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본질은
지도자와 대중의 소통과 대화이며
민주주의는 이것을 담보하는
그릇입니다.
다시 이야기하여
민주주의라는 그릇을통한
지도자와 대중의 소통과 대화는
정치라는 수단을거쳐 (국회 또는 대의원회의)
대중의 요구와 의사가 간접적인 방법으로
지도자에게 전달되고
지도자는 대중의 의사가 반영된
여러가지 정책으로 화답을 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국회모두
지도자와 대중과의 연결고리일 뿐이며
이들의 존재이유는
각양각색한 대중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청취 수렴 편집하는
전달자적 역활일 뿐입니다.
혹자들은 말하죠.
정치는 생물이다 또는 알수없다 ..라는 등등
한 마디로 무식의 첨단을 달리는 망언들이죠.
즉 정치의 본질적 의미를 망각하고
집단적 패권에의한 힘겨루기와 진영논리
그리고 개인의 입신양명을위한
도구로 인식하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적 움직임속에서
개인의 안위만을 걱정하다보니
정치가 생물같이 살아 움직이고
미래를 예측할수 없는것입니다.
정치의 본질적 의미
즉 지도자와 대중의 연결 고리로서
대중의 이견과 여론을 잘 살피고
이를 잘 정리하여 지도자에게 전달하면서
지도자가 제시한 정책을 다시 대중들의 언어로
설명 설파하는것이 정치일 뿐입니다.
이러한 절차들이 무리없이 잘 이루어지면서
소외받거나 외면받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주장과 요구를 억압하거나 묵살하지않고
다수의 견해에대해 설복 설득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치의 민주주의라 할수있습니다.
다수결에의한 소수결에대한 억압과 탄압은
다수를 빙자한 패권행사일 뿐이며
다수의 "파시즘"일 뿐이죠.
그러하다면 이러한 의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추첨제도에의한 선거 선출방식은
과연 정당한것인가 ..라는
의문 말입니다.
여기에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각종 미디어와 언론은
대중여론과 정치의 입이라 할수있습니다.
바로 이 미디어와 언론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가정하에서만
추점제도에의한 선거나 선출방식이
정당성을 획득할수 있다는 의미죠.
다시말해서
부패한 정치권력이
대중여론과 정치의 입이라 할수있는
각종 미디어와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을 조작한다면
아무리 선거 선출방식이 깨끗하였다 하여도
대중들의 정치참여 행위를통한 다수결이
정당성을 획득할수 있을까요..?
(똥물을 아무리 걸러냈다 하여도 원초적으로 오염된 똥물을 마실수있을까요?)
그러므로 추첨제도에의한
다수결만이 어떤 절대적 진리나 선은 아니며
꼭 합리적이라 볼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약점을
가장 잘 파고든 이가 바로 "히틀러"이죠.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인민에의한 인민을위한 인민의정치"
민주주의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죠.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
인민이란 의미의 .데모스 (demos)
지배란 의미의 .크라토스(kratos) 의
합성어. 데모크라쉬(democrcy)는
인민이 권력을 가지고 인민이 권력을 행사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모든 권력은 인민이 잠시 임대한 권력일뿐이며
권력을 임차인한 자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인민의 의지에 반하는 정치행위를 하였을시
그 권력을 다시 회수하여
부당한 권력행사에대한 응징을 한다..라는 뜻이죠.
이러한 인민대중의 권리행사를
적극적 대승적 의미의 "자유권"이라 하며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저항권이 됩니다.
크게 "자유권"은 두가지로 해석되고
적극적 대승적 의미의 "자유권"은
국가라는 정치적 도구를통한
다수의 평등권을 지향하며 이를통해
정치 경제에서의 자유를 추구한다 라고 할수있고..
소극적 의미의 "자유권"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며
무정부주의 "아나키즘"에 가깝고
또한 자연주의"내츄럴리즘"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습니다.
첫댓글 맞는 말씀이죠
정치란 인민대중을 옳은길로 조직하고 이끌어 나가는게 정치이죠
그러자면 인민대중의 의사를 많이 정확하게 옳게 반영하여야 하는데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민주주의 방식이죠
근데 울나라는 민중과 정치가 분리되여 있죠 허울 뿐인 선거를 통하여 기득권을 차지한 특정세력이 민중의 의사와 요구와는
상반된 정치를 한다는게 문제이죠
절대다수의 민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지들의 이익이나 저들의 지지기반세력 또는 특정세력의 이익과 입맛에 맞는 정치를 한다는게 문제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