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모시기 나선 건설업계 기술 개발과 ESG경영 윈윈한다.
국민일보, 이택현 기자, 2022. 10. 15.
폐기물을 소각할 때 소각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여전히 골칫거리다. 매립 자체의 유해성도 문제지만 매립시설이 포화상태에 들어가면서 추가 건설을 두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걸 해결하려고 그동안 많은 방법이 강구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소각물을 콘크리트와 뒤섞어 골재로 만드는 방식이다. 폐기물 처리업계는 이렇게 만든 골재를 보도블록이나 옹벽블록 등으로 공급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명확한 한계를 안고 있다. 골재에 오염물질과 악취가 고스란히 남아서다. 무엇보다 골재 품질을 어느 정도 보장하려면 소각재 비율이 20%를 넘어가면 안 된다. 재활용할 수 있는 소각재의 양이 제한적인 셈이다.
SK에코플랜트는 여기에 주목했다. 지난 7월 친환경 건설재료 제조 전문기업 ㈜씨엠디기술단과 손을 잡고 해법 찾기에 돌입했다. 씨엠디기술단에서 자체 개발한 비소성 무기결합재와 팽창 저감용 반응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고온의 소성(가공물 변형) 작업을 거치지 않아 탄소 발생이 적고 가스 발생과 악취를 잡아준다. 씨엠디기술단은 이 기술을 활용해 소각재와 콘크리트 혼합·양생 실험을 반복했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파일럿 테스트 결과 오염물질과 악취를 제거하고 소각재를 최대 60%까지 혼입해도 품질이 저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SK에코플랜트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폐기물을 태운 뒤 소각시설 바닥에 남는 소각재는 약 215만9000t에 이른다. 이 가운데 50%만 재활용해도 소각재 매립량을 100만t 이상 줄일 수 있다.
씨엠디기술단은 이걸 ‘가능한 일’로 만들었다. 2009년 설립된 씨엠디기술단은 SK에코플랜트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회사다. 다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녹색기술인증 취득 실적을 자랑한다. 탄탄한 전문성을 갖춘 것이다.
씨엠디기술단과의 협력으로 SK에코플랜트에서 거두는 효과는 상당할 전망이다. 당장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SK에코플랜트는 “매립시설 포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매립 관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대형 옹벽블록, 보도블록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멘트나 천연골재를 소각재로 대체하면서 원가경쟁력 확보,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SK에코플랜트는 기술개발 진척도와 사업성을 살펴보고 생산공장 신설 같은 추가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SK에코플랜트 사례뿐만 아니다. 건설사들이 앞다퉈 스타트업, 벤처기업, 중소기업과 활발하게 협업하고 있다. 주택 경기, 해외 사업환경이 급변하면서 건설사들은 신기술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건설 관련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기술기업과 접점을 넓히는 건 이 때문이다.
건설사는 외부의 혁신기술을 안정적·경제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한다. 스타트업의 경우 기술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반긴다. 특히 최근에는 발전 방향과 부합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개최하거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해 체계적으로 스타트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업에서 다른 기업·연구기관 등으로부터 특정 기술과 정보를 도입하는 동시에 기업 내부의 자원·기술을 외부와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전략이다.
호반건설은 액셀러레이터 법인인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중소벤처기업부에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로 등록했다. 2019년 설립한 플랜에이치벤처스는 3년간 28개 기업에 투자했고, 55번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스마트건설 부문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신재생에너지,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관심(투자) 분야의 폭은 넓다. 플랜에이치벤처스는 호반건설, 호반호텔&리조트, 대한전선 등의 그룹 계열사와 손잡고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로 변신할 예정이다.
호반건설의 투자는 ‘AI 드론 품질검사 솔루션’에서 눈에 띄는 효과도 거뒀다. AI 드론 전문 스타트업 ‘뷰메진’과 함께 개발한 드론이 자율비행을 하면서 주변 장애물 등을 피해 빠르고 정확하게 현장 품질검사를 수행한다. 충남 당진시 ‘호반써밋 시그니처 1·2차’ 현장의 외벽 품질검사에 AI 드론을 투입하기도 했다. 호반건설은 이 기술을 교량, 도로, 항만 등의 토목공사 현장에는 물론 태양광발전 모듈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품질검사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GS건설도 지난 5월 CVC인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를 100% 자회사로 세웠다.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는 건설업 및 유관 산업의 신기술 벤처기업 외에 비건설 부문의 신기술 기업도 발굴하고 투자·육성한다.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는 현재 신기술사업금융 전문회사 등록을 추진 중이다. 절차를 마무리하면 본격적인 투자 활동을 시작한다. GS건설 관계자는 “건설업의 디지털 전환을 달성하려면 건설업 자체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로봇·제조업 같은 다른 산업의 기술과 융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우건설도 올해 초 AI, 로보틱스 등 12개 스타트업 기업과 협업 관계를 구축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민자도로·터널 내 자율주행 보조기술 개발 등 토목 분야 스타트업, 공사 중 지하주차장 청소용 로봇 등을 연구하는 주택건축 분야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