읽어낸다.
*송왕조의 불행한 망국사(亡國史)를 통해, 지금은 경제적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호전적인 북한의 쉼 없는 도발, 주변 강대국의 부상과 위협 등 불안정한 대내외 환경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에게 국가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경계해야 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의 뒤안길을 회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송나라의 궤적을 밟아가는 역사문화 기행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저자 자신은 물론 독자들에게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도록 시각을 확장시켜 역사적 교훈을 보다 생생하게 각인시킨다.
*먼저 저자는 북송(960년~1126년)과 남 송(1127년~1279년)의 320년간을 현대 중국의 원형질이 형성된 시기로 본다.★
*선비족이 창업했던 당(唐) 나라의 문물보다 송 시기의 문화가 보다 한족의 문화적 특질을 잘 나타내준다는 것이다.
*당의 수도 장안(長安)이 특정 구역에서만 시장을 허가하고, 영업시간도 일몰 이전으로 제한했던 데 비해,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開封)의 경우 성내 어디에나 점포를 열 수 있었다. 영업시간 제한이 없어 활기가 넘쳤고, 연극 공연장 구란(句欄)이 50여개나 성업할 정도로 문화가 흥성했다.
*대운하가 성내로 관통하여 상선이 붐비고, 번화가가 형성되어, 북송식 룸살롱인 2층 주루(酒樓)가 불야성을 이루는 등 당시 인구 100만명을 넘는 거대 도시 개봉이 경제적으로 번성하던 모습이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에 압축적으로 잘 드러난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북송 말 한림 학사(翰林學士)인 장택단(張擇端)이 북송의 도성인 변경(卞京·현재의 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풍속화로 북송 시대의 옷차림, 운하, 선박, 수레, 장터, 가옥, 극장, 교량, 거리, 성문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 사료가치가 매우 높아 중국인들이 ‘국보1호’로 여기는 고서화다. 가로 528.7㎝, 세로 24.8㎝짜리 두루마리 그림 속에는 변경(卞京, 지금의 개봉)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일상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송의 멸망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제시한다. 먼저, 건국자인 조광윤(趙匡胤)이 군대의 발호를 막기 위해 문관 우위의 체계를 확립하고, 중앙군을 강화하면서 절도사 휘하의 지방군을 약화시키는 <강간약지(强幹弱枝) 정책>을 펼친 것을 든다. ★
*지방군의 약화는 북방과 서쪽에서 흥기하던 거란, 몽골, 서하 등 주변국의 잦은 변방 침략에 대한 신속한 대응능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송왕조의 멸망의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는 미약한 국방력보다 경제력으로 평화를 구걸한 상무정신(尙武精神)의 쇠퇴다.★
*송은 이민족의 침략에 대항할 수 없게 되자, 서하(西夏)와는 ‘경력(慶曆)의 화약(和約)’, 거란과는 ‘전연의 맹(邅淵之盟)’을 맺고, 매년 은 7~10만냥과 비단 수십만 필, 차 수만 근을 바치면서 평화를 얻었다.★
*명분은 각각 신하와 아우에게 ‘세폐(歲幣)’를 증정하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침략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한 조공이었다. ★
*그렇다고 무력 도발이 전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서하와 거란 등은 송의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지속적인 국지 도발로 송왕조는 경제지원에 따른 국고 낭비와 함께 군사비의 이중 지출로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겪었다.★
*이후 여진, 몽골과도 비슷한 방식이 재연된다.★
*10년간의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퍼준 약 69억 달러의 막대한 재원이 붕괴하던 북한을 기사회생시키고, ‘선군(先軍) 정치’로 대규모 군사력의 증강과 핵개발을 하도록 돕는 결과를 초래하여 끊임없이 도발을 당한 한국의 상황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송왕조는 정치 세력간의 당파 싸움과내분 간신들의 이적행위, 휘종의 실정 등이 멸망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청백리로 유명했던 포증(包拯)(드라마 포청천의 실제인물)의 엄정한 법 집행이나, 중소 농민과 도시 서민을 보호하기 위한 왕안석의 신법 개혁 등 부국강병을 위한 노력도 잠시였다.
*신법파와 구법파 간의 당파싸움, 예술적 취향에만 몰입했던 유약했던 휘종, 재상 채경, 동관 등 간신들의 국정 농단, 성리학에만 탐닉하며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지 못했던 무력했던 사대부 모두 왕조의 몰락을 재촉한 사람들이었다. ★
*송왕조는 거란(요)과 새로 발흥하던 여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결국 거란을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의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한 금(여진)의 침략으로 개국 167년만에 멸망한다. (줄타기 외교) ★
*휘종과 아들 흠종이 금나라의 포로로 끌려간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다.
*하지만 남송으로 쫒긴 이후에도 150년 후인 1276년 새로운 북방의 강자 몽골족에게 정복되고 만다. ★
*쿠빌라이에 의해 남송이 멸망한 것은 한족 왕조가 중국 역사상 중국 땅에서 완전하게 사라진 최대의 이변이었다.★
*원의 체제에서 한족은 제3계급, 그 가운데 남송 유민들은 제4계급으로 전락, 민족적 차별을 받게 된다. 참으로 한족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북송 말기의 간신 진회(秦檜)가 만고의 충신이라고 불리는 악비(岳飛)를 죽이는 대목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독자를 분노케 한다. ★
*저자는 금의 침략을 저지하는데 맹활약하던 장수들을 한 명 한 명 무고하여 죽임으로써 금나라의 환심을 사며 화평정책을편 진회를 금의 고정간첩이라 단정한다.★
*진회가 금나라의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이후 그가 전방에서 활약하는 장수들을 소환하여 병권을 빼앗고, 악랄하게 제거하던 행태가 바로 이적행위의 표본이라고 본 것이다.★
*금나라는 무력 침공의 최대의 장애물이었던 명장 악비를 제거하기 위해, 진회에게 ‘악비를 주살하지 않으면 강화 교섭을 할 수 없다’며 압박했고, 진회는 악비에게 모반죄를 뒤집어씌워 악비 부자를 처형한다. 송으로서는 멸망을 재촉한 통한의 실책을 한 셈이다. ★
*현재 악비의 무덤 앞에 쇠사슬로 두 손이 뒤로 꽁꽁 묶인 진회 부부의 좌상을 두어 후세에 두고두고 경계하고 있다하니 그나마 다행인가.★
*한족이 이룬 통일제국 송왕조는 경제력을 토대로 돈으로 평화를 사려고 한 궤변의 안보전략과, 스스로의 군사력으로 국가안위를 지켜내지 못하고 ‘이이제이(以夷制夷)’로 한족 중심의 왕조를 지키려 했던 안이한 외교정책의 결과로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한 북방기마민족인 거란, 여진, 몽골에 연이어 정복당하고 말았다.★
*천여년 전의 송의 망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송은 경제력에서 압도했으면서도 북방 이민족의 군사력에 대한 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맞서 싸울 용기도 없었다.
*간신들은 화평을 명분으로 북방 이민족과 내응하며 돈으로 평화를 구걸하고, 심지어 자국의 군사력의 약화와 내분을 조장하는 데 혈안이 되었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송나라와 비슷한 양태가 대한민국에서 재연되고 있지는 않은가.
*햇볕정책으로 상무정신이 퇴화되었고, 종북세력과 화평세력의 이적행위는 더욱 활개를 쳤다. 이렇듯 당시 송나라와 오늘날 한국의 현실의 유사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점에서 이 책의 메시지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결국 군사력과 경제력, 국가지도자들의 굳건한 안보관, 국가관이 결합되지 않으면 국가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행정학 박사
♥ 나의 소감 및 지론♥
■지금부터 1,000년전 송나라는 인구가 1억800만여명에 이르었고, 철강 생산량은 전세계 철강 생산량 전체의 50%를 상회한 세계 초 강대국이었다.
■그런 세계 경제부국인 송나라 멸망원인과 우리 역사와 현실 조명은 다음과같다.
♧ 정치적 측면
* 신법파와 구법파 간의 당파싸움 및 성리학 우선(국방소홀)등이다.
* 간신들은 화평을 명분으로 북방 이민족과 내통하며 돈으로 평화를 사기위하여 매년 은 7~10만냥과 비단 수십만 필, 차 수만 근을 바치면서 평화를 구걸하였다.
*송나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은 주변의 거란,여진, 몽골은 군사력을 증강시켜 나중에 거란,여진, 몽골은 송나라를 지배하게되었다.
* 영국의 체임벌린도 1938년 뮨헨협정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에서 히틀러에게 체코 영토를 주는걸로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나 그로부터 1년 후 1939년 히틀러는 2차대전을 도발하였다.
* DJ, 노무현 정부의 약 8조원의 대북지원이 북한 김정일 정권을 기사회생시키고 북핵 무장을 완성했다는 주장이 많다.
* 영국 처칠왈! 역사의 교훈을 활용하지 못한 민족은 불행한 역사를 반복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약 970여회의 외침을 받아왔고, 오랜기간 중국에 조공, 일제 36년 식민지, 6.25전쟁 그리고 지금은 북핵위기에 직면하였는데 우리는 과연 역사의 쓰라린 교훈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문해본다.
*남북한은 1972년 7.4 공동성명이후 지금까지 655회의 각종 회담을하였고, 이중 245건은 남북한이 직접 서명을 하였으나 북한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를 지켜주지않았다.★
*이와같이 전혀 신뢰가 가지않은 북한에게 북핵 완전폐기없이 조급한 대북경제지원 재개와 신중치못한 국회비준을 통한 제도적 대북지원은 국가적 재앙이 될수있다.
♧ 군사적 측면
*송나라 건국자인 조광윤(趙匡胤)이 군대의 발호를 막기 위해 문관 우위의 체계를 확립하고, 중앙군을 강화하면서 절도사 휘하의 지방군을 약화시키는 <강간약지(强幹弱枝) 정책>을 펼쳤다.
* 문치주의/ 주자학 우선의 송나라와 숭문천무/ 주자학 일변도의 조선은 일맥상통하다.
* 위 글에서 언급한바와같이 천년 로마제국도 국방을 외국군대에 맡겨서 망했다.
*조선 정규군은 수천명이 일으킨 동학난을 제압할 힘도 없었서 청군 투입을 요청한 것이 청일전쟁으로 비화되었다. 부스럼을 떼려다가 큰 혹을 부친격이 되었다.
*핵 보유국과 핵을 미보유한 국가와의 군사력은 바위와 계란을 비교하는격이다. 그렇다면 핵으로 무장하고 120만 정규군으로 무장된 북한위협하에 현역 12만여명 감축과 병 복무기간 3개월 단축등은 너무 실망스럽다.
* 간신및 고정간첩인 <진회>는 금나라 침략을 막는데 대활약을 한 <악비>에게 모반죄를 씌워 악비 부자를 죽였다.
* 성웅 이순신 장군도 간신들의 농간으로 옥고를 치루고 백의종군을 하였다.
* 가장 충성심이 강한 집단인 군부가 정권의 불신과 천대를 받는것은 군의 사기와 전투력 저하에 심대한 타격이 될수있다. 특히 군은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이다.
♧ 외교적 측면
* 송왕조는 거란(요)과 새로 발흥하던 여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결국 거란을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의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한 금(여진)의 침략으로 개국 167년 만에 멸망한다.
* 자국의 국방력없이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눈치보기 작전(줄타기 외교)은 필망의 지름길이다. 대표적 국가가 폴란드와 우리나라의 구한말이었다.
*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대륙외교는 수 많은 외침과 사대주의(조공)였으나 미국 중심의 해양외교에는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다.
* 요즘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에 중국이 처절한 홍역을 치루는 모습과 NATO에 미국 동맹국인 터키가 미국의 경제보복으로 터키 화폐가치가 폭락한 모습등은 결코 강건너 불로 볼것이 아니다.
*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 미군, 세계 초강대국은 미국이라는 현실성을 고려해 보면 앞으로 상당기간은 한미간 굳건한 외교는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 보인다.
■ 교훈
*경제= 평화는 아니다. 지금부터 1,000년 전 송나라는 세계 최고의 경제부국이었으나 당시보잘것없는 거란, 여진, 몽골에 멸망하였다. 무장되지않은 배부른 돼지는 무장된 배고픈 늑대의 먹이감으로 전락된것이다. *평화는 돈주고 살수없는바 그럴 대북지원 자금이 있으면 차라리 우리가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하든지 또는 미 전술핵문기 재배치나 충분한 THAAD 배치등이 진정한 평화보장이다.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약속을 지키지않으며 오직 강력한 힘에 굴복을 해왔는바 북핵의 가시적인 해체가 있기까지는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지속되어야 할것이다.
*북한은 1972년 7.4 공동성명후 지금까지 245건의 서명된 문건에 단 한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했는바 종전선언과 대북지원은 북핵의 가시적인 폐기이후에나 신중히 검토할 사안이다.
*제발 대한민국은 중국 송나라의 눈물을 번복하는일이 없길바란다.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