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7일 [음력 : 2005년(乙卯年) 10월(丙戌) 16일(乙巳)]
어제날짜 DUKE님의 답글에서 동성동본에 대해 궁금해 하셨는데
1995년 오늘의 소사를 보니
한시적으로 1996년 한해동안 동성동본 혼인신고 허용이라는
글이 있어 A/S글을 올립니다.
동성동본의 불혼과 폐지에 대해 관련자료를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성동본의 정의 : 성이 같고 본이 같은 남녀 사이에는 통혼을 하지 않는 제도 또는 관습. 동일한 남계시조(男系始祖)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 간에는 촌수의 제한 없이 통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유래 :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예족은 동성불혼한다고 하여 그 최초의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같은 씨족끼리 혼인하지 않았다는 뜻으로서 예족 특유의 습속일 뿐이며, 뒷날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동성근친혼이 성행하였다.
고려말인 1309년(충선왕 1)에 비로소 문무양반의 동성금혼령이 내려졌고,(소사자료에는 1308년으로 되어있음) 조선 초에 이르러 동성불혼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영향으로, 중국의 동성불혼은 주(周)나라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어 온 규범이다.
이러한 규범이 성립된 근본 원인은, 첫째, 동성간에 혼인하면 불번(不蕃;不殖)이라 하여 부인이 불임되거나 임신율이 낮아 자손의 단절이 온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둘째, 동성혼에 내포되어 있는 동성남녀의 육체적 결합 자체가 금기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동성교합에 대한 두려움·불길함의 작용 외에 현실세계를 중히 여기는 유교의 합리주의의 발달에 따라 도덕적 불륜감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동성불혼의 원칙은 관습에서는 물론 1960년 이래 민법에서도 지켜지고 강제되었다. 민법 제809조 ① 항에서는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고, 동성동본혼의 혼인신고는 수리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산업화, 동족부락의 해체, 동족의식의 약화라는 현상은 동족불혼의 윤리의식에도 영향을 미쳐 사실상 동성동본혼이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혼인신고를 하지 못함으로써 비롯된 사회적 문제를 고려하여 1977년, 1988년, 1995년에 한시법이기는 하나 <혼인에 관한 특례법>이 마련되어 동성혼부부를 구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7월 헌법재판소는 민법 809조 ① 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 동성동본불혼 규정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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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화폐속의 인물 빌라 로보스 (브라질-) 세상떠남
빌라 로보스(Heitor Villa-Lobos)
1887. 3. 5 ∼ 1959. 11. 17. 브라질의 음악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작곡가이다. 브라질의 토속 선율 및 리듬을 바흐부터 푸치니에 이르는 서양 고전음악과 결합시켰다. 젊은시절에는 첼로 연주자였으나, 1905년부터 브라질의 유행음악과 민속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홀어머니가 음악가의 길을 반대하자 18세 때 가출하여 방랑음악가가 되었다. 첼로와 기타에 유행가를 실어 연주하면서 줄곧 브라질의 민속음악을 자신의 곡에 흡수했다.
리우데자네이루로 돌아와서 국립음악원에 등록을 했지만 곧 그만두고 북부 브라질(바이아)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3년간 음악 순례를 다녔다. 그 지역의 아프리카 계통 브라질 음악에 대한 자세한 지식과 방대한 분량의 악보를 갖고 리우데자네이루로 돌아왔고, 바흐·바그너·푸치니 등과 기타 다른 작곡가들에 대하여 연구하며 작곡에 이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15년 아르투르나폴레옹사에서 그의 음악을 출판하기 시작하여 작곡가로서 경력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작품을 쏟아냈으며(약 2,000개의 작품을 위촉받음) 1923년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했을 무렵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방대한 리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1919년 32세에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만났고, 이 피아니스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빌라 로보스의 음악을 연주하여 그의 명성을 떨치게 했다. 빌라 로보스는 1930년 상파울루의 음악 교육감으로 임명되었고 1932년 브라질의 모든 음악 교육을 맡게 되었다. 그는 유행 가요를 위한 음악원(1942)과 브라질 음악 아카데미(1945)를 설립했다. 1944~49년 미국과 유럽 지역을 순회하면서 많은 상을 받고 높이 칭송받아서 지휘자로서 요청도 쇄도했다.
그는 바흐 및 프랑스 작곡가들, 바그너의 양식에 입각하여 여러 편의 오페라, 발레곡, 교향곡, 협주곡, 교향 모음곡, 독주곡들을 작곡했다. 그의 양식은 브라질의 민속 타악기들과 토속 리듬의 독특한 기법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특징적인 작품으로는 성악 그룹과 여러 악기들을 위한 〈브라질풍의 바흐 Bachianas brasileiras〉(1930~44)인데, 이 작품은 9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브라질의 민속음악 주제에 바흐의 대위법 양식을 적용한 것이다. 1920~29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14곡으로 구성된 〈쇼로스 Choros〉를 작곡했는데, 이 제목은 브라질의 한 시골 무용에서 따온 것이다. 1920~58년 작곡한 12곡의 교향곡은 대부분 역사적 사건이나 지명과 연관되어 있다. 그밖에 교향시 〈위라푸루 Uirapuru〉(1917)·〈아마조나스 Amazonas〉(1929)·〈열대림의 새벽 Dawn in a Tropical Forest〉(1954)과 첼로 협주곡 2곡(1915, 1955),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모모프레코세 Momoprecoce〉, 하프 협주곡, 하모니카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기타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1952), 16곡의 현악 4중주(1915~55), 피아노 독주를 위한 〈야성의 시(詩) Rudepoema〉(1926, 관현악 편곡 194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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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영국·미국·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은 일본은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를 특명전권대사로 한국에 파견했다.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을 목적이었다. 이토는 11월 10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회유와 협박으로 고종을 압박했지만 완강히 거부당했다.
11월 17일 일본공사 하야시도 한국 정부의 대신들을 공사관으로 불러 조약 승인을 종용했다. 대신들이 응하지 않자 하야시는 고종이 머무는 덕수궁 별채 중명전에서 어전회의를 열고 결단을 촉구했다. 남산에는 대포가 설치돼 서울을 겨누고 있었고, 궁 밖은 무장한 일본병이 포위하고 있어 공포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대신들이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자 하야시는 이토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토는 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를 대동하고 들어와 대신들 각각에 찬부를 물었다. 한규설·민영기·이하영이 반대하고, 이완용·박제순·이근택·이지용·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 5적’이 찬성으로 기울자 이토는 다수결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외부대신 박제순과 하야시로 하여금 ‘한·일협상조약’에 날인케 했다. 그러나 조약은 최고통수권자인 고종의 날인이 없어 국제법상 무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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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년 조선 세종대왕, 「동국정운」 반포.
1558년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 메리1세 사망
1717년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장르롱 달랑베르 출생
1755년 프랑스 루이18세 출생.
1776년 독일의 역사학자 F.C슐로서 출생.
1790년 독일 천문학자겸 수학자 아우구스트 뫼비우스 출생.
1800년 미국의회, 워싱턴에서 첫 개회.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1882년 조선 고종19년, 통리아문(統理衙門) 신설-외무에 관한 사무관장.
1887년 2차대전의 영웅 영국 야전군사령관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 출생.
1888년 조선 고종, 독판 내무부사-김기석. 주일공사-김가진 임명.
1901년 궁내부에 경위원(警衛院) 설치.
1902년 의학교장 지석영, 황성신문에 양매창론(楊梅瘡論)을 발표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을사보호조약)-통감정치실시, 외교권 박탈.
1910년 멕시코 교포 이근영 등, 메리다 지방에 숭무학교 설립.
1911년 서대문∼동대문 전차복선화 준공.
1917년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사망.
1920년 일본, 남양군도 위임통치 선언.
1927년 중국, 해풍(海豊).육풍(陸豊)에 최초의 소비에트 성립.
1932년 독립운동가 이회영 순국
1933년 미국, 소련연방 승인
1942년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지 출생
1945년 군정청에 인사문제조정위 구성.
1945년 조개옥 경찰부장 파면.
1946년 제1회 순국선열 추념식.
1949년 외국인 출입국과 등록에 관한 법률제정.
1952년 유엔총회, 남아공화국 인종차별정책 비난 결의안 채택
1954년 유엔군사령부, 38선이북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
1954년 한국-미국 상호방위조약 발효.
1955년 군당국, 평화선 침범 일본어선에 대한 발포방침을 발표
1965년 유엔총회, 중공가입안을 찬반동수(47:47)로 부결
1966년 블랙 미대통령 특별고문(아시아 경제사회 개발), 방한.
1967년 유엔총회, 통한(統韓)결의안 가결
1969년 미국-소련 전략무기 감축회담(SALT) 개막(헬싱키).
1969년 MBC TV, 아침방송 개시.
1970년 소련 무인우주선 루나17호, 달 착륙.
1970년 칠레, 언커크 탈퇴를 유엔 사무총장에 통고.
1971년 국제노동기구(ILO), 자유중국 축출하고 중공 가입 가결
1971년 일상 이와이 한국 일본협력위로부터의 탈퇴를 정식통고.
1971년 태국 타놈수상 친위 쿠데타
1972년 페론 前아르헨티나 대통령, 망명 17년 만에 환국
1972년 한국-독일 재정원조 협정 서명.
1974년 그리스 총선, 신민주당 압승.
1975년 제1회 서방선진국 경제정상회담 개막.
1976년 중국, 수소폭탄 실험성공 발표.
1978년 소련, 중성자탄 시험 성공 발표
1979년 시인 주요한 사망
1980년 이스라엘, 중국과 비밀 군장비 판매협정 체결 발표
1980년 작곡가 이흥렬 별세.
1980년 중국 공산당, 공자 복권 발표
1980년 KBS, 공영체제로 기구개편 발표
1981년 제6차 한국-네덜란드 공동위 개막.
1983년 버마, 북한 아웅산테러범 대역죄로 기소
1986년 테러/프랑스 파리서 베스루노 자동차공단총재 피격 사망.
1987년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방한.
1987년 중공 신화통신, 중공최초의 주식회사 설립보도.
1988년 남북국회회담/남북국회회담 제6차 준비접촉.
1988년 동경 외환시장 달러화, 121.52엔으로 전후 최저기록.
1989년 30대재벌 그룹회장단, 전경련 결성 합의.
1989년 불가리아 의회, 토도르지프코프 전 서기장을 국가평의회 의장직
1989년 체코, 프라하에서 민주화요구 시위.
1989년 한국-체코 상공회의소, 업무협력의정서 조인.
1989년 한스 모드로프 동독총리, 새연립내각 구성발표. 개헌위원회 설치
1990년 소련공산당 출신 개혁주의자들, 러시아 공화당 창당.
1990년 소련최고회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비상대권 부여.
1990년 정부, 안면도 핵폐기처리장 건설계획 백지화.
1991년 캄보디아 국민집단학살 지휘 센손, 망명 13년만에 귀국.
1992년 독일 사회민주당,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독일군 참여 허용 결정.
1992년 동의대 발굴조사단, 김해고분군서 BC 1∼5세기 유물 발굴 발표.
1992년 새한국당 창당(대표 이종찬 의원)
1992년 서인천 복합화력발전소 준공.
1993년 남아공 대통령, 흑인 참정권 부여하는 과도헌법에 서명.
1993년 미국 하원, 북미자유무역 협정(NAFTA)법안 승인.
1993년 화재/인천 서구 명국전자 스피커 공장화재, 재산피해 10억여원.
1994년 서울시, 고입 1998년부터 무시험 '5개영역' 내신으로 전형.
1994년 테니스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은퇴
1994년 필리핀산 히로뽕 완제품 밀반입 10명 검거-서울지검.
1994년 한국-베네수엘라, 문화협정 체결
1995년 노전대통령, 수서택지 분양 당시 한보그룹으로부터 수십억 수뢰.
1995년 동성동본 혼인신고 1996년 한햇동안 허용-혼인특례법.
1995년 알제리 대선결과, 라민 제루알 알제리 현 대통령 당선.
1995년 영국, 아일랜드공화국(IRA) 분쟁관련 IRA죄수 84명 석방.
1995년 음반사전심의제, 60년만에 폐지.
1995년 재해/스칸디나비아, 눈보라와 폭설로 9명 사망.
1995년 크로아티아-세르비아공화국, 관계정상화 협정 마련.
1995년 태평양 주둔 미해군사령관, 주일미군 성폭행 관련 발언으로 사임
1995년 파나마, 돈세탁 방지법 도입 시행.
1995년 한-미-일, '대북정책협의회' 구성 합의(3국외무장관 회담).
1996년 96 아시아 쇼트트랙선수권, 한국 종합우승.
1996년 러시아, 화성탐사선 발사 실패(남태평양 추락).
1996년 루마니아 대통령선거,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당선.
1996년 지진/함경남도 원산, 3.6 규모-경기.강원도서도 감지.
1997년 르완다 반군 형무소 공격-軍과 충돌,300여명 사망.
1997년 삼성전자,자료 저장·삭제 가능한 CD롬드라이브 국내 처음 개발.
1997년 이집트 유적지 룩소르 테러사건-관광객등 68명 사망.
1997년 제1회 순국선열의 날.
1998년 한국-홍콩, 형사사법공조협정 체결
1999년 C형 간염 바이러스 혈청분리 세계 첫 성공
2000년 국제 인터넷주소 관리기구(ICANN) 최상위 도메인 7개 추가
2000년 부시, 제43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
2000년 유엔군사령부-북한, 경의선 철도와 군사분계선 내 도로에서 발생하는 군사문제는 남북 당사자가 처리하기로 합의
2000년 조총련 2차 고향방문단 입국
2000년 팔레스타인, 12월 31일 독립선포
2000년 한국·중국 '백두산·두만강 지키기'
2001년 金농림 "쌀 정책, 증산위주서 품질 위주로"
2002년 반달가슴곰, 지리산에서 무인카메라에 잡힘, 20년 만에 첫 공식확인
2002년 조중훈 한진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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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죠? 그렇지만 정말 아까운 자료들이라 올렸습니다.
행복하세요!
첫댓글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날이군요... 을사 5적의 동의로 날인까지되고... 제 직장에서 친일인사명단발표가 얼마전에 있었는데 방송사나 타언론의 관심이 크더군요... 국력이 신장되서 우리의 권리주장과 보상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오늘도 소사 감사합니다...^^
요즘서울에서 맷돼지 출현으로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리더니.... 2002년 반달가슴곰, 지리산에서 무인카메라에 20년 만에 첫 공식확인 된 날이군요. 하지만, 몇마리는 벌써 올무에 죽었다고하죠. 또한, 유기견이 너무많아 여기저기 동물보호소에서는 주인잃은 개때문에 골머리 아프다고 하더군요. 오늘
이제는 인간만이 잘 살아보자는 것이 아니고 동물도 잘 살아보자는 세상인것같습니다. ㅎㅎㅎㅎ 한글도스님 오늘도 어김없이 자료 일찍 올려주셨군요. 오늘하루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동성동본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잘 봤습니다. 참고로 이런 경우에도 동성동본으로 보고 집안에서는 결혼을 시키지 않습니다. 인동장씨와 안동권씨는 서로 혼인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인동과 안동은 같은 지역이며, 한가족을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이 경우도 윤리적으로는 동성동본으로 본다고 합니다.
김해김씨와 남양홍가은 시조가 달라 민법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학자들의 요구도 받아드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만 독특한 제도이며, 전통적인 관습으로 예로 안동 권, 안동 장, 안동 김 등도 뿌리가 하나라는 이유로 혼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수한 혈통이 유지는 되겠지만 현대적 사고와는 거리가 있음.
글 잘읽고 갑니다.울님들 오늘도 행복하세요.
언제나 오늘의 소사를 올려주시는 한글도스님 감사합니다. 좋은글 좋게 읽고 갑니다.^^
동성동본에 대한 글 잘읽었습니다.저는 같은성에 같은본만 결혼을 못하는줄 알았더니...예외의 경우도 있었네요.. 한글도스님 오늘도 잘읽고 갑니다..즐거운 하루보내세요.
동성동본에 관한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세요.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