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우리집 음식 두 가지

[최성호]

주말 음식 두 가지

1. 생일상

이런 저런 이야기로 우울하기만 한데 오늘은 더 우울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잘못하면 아래 사진이 어쩌면 나의 마지막 생일상이 될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한다. 어제 음식을 준비를 하시던 교주님이 앞으로 이렇게 더우면 밖에 나가서 먹는다고 선언하시었다.

결혼한 후 생일상을 차려주시던 교주님이 더위를 견디지 못하시고는 “에어컨 사기 전까지는 생일상을 차리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얼마동안 생일상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3년 전 에어컨을 장만한 후 생일상을 차려주셨는데 이젠 기후 변화로 더 더워지니 “내년에도 이렇게 더우면 못차리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기후변화가 내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줄이야. ㅠㅠ

어제 교주님이 한식으로 차리시려 했단다. 그런데 장을 보는데 모든 채소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겨우... 잡채, 유린기, 오향장육, 동파육으로 끝났다. 아, 원망스런 날씨... 그런데 이렇게 차리는데도 채소 값이 만만치 않았다고 투덜대신다.

시금치 한 단에 6천 원 청경채가 4천5백 원이라고 하니, 투덜대실 만 하다. 이 넘의 날씨 때문에 생일상 수준이 낮아졌다. 아... 시원한 날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이리도 원망스러울 수가.

오늘 생일에는 일산으로 이사 온 동생이 같이 했다. 일산 역 건너편 주상복합으로 일주일 전에 이사와 오늘 자리를 같이 했다. 예전 안양에 살았을 때는 집에 가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술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일찍 자리를 떴는데 어제는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늦게까지 있었다.

동생이 “가까이 있는 덕에 대리비 굳었다”며 “다음에 올 때는 비싼 양주 사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나저나 날씨가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 추세로는 양주, 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 동생이 가면서 “형님은 장가 잘 간 것이니 교주님에게 잘 해주란”다.

내가 뭘.... “잘못하면 맛있는 것 못 얻어먹으니 잘하고 있다”고 했다.

2. 맛, 나눔 그리고 육개장

전 주에 내 생에 두 번째로 최악의 음식을 먹었다. 사무실 근처에 새로 개업한 음식점에서 먹은 부대찌개 단맛 때문에 결국 반도 먹지 못하고 나왔다. 몇 년 전 먹은 달달한 김치이후로 다시 단맛 때문에 입맛만 버리고 나왔다.

음식 값을 내기가 화가 날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이었다.

요새 ‘단맛중독’이란 말을 많이 한다. 그래 이제 단 부대찌개까지 등장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맛중독’이 됐다고 해도 될 듯하다.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오랫동안 개운하지 않다. 기분 나쁜 찝찝한 맛이 한참 동안 입안을 맴돈다. 물을 많이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불쾌감이다.

이런 느낌은 짠 음식에서 많이 나타난다. 거기에다 이젠 단맛까지 더해졌으니 말해 뭣하겠나. 음식이 달다보면 단맛을 적당히 감추기 위해 소금이나 장류를 많이 넣는다. 그래서 요새 음식은 ‘단짠’이다. 듣기 좋으라고 ‘단짠’이지 먹고 나면 목이 말라 맥주를 부르는 맛일 뿐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나, 연주를 들었을 때 ‘여운이 남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영화나 음악에서 ‘여운’은 잔잔한 감동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맛에서도 ‘여운’이 좋은 것일까? 좋은 맛을 오랜 동안 기억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맛에서는 ‘여운’이라는 단어보다는 ‘뒷맛’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문제는 뒷맛이 계속 남아있다는 것, 과연 좋은 것일까? 음식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매움 등이 입안에서 감지돼 뒤섞이면서 결정된다.

음식은 코스로 먹거나 곁들여 먹기 때문에 입안에 맛이 남아있다는 것은 다른 맛을 느끼는데 방해가 된다. 그래서 뒷맛을 남기지 않기 위해 새 음식을 먹기 전 물을 마셔 입안을 행구기도 한다. 그러므로 음식에서 만큼은 뒷맛이 남는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맛만큼은 질질 끌지 않고, 딱딱 끊어지는 맛이 좋은 것이 아닐까 한다.

어제 교주님이 해주신 육개장에서 그런 맛을 느꼈다. 육개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빨간 국물에 맵고 들쩍찌근 함을 떠 올린다. 어제 먹은 육개장 외견상으로는 딱 그 느낌이었다. 그런데 먹어보니 이전에 밖에서 먹던 육개장과는 달랐다.

적당한 매움, 그리고 깊은 육수의 맛, 근대, 숙주, 고사리, 파, 당면 등이 잘 어우러져 정말 조화로운 맛을 냈다. 그런데 그 맛이 입안에서 오래가지 않았다. 육개장 국물까지 다 깨끗이 비웠음에도 숭늉으로 입가심하니 개운해지며 입안에서 뒷맛이 사라졌다.

이런 맛 밖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다. 물론 좋은 재료도 한몫했을 것이다. 소고기는 한우였고, 고사리는 육지에선 찾기 쉽지 않은 제주고사리다. 이런 재료가 들어갔으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육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근대, 숙주, 고사리, 파 등은 육수와 잘 어우러졌다. 왜 그럴까 했는데 각각을 삶은 후 고추기름에 다시 무친 후 두어 시간 맛이 배도록 했기 때문이다. 식감은 살아있었지만 맛이 따로 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과정 때문이었다.

육개장은 맛이 강한 음식이다. 육개장은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그래서 반찬도 단출했다. 그래도 심심하니 입안을 개운하게 해줄 미나리 전이 올라왔다. 육개장이란 음식을 고려하면 맛이 깨끗한 감자전 또는 배추부친개가 더 어울렸을 것 같다.

어제 육개장이 등장한 것은 토요일 내 생일상을 물릴 때쯤 교주님이 같이 한 동생에게 “내일 육개장을 하려 한다”고 하면서 “만들면 연락할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고기를 삶은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오후 장인어른 면회를 다녀 온 후 3시쯤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육개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근대, 고사리 등을 삶아서 다듬고, 고기도 삶은 후 일일이 찢는다. 동생네 것까지 만들다보니 고기 양도 만만치 않았다. 옆에 삶은 고기를 찢으며 “한우만 7만원어치다.”라고 했다.

찢은 소고기가 양푼으로 한 가득이다. 그러면서 교주님이 “찢는 것이 쉽지 않다보니 요새 파는 육개장에서는 고기가 편육으로 나온다.”고 했다. 손이 많이 가지만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육보다는 결대로 찢은 고기가 부드럽고 좋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리라.

6시 넘어 육개장이 다 됐다. 육개장을 끓이는 사이 오징어무침도 했다. 오징어무침은 내일 먹을 것이라 하신다. 그리고 육개장과 오징어무침을 소분해 담고 제수씨에게 전화했다. 이런 교주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교주님은 늘 음식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교주님 선물이 다 음식이다. 올해는 조금 덜 담았지만 매년 오이지를 두 접 정도 담아 주변 사람에게 나눠준다. 은근히 기다리는 사람 많다. 동생이 바로 옆 동네로 이사 왔으니 앞으로 음식을 만들면 동생네 몫까지 할 것이다.

앞으로 동생은 우리 근처로 온 혜택을 톡톡히 볼 것이다.

낮에 마트에 다녀오면서 마트 근처에 좋은 빵집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치와바타와 크로아상을 사왔다. 치와바타는 샌드위치로 만들 것이라 했다. 상을 물리고 또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그 샌드위치를 오늘 아침 먹었다.

교주님이 다 끝내고 앉아 “오늘 좀 쉬려 했는데 또 쉬지 못했다”고 투덜거린다. 그런데 그 모습이 결코 기분 나쁜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끔 교주님은 ‘무슨 운동을 하는가’ 묻는다. 내 대답은 늘 같다. ‘별 운동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잠시도 쉬지 않는 움직이는 것 때문이고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동생이 그랬다. ‘형은 장가 정말 잘 갔다’고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늘 긍정적이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교주님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나도 더불어 건강해지는 것이다.

[선과]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길래...

[또르]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봅니다!

[미소로]

장문의 글
맛깔나는 수필 한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
생신 축하드립니다.. 교주님.잘 받들어 모시고 건강하게 사세요..^^

[새벽**]

육개장은 제가 잘 하는 음식 중의 한 가지인데 육개장에 근대도 들어간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엔 저도 근대를 한 번 넣어 봐야겠습니다.

음식 솜씨 좋은 아내를 만나면 평생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지요.
늦게 나마 생신 축하 드립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