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베를린 거리 풍경’, 1913년, 121×95㎝, 노이에 갤러리(미국 뉴욕)
이웃에 대한 부채감
지난 9월 9일 자유칼럼에 실린 황경춘 선생님의 글 『서울의 한 동네서만 60년』을 읽었습니다. 서울의 서북쪽 끝인 은평구에서 비슷한 세월 같이 살아오신 분이 계시니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동네에서 딱 한 번 이사하신 곳이 녹번동이라고 하셔서 마음속 작은 향수도 일었습니다.
은평구의 동네마다 있는 골목길들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녹번동의 길을 다닌 기억은 고등학교 때의 한 번밖에 없습니다. 구청과 문화예술회관, 그리고 유명한 감자탕집은 다녔지만 골목길 걷기와는 다르지요. 기억은 아주 소박합니다. 녹번동은 나지막한 언덕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언덕 북쪽 아래의 어느 골목길이 기억납니다. 해 지기 전의 오후 시간 조용한 주택가를 지났습니다. 젊은 여인 두엇이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고 있었고, 어떤 여인들은 길가에 모여 서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몇 명이 길에서 놀고 있었던 듯합니다. 평범한 장면이랄 수 있지만 그 동네의 정경이 무척이나 평화로운 그림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었습니다. 골목의 기억은 베르테르와 로테가 담소하며 거닐던 길인 양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추석 연휴 중 사흘째 되던 저녁, 그 길을 찾아보러 나섰습니다. 세상이 변해서 못 찾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꽤나 복잡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쏘다녀 보았는데 기억과 비슷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독 주택들이 거의 다 없어졌으니 말입니다. 다세대주택을 비롯한 새 집들이 들어선 곳에선 그 정겹던 골목 풍경을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예전엔 없던 자동차들까지 오가니 낯선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니까요. 그래도 걸으면서 평화로운 광경의 기억을 떠올리는 작은 즐거움은 있었습니다. 여러 골목을 헤맨 뒤에 포기하고 갈현동의 집을 향해 걸으며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억 때문만은 아니고 오래 살아온 지역이니 정이 생겨서 그런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 정이 지역에 대한 부채감(負債感) 같은 것과도 어우러져 있습니다.
은평구에는 1950년대에 설립된 사회사업 기관이 있습니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결핵 환자 치료 병원도 있습니다. 병원에 수용된 결핵 환자들은 예전의 규정에 의하면 3년이 되면 병이 낫지 않아도 퇴원해야 했습니다. 그들 중 연고 가족이 없는 이들은 병원 울타리 바깥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사회사업 기관의 존재는 고등학교 때 전해 들어 이름만 알고 있었고 환자촌은 신입사원 시절 회사 사람들과 같이 한번 방문하였습니다. 그 후 수십 년간 그 둘 중 어느 한 곳에도 관심을 갖지 못한 일로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몇 해 동안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사회사업 기관에 수용된 이들 옆에 같이 있어 주는 일을 실행했습니다. 언젠가는 병원에서 나와 오갈 데 없는 환자들을 돌보던 교회를 찾아 나섰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일대가 모두 주택가로 변했지만 천막교회가 벽돌교회로 변하여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반가웠습니다. 이런 정도의 행동을 한 것으로 부채감을 얼마간 덜었습니다.
근래에는 가까운 곳에서 지역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작년 가을 집 근처에 재활용품 수집장이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거기를 지날 때면 한 번씩 들여다보게 되고 때로는 그 앞에 서서 길 양편을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전에 못 보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파지를 비롯한 재활용품을 나르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령자들입니다.
지난 7월말 6시를 좀 넘긴 아침 재활용품 수집장에서 나오는 여인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나와 같은 방향이었으니까요. 뒤따라 걷다가 어느 곳에서 파지를 모으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파지를 수집하시는군요. 저 위쪽의 제 집에 얼마간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시면 가져다 드릴 게요.” 몇 분 뒤 짐을 들고 내려와 그의 작은 손수레에 얹었더니 그는 허리를 굽히며 여린 목소리로 몇 차례나 고맙다고 했습니다.
8월초에 다시 한 번 같은 장소에서 다른 여인에게 집에 있던 파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물었습니다. “가져가시면 얼마 받나요?” “킬로그램에 사십 원 해요. 이거 다 해 봐야 얼마 안 돼요. 그래도 책이 있으니 (부피에 비해) 삼사 킬로는 더 나가겠네요.” “연세도 높으시니 자식들이 벌 텐데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일이 시원치 않아서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걸요.” “그럼 파지 판 돈을 아드님에게 주시나요?” “그러진 않아요.” 더 이상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아내는 나의 행동을 나무랐습니다. 파지를 길가에 그냥 두지 않고 왜 특정인에게 갖다 주느냐고 했습니다. 그 나무람은 불공평한 일을 했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깐에는 힘 약한 여인에게 제공하느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공평한 일을 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후로는 파지를 길가에 내놓기만 하고 있습니다.
속으로 놀란 일도 있습니다. 수레를 끌며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그들이 어딘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인식이 마음속 한구석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들이 저기 서오릉 고개 너머 사람들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골목들을 지나며 살펴보니 집에서 수레 끌고 들고나는 노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먼 데 사람이 아니고 이웃이었습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파지 약간 모은 것을 제공한 나와 그들을 모르는 동네의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의 공존에는 어떤 모순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지역에 대한 부채감이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변하고 있는 듯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공평인지 아닌지 작은 갈등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이웃을 진정한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의식이 있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웃에 대한 부채감이 숙제처럼 남았습니다.
[퍼온 글] / 출처; 2019.09.25 06:56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홍승철(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 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홍 접시꽃
여행사 수난 시대
“그리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타러 왔는데, 여행사 파산으로 항공편이 취소됐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이 둘의 첫 해외 여행지로 미국 디즈니랜드를 택하고 2년 동안 돈을 모아서 여행상품을 샀어요. 날려버린 돈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실망하는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사인 영국의 토머스 쿡(Thomas Cook・1841년 설립)이 파산하면서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토머스 쿡 여행상품을 이용 중이거나 계약한 사람은 영국인 15만 명 등 전 세계 60만 명에 이른다. 영국 정부는 자국 여행객 송환을 위해 대형 수송기 94대를 투입했다.
178년 전통의 여행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급변하는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행업의 아버지’ 토머스 쿡이 세운 이 회사는 16개국에서 200여 개의 호텔・리조트와 5개 항공사 등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저렴한 온라인 예약 사이트와 저비용 항공사에 밀려 어려움을 겪었다. 지나친 할인 이벤트로 출혈 경쟁에도 내몰렸다.
대외 악재까지 겹쳤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파동으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금융비용이 늘었다. 파운드화 폭락으로 여행 수요가 줄었는데도 오프라인 지점 500개를 유지하느라 고정비를 계속 지출했다. 그 결과 부채가 17억 파운드(약 2조5251억 원)로 불어났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한국 여행업계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유여행 수요가 늘면서 전통적인 패키지여행이 줄어드는 추세다. 그 틈새를 글로벌 온라인여행사들이 파고들고 있다. 지난해 하나투어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9.2% 줄었다. 모두투어의 영업이익도 반토막이 났다. 항공권 판매업체 탑항공을 비롯해 더좋은여행, 싱글라이프투어, e온누리여행사 등은 문을 닫았다.
전문가들은 “토머스 쿡의 파산은 코닥의 몰락과 닮았다”고 진단한다. 시장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뀌는데 전통적인 필름에만 매달리다 파산한 코닥의 전철을 밟았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마르셀 프루스트)이라는 말처럼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면 언제든 눈 뜨고도 앞을 못 보는 청맹과니가 될 수 있다.
[퍼온 글] / 출처; 한경닷컴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9.09.25 00:28
백당나무
셰일가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보면 타오르는 불길이 관찰된다고 한다. 미국 텍사스주 이글퍼드와 퍼미언, 노스다코타주 바컨 등 셰일가스전에서 나오는 불길이다.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소비국인 미국조차 다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아, 남는 가스를 태워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장하려면 부피 제약을 극복해야 하는데, 200배 이상의 압력을 가해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들어 차라리 태워서 재고량을 줄이는 게 낫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가스공사가 2025년부터 15년간 연간 158만 t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하기로 했다. 이미 2017년부터 20년간 연간 280만 t의 수입 계약을 맺었는데 또 추가한 것이다. 가스공사는 중동 중심의 수입처 다변화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셰일혁명으로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가가 되면서 석유・가스 수출량 늘리기에 골몰해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선물 보따리를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셰일은 작은 모래나 점토 크기의 입자로 구성된 층상 구조의 퇴적암이다. 암반 사이사이에 오일(oil)과 천연가스(LNG)를 머금고 있다. 원래 채산성이 낮아 이용되지 않았는데, 2008년 미국에서 새 채굴 기법이 개발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양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셰일층이 있는데, 바컨 셰일은 넓이가 한반도의 4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 독주와 자신감은 셰일오일・가스 힘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은 2013년 원유 생산량이 수입량을 앞질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경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합한 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미국의 해외 원유 수입 중 중동산 비중은 22%에 그쳤다. 더 이상 산유국에 목을 매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6월 오만 해상에서 유조선이 피격되고, 최근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이 반 토막이 났음에도 국제 유가가 비교적 차분했던 이유다.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에너지 수입이 필요 없게 된 미국은 국제사회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세계는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 전망했다. 스스로 수송로를 확보할 수 없는 국가들이 에너지 수급 불안에 빠지면서,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군비 경쟁과 합종연횡을 벌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시리아 철군을 감행하며 “미국은 더 이상 중동의 경찰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70년간 유지됐던 세계 에너지 질서에 셰일혁명이 예기치 않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퍼온 글] / 출처; 동아일보 / 이진구(동아일보 논설위원) / 2019-09-25 03:00
금계국
곰사람 되기
2년 전에 가까운 지인들과 매일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었다. 날마다 글을 써서 함께 공유하는 이 모임의 이름은 ‘곰사람 되기’이다. 어느 단체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글을 읽고 가까운 분들과 시작해 보았다. 단군신화의 내용을 보면 환웅은 인간이 되고 싶다며 찾아온 곰과 호랑이에게 100일 동안 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동굴 속에 들어가 이를 지킨 곰은 삼칠일 만에 웅녀가 되었지만 호랑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왜 호랑이가 아닌 곰이 사람이 되었을까? 호랑이는 힘과 용맹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굴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나가버렸다. 곰은 인내심이 강하여 힘든 상황을 견디며 이루고자 하는 바를 얻어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인간이 된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인내를 더 높은 가치로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임의 이름인 ‘곰사람 되기’의 뜻은 매일 글을 쓰는 일이 힘들지만 100일의 약속을 지키자는 의미였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 벌써 일곱 번째를 맞이했다. 곰의 후손인 우리는 잘 버틴다. 여러 차례의 국난에서 강한 힘을 발휘한 적도 여러 번이다. 쑥과 마늘은 매 시기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물론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때도 있다. 참는 쪽보다 다른 해결책을 찾아 동굴 밖으로 나간 호랑이의 후손들도 존재할 것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여러 시련이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며,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도 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임에도 모함을 받기도 한다. 모든 일에 한 면만이 존재하지 않듯이 고통의 경험은 다음 시련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은 각자 다양하다. 왜 참아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면 호랑이처럼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반면 참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견뎌냄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증명할 수 있다. 어느새 일곱 번째 ‘곰사람 되기’의 시간도 막바지이다. 아마도 이번 일정이 끝나면 한층 더 단련되어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퍼온 글] / 출처; 국민일보 / 문화라(작가) / 2019-09-25 04:09
범부채
中 공산당원 1억 명
중국 상하이(上海)의 번화가인 신톈디(新天地)에는 중국 공산당의 성지로 불리는 중국공산당 1차 전국대회 기념관이 있다. 프랑스 조계지에 위치한 이곳에서 1921년 7월 23일부터 일주일간 중국 공산당 창립을 겸해 1차 당 대회가 열렸다. 창립 대회엔 중국 전역의 공산당원 57명을 대표해 마오쩌둥(毛澤東) 등 13명과 코민테른에서 파견된 2명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했다. 기념관엔 후난(湖南)성 대표로 참석한 28세의 마오가 중국 공산당의 향후 전략을 토론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유화 등을 비롯해 초기 공산당 관련 문건이 있다.
마오를 대표로 한 13인의 ‘중국판 볼셰비키’는 이후 국민당과 내전을 벌이며 대장정 등을 거치면서 살아남았고, 1949년 10월 1일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오성홍기를 꽂았다. 당원 57명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창당 28년 만에 집권에 성공했고 오는 10월 1일로 건국 70주년을 맞는다. 공산당 중앙조직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총 당원은 9059만4000명이다. 창당 때에 비해 159만 배로 팽창한 것이다. 최근 들어 입당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져 몇 년 내 1억 명 당원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중국 공산당은 세계 공산당 가운데 최장수 당인 동시에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공룡 정당인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에 따르면 2012년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이후 입당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매년 평균 390만 명이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있고, 경쟁률은 평균 4 대 1이라고 한다. 시 주석도 20세 되던 1973년 첫 입당서를 낸 후 10번이나 떨어진 끝에 통과됐다고 한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6월 국제포럼 ‘문화 미래 리포트 2019-차이나 파워와 한반도’에 참석, “중국 공산당은 통상적인 당이 아니라 중국을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의 당”이라면서 “공산당의 운명이 곧 중국의 운명이자 미래”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선 중국공산당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지만, 중국의 최근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톈안먼 시위 30년 만에 발생한 홍콩 시위는 점점 격렬해지고, 도널드 트럼프 시대 미・중 전략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외부의 위협을 이유로 1인 체제를 더욱 굳혀가는 시 주석이 2년 후로 다가온 창당 100주년을 어떻게 맞을지 궁금하다.
[퍼온 글] / 출처; 문화일보 / 이미숙(문화일보 논설위원) / 2019년 09월 24일(火)
참으로 구차한 시대
많이 사용하는 어휘 중에 의외로 의미의 외연과 유래가 간단치 않은 경우들이 적지 않다. ‘구차(苟且)하다’를 한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살림이 몹시 가난하다’가 첫 번째 뜻으로 나온다. 중국어사전에는 ‘그럭저럭 되는 대로 하다’, 일본어사전에는 ‘일시적이다’가 통용되는 의미로 등재되어 있어서 거리가 꽤 있어 보인다.
가장 이른 시기의 출전으로 알려진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글에서는 통치자에게 ‘구차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이익에 좌우되지 말고 굳건해야 함을 강조하는 문맥이다. 한(漢)나라 순열(荀悅)은 진(秦)이 14년 만에 멸망한 이유로 ‘구차한 정치’를 들었는데, 성현이 제시한 보편적 예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많이 달라 보이던 의미들이 대체로 ‘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일시적인 편의에 따라 대충 봉합하며 지나치는 태도’로 수렴된다. 한국어사전의 두 번째 뜻인 ‘말이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함’과 그 주된 용례인 ‘구차한 변명’ ‘구차한 목숨’ 등의 표현 역시 일맥상통한다.
“성현의 도는 ‘구차하지 않음’에 있을 뿐이다.” 18세기 작가 조귀명이 불구(不苟)를 호로 삼은 윤득형을 위해 지어준 <불구설>의 첫 문장이다. 그는 구차함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없음’으로 풀이했다. 무릎 꿇어야 할 때는 누울 생각이 나지 않고 서 있어야 할 때는 앉을 생각이 나지 않아야 구차하지 않다고 할 수 있지, 그저 무릎 꿇고 서 있는 동작을 예법에 맞추어 억지로 행하는 것으로는 구차함을 면치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구차함과 구차하지 않음의 구별은 외면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떳떳한 원칙이 체화되어 자연스럽게 표출될 때 비로소 구차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 원칙인지 생각조차 않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만년의 박지원은 병풍에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 여덟 글자를 크게 써두고, “세상 모든 일이 다 이 여덟 자 때문에 무너지는 법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해오던 대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임시변통하면서 문제를 덮어두는 태도를 경계한 말이다. 우리는 왜 그다지 빈궁하지 않은데도 이렇게 늘 옹색하고, 그 옹색함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도 않는 것일까?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구차하지 않은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퍼온 글] / 출처; 경향신문 / 송혁기(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2019.09.24 20:53
내 안에 나를 찾는다
1부터 100까지 곱하는 작업은 그 속에 1부터 99까지 곱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먼저 99까지 곱하는 작업을 해놓고 거기다 100을 곱하면 된다. 둘은 똑같은 작업이고 크기가 하나 차이 날 뿐이다.
100개의 수를 크기가 작은 순서로 정렬하려 한다. 우선 100개를 죽 훑어 가장 큰 수를 찾는다. 이 수와 제일 오른쪽 수를 서로 바꾼다. 이제 제일 큰 수는 맨 오른쪽에 자리 잡았고 이 수는 앞으로 진행될 정렬 작업에서 그냥 그 자리를 지키면 된다. 맨 오른쪽 수에 관한 한 정렬이 끝난 것이다. 남은 수는 99개다. 이제 이 남은 것들로 앞에서 했던 작업을 똑같이 반복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가장 큰 수를 찾아 맨 오른쪽 수와 자리 바꾸는 수고를 하고 나면 자신과 성격이 똑같지만 크기가 하나 작은 정렬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어떤 문제가 자신과 성격이 똑같지만 자기보다 작은 문제를 하나 또는 여럿 포함하고 있으면 재귀적 구조를 갖는다고 한다. 수학적 귀납법, 프랙탈 등도 재귀의 다른 얼굴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중에 4할은 재귀 알고리즘이고,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재귀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또 4할이나 된다. 즉, 80% 정도가 재귀와 관계있다.
재귀의 핵심은 내 안에 존재하는 작은 나를 찾는 것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나를 보는 관점을 달리할 수 있다. 그때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작은 나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재귀는 주관적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포착하는 관점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에서 재귀는 지성의 객관성을 드러내는 예이기도 하다. 정렬 작업도 나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버전이 있다. 재귀는 검색, 집합 처리, 최단 경로, 패턴 매칭, 신경망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출현한다.
문제 해결 알고리즘을 찾는 과정에는 재귀적 구조를 발견함으로써 간명하고 우아한 해법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이 작업의 핵심은 문제를 보는 하나의 관점을 발견하고 이 관점과 일치하는 작은 문제를 찾는 것이다. 이걸 잘 못 하면 일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고 온갖 쓸데없는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된다. 세상이 복잡해진다. 시중의 큰 프로젝트와 비즈니스에서 리더가 관점을 잘못 설정하면 그 일이 포함하는 작은 문제들도 덩달아 지저분해진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고 고급스러운 시야를 가진 리더에게 팀원과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이 주어지곤 한다. 시야가 조악한 리더는 100명의 인건비를 그냥 날릴 수 있다.
사람이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자신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면 세상이 훨씬 정돈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특성 중 그런대로 경쟁력 있는 것을 취하고 안팎을 대략 맞추어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한다. 인간의 자아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뇌의 전기화학적 작용으로 만들어진 주관적 허구다. 그러니 자유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자신을 터무니없이 정의할 공간이 생긴다. 강연에서 청중이 열광하면 자아가 더 고고해진 듯한 착각이 든다. SNS 팔로워가 잔뜩 붙고 온갖 이슈에 훈수를 두다 보면 자신을 연못의 알에서 나왔거나 전설의 동물이 변해서 된 사람 급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세상의 많은 소음이 대외적으로 설정한 자신과 내부의 자신이 ‘터무니없이 다른’ 사람들로 인해 생긴다.
[퍼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문병로(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 2019.09.25 00:15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 멕시코)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