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주에서 친정어머니께서 올라오셨다.
내년이면 90을 눈 앞에 두고도 허리만 약간 아프실 뿐 건강하신편이다.
하긴 80세에 한라산 정상을 다녀 오셨고 84세에는 베트남여행도 우리와 함께
씩씩하게 다녀 오신 분이시기도 하다.
재작년에는 일본을 자식들과 다녀 오시기도 했다.
80이 넘어서야 노인대학을 다니기 시작하시더니 노인 대학과 대학원을 합쳐서
7년을 다니시고 노인대학을 다니시며 한글도 깨우치셨다.
요즘은 황금대학이라고 성당에서 진행하는 대학에 1주일에 한 번 다니신다고 하셨다.
가끔은 동창회에 나가신다며 옷차림에 신경 쓰시는걸 보면 귀엽기도 하고 웃음도
살짝 나온다.
우리가 제주에 내려가면 상장을 여러 개 모았다가 보여 주시며 본인자랑도 하신다.
그 중에는 동시를 지어 받은 상도 여러 개 있었는데 국어는 잘 따라 가는데 수학은
너무 못해서 부끄럽다고 하셨다.
내가 수학 문제지를 보며 더하기 빼기를 한참 가르쳐 드려도 이해가 안되는지 무조건
어렵다고만 하시는 걸 보면 수학에는 약하신게 맞는가 보다.
그런데 이번에 올라 오셔서 노래를 부르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노래 부르시는 모습을 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디 가서든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벌금을 내는 일이 있어도 노래는 전혀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듣는건 좋아하셔서 라디오를
밭에까지 들고 다니는 모습을 어릴때는 많이 보곤 했었다.
그런 아버지께서도 유일하게 우리에게 불러 주신 노래가 있다.
6,25 참전용사로 충무무공훈장을 여러 개 받으신 아버지는 그 당시 소대장으로 6년간 군복무를
하셨었고 내가 학교 들어 가기 전 집에 함께 있을때는 항상 불러 주시던 노래...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스러져간 전우야 잘 자라.. "
2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절은 또렷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아버지는 이 노래를 불러 주셨다.
그런데 이번에 어머니께서 이와 비슷한 노래를 부르시는게 아닌가..
내 나이 환갑이 넘어 처음 들어보는 어머니의 노래 제목은 "대한 청년단"이라고 하셨다.
부르시는대로 적어 보았는데 가사가 다 맞는건지는 나도 모른다.
"정의의 깃발을 휘날리면서
순국의 피끓는 일편단심은
동해의 떠오르는 아침의 햇빛
아~~~아~~~충성의 몸이요 한걸음 정신
힘차게 나가자 대한 청년단..."
한걸음 정신이 아니고 한겨레 정신은 아닐까 혼자 고개를 갸우뚱 해보기도 했다.
어디서 배우셨냐고 여쭤보니 예전 제주 4,3사건때 남자들이 많이 불려나가 죽는 바람에
여자들도 총, 칼 들고 싸워야 된다면서 새벽에 1시간씩 불려나가 노래도 배우고 훈련을
받으셨다며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17살에 배운 노래라시며 우렁차게 부르시는 바람에 우리 가족들은 웃느라 배꼽을 잡기도 했다.
그 노래 말고도 옛날 대중가요들도 곧잘 하시는 걸 보고 옛날에는 살기가 어려워 노래를
할 여유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노래 못하시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나도 노래를 전혀 못하니 부모님을 닮았구나...하고 포기하곤 했었는데...
옛날 내가 어린시절 외할머니께서는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이야기 잘 하신다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친정어머니도 외할머니를 닮으셨는지 이야깃거리가 풍부하시다
작가분들이 두어 번 찾아 왔더라며 농협 상품권을 두 번 받으신 이야기를 해 주신다.
그 어머니의 딸 나....
그냥 글 읽는게 좋고 쓰는게 좋아 이렇게 오늘처럼 낙서하듯이 써 내려간다.
간간이 방송도 되고 글이 활자화 될때는 마음이 뿌듯할때도 있다.
나의 딸....단 한번도 강요 한 적도 없는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방송작가가 꿈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일을 하고 있다. 4대가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는셈이다.
오늘은 전우여 잘자라...란 노래와 대한 청년단이란 노래를 다시 되새겨보며 부모님의
그 시절을 추억 해 보고 싶다
첫댓글 (2)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초등학교 때 고무줄 놀이 할 적 불렀습니다. 체육 시간에 줄 맞춰 행진할 때도......덕분에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2절을 써 주셨네요..읽어봐도 2절은 기억이 잘 떠오르지가 않네요.
전 학교 가기 전 들은 이후 학교에서는 들어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노래가 슬픕니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선 안되겠지요.. 읽어 주시고 흔적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을 울려주네요
요즘엔 이런 사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참 걱정스럽답니다.
적화통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사는 분위기가 만연되면
정말로 그렇게 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대한민국/남한에서 '적화통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요?
걱정됩니다.
용어가 섬뜩해서...
지나친 걱정일 것 같습니다만...
반갑습니다..요즘 시대상황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막 썼는데
생각 해 보니 이런 글에 반감 사는 사람들도 있을 듯 싶습니다.
요즘 상황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저도 느끼고 있으니까요..
좋은글 다녀갑니다 건필하세요
반갑고 감사합니다. 활동 많이 하시는 모습 보입니다.
부럽다는 생각을 해 보곤 했네요..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글 거듭 읽었습니다.
가족들이 체질적으로 글쓰기에 재능을 가졌군요.
이 글 언제 쓰셨는지.. 말미에 쓴 년월일을 남겼으면 제3자가 이해하기가 더욱 쉽겠군요.
띄어쓰기 정도로만 조금 더 보완한 뒤에 ... 국보문학 월간지 또는 동인문집에 올렸으면 합니다.
제29호 동인문집 원고 접수가 조만간 곧 시작될 겁니다.
그간 카페에서는 시는 엄청나게 많아도 수필/산문은 적어서 아쉬움이 많았지요.
위 글 하나로도 저는 빙그레 웃습니다.
글감이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 같기에...
엄지 척! 합니다.
부친께서 한국전쟁 참전장교였으니 ...
지금 어느 곳에 잠들어계신지요?
@윤희 연월일을 쓰면 이해하기 쉽네요.
글 쓴 시기를 알 수 있기에.
우리말을 우리글로 쓰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띄어쓰기이지요.
글의 본질은 내용에 95%, 띄어쓰기 맞춤법 등은 5%이지요.
시가 아니라면.. 부담 가질 필요 없지요.
책 발간할 때에는 전문으로 교정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내용 글맛을 최우선으로 여기지요.
자꾸만 쓰다 보면, 덜 틀리려는 마음으로 글 쓰면 점차로 띄어쓰기를 익히게 되지요.
윤희 님은 먼저.. 이야기나 다 풀어내세요! ㅎㅎㅎ.
@최윤환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로 국립묘지에 갈 수 있었지만 화장 하시는 걸 살아 생전에
별로 탐탁치 않아 하셔서 할 수 없이 제주에 묻히셨습니다.
요즘 제주 관광지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새별오름 바로 밑에 아버지 산소가 있어 제주
갈 적마다 새별오름은 한 바퀴 돌고 옵니다.
@최윤환 언제나 좋은 조언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그냥 막 쓴 글인데 전 다듬는 재주도
없고 생각나는대로 막 써서 그냥 올리는 편입니다. 띄어쓰기는 너무 어려워요..ㅎ
다음부터는 날짜를 써야 되겠네요..
@윤희
국립공원(서울, 대전). 호국공원 등에 안장할 수도 있는데도 본인이 화장을 거부하셨군요.
어쩌면 잘 하신 결정일 겁니다.
대신에 참전장교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비석/표석 등은 세웠겠지요.
구국의 용사였기에.
자랑스러운 선친을 두셨기에 떳떳하게 흐믓하게 당당하게 이야기하시겠군요.
글도 잘 쓰실 겁니다.
주욱 풀어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