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98 - 유산
부모 사망 후 유산 갈등으로 형제 간에 칼부림이 있다는 얘기는 티브이에서만 보았다. 권좌(權座)를 쟁취하기 위한 왕자의 난도 드라마로만 보았다. 뒷일이 두려워 권좌를 겁박으로 양위받은 권력으로 어린 조카를 죽인 얘기도 남의 일처럼 그럴 수 있으려니 하고 읽었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불치의 불안과 공포, 우울증과 동거하다 어김없이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이야기도 그러려니 하고 읽었다. 지금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권좌에 위협이 되면 혈육조차 가차 없이 도륙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도 남의 일처럼 비현실적으로 읽혔다. 그런데, 비교적 필자와도 다정하게 지내고, 사람들에게도 인성 좋은 성품의 소유자라고 알려진 지인이 그리 많지도 않은 부모의 유산 문제로 형제간에 원수처럼 지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생처음으로 필자에게 사고무친이라는 유산을 물려준 필자보다 훨씬 젊은 얼굴로 필자 속에 남아있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우체국 여자 / 김혜순
세상엔 너무 많은 이름이 있어
그보다 더 많은 영혼이 있어
울고 싶은 여자야
침묵에 빠진 골목들을 스카치테이프처럼 서랍에 가득
쌓아두었습니다
은는이가
을를에의
와과만도
조사들처럼
종일 받아서 보냅니다
초록색 책상을 끌어안은 이별 전문가
팬티에 손을 넣고 길게 줄을 당겨봅니다
나에겐 빨간 포장끈처럼 붉은 핏줄
상의도 없이 이별의 의무를 다하는 기관들이 몸속에
가득합니다
나는 지금 흰 눈의 흰색은 배송하고 혼자 남아
옷깃을 적시는 물방울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체국을 나서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악처럼
고인의 안경처럼 아무것도 아닌 여자야
이별의 미래야
눈발이 우체통 위에 하얀 손가락 마디를 자꾸만 썰어
놓고 갑니다
우체국 여자의 혈압과 맥박은 돌돌 말린 종이 위로 계
속해서 출력되어 나오고
발송이란 팻말을 비석처럼 세우고
그 아래 종일토록 앉아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 보내드리고 퇴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