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뮤지션, 작곡가, 편곡가, 평론가들은 조용필을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는다.
이러한 評은 두가지 측면으로 나누는데, '가수'적 면과
'아티스트적'(음악 예술가) 측면이 그것이다.
가수적으로 보면, 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다 라고 할 만큼, 조용필은
말 그대로 전국민에게 오랫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다.
80년대 가요인물들을 말할때는 조용필을 빼놓고 말하여야 하는데
이유는 아무리 인기있어도 조용필 다음 2인자이기 때문이다
신승훈이나 김건모를 국민가수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인기는 30대까지가 한계였다.
하지만 조용필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이런 가수는 조용필 하나뿐이다
또한, 조용필은 현대적인 의미의, 팬클럽으로서의
오빠부대를 처음으로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타고난 목소리는 원래 미성이었는데,
이에 피나는 노력으로 판소리의 색채를 더함으로써
애잔하면서도 강렬한, 마음을 움직이는 음색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당시 전두환 노태우 군부 정권에 억눌려있던
사람들의 감성을 강하게 공명시켰다.
다음으로 음악예술가적 측면으로 보면,
조용필은 당대에 완전히 아마추어적인 수준이던 가요계에서,
아무 것도 없이 독학하여, 단연 독보적으로 세련되고 시대를 앞서간 음악을 했다.
그가 80년대 초에 만들었던 단발머리, 자존심, 황진이, 못찼겠다 꾀꼬리, 고추잠자리,
여행을 떠나요같은 노래만 들어봐도 쉽게 알 수 있을것이다.
조용필은 특히, 다른 사람들은 아직 락이면 락, 발라드면 발라드, 트로트면 트로트,
각 장르 안에서 음악을 만드는 데에도 쩔쩔매던 시절에, 이미 방대한 퓨젼을 행했다.
특히 이러한 퓨젼 혹은 크로스오버라는 것은 잘못 되면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어색한 노래가 되기 쉬운데,그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차트를 휩쓸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총음반판매량에서도 압도적으로 최고를 달리고 있을것이다
즉, 외국의 음악을 들여와 조합을 했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맞도록 곡을 재창조했다 .
그만의 음악세계 - 이른바 조용필식 음악을 만든 것으로
편곡에 있어서도 선구적인 감각을 보였다.
대중에게 있어 조용필의 모습은 언제나, 슈퍼스타, 국민가수, 대형가수로만 되어있다.
즉, 그의 음악 예술가 측면 또한 가요 역사상 독보적이었음에도, 그런 면은 완전히
무시되고,단지 노래 잘 부르는 사람으로만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방송과 잡지에서는 그를 방송에 내보낼 최고의 인기 가수,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오직 그런 면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당시 대중들은 전혀 음악적인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즉,
음악적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조용필의 노래를 듣고도 그냥 좋은가 보다하고
따라부르는 수준에 머물렀지, 그게 다른 노래와 비교해서
얼마나 앞서 간 노래였는지,
음악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성취였는지 전혀 알 수 인지를 못했다.
마지막으로, 당시에는 예술평론, 특히 가요평론 이라는 것이 전무했으며
그런 걸로 밥벌어 먹을 수도 없었고,그럴 재능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면, 평론가라도 評을 하고, 대중의 이해를 도와야 하는데
전혀 그럴 상황이 되지 못했다.
결국 90년대 들어서, 가요계가 10대와 20대 위주로 재편되고,
그가 나이가 들자, 서서히 정상에서 내려온다.
물론 90년대에도 명곡들을 많이 만들었지만,
80년대처럼 독보적인 절대자의 위치는 아니다.
그리고, 조용필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예전에 유명했던 가수 정도로 남은 것이다.
한편, 그와 함께 했던 중장년층은, 생활에 밀려 관심을 두기 힘들고,
살아온 시대의 영향으로,음악성을 평가할만한 능력도 노력도 없었다.
즉, 조용필은 가수로서뿐 아니라, 아티스트로서도 가장 뛰어났음에도,
아티스트로서는 대중에게 전혀 각인되지 못한셈이다. 음악사적으로 생각할때,
조용필은 한국의 비틀즈이자,롤링스톤즈이자, 엘비스프레슬리였다.
하지만 현재에 와서 그저 80년대에 가장 잘나간 가수 정도로 기억된다.
이것이 그가 가장 저평가된 뮤지션이라는 말을 듣게된 원인이며,
인기가 음악성을 가려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그를 존경하는 대표적인 음악인들의 몇몇 평을 들어보면 그의 위대성을 알수있다.
"나는 그저 그분의 음악을 흉내낸 수준에 불과하다." - 신해철
"그 시대에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음악." - 015B
"슈퍼스타라는 그의 인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뛰어난 작곡,
편곡 능력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 김수철
"작곡을 하기 전에는 그 위대함을 몰랐다.
작곡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 김종서
"조용필 선배님을 가장 존경한다." - 서태지
"한국에 이런 뮤지션이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다" - 유진박
계룡산에 들어가서 목소리를 틔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원래 조용필의 목소리는 미성이었기 때문에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락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목소리를 지금의 탁성(濁聲)으로 바꾼것이라 한다.
목에서 피가 나면 소금을 먹는 무식한(?) 방식으로 연습했다고 하죠.
그러한 필사의 노력을 거쳐 80년대의 단발머리에서처럼 가성 진성 탁성을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된 것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대마초 파동으로 금지 기간중 우연히 집에서 티비를 보는데
한오백년이 나오는 장면에서 너무 감명을 받아
즉시 한오백년이 들어있는 모든 판을 사서 판소리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흥부가의 구걸 장면등은 할수 있다고 한다.
조용필이 한오백년을 부른 후 다른 가수들은 한오백년을 절대 부르지 않았다죠.
왜냐면 비교가 되니까....
미8군 시절의 락 밴드 에서 부터, 한오백년처럼 판소리에 대한 연구로
80년대에 들어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진정한 가수가 된것이다.
글---binmaz 2004
조용필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 魂의 소리 (1993)-2시간20분
첫댓글 오ㅡ
잘보았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조용필 나훈아 설운도 순입니다.
^^
나훈아. 설운도 등은 가수영역이고. 조용필은 가수.작곡 작사
평론 등 모든걸 할수 있는 음악 예술가(artist) 이지요
즉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