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리장성 the Great Wall, 매일같이 관광객들에게 정복당하는 세계적인 미스터리 건축물.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嘉峪關]까지 5,000km에 이를 것이다.
장성의 기원은 춘추시대의 제(齊)에서 비롯되어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연(燕) ·조(趙) ·위(魏) ·초(楚) 등 여러 나라가 장성을 구축하였다. BC 221년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로 연결 공사가 시작되어 한대(漢代)에 이르러 무제(武帝)는 BC 2세기 말에 영토의 서쪽 끝인 둔황[敦煌] 바깥쪽의 위먼관[玉門關]까지 장성을 연장하였다.
진 ·한 시대의 장성은 현재의 장성보다 훨씬 북쪽에 뻗어 있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위치로 남하한 것은 거란(契丹) ·돌궐(突厥) 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장성이 산하이관에서 자위관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명대(明代)에 들어와서였다. 영락연간(永樂年間:1403∼1424)부터 보강이 시작되어, 정통연간(正統年間:1436∼1449)에 내장성이, 성화연간(成化年間:1465∼1487)에 오르도스 남변의 장성이 수축(修築)되고, 다시 가정연간(嘉靖年間:1522∼1566)에는 동쪽 일대의 장성이, 15세기 중엽∼16세기 초엽에는 오르도스 서쪽 끝에서 란저우[蘭州]를 거쳐 자위관에 이르는 장성이 완성되었다. 명(明)나라는 이 장성지대를 9개의 군관구(軍管區)로 나누어 구변진(九邊鎭)을 두고, 장성을 통과하는 교통요지, 즉 옌먼관[雁門關] ·쥐융관 ·구베이커우[古北口] ·장자커우[張家口] 등지에는 견고한 관성(關城)을 설치하였다.
청대(淸代) 이후에는 군사적 의의를 상실하고, 단지 중국 본토와 둥베이[東北:만주] ·몽골 지역을 나누는 정치 ·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다. 축성의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전(塼) ·돌 등이며, 성벽은 높이 6∼9m, 폭은 상부 4.5m, 기부(基部) 9m이다.
북경인근에서는 사마대장성이 그 유적의 원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다.
2. 북경, 천안문광장 Tian'anmen Square, 중국의 중요한 역사는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동토의 심장과도 같은 느낌을 주던 이곳이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이후 중국의 관광지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다
주변에 다양한 유적지들과 관광지들이 밀집해있어 중국을 찾는 누구라도 한번은 꼭 와보는곳으로 중국의 지방
사람들에게는 꽤나 의미있는곳으로 아침에 있는 국기 계양식을 보기위해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특히 화요일에는 모주석의 시신을 공개해서 끝을 알 수 없는 줄이 이어지고 있으며, 중국의 많은 공식 행사들이
아직까지도 행해지는 곳으로 주변에 박물관 인민대회당, 모주석기념관등이 있다
더이상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중국 여행의 핵심.
3. 자금성 the Forbidden City, 중국건축의 웅장함을 9999.5칸의 방들을 돌아보면서.
자금(紫禁)이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말로써, 베이징의 내성(內城) 중앙에 위치한다.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립하여 1420년에 완성하였다.
성벽 주위 4곳에 각각 1개씩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오문(午門)이 정문으로서 특히 웅대하며, 동쪽을 동화문(東華門), 서쪽을 서화문(西華門), 북쪽은 신무문(神武門)이라 부르며 네 모퉁이에 각루(角樓)가 서 있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중국의 핵심
4. 섬서성 운강석굴 the Yungang Grottoes, 다양한 종류와 수로 불상의 박물관이라 불리우는 곳
전체길이는 동서로 약 1km에 이르는 석굴로 총수는 42개이다.
운강석굴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양식은, 제20동의 노좌대불(露座大佛:높이 14m), 제19동의 대불(높이 약 17m)을 중심으로 하는 조상(彫像)에 초기 양식이 표현되어 있는데, 치졸하지만 소박한 면과 선으로 구성된 서방 양식이 풍부한 작풍이다. 담요 이후는 전통과 외래 양식이 혼합되면서 다양해졌다.
이 석굴은 북위의 문화사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서북 인도·중앙 아시아와의 문화적 교류 및 한국과 일본의 고대문화를 만들어낸 아시아 문화 생성의 자취를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구(遺構)라고 할 수 있다.
5. 섬서성 오대산 the Mt. Wutai, 무림과 무협에서 서현 보살이 내려오는 기가 충만한 불심의 산
오대산(五臺山)은 중국 불교 중심의 하나로, 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峨眉山), 지장보살을 모신 안휘의 구화산(九華山),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과 함께 "중국 불교 4대 명산"이라고 칭해진다.
동한 영평시대 (서기 58~75년)에 한나라 명제가 사신을 천축에 파견하여 불경을 구해오게 한 후부터 사원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300여 개에 달하는 사원이 현재는 47개가 보존되어있다.
오대산에는 5개의 선방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것은 속칭 조사라고 하는 현통사이다. 오대산으로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이곳을 가장 먼저 찾는다.
6. 섬서성 호구폭포 the Hukou Waterfall, 황하가 시작되는 매일 천둥소리가 울리는 곳
황금색의 황하물로 형성된 엄청난 폭포는 흡사 홍수가 난듯한 느낌을 주는 왠지 위협적인 폭포이지만
중국에서도 최고로 쳐주는 역동적인 폭포이다.
산서성과 섬서성이 만나는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폭이 좁아지면서 물살이 거세게 용트림을 한다 그러다
20M 아래로 떨어지는곳이 호구 폭포이다 마치 이곳은 주전자에 물이 끓어 넘치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호구라고 지었다고 하는데 이곳에 가면 물이 들려주는 벼락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7. 대련의 해변공원 the Beach of Dalian, 동북지역 최대의 해변 휴양지
대련 동쪽 성해만풍경구(槿베袞루쒼혐)에 자리 잡은 성해공원은 육지공원과 해수욕장으로 이루어진 공원이다. 항만 앞에 야크 형태의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성석(槿柯)이라 하여 성해라고 했다고 한다.
부지 195 km2에 달하는 공원은 관광, 피서, 해수욕에 적합한 종합적인 대형 해변공원으로서, 대련의 4대 해수욕장의 하나이다.
공원 내에는 성아해양세계(加饑베捏各썹) 수족관이 있다.
주변으로는 동해공원과 금석탄, 성해만 광장이 아름다운 해안선을 이루고 있으며 주말이면 다체로운 해양쑈가 펼쳐진다.
8. 백두산 the Changbai Mountain, 우리민족의 영산으로 아름다운 칼데라가 있는곳
높이 2,744m로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휴화산으로 고생대부터 신생대까지 여러 시대의 지층들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중생대와 신생대의 구조운동에 의해 형성된 단열구조, 파열구조 단층이 발달하였다. 화산분출은 쥐라기(약 6억 년 전)에서 신생대 제4기까지 지속되었는데 특히 신생대 제3기부터 활발히 진행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질 용암이 대량 유출되어 약 5,350㎢의 넓은 백두용암대지가 만들어졌다.
약 2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약화되어 지금의 산세를 형성하였다. 화산활동 후기에는 대연지봉, 소연지봉, 대각봉, 무두봉, 베개봉, 청봉 등 부속화산들이 형성하였으며 이들은 적갈색 다공질현무암용암의 분출로 생겼다.
최근의 분출은 1597년·1668년·1702년에 있었다고 문헌은 전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칼데라호인 천지(天池)가 있는데 면적 9,165㎢, 평균수심 213m, 최대수심 384m이다.
중국의 유명한 여러 명산중 개인적으로 최고로 멋지고 감동적인 산으로 이곳에서 베일을 살짝 벗는 천지는 그간의 피로와
시름을 한번에 날려 버린다.
9. 상하이의 예원 the Yuyuan Garden, 정원 건축의 샘플을 보여주는곳으로 인근의 거리는 쇼핑과 젊음의 명소
상하이 구시가의 북단에 위치한 예원은 상하이 유일의 명원(明園)이다. 예원을 만든 것은 명나라 시대의 한 효자였다.
그는 상하이 출신의 고관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정원을 만들었는데, 1559년에 착공하여 완성까지 무려 18년이나 걸렸다.
면적은 약 2만㎡로, 베이징의 정원이 광대한 것과는 달리 소규모이며, 쑤저우의 4대 정원에 비길 만한 아기자기함을 갖추고 있다. 400년 사이에 예원의 주인은 차례차례 바뀌어 개축과 개수를 몇 번이나 거쳤으며 1956년에는 일반에 공개되었다. 예원은 용의 조각을 올린 담을 기준으로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다. 담 여기저기에 만들어진 창이나 생각지 않은 장소에 박힌 거울이 이 정원을 넓고, 복잡하게 보이게 한다. 예원 명물의 하나인 태호석으로 된 석가신은 지나찰 만큼 멋부린 건물 지붕과 묘한 조화를 보인다. 원내 동북부에 있는 점춘당은 태평천국의 난 당시, 무장봉기를 일으킨 '소도회'의 사령부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현재는 관련 문물이 전시되어 있다. 11, 26번 트롤리버스나 64, 66번 버스로 예원에서 하차하면 된다.
10. 남경의 중산릉 the Sun Yat-sen Mausoleum, 손중산은 인민공화국 역사의 그랜드파더!
남경의 동쪽, 환중산에 위치한 손중산선생이 묻혀 있는 곳이다.
흔히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문의 호인 중산(中山)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은 곳으로, 위대한 민주혁명의 선두자 손중산선생이 이곳에 잠들어 있으며, 중산릉은 그로써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이곳은 1926년부터 1929년의 약 3년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넓이가 6.6km, 길이가 7km로 총 면적이 20여 ㎢에 이르는 강소성에서 제일 큰 삼림공원이기도 하다.
또 이곳은 한 사람의 묘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주변 자연조건과 경관이 뛰어나 200여군데의 볼거리들이 있고, 600여종의 자연식물들과 어울러져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된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1925년 3월, 국민혁명이 한창일 때 북경에서 손문이 객사한 뒤인 1927년 6월, 손문의 장례가 국민정부 치하의 남경에서 국장으로 행하여지고, 이곳 남경 교외 자금산록에 그 유체를 매장하였다. 국민정권은 대만으로 옮긴 뒤, 대북에 중산릉을 만들었으나 그곳은 물론 진짜가 아니며, 이곳 남경중산릉이 진짜 손문선생의 묘이다.
11. 고구려 유적군. 주몽, 광개토대왕, 장수왕등 우리의 피를 끊어 오르게하는 곳
대한민국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곳 옜 고구려의 영화가 서려 있는 꿈의 땅
국내성터, 오녀산성, 광개토대왕비, 백암산성, 장수왕릉등 집안 인근에 분포되어 있는 고구려의 기상은 우리민족의 역동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중국의 관광지가 되어 버린 이곳이지만 역사란 돌고 도는것 우리가 이곳이 우리의 땅임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륙의 기운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리라
태국 여행중 만난 영국 청년은 왜 여행을 다니냐고 하니까 자신들의 선조들이 넓힌 영토를 돌아보며 원대한 포부를 꿈꾸기위해 다닌다고 했다. 과거의 영화에 집착하는것이 아닌 목포를 만들고 현실의 또다른 꿈을 키우는 영국인에게서 많은것을 배웠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심화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고구려는 우리민족의 선조인것이다
한번쯤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대제국을 꿈꾸었던 옛조선의 또한 고구려의 후손으로 호연지기를 키우기에는 안성만춤...
이곳에서 아름다운 초원을 꼭 체험하고 돌아오시라.
12. 장수성 무석의 태호 the Taihu Lake, 거북이가 많아 아름다운 호수라고 일컽는다.
太湖호반 주변에 있는 우시주변은 3000여년전부터 주석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한나라때 다 파내어버려 그 이후 우시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곳에서는 무엇보다 태호의 경관을 즐기는 것이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상해에서 열차로 약 1시간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유로 이 곳을 여행하려면 아침부터 서두른다면 충분히 하루안에 즐길 수 있는 관광지이다.
먼저 중국의 지도를 펼쳐보자. 상해 바로 위쪽에 우리 제주도의 두배쯤 크기의 커다란 호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가 얼마나 컸으면 이름조차 클 태 자를 써서 태호라 이름을 붙였을까...
태호의 매력은 항저우의 아기자기함과 고요함 대신 바다같이 넓디 넓은 호수의 크기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시 역에서 K1번 버스를 타고 약 40여분 지나 종점에 이르면 태호의 위안터우주 공원에 다다른다. 거북이를 닮은 원이라는 동물을 꼭 닮은 지형때문에 위안터우주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위안터우주에 도착하면 배편으로 태호 중간에 떠있는 태호산도라는 섬으로 향한다. 이 곳에서 약 30여분간 산책하는 기분으로 섬을 한바퀴 돌게 되는데, 川街라 명명된 언덕위의 상점이나 銀河라 이름지어진 눈부시게 빛나는 폭포 등을 지나면 大覺灣이라 불리는 곳에 다다르게 된다. 이 곳에는 노자 동상을 비롯해 각종 불상들이 늘어서있어 이름만큼이나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다시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장춘교라는 아기자기한 다리를 건너 광명정에 이르기까지 태호를 옆에 끼고서 산책하게 된다.
호수라는 사전 지식이 없다면 바닷가를 걷는 기분과 마찬가지로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의 크기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주변에서는 보기힘든 대나무 숲을 지나 입구로 돌아오게 되면 위안터우주 공원의 산책은 마무리된다.
태호 주변의 삼국성, 수호성, 당성 등 중앙 방송국의 드라마 세트장에 들르는 것도 우시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아마 드라마 세트장까지 부지런히 관람했다면 시간은 오후 4시 정도를 가리킬 것이다. 우시의 중심가인 인민로에서 조금은 이른 저녁 식사를 한 후 역으로 향한다.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마음에 담아둔다.
13. 소주의 졸정원 the Zhuo Zheng Yuan, 뭐니뭐니 해도 틀림없는 중국의 보석.
소주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명 정덕(鄭德) 4년(1509년)에 지어졌다. '졸자(拙者)가 정치를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유원(留園), 이화원, 승덕이궁(承德離宮)과 함께 중국 4대 정원에 꼽힐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미경으로 인해 홍루몽 대관원(大觀園)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졸정원은 명나라의 왕헌신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데, 화원은 동, 중, 서 세 부분으로 나뉘며, 명대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띠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총 면적은 5만㎡이며, 그 중 3/5정도는 연못이 차지한다.
연못을 중심으로한 작은 정자나 복도, 산을 본떠 돌로 만든 석가산이 만들어져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색적인 건물인 견산루, 파산랑과 경치를 보기위해 지어진 원향당 등이다.
14. 항주의 서호 the West Lake, &가랑비 내리는 봄날의 데이트 코스로 최적지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서시에 대해서는 실제 인물인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월나라 왕인 구천(勾踐)이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던 인물로, 결국은 구천의 계략대로 오나라왕 부차가 서시의 미모에 빠져 나라일을 돌보지 않게 되었고, 오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상 양귀비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으로 꼽힌다.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호수에는 소영주, 호심정, 완공돈 등 3개의 섬이 떠있다. 호수의 총 면적은 60.8㎢이며, 그 중 수역의 면적은 5.66㎢이다. 서호는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서호 안과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명소 10가지를 서호 10경(西湖 10景)이라 부르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교잔설(斷橋殘雪), 평호추월(平湖秋月), 소제춘요(蘇堤春曜), 곡원풍하(曲院風荷), 화항관어(花港觀魚)등 이다. 단교잔설은 중국의 오래된 신화고사인 백사전(白蛇傳)에서 백소정과 허선이 만난 무대가 된 곳으로 옛날에는 다리 중간에 문이 서있었다고 한다. 문 위에는 처마가 얹혀있었는데 눈이내리면 눈이 처마위로 쌓여 멀리서 바라보면 눈 쌓인 다리가 문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것 같이 보여 단교(斷橋)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평호추월은 넓이 400평방미터의 정원으로 호수 수면과 높이가 같아 평호(平湖)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소제춘요는 소동파가 항주에 지사로 부임했을때 쌓은 둑(제방)으로 사시사철 모두 아름답지만 이름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봄날 새벽의 경치가 가장 절경이다. 곡원풍하는 소제춘요의 북서에 펼쳐진 풍경으로 여름에 연꽃이 피어 특히 아름답다. 화항관어는 봄에 모란꽃을 보며 용정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있는 공원으로 누각 등이 세워져 있으며 수많은 모란이 피어있는 목단원(牧丹園)이 유명하다.
15. 영은사 Lingyin Temple 영혼의 안식처라 불리우는 항주의 명소
항주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비래봉(飛來峰)이 옆에 있다. 비래봉에는 10-14세기 경에 만들어진 석굴조각품들이 330여 개가 산을 따라 조각되어 있는데 이 석굴조각들은 강남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석굴예술을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더 빛난다.
영은사는 1600여년 전 동진(東晉) 시대에 인도 승려 혜리(慧理)가 항주에 왔다가 이곳 산의 기세가 매우 아름다워 "신선의 영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仙靈所陰)"고 말한 후 사찰을 짓고 이름을 영은(靈陰)이라 지으면서 만들어진 절이다.
선종 10대 사찰 중의 하나이기도다.
천왕전(天王殿)에는 "云林禪寺(운림선사)"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청대 강희(康熙) 홫제의 자필로 알려져 있다. 강희가 남쪽 지방을 순찰하던 중 항주에 들러서 북고봉(北高峰)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 곳 속에 영은사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네 글자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불공을 드리기 위해 몰려든 중국인들로 늘 붐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높이 33.6미터의 중국 저명안 건축물중 하나다. 보전안에는 24.8미터의 여래불상이 있는데, 1956년에 절강미술대학 교수와 예술인들이 합작해 만든 걸작이다. 대전 양 옆에는 20존자천불상이 있고, 대전 앞에는 송대에 건축된 8각 9층석탑이 있다.
영은사의 볼거리 중 가장 유명한 비래봉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209미터의 봉우리로, 인도에서 날아왔다는 혜리가 갔다는 데서 비래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암벽상에는 오, 송, 원에 이르는 석각조상 330여개가 새겨져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송대의 것인 미륵좌상으로 얼굴이 개성적이고 독특하다.
영은사 내에 조그마한 계곡이 있어 특히 비가 올때면 사원 전체가 안개에 쌓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계곡 옆의 바위에는 촘촘히 새겨져 있는 불상 조각들을 보며 산책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
16. 절강성의 보타산 the Putuo Mountain, 중국 4대 불교성지 중의 하나.
우타이산[五臺山] ·어메이산[峨眉山]과 더불어 중국 3대 명산(名山)으로, 주화산[九華山]을 넣어서 4대 도량[道場]으로 치기도 한다. 전설상 남(南)인도에 있다는 관세음보살의 영지(靈地) ‘보타락(補陀落:범어로 Potalaka)’의 명칭을 딴 것으로, 당(唐)나라 때 어떤 승려가 우타이산에서 관음상(觀音像)을 가지고 오는데 배가 이 곳에 이르자 저절로 멎은 채 움직이지 않으므로 바오퉈사[寶陀寺]를 세우고 불상을 모신 것이 성지가 된 시초라 한다. 티베트의 라싸와 더불어 중국에서는 관음시현(觀音示顯)의 땅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일반적 신앙 외에 예로부터 항해의 안전을 비는 의식도 많이 행해졌다. 푸지사[普濟寺] ·파위사[法雨寺]의 양대 사찰을 비롯하여 많은 당우(堂宇)가 있고, 범음동(梵音洞) ·조음당(潮音堂) ·반타석(盤陀石) 등 관음의 영적(靈跡)으로 알려진 것이 많이 있다.
17. 안휘성의 황산 the Huangshan Mountain,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산
옛 이름은 이산(移山)으로서 당나라 때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후이저우[黴州] 지구 서북쪽 4개의 현에 걸쳐 있으며 둘레가 250km에 이른다. 이곳에는 2개의 호수, 3개의 폭포, 24개의 계류, 해발 1000m가 넘는 72개의 봉우리가 있다. 산 중심부에 3대 주봉인 롄화봉[蓮華峰, 1860m]·광밍정[光明頂, 1840m]·텐뚜봉[天都峰, 1810m]이 솟아 있다.
고생대의 편마암·사암·점판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는 수직 방향의 절리가 발달하여 깎아지른 절벽이나 기암괴석을 이루고, 해발 8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라는 잎이 크고 짧은 소나무와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낸다. 독특한 절경 가운데 하나인 운해는 연간 200일 동안 자욱하게 끼여 있으며 주룽폭포[九龍瀑]·바이장폭포[百丈瀑] 등이 흘러내린다.
등산을 위하여 4만 개에 이르는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남쪽 기슭의 탕커우[湯口]에는 일년 내내 온천이 뿜어져 나온다
지금은 산불의 방지를 위해 방화로를 설치해놓아 아름다운 황산의 절경이 초입에서 약간은 깍여 나가서 아쉬움을 더하지만
당장이라도 손오공이 나올듯한 느낌이다.
18. 막하행 오로라 그 신비의 세계로 초대 합니다.
막하향은 중국 영토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한 지역인데 “북극촌”으로도 불려지며 로시아와는 강 하나를 사이 두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막하향은 독특한 지리위치와 삼림, 빙설 등 자연경관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해마다 6월이 되면 이 곳에서는 백야와 극광 등 북극의 기이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밀려든다.
중국 동북부에 위치한 흑용강성 정부 소재지 할빈에서 열차를 타고 서북쪽으로 40여 시간 이동하다 보면 막하현에 도착하게 된다.
중국 최대의 원시삼림인 대흥안령산맥에 깊숙히 위치해 있는데다 위도까지 53도 이상으로 높다보니 한여름에도 막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느낌을 주는 막하의 여름철 평균기온은 섭씨 20도를 넘기지 않는다.
이 곳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한대에 위치한 연고로 생장기가 짭아 열대원시림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처럼 우람지지는 못했으나 멀리 바라보면 수림은 마치 푸른 처럼 느껴진다.
막하향에 도착하면 “신주북극”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돌비석을 찾아보자 비석은 막하향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비록 하나의 비석에 불과했지만 비석이 세워진 위치는 중국 영토의 최북단을 표시한다.
비석은 가공을 거치지 않은 산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돌비석의 아래쪽으로는 울창한 삼림에 쌓여 한결 푸른빛이 감도는 강물이 흐르고 있으며, 이 강이 바로 중국 동북지역의 한갈래 주요 하류인 흑용강의 발원지다.
낮은 수온 때문에 강에서 잡히는 각종 냉수어는 신선한 고기맛으로 현지사람들이 손님 초대시 가장 이색적인 요리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막하는 삼림왕국이고 천연 산소 바이며 피서 명승지이다. 비록 소외된 지역에 위치해 있으나 소박한 민심과 양호한 사회치안질서로 관광객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있다.
파아란 하늘과 푸른 강물, 그리고 알록달록 옷차림으로 마음껏 양걸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북극촌의 활력을 느끼게 된다.
북극촌에서는 빙설, 삼림 등의 자연풍경 감상과 중국 북방의 민풍, 민속 체험을 제외하고도 또 “극지관광”의 매력을 한껏 느껴볼 수 있다.
막하향은 높은 위도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백야”와 “극광”이란 두 가지 기이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막하는 낮이 점점 길어지고 상대적으로 밤은 점점 짭아지는데 특히 하지를 전후해서 반달 동안은 매일같이 자정때만 한,두시간씩 어둠이 조금 깔릴 뿐, 그것도 곧바로 아침햇살이 동녁을 밝히면서 둥근해가 대지를 밝게 비추는 대낮으로 바뀌는데 밤이 갑자기 “백야”로 변하고, 겨울철이 되면 상황은 정반대로 변해 버린다.
6, 7월 여름이 되면 막하 상공의 북쪽에는 경상적으로 다채롭고 아름다운 극광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극광은 밝은 빛 고리와 흡사한데 점차 작은데서 부터 크게 변하다가 색갈이 최고로 화려해지면 천천히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빛 고리가 작아 지면서 점차 사라진다고 한다.
매년 하지를 전후해서 극광현상이 나타나는 확율이 커지는데 당지에서는 1년에 한번씩 ‘극광제’를 개최하는 것으로 국내외의 관광객들을 북극촌으로 끌어들어 함께 이 기이한 절경을 감상하고 있다.
19. 복건성의 무이산 the Wuyi Mountain, 짭짤한 맛의 무이암차가 이곳 특산.
복건성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소도시로 무이산풍경구가 있는 곳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무이산에는 36개의 봉우리와 72개의 동굴과 99개의 암산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풍경구를 흐르고 있는 구곡계에서는 뗏목을 타고 하류로 내려오는 즐거움도 가질 수 가 있다. 또한 해발 750메타에 달하는 무이산을 중심으로 한 자연공원이다.
또한 무이산은 차의 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여기에서 재배되는 차는 "무이암차"로 불리우며, 최고의 품질로 황제에게 상납되어을 정도라고 하니 그 품질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계림이라고 부르는 무이산은
복건성 북부의 승안현에 있는 낭떠저리 절벽이 연달아 있는 명산이다. 험준한 36개의 봉우리들과 계곡을 구불거리며 흐르는 구곡계, 그리고 바위 뒤
그늘에 보일 듯 말 듯한 불교사원이 있으며, 몇 백년 동안이나 신선들이 살았을까 싶은 산수화의 세계가 이곳에 펼쳐진다. 볼거리로는 성촌에서 시
하여 무이궁 입구인 1곡까지의 9.5㎞에 걸친 구곡계가 가장 대표적인데 수심이 얕고 물의 빛깔이 상당히 푸르면서도 곱다. 이 외에도 대왕봉(大王峰), 옥녀봉(玉女峰), 수렴동(水濂洞), 응취암(鷹嘴岩), 천차가(天車架), 천유봉(天遊峰), 설화천비 (雪花泉飛瀑), 도원동(桃源洞), 일선천(一線天), 무이궁(武夷宮) 등도 볼 만한 곳이다.
20. 내몽고 호허호트 사막과 초원에서 몽고의 후인들을 만나다~
호화 호특은 중국북부 대청산 남쪽기슭에 위치한 내몽고 자치주의 구도이다.
면적은6,079Km 이고 인구는 약 109만명정도로서 몽고족,한족,조선족 등 10여개 민족이 한데 어울려 살고있는 다 민족 지역이다.과거 세계를 지배했었던 몽고족은 이제 몽고자치구 속에서 다수민족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며 대평원을 누비던 유목민족이 텐트생활을 청산하고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화 호특 은 내몽고의 중심지 이기도하여 북경 등의 대도시로 연결하는 철도가 지나갈 뿐만 아니라 비행장도 있다.
내몽고는 사막과 초원이 많기 때문에 도시와 마을사이에는 아직 수레 와 낙타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는 모터사이클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한다.
호화 호특 은 춘추전국시대에 조나라가 이미 군을 설치했던 오랜 역사를 지닌도시이며 호화 호특 이라는 이름은 몽고어를 음역한 것으로서 "청색의도시"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6세기 중반 시가를 둘러싼 성벽을 개축할 때 청색벽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가면 편안한 호텔보다는 몽고의 정취가 흠뻑 느껴지는 파오를 이용하고, 말타기, 활쏘기, 씨름구경은 필히 할것
21. 장가계 張家界, ZHANGJIAJIE- 무릉도원이 이곳인가? 시조하나 읇으러 가자꾸나!
장가계는 중국 호남성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신흥 국제 관광 도시로서 주요 관광지로 장가계 국가삼림공원, 삭계협곡, 천자산 자연보호구, 양가채풍치구 등으로 이루어졌다. 장가계는 중국 국내외에서 보기드문 수려한 봉우리와 용암동외에도 인적이 드문 자연지리 조건으로 원시상태에 가까운 아열대 경치와 생물생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약 3억8천만년 전 이곳은 망망한 바다였으나 후에 지구의 지각운동으로 해저가 육지로 솟아올랐다. 억만년의 침수와 자연붕괴 등 자연의 영향으로 오늘의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물맑은 계곡의 자연절경이 이루어졌다.1991년에 장가계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자연 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2005년 겨울 폭설로 인하여 아름다운 나무들이 눈의 무개를 견디지 못하고 많이 부러져 버려서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으니 이또한 나름대로 자연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5년 이전의 모습을 보려면 100년을 기다려야 한다나 뭐라나 어쨋든 장가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만 좋은 인상을 주는것이 아니라 여행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장가계에는 천문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가 있으며, 자연의 위대함과 조화로움을 한껏 느끼기에 충분한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업슨 관광지가 아닐까 싶다.삭계욕자연보호구, 황룡동 (黃龍洞), 보봉호수 (寶峰湖水), 백장협, 금편계곡, 십리화랑 (十里畵廊), 하룡공원 (賀龍公園), 어필봉 (御筆峰), 천하제일교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22. 산동성의 공자묘 the Confucius Temple, 공부가주에 공부가 음식도 별미.
북경의 고궁, 대만의 대묘(垈廟)와 더불어 중국 3대건축이라 불리는 공묘는 노(魯)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 사후 1년에 건설한 사당이다. 춘추시대의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를 제사지내는 곳인 이곳은 처음에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의하던 행단에 대성전(大成殿)을 세운것으로 시작해 그후 역대의 황제가 기부나 희사를 계속하여 현재의 규모는 명청대에 완성된 것이다.
곡부의 공묘는 공자의 고향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가 제일 큰 것으로 전체의 길이가 약 1㎞ 남짓하며, 면적은 약 22만㎡로서 전체 건물의 방의 개수가 466개에 이른다. 대성문을 기준으로 동, 서, 중삼로로 나뉘며 공묘의 사방에는 붉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공묘의 제일 처음에 보이는 금성옥진(金聲玉振)은 명대 건축물로 사근팔각의 연화모양의 정상에는 길함을 상징하는 동물이 새겨져 있다.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大成殿)은 북경 고궁의 태화전에 이은 제 2의 대건축으로 높이 24.8m, 폭 45.7m, 길이가 24.9m이다. 전내 중앙의 금박 입힌 신주를 모시는 곳에는 공자의 소상(塑像)이 안치되어 있고 양 옆에는 제자와 후대의 유가 16체의 소상이 있다. 또 28개의 돌기둥 가운데 정면의 10개 기둥에는 기둥을 휘감은 듯한 2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매일밤 성수기 때 펼쳐지는 공자쑈는 이곳의 밤 문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23. 산동성의 태산 the Mountain Tai, 바라보는 산이 아니라 정상에서 천하를 굽어보는 산.
다이중[岱宗]·타이웨[太岳]라고도 한다. 산둥성 중부의 타이안[泰安]·지난[濟南]·리청[歷城]·창칭[長淸]의 4개 시현에 걸쳐 있으며 높이 1,532m, 총면적 426㎢이다. 5악(五岳)의 하나인 동악(東岳)으로서 주봉은 위황정[玉皇頂]이다.
도교의 발상지인 성지로서 도가(道家)의 설(說)에 따라 제왕이 된 사람은 산꼭대기와 산기슭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행하였다. 산꼭대기에는 타이산산 최고의 여신 벽화원군(碧霞元君)을 모신 비샤웬쥔시가 있다. 이곳은 1008∼1017년 창건한 산악사원으로서 정전은 도리 길이가 5칸이고 8각 모양의 구조로 되어 있다.
산 밑에서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곳곳에는 다이먀오[岱廟]·훙먼궁[紅門宮]·완셴러우[萬仙樓]·푸자사[普照寺] 등의 명소와 800개 이상의 사당이 흩어져 있다. 암벽에는 여러 시대에 걸친 제자(題字)·경문·시문 등이 여러 서체로 새겨져 있다.
현재는 케이블카가 운행중에 있어 힘안들이고 편안하게 태산의 정상을 정복할 수 있고, 현재 이곳에는 도교사원이 쓸쓸한 태산의 정상을 관광 중심지로 만들어 주고 있다.
24. 광동성 광주시 진씨서원 Ancestral Temple of Chen Family, 최고 콜렉션의 민간공예박물관.
남방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진가사(陳家祠) 진씨서원(陳氏書院 : 쳔쓰슈위엔)
진씨 일가의 서원으로 알려진 이 곳은 진씨서원(陳氏書院 : 쳔쓰슈위엔)이라고도 불린다. 광동성에서 가장 크고 또 고대 건축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총면적은 1만5천 평방미터이다. 그 안의 주건축물은 사방형의 6천4백 평방미터 면적의 '활오간, 심삼진(闊五間, 深三進)'이라는 건축군인데 크고 작은 19동의 건축예술물이 모여 있다. 이 건축물들 사이에는 정원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전체 건축물이 웅장한 만큼 정원 역시 화려하며, 고대미의 건축물과 더불어 남방의 특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청대 광서 14년인 188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894년에 완공되었고, 당시 세력을 떨치던 陳氏 자제들의 과거 준비와 가족의 중대사를 논의하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 남방식 건축양식이 잘 드러나 있고, 건물이 대부분 조각으로 이루어져 화려한 장식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박물관을 방불케할 만큼 많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고급 가구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1959년, 진씨 서원은 국무원으로 부터 전국 중점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광동민간공예관으로 이용되면서 다채로운 민간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광주시의 유명하고도 중요한 여행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25. 후룬벨 초원
후룬벨초원이라고 하면 중국인들은《하늘을 창창하고 들은 망망한데 바람불어 머리 숙인 풀 사이로 소와 양떼 보이네.》라는 시구일 것이다.
이 지구 위에 하늘도 가리지 못하는 후룬벨 초원이 있다. 그곳에는 싱그러운 풀과 향기로운 꽃, 시원하 내물, 거울같은 호수가 있으며 소와 양떼 무리 짓고 점점이 박혀있는 몽고포사이로 구수한 우유차 향기가 새여나오고 맛나는 고기와 술이 기다리고 있어 이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은 푸르른 정토이다.
중국을 아침을 알리는 수탉에 비유한다면 후룬벨 초원은 닭볏에 박힌 명주라고 할수 있다. 중국의 서북북에 위치한 후룬벨 초원은 총 면적이 25만 평방킬로미터로 영국본토보다 조금 큰 이 비옥한 초원에 30여개 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 몽골족이 중요한 민족의 하나이다.
후룬벨 초원은 많은 아름다운 전설들이 전해지는 곳으로.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이렇다.
전하는데 의하면 멀고 먼 옛날에 이곳에 근로하고 용감한 몽골족부락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 춤 잘 추고 이쁘게 생겨 재색을 겸비한 후룬이라는 처녀와 힘이 장수이고 말 타고 활쏘기에 능한 벨이라는 총각이 살았습니다. 한쌍의 연인인 후룬과 벨은 이 아름다운 초원에서 부럼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망구스라고 하는 한 마귀가 졸개들을 이끌고 초원에 덮쳐들어 요술로 후룬처녀를 잡아가고 초원의 호수물을 다 마르게 했고, 이로부터 초원에는 풀이 마르고 짐승들이 죽어갔다.
벨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자기의 지혜와 력량에 의거하여 마귀를 이기고 후룬을 구했다. 하여 초원은 다시 생기를 되찾고 소와 양떼가 다시 뛰놀게 되어, 후세 사람들은 그들 두 사람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원의 이름은 후룬벨초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26. 영화회족 자치구의 서하왕릉
중국 서부의 녕하회족자치구에 위치한 서하 왕릉에 대한 고고학은 20세기 100개 고고학 대발견의 하나로서 중국 소수민족 고고학역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다.
770여년전, 중국에는 세개 왕조가 병립하고 있었다. 그것은 중원에 위치한 한족정권 “송(宋)”나라, 동북에 위치한 여진족 왕국 “료(遼)”, 서북에 위치한 당샹족(黨項族) 왕국 “대하(大夏)” 즉 “서하였다.
서하는 독립된 왕국으로서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있었다. 불행하게도 기원 1227년 몽골 칭키스한의 대군이 서하왕조를 공략하고 서하 당샹인들에게 훼멸적인 살륙을 안겼다. 서하 왕조의 서적들도 모조리 타버렸다. 한 지역에서 위세를 뽐냈던 서하왕조는 후대들에게 하나 또 하나의 비밀만 남겨주었다.
지난세기 70년대초, 서하 왕릉 유적지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후 30년동안 중국의 문화재고고학자들은 서하왕릉을 여러번 조사, 측정, 발굴하고 서하왕릉의 분포와 구조를 초보적으로 밝혔다.
전반 서하왕릉은 약 50평방킬러미터 되는 황량한 사막에 구축되였는데, 도합 9채의 황제능원과 250여채의 귀족들의 무덤이 있다. 서하왕릉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규모가 제일 크고 지면 유적이 제일 완정하게 보존된 왕릉의 하나로서 베이징 명나라 십삼릉의 규모와 맞먹는다. 9채의 왕릉은 모두 각기 독립되고 완정한 건축군체이다. 왕릉은 북쪽에 앉아 남향하고있으며 네모꼴 모양으로 되여있는데, 장엄하고 엄숙하고 웅잔하다.
3호 릉원은 9채의 서하왕릉 가운데서 부지가 제일 크고 제일 잘 보존된 왕릉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능원에 매장된 주인은 서하 개국황제 이원호(李元昊)일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사하왕릉에 대한 고고학은 역시 3호 능원 발굴을 위주로 하고있다.
서하 왕릉의 릉탑은 “동방의 피라미트”라고 불리우고 있다. 릉탑은 릉성의 서북쪽, 묘실의 바로 후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축은 토담대, 팔각추 모양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상부는 점점 안으로 들어가 계단 모양으로 되었으며 제일 큰 직경이 34미터 가량 된다. 탑 기반의 윗면은 7층인지 5층인지 아직 확정할수 없다. 릉탑은 서하 릉원에서 중요하고 또 특수한 건축물로서 중국 기타 지역의 릉묘에서 볼수 없는것이다. 릉탑은 서하 귀족들의 모종 특수한 장례풍속을 반영하고 있다.
2004년 4월 30일, 고고학자들은 3호 릉원에 대한 정리와 발굴을 진행할때 릉원 동북쪽 궐에서 조형이 완정한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새사람”(鳥人)을 발견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이 “새사람”은 불경에 기재된 쟈릴핀가라고 인정하였다.
쟈린핀가는 범어의 음역으로서 한어로 번역하면 묘음(妙音)새이다. 이 새는 히말라야산에 있는 일종 새로서 묘한 음을 낸다고 한다. 묘음새는 불교 “극락세계”의 새로서 응당 불교건축물의 장식물이여야 한다.
서하왕릉은 현재까지 이미 14만점의 기와 등속과 200점의 건축장식품 그리고 기타 문화재들을 출토하였다. 고고학 전문가들은 서하왕릉은 중국 고대 한족 황실능원의 장점을 흡수하고 또 불교건축의 큰 영향을 받았으며 한족문화와 불교문화, 당샹민족 문화 이 삼자를 유기적으로 결함하여 중국 릉원 건축에서 독특한 건축형식을 구성함으로써 중대한 문화재가치와 독특한 건축특점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서하왕릉은 서하역사와 문화의 특점을 집중적으로 반영했으며 사람들에게 서하문화의 크고 넓은 보물고를 전시했다.
27. 호북성 무한의 황학루 the Yellow Crane Tower, 황금빛 찬란한 지붕의 삼국시대 건축물.
황학루는 호남 악양의 악양루(岳陽樓)와 강서 남창의 등왕각(騰王閣)과 함께 강남의 3대 명루(名樓), 천하절경(天下絶景)이라 일컬어 지는 곳이다. 1,700여년을 내려 오면서 이곳은 7번 소실되고 7번 중건되었는데, 지금의 모양은 제일 마지막에 중건된 1985년의 것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 내릴 수 있는 최신식의 누각이다.
황학루는 삼국 오나라 황무 2년에 무창 사산(蛇山)에 처음 세워졌으며, 꼭대기에 동탑이 앉은 약 28m의 3층 건축물이었다. 여러 전란을 지나 청대의 양식으로 새로 건설한 황학루는 더욱 웅장한 모양의 것으로 총 높이가 51.4m인 5층 높이가 되었다. 이곳은 누각을 중심으로 정자와, 회랑, 비방(牌坊), 시비(詩碑), 고전상무서비스가(古典商務服務街)로 구성되어 있다. 새로 지어진 지층은 예전 것에 비해 넓이가 배로 늘어난 30m로, 아래에 펼쳐진 무한의 시내전경을 여유롭게 즐기기에 좋다. 황학루는 사산위에 있으면서 장강을 바라보고 있어서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고 운치있다. 그 때문인지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육요(陸游), 양신(楊愼), 장거정(張居正) 등의 많은 문인과 시인이 이곳을 시로 읊었는데, 기록에 남아있는 것만 300수 이상이다. 그 중 에서도 당대의 시인인 최호(崔顥)가 이곳에 올라 쓴 '황학루'라는 시가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는 또한 적지 않은 전설들이 담겨져 있는데, 그 중 극은록(極恩錄)에 따르면 황학루는 원래 신씨가 개설한 주점으로 한 도사가 그녀의 은덕에 감사하며, 지나가는 길에 벽에다가 한 마리 학을 그렸는데, 그 모양이 춤을 추듯 아름답다고 알려지면서 이곳의 장사도 날로 번창했다고 한다. 10년 후, 도사가 다시 왔는데 학을 타고 구름위로 날라갔고, 신씨가 그걸 보고 황학과 도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누각을 짓고 이름을 황학루라 불렀다는 것이다.
무한은 3대 부뚜막으로 일컬어질 만큼 여름에 더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곳에 올라 무한 시내와 유유히 흐르는 장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40도 이상의 더위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28. 양자강 the Yangtze River, 호텔형의 크루즈를 타고 장강 삼협을 따라 삼국지의 배경을 둘러보자
험준한 지형, 수려한 경관, 장엄한 기세, 수많은 명승고적으로 이름난 장강 삼협은 중국의 유명한 관광명승지이다. 장강 삼협은 서쪽으로 중경시 백제성(百帝城)부터 동쪽의 호남성 진관(津關)까지 구당협(瞿塘峽), 무협(巫峽),서능협(西陵峽)으로 이루어졌다. 총 길이 200㎞.
장강삼협 양안에는 기봉들이 키돋움하고 있고 산과 물이 장관이다. 삼협은 구당협의 장엄함과 무협의 수려함, 서능협의 험준함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장관을 이루는 구당협의 입구에 있는 기문(夔門)은 깍아지른듯한 현애절벽으로 되어있는데 그 장엄함으로 천하에 소문이 났다. 산세가 수려한 무협은 중경시와 호남성 구간에 있는데 양안의 12개 산봉은 천태만상이다. 북안의 금회은갑협(金盔銀甲峽)정상의 선녀봉(仙女峰)은 아릿다운 선녀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서능협은 여울이 많고 물살이 세여 삼협에서 가장 길고 가장 험준한 구간이다.
장강삼협에는 명승고적이 많다. 풍도명산(豊都名山), 충현(忠縣)석보채(石寶寨), 운양(云陽)장비묘(張飛廟), 봉절(奉節)백제성(白帝城), 자귀(秭歸)굴원(屈原)고향, 흥산(興山)왕소군(王昭君) 옛집, 고대 파인(巴人)들의 현관(懸棺), 그리고 삼협의 경관을 구가한 석각(石刻)이 있다. 석보채는 충현 동쪽 장강 북안의 옥인산(玉印山)에 위치, 산을 끼고 지어진 12층 석조 루각인데 세계 8대 기이한 건축물의 하나이다. 장비묘는 산을 등지고 강을 향한 건물이다. 수목이 울창하고 환경이 우아하고 아늑하다. 장비묘는 이미 1,7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파촉제1승경](巴蜀第一勝境)으로 불린다. 봉절의 백제성은 역사가 유구한 옛도시로 서한(西漢)말년에 세워졌다. 이 곳은 삼국시기 [장비탁고(張飛托孤)] 이야기를 낳은 곳이다. 백제성내의 백제묘에 올라 난간에 기대 멀리 바라보면 굼실대며 흐르는 장강과 줄지은 아아한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와 감개 무량하다.
장강의 지류인 대녕하(大寧河)에 있는 소삼협(小三峽)은 무산소삼협(巫山小三峽)으로도 불린다. 산 좋고 물 맑고 수목이 울창한 이곳에는 원숭이들이 뛰놀고 뭇새들이 지저귀며 날아옌다.
29. 호북성의 무당산 the Wudang Mountain, 무예와 중국 도교의 성지.
중국의 유명한 도교 성지이면서 중국 무협지에 어김없이 나오는 무당파의 발원지이기도한 무당산은 호북성(湖北城) 서북부 단강구(丹江口)시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태화산,현악산이라 불리기도한다. 해발 1,612미터의 주봉인 천주봉을 포함 72개 봉우리와 11개의 동굴,36개 기암, 9개 샘등의 자연 명승구와 1994년 12월 <세계유산명록>에 오른 무당산 건축군은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한폭의 동양화를 만들어낸다.
무당산은 아름다운 자연풍경 뿐아니라 무당산 건축군으로 인해 중국의 중요한 문화재보고가 되었다. 산 위에 지어진 건축물로는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하여 세계 고대 건축사의 기적이라고 칭해지기도 하는 무당산 건축군은 당나라부터 시작하여 송,원,명,청 각 시대별로 끊임없이 세워지고 수리되었다. 당대,송대,명대 황제가 도교를 숭상하던 시기에는 무당산이 전국 도교활동의 중심으로 최고의 성지가 되어 무당산내 도교사원 공사는 더욱 활발해졌으나, 원나라말기에 여러차례의 전쟁으로 많이 불타 없어졌다.
현재 무당산에 남아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명대에 지어진것으로 명나라 황제중 하나인 '주제'가 도교를 숭상하여 영락10년(1412년) 30만의 군대를 이용 13년간 9개의 도교사원, 9개의 궁, 12개의 정자, 36개의 암자, 37개 교량등을 지었다. 무당산 특유의 산세와 지형등을 고려하여 건축물들을 지었기에 자연과 건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당산 건축군의 엄청난 규모는 자금성에 비교할만 하며 예술성 또한 뛰어나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 모두를 가지고 있다.
30. 호남성 악양루 the Yueyang Tower, 동정호반에 위치한 처마끝이 하늘로 날아가는 3층 루각.
호남성 동북부의 상강(湘江)하류에 위치한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성(古城)이다. 또한 이곳은 동정호(洞庭湖)와 장강(長江)이 교차하는 곳이며, 북송(北宋)때 쓰여진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명예를 다투는 곳이라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악양의 옛 이름은 파릉(巴陵)으로 중국의 중요한 역사문화의 도시로서 비옥한 토지 덕택에 농업이 발달해 왔고, 여기에 동정호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이 더해져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렸다. 해외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이지만, 동정호와 동정호변에 있는 악양루(岳陽樓)는 이미 유명하다. 두보를 비롯한 많은 시인과 이곳에서 시를 읊었으며, 맞은편에 있는 동정호 역시 그곳에 담긴 많은 민간고사를 가지고 있다. 악양은 작은 도시로 시가지에도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서민적이고 옛스러운 느낌을 주어 편안하고 정감을 주는 곳이다.
31. 호남성 장가계 the Zhangjiajie National Park,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중의 하나.
장가계는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신흥 국제 관광도시이며, 중국의 첫 국가삼림공원인 장가계가 있어서 얻어진 이름이다. 면적 9,563㎢, 인구 1백55만명이고 그 중 소수민족인 투쟈족(土家族), 바이족이 ,묘족이 60%를 차지한다.
장가계시의 원이름은 大庸市였으나 1944년에 장가계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요 명소로는 武陵源 풍경구, 천문산, 옥황동, 오뢰산, 팔대공산, 모암동, 구천동, 보광사 등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奇巖峰林地貌는 장가계시 경관의 자랑이다. 연평균 기온은 16도 정도이고,연 평균 강수량은 1500mm 정도 이다.1월이 가장 추우며 교통은 편리하여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8km정도 떨어져 있다. 매년 4월에서 10월까지가 장가계를 관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될 수 있으면 비가 올 때는 산에 오르지 않는 것이 좋다. 길이 매우 미끄러울 뿐만 아니라, 아래에는 가랑비가 내리지만 산 정상에는 커다란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 아무것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가 그친후 한 두시간 있다 산에 오르면 가장 좋다. 그 때쯤이면 산 정상에 있는 구름은 산 중턱으로 와있을 것이고 산 정상에 올라 구름낀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이 장가계 최고의 풍경이다. 반면에 역시 날씨가 더울 때도 피하는 것이 좋다. 날씨가 더우면 쉽게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32. 광서성 계림의 이강 the Lijiang River, 강을 따라 산수갑 24경이 펼쳐지는 몽환의 여행 코스.
계림관광의 절정은 역시 계림에서 양삭(陽朔)까지 83km에 이르는 이강 유람이다. 이 구간은 산속 깊숙하게 돌아 흐르며 진귀한 유형을 하고 있는 봉우리들이 많이 있어 "현세 속의 선경(仙景)"이라고 불린다. 이강 주위의 선착장에는 많은 유람선들이 있어서 배를 타고 천천히 주위의 경관을 즐기는 것도 좋다. 또한 배 안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는데 선상에서 즐기는 식사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고기잡이 선수인 가마우지는 이강의 명물 가운데 하나로, 황소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이강 유람 도중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가마우지는 대개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보다는 밤이 확률이 높다. 이강 주위에 보면 양 어깨에 가마우지를 메고 서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와서 돈을 달라고 하기 때문에 사전에 돈을 지불하고 찍어야 한다.
33. 해남도-열대로의 초대
햇빛이 풍부하고 매혹적인 경관이 있는 해남도의 거리를 거니노라면 길가에 늘어진 야자나무와 종려수들 그리고 넓고 깨끗한 거리와 푸르른 하늘에서 동남아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 육지면적이 가장 작고 해양면적이 가장 큰 남부 성인 해남성은 열대에 위치해있어 강우량이 풍부하고 일년 사계절 볕이 따뜻하며, 년평균 기온이 섭씨 20도이다.
중국 북방에 찬 바람이 불어치고 눈꽃이 날릴때도 해남도에는 여전히 봄빛이 무르익어 따뜻한 햇빛속에서 해수욕을 마음껏 즐길수 있다.
중국최대의 열대섬으로서 해남도에는 백사장과 햇빛, 바다가 있으며 섬 전체가 푸르른 빛에 싸여 있고 오염이 없이 깨끗하다.
해남에서 가장 특색있는 열대 도시로는 삼아시를 꼽을수 있고, 중국에서 가장 남부에 위치한 도시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삼아시는 교통이 불편하고 페쇄되어 인적이 드문 연고로 천애지각으로 불리우면서 역대 중국 봉건왕조에서 신하들을 추방시키는 한국의 제주도와 같은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삼아시는 국제적으로 이름난 열대 해변가관광도시로 그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야룡만과 천애지각, 남산 등 관광지를 가지고 있다.
천애지각의 바닷가 백사장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박혀 있는데 그 중 10메터 높이의 큰 바위에 하늘끝이라는 뜻의 천애 두 글자가 새겨있고 그 곁에 있는 바위 웃부분에는 바다의 모퉁이라는 뜻으로 해각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 있다.
이 글자는 백여년전 중국 청나라 관원과 문인이 새긴것으로 이 곳에 유배온 관원과 문인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한 심정으로 하늘끝, 바다의 모퉁이의 뜻으로 새긴 이 글이 지금은 새로운 뜻을 가지고, 천애해각이라는 이 네 글자는 하늘끝, 바다끝 까지 가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함의를 내포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사랑을 약속한다.
이밖에 대대로 해남에서 살고 있는 백여만명의 리족들이 농후한 민족풍토를 형성하고 있다.
해남남부의 리족촌에 가면 리족들의 고유한 민속풍토를 관상하고 그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그들의 특미를 맛보고 열대지대의 특이한 경관을 감상할수 있다.
34. 쿠무타거(庫木塔格) 사막
庫木塔格 사막은 신강(新疆)의 제3대 사막. 이 사막풍경구역은 <화로>로 불리는 투루판(吐魯番) 선선현(鄯善縣)에 위치,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시와 이어진 사막이다. 사막이 선선현성과 1km 거리를 두고 있어 세계 사막방지사상 <綠不退,沙不進(푸름이 물러서지 않고 모래도 진공하지 않는>기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위글족 언어에서 <쿠무>는 모래, <타거>는 산, 쿠무타거는 모래산이란 뜻이다.
쿠무타거 사막 풍경구역의 총 면적은 1880㎢, 신강지역 사막지형 경관의 전형적 대표이다. 위러커타거(멀리서 보면 옛 봉화대 같음), 사막의 해돋이와 저녁 놀, 모래 강, 모래언덕 등 자연경관이 있다. 과학고찰, 탐험, 생태관광, 사막체육활동, 보건(모래치료), 관광에 좋은 곳이다. 사막이 옛 실크로드 주요통로와 옛 선선국(鄯善國) 변두리에 있어 주변의 인문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사막의 오아시스에 중요한 역사문화유적과 그 흔적이 많아 풍부하고 다양한 민족 풍토와 사회모습을 보여준다.
쿠무타거사막은 사막경치와 강남의 수려함을 한 몸에 담고 있어 <노천사우나>로 불린다. 이곳에 세계에서 해발최저의 사막식물원이 있다. 500여종의 사막식물이 있으며 그중 40여종은 사막화로 인한 멸종위기에 처한 진귀한 식물이다.
쿠무타거 사막은 도시와 아주 가깝기 때문에 다른 사막에선 몇 주 동안 수 천리를 걸어야 볼 수 있는 각종 사막 경치를 이곳에선 2--3일 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 <도시 속의 사막경치>는 많은 관광객들을 끈다.
35. 사천성 아미산 the Emei Mountain과 세계 최대의 락산대불 Leshan Giant Buddha.
사천성 아미현에서 7㎞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미산은 절강성의 보타산, 안휘성의 구화산, 산서성의 오대산과 더불어 중국 4대 불교 명산으로 이름이 높다. 아미산은 대아산 ·아이산·삼아산의 총칭으로 볼거리는 대아산에 몰려 있어서 이곳 이외의 지역을 등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상에는 세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가장 높은 만불정은 해발 3.099m이며, 금정과 천불정이 구름안개 사이로 웅장함을 보여준다. 자주 흐린 날이 계속되기 때문에 서너번 등산을 해도 산의 귀퉁이만 잠깐볼 수 있는 산의 경치보다는 당나라 이후에 세워진 많은 사찰들이 아미산의 주요 볼거리이며, 다른 지역의 사찰이나 이곳이나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북적대며 입장료를 받고, 상점에서 틀어놓은 음악소리, 숙소를 마련해 놓고 호객행위를 하는 등등의 세속적인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깨끗한 승복을 입은 스님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형식적으로 상주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듯하다. 마치 무협지에서 활약하던 아미파의 날카로움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산의 기후는 뚜렷이 구분되는데 보국사 주변은 야자수를 볼 수 있는 아열대에 속하며, 산허리에 해당되는 만년사 이후 부터는 온대, 산정은 아한대 기후로 침엽수가 무성하다. 식물의 분포가 다양할뿐 아니라 야생의 동물들을 우연히 볼 수 있어서 그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36. 사천성 구채구 Jiuzhaigou, 크리스탈 같은 호수, 오색찬란한 연못, 스펙타클한 폭포...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구채구의 물을 보고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비취처럼 영롱하고 명랑한 색을 띈 구채구의 물은 구채구를 대표하는 미경(美景)이다.
구채구는 성도시에서 460㎞ 떨어져 있는 사천성 창족(羌族)·장족(藏族) 자치구의 구채구현 내에 위치해 있으며 최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등장했다. 골짜기 안에 9개의 장족 마을이 있는데, 여기서 '구채구'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되었다. 총면적이 720㎢이며, 그 중 52%가 빽빽한 원시림이다. 그 안에 봉우리, 골짜기, 호수, 폭포, 시내 등이 있고 100여종의 식물과 희귀동물도 살고 있다. 주요 풍경구는 "Y"자 모양을 띠고 있는데 풍경구는 크게 수정(樹正), 일칙(日則), 즉사(則査) 3개의 골짜기로 구성된다. 수정구는 구구(溝口)에서 락일랑(諾日朗)까지로 총 길이가 약 13.8km이며, 락일랑은 구채구의 중심이다. 여기서부터 구채구의 가장 높은 장해(長海)까지는 17.8km이다. 관광지의 해발이 1,980m-3,100m 정도이며, 가장 높은 곳은 4,700m인 곳도 있다.
1월 최저 기온이 2.5℃, 7월 최고 기온이 17℃여서 1년 중 언제라도 여행을 하기엔 좋은 날씨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을에 이곳을 찾는다.
구채구 내의 풍경지로는 본경탄, 갈대해자, 범해자, 쌍용해자, 수정군해 중 제일 큰 와룡해, 수정군해, 수정폭포, 낙일랑폭포, 계절해, 오채지, 장해, 경해, 구채구의 가장 큰 폭포인 진주탄폭포, 오화해, 팬더곰해자, 검죽해, 백조해, 원시삼림 등이 있다
37. 귀주성의 황과수 폭포 the Huangguoshu Waterfall, 중국의 나이아가라, 중국의 이과수.
중경이 있는 사천성 남쪽은 귀주성으로 귀주성의 성도 귀양에서 150km 떨어진 카르스트 지대의 분지인 안순시(安順市)에는 아시아 최대의 폭포 황과수 폭포가 그 웅장한 장관을 자랑한다.
중국의 남서쪽 지방인 운남과 귀주는 해발고도가 높은 고원지대로 수많은 협곡과 급류, 폭포를 안고 있다.
그 중 귀주성의 바이수이 강은 강바닥이 마치 계단처럼 한 단계씩 올라가게 되어있고 각 단계마다 아홉 개의 폭포가 형성되어 있다. 그 폭포 중에서 가장 큰 것이 황과수 폭포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 하늘이 갑자기 열리더니 은하수가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고 한다. 그 은하수가 절벽에 걸려 황과수 폭포가 되었고 은하수가 떨어질 때 함께 떨어진 수많은 별들이 흩어져 황과수 폭포 주위의 돌숲, 호수, 다리, 동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높이가 74m, 너비가 81m에 이르는 황과수 폭포는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최대의 폭포로 그 규모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강줄기가 무서운 기세로 흘러 들어 폭포로 쏟아지는 경관은 실로 장엄하다. 폭포의 물줄기는 다섯 개의 기둥으로 나뉘어 70m 높이의 절벽을 수직으로 낙하한다. 거침없는 폭포수가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 떨어지면 거기서 다시 작은 물방울들이 일제히 튀어올라 물보라를 일으킨다. 맑은 날, 물보라 중간쯤에 무지개라도 걸리면 마치 신선이 사는 세상 같은 풍경이 그려진다.
거대한 폭포 뒤로 이끼가 낀 초록빛 절벽이다. 폭포 중간 높이에 폭포 뒤로 이어진 길에는 수렴동(水簾洞)이라 불리는 길이 100m의 절벽동굴이 있고 그 안에 1개의 폭포와 5군데의 광장, 3곳의 연못 등이 있다. 수렴동에서는 거센 물줄기 커튼 사이로 폭포 바깥을 내다볼 수 있다. 폭포에 물이 많을 때는 마치 커튼을 쳐놓은 것처럼 바깥 세상이 가려지지만 폭포의 물이 줄어들면 물줄기는 자연스럽게 양 옆으로 갈라져 커튼을 양 옆으로 젖힌 듯 세상이 내다보인다. 수렴동의 세번째 창은 발코니처럼 돌출되어 있어 그곳에 서서 손을 내밀면 폭포수를 만져볼 수 있다. 물줄기가 아프게 손바닥을 때린다.
황과수 폭포를 둘러싸고 기이한 봉우리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고 멀지 않은 곳에 18개의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있으며 그 신비로운 풍광에 은하수가 떨어져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한다.
밤이 되면 폭포는 변신한다.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는 따뜻한 노란 빛으로 물들고 폭포 주위의 물웅덩이와 나무가 길게 늘어선 강둑은 초록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38. 귀주성 직금동 the Zhijin Cave, 길이가 110km에 달하는 초대형 동굴과 지하세계로의 초대.
직금동 풍경구는 귀주성 직금현 경내에 위치, 풍부한 명승고적、 다채로운 동굴 경관과 전통 민속문화를 한 몸에 지닌 관광 명승지이다. 풍경구 면적은 307km²이며 직금동 중심 풍경구와 직금고성구(古城區)、벽운호(碧雲湖)、동풍호 (東風湖) 4대 명소로 구성되였다.
직금동은 대자연이 인류에게 부여한 걸출한 작품으로 “큰 규모와 기이함, 구전함”을 특색으로 한다.
큰 규모- 직금동은 공간이 넓고 경관 규모가 웅대하며 기세가 방대하다. 동굴은 탐사를 이미 끝낸 부분만 길이가 12.1 km에 달하고 가장 넓은 곳은 최대폭이 175m이며 상대 고도차는 150m이고 평균 높이와 넓이도 모두 40~100m 사이에 있으며 총면적은 70만m² 이다.
기이함- 경관과 공간 조형이 특이하고 미학적인 가치가 아주 높다.
구전함- 동굴내 경관 형태가 풍부하고 용암 퇴적물 종류가 40여 가지에 달해 세계 종유동 퇴적물의 각 종 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다.
직금동은 11개의 대청과 47개의 홀로 분류, 아름답고 변화무쌍한 기상을 자랑한다. 웅장한 “지하탑림(塔林)”, 신비한 “광한궁(廣寒宮)”, 넓고 웅대한 “령소전(靈霄殿)”, 수려하 고 정교한 “은우수(銀雨樹)”, 살아있는 듯한 “파식정심(婆媳情深)” 、“천년철수(千年鐵樹)”、“만년설송(萬年雪松)” 등은 수채화처럼 무수한 정경을 연출하며 사람을 매혹한다.
직금고성은 명홍무(明洪武) 15년(기원 1382년)에 처음으로 건설되였는데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강이 성안을 흘러 지난다. 성내에는 샘터가 71곳에 달하고 암자、사당、절간、 사찰 등이 50여 곳에 이른다. 그 중 재신묘와 보안사는 구조가 특이하고 설계가 정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곳에는 부이족、묘족、이족 등 소수민족이 생활하고 있는데 짙은 민족 특색이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39. 곤명의 전지 the Dianchi Lake, 고원의 진주라고 불리우는, 운남성 최대의 담수호.
대지의 아름다움을 말하라고 한다면, 산 아래에 조용히 정돈된 오래된 도시와 그 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일 것이다. 여기서 물이라 함은 설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담긴 얼하이호수를 가리키며 단연 이곳 자연 경관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 2번째로 큰 호수로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해서 이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바다라로 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며, 파도도 심하다.
해발 1,972m 높이의 고원에 위치한 호수인 이곳은 창산을 뒤로하고 있으며, 총 면적이 248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곳이다. 넓고 조용한 곳이어서 인지, 안정감과 편암함을 준다. 또 이 호수 제일 남쪽에는 얼하이호수 공원이 있는데 창산과 어울린 얼하이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동북부에는 유명한 꽃들로 구성된 식물원이 있고, 화강암으로 된 200개의 등산계단이 있어서 망해루(望海樓)에 올라 이곳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40. 운남성의 석림 the Stone Forest, 이색적인 돌들과 모형이 있는곳
이 일대는 원래 바다였지만 2억8천만년전의 지각변동에 의해 석회질의 암반이 변형되기 시작되어 지면으로 노출된 부분이 비바람에 의한 침식과 지진등의 영향으로 깍이고 깍인 결과, 지금과 같은 예리한 모양으로 된 것이다.
석림은 곤명동남쪽 120 km 길 남쪽의 이족 자치현 안쪽에 있고 면적은 약 40만무이다. 세계에서 유명한 카르스트지구중의 하나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승지이며 사람들에게 <<천하제1기관>>으로 불리운다. 큰 석림범위내에 관광객들이 관람할수있도록 1200무 개척하였다. 세상에 석림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아주 많은 데 곤명노남 석림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석림은 운남성 석림 이족자치현 경내에 위치, 면적은 27,000정보, 세계에서 이름있는 카르스트지역의 하나,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로 “천하제일기관 (天下第一奇觀-제일 기이한 경관)”이라는 미명을 갖고 있다.
석림의 산봉들은 모양이 천태만상으로 풍부, 어떤 것은 함께 유람하는 모자의 모양이고 어떤 것은 서로 싸우는 장사같고 어떤 것은 날새나 짐승같고 어떤 것은 예리한 검같기도 한데 그 형상이 살아 숨쉬는듯 생동하다. 각 명소들의 이름도 그 형상에 따라 지었는데 이를 테면 “상거석대”(象踞石台), 멀리서 바라보면 온순하게 생긴 큰 코끼리가 암석우에 엄연히 서있는듯 하고; “만년영지”(萬年靈芝)는 모양이 영지와 같은 거대한 돌이고; “봉황소교”(鳳凰梳翹)는 아름다운 봉황이 입으로 가볍게 자기의 고운 털을 핥는듯 하다.
석림에는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전설들이 전해진다. 이족 사니족의 이름있는 사랑이야기 《아스마(阿詩瑪)》가 바로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석림의 한 산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옥같은 소녀가 서있는 듯하다. 전하는데 의하면 그가 바로 굳은 사랑을 가진 아름답고 착한 사니족처녀 아스마의 화신이라고 한다.
석림의 기묘한 봉우리들은 하나의 독립체이기도 하고 갈라 놓을수 없는 연결체이기도 하다.
산봉사이에는 많은 오솔길과 돌로 된 복도(石廊),석굴, 천교, 정자가 있는데 서로 연결된 이런 통로는 구불구불 뻗어있어 갑자기 올라갔다가는 갑자기 내려가고 또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었다가는 갑자기 우회전하여 사람을 미궁으로 이끌어간다. 멀리서 산봉으로 구성된 이 삼림을 바라보면 기암괴석들이 아득히 뻗어있다. 또 그사이로 티없이 맑은 호수가 자리 잡아 산봉이 물에 비껴 아름답기 그지없다. 석림부근의 지운동(芝雲洞)과 기풍동(奇風洞),장호(長湖),월호(月湖),비룡(飛龍)폭포 등 명소, 그리고 현지 이족인들의 노래와 춤, 풍토는 풍경구에 이채를 더해준다.
41. 운남성 대리 Dali
대리는 운남성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0-13C에는 대리왕국의 수도였다. 삼국시대에는 촉한의 관할아래 있기도 했다. 1254년 몽고의 말발굽아래 굴복하기까지 3백50년간 독자적인 왕국을 유지했었다. 현재는 3천년간 고향을 지키고 있는 바이족의 자치주이다. 이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고지에 자리잡고 있지만 겨울 추위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지역이어서 사계절 여행하기 좋다. 서쪽으로 창산산맥이 뻗쳐있고, 반대편으로는 바다와 같은 이해가 길쭉하게 펼쳐진 가운데 있는 아담한 도시이다. 외지에서 온 관광버스만이 바쁘게 달려갈뿐 시 전체가 이해처럼 고요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보통의 다른 도시처럼 매연을 내뿜는 공장이나 고층건물, 유흥업소가 눈에 띄지 않아서 더욱 좋다. 대리를 세상에 알린 대리석을 연마하는 직공의 손길만 바쁘게 움직인다.
대리풍경명승구는 대리 바이족 자치주에 위치, 그림처럼 아름다운 창산이해(倉山洱海) 풍경과 독특한 민족풍속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검천현(劍川縣) 석보산(石寶山)과 빈천현(賓川縣) 계족산(雞足山) 두 풍경구를 포함한다.
대리는 이해가 창산기슭에 있는데 700여년전의 대리국 도읍로서1,200여년의 역사를 가진다. 지금까지도 얼기설기 뻗은 바둑판 같은 거리와 웅위롭고 장관인 남북 성루가 고색찬연하고 아늑한 풍모를 그대로 유지한다. 사계절 봄날 같다고 하여 “동방의 스위스”라는 미명을 가지게 되었다.
“하관(下關)의 바람, 상관(上關)의 꽃, 창산의 눈, 이해의 달”을 합쳐 대리의 “풍(風), 화(花), 설(雪), 월(月)”이라 하고 대리의 가장 대표적인 경관으로 되고 있다. 그중 하관, 상관은 대리의 지명, 하관은 바람이 세어 예로부터 바람의 도시로 이름있고 상관은 어디에나 조주화(朝州花)를 볼수 있다. 이런 꽃은 한달에 한번씩 피며 꽃의 크기는 연꽃만하고 그 모양이 이쁘다. 창산은 푸르고 가파로우며 해발 4122m의 주봉 산정에는 흰눈이 덮혀있어 신화에 나오는 수정세계를 방불케 한다. 이해(洱海)는 고산담수호로 호수의 해발 1,966m, 달밤이면 교교한 달빛이 호수에 비치어 만경창파를 이룬다. 창산의 설경과 이해의 달빛이 한데 어울려 경치가 수려, 은빛색의 고원명승을 이룬다.
창산운농봉(蒼山雲弄峰)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나비샘 주위에는 자귀나무가 무성하게 자란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사이에 수천수만 마리의 나비가 한데 모여 훨훨 날아예면서 고목위에서 샘물까지 걸쳐진 수많은 아름다운 채색 테이프가 바람에 흔들리며 찬연한 오색빛을 뿌리는듯 하다. 샘물옆에는 나비루(蝴蝶樓)와 량정(涼亭), 화대(花台), 나비박물관 등 건축물이 있다. 해마다 음력 4월 15일, 바이족동포들은 모두 명절의 옷차림을 하고 이름있는 “나비회”에 참가한다.
대리풍경구내에는 명승고적들이 많다. 이름있는 숭성사 삼탑(崇聖寺三塔)의 주탑은 정방형으로 중간이 비였는데 높이가 약 70m, 16층 벽돌탑이다. 두개의 작은 탑은 각기 주탑 뒤쪽에 위치, 10층으로 되고 높이는 약 42m, 세탑이 흔연일체를 형성한다. 또한 감통사(感通寺)와 남조국 (南詔國)초기의 도음지 태화성(太和城) 유적 등 명소가 있다.
42 여강옥룡설산
여강옥용설산 풍경명승구는 운남성 여강나시족자치현、녕랑(寧蒗)이족자치현과 샹그릴라(香格里拉) 3개 현 경내에 위치, 총면적이 770km²이고 4개 명소로 구성되었다.
여강고성은 운남성 서북부에 자리잡고 있는데 송나라 말년、원나라 초엽에 건설을 시작한 나시족의 집거지이다. 고성은 사면이 청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흑용담 (黑龍潭)의 맑은 물이 도시를 흘러지난다. 민가가 산세를 타고 질서있게 들어 앉았는데 여강 주변에는 속하(束河) 민가와 백사(白沙) 민가풍의 건축물들이 보존되여 있다.
거연한 옥용설산은 여강고성의 서북부에 위치, 마치 한 마리의 옥용(玉龍)이 가로 누어있는듯 하여 심히 장관이다. 13개 만년적설의 산봉우리들이 한일자로 금사강(金沙江) 동쪽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데 남단의 주봉 선자두(扇子陡)는 해발이 5,596m에 달해 구름에 얼굴을 묻고 여강을 굽어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은 흡사 은용(銀龍)이 창공을 날아예는 듯하고 봉우리는 마치 장검이 하늘을 찌르는듯 하다. 산기슭 하곡에서 산정까지 기후대는 전형적인 수직분포를 이루고 있는데 산밑은 벌써 꽃향기 가신 여름이지만 산허리는 한창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봄날이고 산정은 아직도 옥설과 빙천으로 뒤덮힌 겨울이다.
여강에서 50km 떨어져 있는 운삼평(雲杉坪)은 옥용설산의 가장 주요한 풍경구인데 우뚝우뚝 솟아 장관을 이루고 있는 빙봉과 우불구불 모습을 드러낸 수려한 빙천, 산간에 덮힌 울창한 수림으로 경치가 아름다워 “동방스위스”라 불린다.
“천하제일기협(奇峽)”의 미명을 자랑하는 호도협(虎跳峽)은 옥용설산과 하바(哈巴)설산 사이에 위치, 우회적으로 20km를 이어지는데 가장 좁은 폭은 30m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호랑이가 뛰여 건널 수 있다 하여 호도협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다. 풍경구내에는 위험한 여울이 즐비하고 물살이 급하며 천둥소리가 하늘을 진동하는데 연안에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하늘에 치솟아 있고 괴석이 우중충하다. 호도협은 산과 물을 삼킬 듯한 기세, 사람을 굴복시키는 웅장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을 한몸에 지니고 있다.
신비한 매력과 초탈한 미를 발산하는 로고호(瀘沽湖)、눈 부시게 아름다운 옥봉사(玉峰寺)의 산차꽃밭、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동파(東巴)문화、소박하면서 우아한 나시고악도 한결같이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43. 운남성의 샹그릴라
샹그릴라 -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고요하고 평원한 지대를 묘사한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티벳어로는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
샹그릴라(香格里拉)는 영국작가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 속에 나오는 이상향이다.
외교관 시절 그는 비행기로 납치를 당해 중국 윈난(雲南)성 띠칭의 드친에 불시착하게 됐다가
그곳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눌러앉았다.
뒷날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고국에 돌아가 쓴 소설이 바로 1933년작 ‘잃어버린 지평선’. 40년대에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곳은 한동안 서구인들이 찾아 헤맸던 이상향이었다. 소설에는 ‘설산협곡에 금빛휘황한 건축물이 있고, 신비한 절이 있으며, 조용한 호수와 대초원이 있다. 초원에는 소와 양떼가 떼지어 다니며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다’
라고 묘사돼 있다.
샹그릴라가 세계에 알려지지 시작한 것은 97년. 당시 중국 정부는 ‘샹그릴라’를 윈난성 띠칭
자치주 내에 있는 드친(德欽)이라고 공식발표했다. 샹그릴라는 장족어로 ‘마음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양쯔강의 물줄기를 형성하는 3개의 지류가 한 곳으로 합쳐지는 곳.
강과 협곡으로 이뤄진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이다. 주변에는 해발 6,000m가 넘는 13개의 봉우리가
에워싸고 있으며 4,000m가 넘는 고봉은 470여개나 된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매이리 설산의 카거포봉(6,740m). 라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태자설산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빙천과 빙하로 이뤄져 있으며 고산호수와 삼림, 야생조수가 많은 곳이다.
또 띠칭은 윈난성에서 티베트로 차를 실어보내는 ‘차마고도’(茶馬古道)가 통과하는 지역으로 도시
주변은 초원으로 이뤄져 있다. 주변에는 티베트의 유적지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작은 포탈라궁’. 윈난성 서장불교의 최고사원으로 1,600여명의 스님이 한꺼번에 불경을 읽는 대형 불전도 있다. 이곳의 지붕에는 황금을 도금한 동기와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밖에 고목이 둘러싸고 있는 비타하이 호수, 바이망 설산 등을 끼고 있다.
44. 운남성의 시쐉판나(西双版纳)
시쐉판나는 운남성 시쐉판나 따이족자치주 경홍시(景洪市)와 맹해현(勐海县)과 맹랍현(勐腊县)에 위치, 시쐉판나란 따이어족 언어로 “12개 전부 단위 (12个田赋单位)” 라는 뜻이다. 옛적에는 맹바나시“勐巴纳西”라 불렀는데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무릉도원”이라는 뜻이다. 풍경구내의 명소들로는 경홍(景洪)열대식물원과 감람뚝,야상곡(野象谷),호도석(虎跳石),금전표(金钱豹),대종하(大宗河)폭포 등이 있다.
시쐉판나에는 험준한 뭇산들이 연연 뻗어있고 난창강(澜沧江)과 그 지류가 경내를 관통한다. 서남과 동남계절풍의 양향으로 기온이 높고 비가 많이 내려 독특한 자연여건을 가진다. 일년내내 따뜻하고 습윤, 흐린 날씨가 많고 꽃이 만발하다. 풍경구내에는 일망무제한 열대수림이 있는데 울울창창한 수림속에 수천가지의 식물이 있다. 그 중 보기 드문 빙천시기의 천료목(天料木), 한없이 큰 용수나무(榕树),단단한 두메 밤나무, 기이한 용혈수(龍血樹), 미등목(美登木)등이 있다. 무성한 삼림과 온화한 기후는 또 이곳을 동물의 낙원으로 만들어 아세아코끼리, 인도지나 호랑이, 얼룩 표범 등 동물이 있다. 부요하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시쐉판나는 “동식물왕국 왕관우의 푸른 보석”으로 불리운다.
시쐉판나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자연경치를 가질 뿐 아니라 풍부한 인문경관과 짙은 따이족풍토도 가진다. 정교한 만비용순탑(曼飞龍笋塔)과 아름다운 경진팔각정 (景真八角亭),옥같은 맹방댐(勐邦水库), 성대한 살수절(潑水節), 기이한 관혼상제 풍속이 인기이다.
45. 라싸의 포탈라궁 the Potala Palace, 달라이 라마는 언제쯤 자기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티벳을 가장 티벳답게 만드는 라사의 상징물이며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던 성이다.
라사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티벳의 최초 통일왕조를 세웠던 송첸 감포 왕이 왕비로 맞게된 문성공주를 위해 7세기에 지은 것이다. 현재의 모습은 17세기 제 5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재건된 것으로 약 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총 면적은 41㏊인데, 그 중 본관 건물은 13층 높이로 면적이 12만km이며, 100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사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이 곳을 볼 수 있으며 이 궁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한 이곳은 역대 달라이 라마가 살았던 곳으로, 티벳의 정치·종교의 중심 장소이다. 궁전 내에는 불상, 벽화, 경전 등의 진귀한 물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궁 주변에는 주위를 둘러싼 복도와 같은 '순례의 길'이 있다. 지금도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밧메훔'을 외치는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
46 라싸의 조캉사원 Jokhang Monastery, 여기 석가모니 대불을 보지 않고는 티벳을 논하지 말라.
포탈라궁이 달라이라마가 상주했던 궁전으로서 관광지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조캉사원은 살아 숨쉬는 신앙의 터전이요 중심이기 때문이다.
라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조캉사원이 처음 지어진 것은 서기 647년.당 태종의 양녀로서 토번국왕 송첸캄포에게 시집온 문성공주와 관련이 있다.
티베트의 토번 왕국이 라싸로 천도한 초기 각지에서 재앙이 끊이지 않자 천문과 음양오행에 밝았던 문성공주는 그 원인이 토번국의 지형에 있다고 판단했다.
토번국의 지형이 드러누워 있는 나찰녀의 모습인데 훙산(紅山) 남동쪽의 연못이 나찰녀의 심장이요 물은 그녀의 피라는 것.따라서 못을 메우고 사원을 지으면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문성공주는 제안했다.
이에 따라 송첸캄포는 흰 산양들에게 흙을 나르게 해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지역을 '산양의 땅'이라는 뜻의 '라싸'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후 '석가모니의 전당'이라는 뜻을 지닌 조캉사원은 라싸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라싸의 옛 성이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형성됐을 뿐만 아니라 전 티베트인들의 신앙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된 것.티베트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 이상은 조캉사원을 참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다.
라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챠체'라고 부르는 오체투지를 하며 짧게는 몇 달,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는 길을 달려와 조캉사원을 참배한다
47. 하남성의 소림사 the Shaolin Temple, 에브리바디 공부 파이팅!
동봉현에서 서북쪽 13㎞ 떨어진 숭산의 산자락에 있다. 소실산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주위에 나무가 별로 없는 구릉지대이다. 소림사는 북위(495년)때 수건하였고, 인도의 고승 보리달마는 527년 이곳에 와서 선종을 창시하였다. 건축물은 얼마전에 개축, 보수한 것이 많아 고풍스러운 품격을 느낄수는 없으나 푸르름을 잃지않은 노송들이 역사를 느끼게 한다. 보리달마가 벽을 마주하고 9년이나 참선한 달마동, 소림사 무승들이 오랜시간 무예를 익히며 생긴 벽돌 바닥이 푹파인 상석, 13명의 스님이 당태종을 구원한 형상을 그린 벽화, 역대 선사들의 유골이 보존된 석탑이 숲의 나무처럼 선 탑림, 이밖에도 법여탑, 연공탑 등의 탑과 당나라 이래의 비석 석각 3백여개가 비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처럼 거대한 무언가를 상상하고 들어간다면 그곳은 상상하는 것 이하일것이다.
무협에서 보던 머리에 점찍은 스님들은 어디로 가고 꼬마 무예승들의 무예쑈(?) 같은것은 볼 수 있다.
쩝 진짜 소림의 모습은 감추어 두었나?
48. 서안의 진시황릉 Tomb of Qin Shihuang, 비싼 입장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곳.
중국 산시성[陝西省] 린퉁현[臨潼縣] 여산(驪山)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시황제의 구릉형 묘.
중국 서부에 위치해있는 진시황릉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제일 크고 구조가 가장 기이하고 독특하며 내용이 가장 풍부한 제왕릉묘의 하나이다.
진시황릉의 순장묘의 하나로서 병마용갱은 에짚트의 금자탑과 함께 세계 제 8대 기적으로 알려지고 있다.진시황은 중국 봉건사회의 첫 황제로서 중국역사에서 분쟁이 심했던 시대의 인물이며, 중국을 제일 처음 중국을 통일시킨
황제다.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시킨후 얼마 안가서 자기의 릉묘를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전국적으로 70만명을 동원하여 자기의 릉묘를 건설하였는데 선후하여 거의 40년간 걸렸으나 그가 죽을 때까지 릉묘건설은 의연히 완공되지 못하였다.
진시황릉은 중국 섬서성 서안시 교외 려산에 위치해있는데 릉원면적이 56.25평방키로메터로 릉묘의 밑부분은 거의 방형으로 되여있고 남북길이는 350메터이고 동서너비는 345메터이며 높이가 76메터이다.
릉묘는 총체적으로 금자탑형으로 되여있다.
중국 고고학 사업인원들은 탐사를 통하여 릉묘의 사위에 순장갱과 순장표, 릉건설에 참가했던 인원의 묘 도합 500여개가 있는것을 발견하였고, 순장갱에는 진시황의 승차를 상징하는 동차마갱이 있는가 하면 궁전양마를 상징하는 마구갱, 진나라의 백만대군을 상징하는 병마용갱도 있다 특히 진시황병마용은 세계 8대 기적의 하나로 불리우고 있으니 꼭 한번은 중국의 문화가 중국의 역사 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가봐야할 중국의 최대 릉이다.
진시황병마용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외국 관광객들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중국에 와서 진시황병마용을 관람하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에서는 현재의 기술로 완벽한 보존을 장담할 수 없어 발굴을 멈추고, 고고학적 기술이 발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남은 유적의 안전하고 완벽한 보존을 위해서...
49. 감숙성의 돈황석굴 Dunhuang Mogo Grottoes, 웅대한 석굴을 보고라면 타임머신을 탄 느낌 마져 든다
소조불상(塑造佛像)과 벽화 등의 불교미술품 외에 많은 고문서류가 발견되어 동서문화교류사 또는 중국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1907년 영국의 A.스타인과 그 다음해 프랑스의 P.펠리오에 의해 알려졌다.
중국 서북부에 위치해있는 돈황막고굴은 거대한 예술보물고로서 중국 4대 석굴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내용이 가장 풍부한 석굴이다. 이는 중국 10여개 조대에 거의 천년의 석각예술정수를 집중적으로 반영하였고, 세계적으로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여온 불교유적지이다.
중국 서북부 감숙성 돈황시교외에 명사산이란 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명사산동쪽기슭 벼랑에 남북으로 2키로메터 뻗어있고 아래우로 5층으로 되는 구간에 수없이 많은 동굴이 뚫어져있다.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여 있는 이런 동굴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돈황막고굴이다.
막고굴은 고대건축과 벽화, 조각을 한 몸에 지닌 예술궁전이다.
여러조대의 사람들은 동굴을 뚫는 동시에 동굴에 대량의 불상를 세우고 많은 벽화를 남겼고, 역사의 변천과 인위적인 파괴를 당하였으나 막고굴은 지금까지 의연히 거의 500개의 동굴을 가지고 있으며 약 5만평방메터의 벽화와 2천여존의 조각상을 보존하고 있다.
막고굴의 조각상은 천태만상을 이루고 그 복장과 표현수법도 각이하여 부동한 시대의 특색을 구현하고있으며, 벽화는 특별히 많은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만일 이런 벽화들을 하나로 이어놓는다면 길이 30키로메터나 되는 그림 복도를 만들수 있다.
1900년 막고굴을 관리하는 왕도사는 쌓인 모래를 청소할때 비밀소장실을 발견하였는데, 이 비밀소장실은 그후 장경동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왕도사라는 민간인은 장경동을 발견한후 동굴내의 일부 문화재들을 가져다 돈으로 교환하여 문화재들이 민간에 흘러듬에 따라 막고굴에 골동품은 널리 전해져, 세계 각국의 탐험가들은 막고굴로 몰려들게 민들었다.
그 당시 청나라정부의 무능으로 하여 20년도 안되는 사이에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일본 미극을 비롯한 나라의 이른바 탐험가이 선후하여 돈황에서 거의 4만권의 경서와 많은 진귀한 벽화, 조각을 훔쳐감으로써 막고굴에 3분의 2가 이때 사라졌다.
50. 파미르 고원
파미르는 옛 페르시아말로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뜻하는 ‘Pa-imihr’가 어원이라고 하나 이설(異說)도 있다. 해발고도 5,000m가 넘는 10여 갈래의 복잡한 주행(走行)을 보이는 산맥들로 구성되어 있는 파미르 지방의 대부분은 타지키스탄 고르노바다흐샨주에 속하며, 동쪽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남 ·서쪽은 아프가니스탄에 속한다.
산계(山系)는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동(東)파미르는 카슈가르파미르(중국 영토)를 가리키며, 최고봉은 쿵구르봉(7,719m)이다.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호(孤)를 그리며 남쪽의 타시쿠르간 산계로 이어진다. 심한 개석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 고원은 기후가 한랭한 데다 건조하기 때문에 식생이 빈약하고 관목상(灌木狀)의 텔레스켄이 주민의 유일한 식물질 연료이다. 중부 파미르(지질학자 무르자에프는 이곳을 좁은 뜻의 파미르라고 부른다)는 파미르 가운데에서도 가장 새로운 지질시대에 융기하였기 때문에 산꼭대기 부근이나 하곡(河谷)의 중간 등에서도 평탄한 면이 잘 남아 있다. 그리고 서(西)파미르는 자알라이산맥(트랜스알라이라고도 하며 이곳에 7,134m의 레닌봉이 있다) ·표트르1세산맥 ·아카데미아산맥(교차점에 7,495m의 코뮤니즘봉이 있다), 그 밖에 여러 산맥으로 구성되며 심한 개석으로 웅대한 모습을 보인다.
파미르 산계는 여러 줄기의 향사축(向斜軸) ·배사축(背斜軸)을 가지고 있는데 배사부는 편마암 ·고생층(古生層:헤르시니아계가 많다), 이에 관입(貫入)한 심성암류(深成岩流)로 이루어져 있으며, 향사부에는 중생층을 중심으로 하는 퇴적암이 나타나고 있다. 융기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파미르 주변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지진대(地震帶)이다.
51. 실크로드 the Silk Road, 지금도 탐험가들이 득실득실, 중국 배낭여행의 종착지!!!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에 의해 처음 사용된 명칭이다.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유럽과 인도로 수출되는 주요품목이 비단이었다는 점에서 착안해 이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텐스트라센(Seidenstrassen,비단길)'이라고 명명하였고 이것이 영어로 실크로드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동방에서 서방으로 수출된 대표적인 상품이 비단이었다면 서방에서는 보석, 옥, 직물 등의 산물이나 불교, 이슬람교 등이 이 실크로드를 따라서 동아시아에 전해졌다.
실크로드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부를 통과하는 서역북도와 남부를 통과하는 서역남도가 있다.
이 길은 파미르 고원을 넘은 후 서투르키스탄에 이르게 되며 감숙성 둔황에서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초기에는 둔황의 서방에 위치한 로브노르의 동단에서 남북으로 갈라져, 북도는 호북의 누란, 남도는 호남의 미란을 경유하여 두 오아시스는 국제시장으로 번영을 누리게 되나 3세기경부터 시작된 로브노르 일대의 건조화로 인해 북도는 북도는 둔황에서 북행하여 천산산맥의 동단, 투루판분지를 경유하여, 카라샤르·쿠차·카슈가르에 이르게된 이곳은 이제 많은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로 변해가고 있으며, 관광열차, 호화열차등이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답사코스를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