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좋아하는 무협이 나와서 잠시 무협 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때가 있
었습니다. 하이텔 무림동에서 봤던 '무상검'이 청어람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속된 말로 뛸듯이 기뻐하면서 구해 보았습니다. 무상검은 제가 통신상에서
본 무협 중에, 유일하게 다섯 편을 넘게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무협입니다.
여러가지로 배울 만하고, 또한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협
을 봐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 무협쪽으로는 어쩐지
받아들이기 힘든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그
리고 최근에 나오는, 말장난으로 웃겨보려고 노력하는 신무협 어쩌구 하는
것들은 정말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재밌다고 하던 비뢰도만 하더라도, 1권
을 보다가 침대에 누워 자버린 전적도 있고, 천사지인도 1권 이후로는 그다
지 손에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무협은 익숙해지기 어려워요. 그나
마 보는 건 극악서생이랄까요. 이건 이름만 무협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튼 그런 제가 무상검 뒤에 또 다시 무협을 쥐어보았는데, 그것이 요도
님(님이라니. 어색해!)의 '요도전설' 입니다. 일단은 지은이분과 친구긴 하
지만, 그래도 꼴에 비평이라고 인정에 휘둘려서는 안될 테지요. 나름대로의
실력으로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스토리.
요도전설은 말 그대로 '요도'를 들고 벌어지는 일입니다. 누군지는 모르
겠지만 아무튼 어떤 스승에게서 경공만 죽어라고 배워서 발만 빠른 주인공
'나' 는 양심에 찔리지만 생계를 위해서 도둑질을 하려다가 우연히도 요도
의 주인이 되게 됩니다. 요도는 '나'의 주인됨을 시험하기 위해서 '화룡염
멱천지공' 이라는 길기도 긴 무공을 전수하는데, 그러던 와중에 '나'는 정
신이 나가버려서, 약 2년 동안 무림을 완전히 뒤엎어버립니다. 그 2년의 시
간 동안 얻은 별호가 '아수라마인'. 2년 후, 정신을 차려서 점소이로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다가, 난하라는 초절정 미소녀를 만나고, 가짜 아수라
마인의 출연을 알게 되면서 다시 강호로 출두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이
것저것 소란을 일으키는 강호행. 이것이 4권까지의 내용을 마음대로 축약한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가짜 아수라마인을 처단하겠지요.
다른 건 다 접어두고, 우선은 스토리만 따져봅시다. '나'는 아~주 우연하
게도 요도를 얻어서 엄청난 무공을 얻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만나는 사람
은 다 죽여버리고 다니는 '아수라마인'이 되지요. 한마디로, 매운 쉬운 말
로, 첫판부터 이른바 '먼치킨' 으로 급상승해버리는 겁니다. 구무협에 '기
연' 이라는 요소가 있다지요? 필연이든 뭐든, 절벽에 떨어졌더니 그 밑에
살던 은거기인을 만나다던가 해서 엄청난 내공을 얻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인연. 사실, 은거기인이 칼로 둔갑했다는 것 말고는 대체 다른 게 뭐가 있
겠습니까. 그 후에 본의 아니게 미쳐서 날뛰었다고는 하더라도, 결국은 상
당한 먼치킨의 실력으로 살아남았고 말입니다. 게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덕에, 매우 흔한 구도, 설명하자면 "애송이 자식! 죽여주마!" "
훗... 죽는 것은 너희들이다!" "컥! 이렇게 강할 줄이야!" 라는 일련의 과
정을 통한 실력 표출, 놀라는 악당의 요소가 마구 등장을 하고 있으니. 조
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대리만족에 상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물론 독서라는 것에 대리만족도 커다란 기여
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나도 상투화된, 식상하기 그지없는 이야기
구도를 늘어놓는다면 딴지 걸리기 딱 좋다는 거지요.
고대소설을 때려치우고, 현대소설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개연성' 입니다. 이것은 제가 누누히 말해왔던 것으로서, 소설에 이것이
빠지면 팥없는 팥방, 국화없는 국화빵과 마찬..., 국화빵에는 국화가 없군
요. 여튼, 그런 겁니다. 개연성의 확실한 존재는 치밀한 구성으로 이어지
고, 빈틈없는 개연성을 완성하면 글 자체의 완성도도 그만큼 올라가는 법입
니다. 뭐, 추리소설이 아니라면야 개연성이 갑갑할 정도로 완벽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겠지만요. 이러한, 개연성으로 뭉친 이야기는 '유기적 구성' 이라
고 불립니다. 학교 문학 시간에 자주 배우는 것입니다. 이때, 유기적 구성
은 '에피소드식 구성' 이라고 불리는, 개연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구성
보다 훨씬 더 위의 수준으로 쳐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도전설은 유기적 구성보다는 에피소드식 구성에 더 가깝습니다. 전체적인
'아수라마인 찾기' 라는 맥은 존재하지만, 여타 이벤트들 간의 개연성은 너
무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단지 캐릭터들만이 중복될 뿐, 혹은 간간이 앞
얘기가 이어질 뿐. 주제라고 생각되어지기는 하는 '아수라마인 찾기' 에 대
하여 '과연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가' 라고 의심이 드는 이벤트들이 텍스트
에 가득 들어차있느니 만큼, 유기적 구성이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덕분
에 무겁지 않은,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는 창출되었지만, 허전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2. 표현.
요도전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입니다. '나'가 주인공으로 나와 중심이 되
어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럼, 지은이께 묻겠습니다.
"대체 1인칭으로 한 저의가 무엇입니까?"
4권까지 읽어가면서, 심한 말로 책을 던질 뻔한 부분이 한두 번이 아닙니
다. 그것은 앞서 말한 상투적인 스토리 구조에도 이유가 있지만, 1인칭의
표현이 더 큰 몫을 차지합니다. 여기서 설명하겠습니다.
1인칭- 서술자가 '나' 로 등장(주인공, 혹은 조연으로)하여 이야기를 전
개하는 시점. 이때, 단지 '나' 라는 한정된 시각만으로 이야기의
모든 것을 서술해야하기 때문에, 글에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기하
고 싶다면, 피하라고 권유하고 싶은 시점. 이야기 전개의 흥미도
와 상관하여 적당히 숨기고 드러내는 기술이 필요하며, 덕분에 쓰
기에 상당히 까다롭다.
아시겠습니까? 저것은 '1인칭' 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입니다. 1인칭이란
건, 정말로 막가는 글쟁이가 아닌, 어느 정도 생각이 있고 욕심이 있는 글
쟁이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써내려가는 시점입니다. 단지 주어가 '나' 로 사
용될 뿐인 시점이 아니란 말입니다. 요도전설의 1인칭은 정말 1인칭다운 점
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1인칭의 장점 중 하나가 어미를 원하는 대로 만들
어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색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몽땅 '-다.'
로 끝나는 문장이 아닌, '-지.', '-걸' 등등. 설명과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말로 하는 듯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 것이 1인칭입니다. 요
도전설은, 이러한 1인칭의 장점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종일
관, 모든 문장의 끝이 '-다' 로 끝나는 덕에, 그냥 읽어내려가면 3인칭으로
봐도 좋을 정도로.
비단 문장 뿐만이 아닙니다. 1인칭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위에서 말한 듯이
드러내고 숨기는 기술이 중요합니다. 드러내고 숨김에 따라, 독자가 이야기
에 갖는 흥미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이런 점에서, 요도전설은 또 다시 실패
해버렸습니다. 대체, 어째서, 1인칭인 주제에 '나' 가 등장인물들의 중얼거
림까지 죄다 들어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안 된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
고, 독자의 흥미까지 완전히 말아버릴 정도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말입
니다.
전혀 1인칭일 필요가 없는 1인칭 시점. 이것은 지은이의 1인칭 시점의 이
용에 대한 실력의 한계를 나타낸다고 밖에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좀 더 발
전되기를.
저 위에서 이야기 구조가 상투적이라는 말을 언급했습니다. 너무나 전형
적인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하필
이면 이 '전형적' 이라는 단어가 이야기에만 붙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대사를 하기 마련입니다. 감칠 맛 나는 대사는 적당한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유머스러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
다. 그런데, 요도전설의 대사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적에게 내뱉는 경고의 말이라든지, 야릇하게 러브러브함이 묻어나려는 분위
기에서 속삭이는 대사까지. 뭐랄까, 너무 많이 써서 이젠 대놓고 쓰기에도
부끄러운 대사들이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니, 보면서 참 난감했습니다. 한편
으로는 '이런 대사들 골라쓰기도 힘들겠다'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요. 덧붙
이자면, 이것은 상황 묘사와 덩달아서 '연출력 부족'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 인간인 탓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지만 독자로서 얼마만큼
의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설정.
전 무협에 대해서 통 무지한 탓에 설정에 대해서는 꼬집을 게 잘 없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무공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뒤로 밀어버리도록 하지요.
사실 요도전설은 골치 아픈 초식 운용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은 거의 나오지
도 않는 굉장히 심플한 무협이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합니
다.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
주인공은 아픈 과거를 가진 엄청난 미소년이고, 여주인공 또한 아픈 과거
를 가진 굉장한 미소녀입니다. 사실 캐릭터-라는 부분에서, 요도전설은 이
둘의 이야기면 끝입니다. 이 둘 또한 상당히 정형화된 캐릭터이긴 한데, 나
름대로 성격 표현은 나쁘지 않기 때문에 넘어갑니다. 문제는 이 둘의 비중
이 너무 높은 나머지, 다른 조연들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적습니다. 하진...
이던가 하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뒤에 나오기도 한다지만, 뭐랄까요,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둘의 존재감에 눌려 다른 캐릭터
들이 기를 못 펴고 사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글의 재미를 부각시
키는 것은 감초 같은 조연도 한 몫 하건만. 슬픈 일입니다.
4. 총평.
요도전설은 그 취지에 걸맞게 무협에 무지한 사람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가벼운 구성과 가벼운 분위기, 스피디한 전개, 문체 등을 내세우고 있
습니다. 하지만 그 거꾸로, 너무나도 무수하고 극명한 단점들 때문에 라이
트리더들이 아닌 독자들이 읽는다면 한숨 쉬고 책을 놓아버릴 가능성이 너
무나 다분합니다. 거기서 파생되는 단점들이 조금만이라도 더 보충되었다
면, 저도 즐거운 독서 시간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책을 놓은 뒤에 남는 건
짜증 뿐이라는 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좀 더, 지은이의 노력과 분발을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