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 5단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던 두 단지이지만 지금은 재건축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소형 평형 의무비율ㆍ임대주택 의무건설ㆍ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등의 규제로 재건축 사업성이 크게 불투명해진데다 올 8월25일 대폭 강화된 안전진단(재건축을 해야 할 정도로 건물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는 과정)의 문턱을 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져서다.
잠실주공 5단지의 경우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될 것이란 기대감도 사라졌다. 송파구청 도시정비과 관계자는 “용도변경 허가권자인 서울시의 반대입장이 워낙 확고해 구청에서도 용도변경이 어렵다는 결론을 최근 내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잠실주공 5단지에선 지난주부터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재건축추진위원회를 해산시키자”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재건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영비용이 들어가는 재건축추진위원회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언젠가는 재건축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은 여전하다. 또 이 때문에 아파트값은 강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올 추석 직전 10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34평형이 최근 12억3000만원에 매매가 성사됐고 13억원대 초반이었던 35평형의 호가는 14억4000만원으로 뛰었다.
송파구 잠실동 학사공인 이상우사장은 “입지여건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중장기적 전망은 밝다”며 “그러나 재건축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목적보다는 실수요 위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은마 세번째 예비안전진단 2년 지나도록 결론 못내은마아파트도 재건축 논의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안전진단을 통과하기도 어려운데다 전체 가구의 20%를 소형평형으로 지어야 하는 소평 평형 의무비율 규정에 대한 집주인들의 반발이 심해서다. 한 주민은 “현재 31,34평형만으로 구성돼 있는 중형 단지에 20평형대 아파트를 들인다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주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인허가 관청인 구청도 정부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은마아파트는 예비안전진단에서 두번 퇴짜를 맞은 후 2004년 말 세 번째 예비안전진단을 받았지만 강남구청에서는 이에 대한 평가를 2년 가까이 ‘유보’하고 있다.
강남구청 주택과 오장환 주사는 “결과 발표에 따른 파장을 우려해 심의 위원들이 평가를 하는데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언제 평가위원회를 다시 개최할지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에서는 본 진단은 나중에 하더라도 예비안전진단만이라도 통과시켜 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큰 목소리는 못 내고 있다.
재건축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은마아파트가 정부 규제의 타깃이 된 상태에서 추진위원회가 벌일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우리 공인 관계자는 “계속된 규제 속에서도 은마아파트를 찾는 수요자는 꾸준했고 이 때문에 아파트값도 오름세를 유지해왔다”며 “재건축 추진 여부와 상관없이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은 지속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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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재건축의 '대표주자'였던 은마아파트에서는 요즘 재건축 얘기가 쑥 들어갔다. |
재건축 불투명해도 시세는 강세올 추석 직전 10억원대 초반이었던 은마아파트 31평형의 호가는 최근 12억원대 중반으로 올랐다. 34평형은 12억원대 중반에서 14억원대 초ㆍ중반으로 뛰었다.
대치동 신세계공인 주소라 사장은 “11월 이후 매도ㆍ매수자간 관망세가 뚜렷해져 실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정밀안전진단이 진행중인 강동구 둔촌주공의 경우 일단 재건축 추진의 가장 큰 관문인 안전진단은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강동구청 주택기획과 관계자는 “안전진단은 가장 낡은 동을 기준으로 하는데 둔촌주공은 조립식 구조로 이뤄진 낡은 동이 많아 안전진단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 강동구청은 전문업체에 안전진단 용역을 의뢰해 논 상태며 용역업체의 보고서를 토대로 내년 3~4월께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안전진단이 통과된다 해도 재건축 추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건축 사업을 이끌어나갈 조합설립을 위해선 조합설립총회를 거쳐 주민 80%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재건축과 관련한 규제가 많은 상황에서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소형평형의무비율에다 임대아파트 건립의무까지 있기 때문에 지금 재건축을 하면 이익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평균 16층으로 제한돼 있는 층수제한에도 불만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이 많다. 둔촌주공은 중층과 저층아파트가 섞여 있는데 중층 주민들과 저층 주민들간의 합의가 원만히 진행될 지도 미지수다. 평형배정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중층 주민들이 반대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둔촌 주공 아파트값은 올 추석 이후 최대 2억5000만원 가량 올라 34평형은 10억7000만~12억5000만원이고 16평은 6억7000만원선이다.
둔촌동 LG공인 곽은경사장은 “최근에 값이 워낙 급등해 투자메리트는 많이 희석된 상황”이라며 “앞으로 내야할 각종 부담금 등을 고려해 재건축에 따른 실익이 있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