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력으로 이제 밝힐수 없다면, 징후지역이라도 여러분께 알려 우리를 믿는 분들에게 나마 경각심을 새롭게 해야한다고 제안합니다.
저는 연천땅굴(구미리)을 법정에 강제조정결정후, 법에 의존하여 10년을 싸워 왔습니다.
이렇게라도 싸우는 것이 저에 소극적인 투쟁이 였던 것입니다.
동지여러분? 먼저간 정지용형이나 그간 같이 동지로서 뜻을 같이한 진실의 빛을 보지 못하고 간 동지님들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기도로 간구합니다. 재판의 확정 부분은 포상금 지급 결정인바, 포상금을 먼저 지급 하려면 완전한 땅굴임을 밝혀야 하는데 그 밝힐 소관 부서가 그것을 절개하여야 할 의무가 없다는 재판부의 모순된 판결이나서 저는 이해가 가지않고 재판부는 재차 본인이 직접 검증 감정신청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받아 들여지지 않고 손해배상 청구를 하여 밝혀라는 회피적 보신주의에 일관된 행동으로 밖에 여겨질수 없는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특정된, 처소성이 다른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가 아닌 연천군 백학면 노곡교회 징후를 권익위에 다시 신고하였습니다. (2008년 5월26)
그 이유는 구미리지역에 절개를 감행 할 수 있었던, 판단을 하기전 그 연결 축선상에 남침땅굴 징후가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땅굴을 역추적하던,저는 1990년 12월경 백학면 전동리지하100M에서,그리고 백학면 백학 주유소 전방 논 지하90M에서 강한 에어가 분출되는것을 목격, 시추청음후,갱차음과 굴착음청음,기 25사단에신고후 그해 1991년 백학면 노곡교회에 윤태원씨에게 150만원을 주고, 33미터를 시추후, 강한 에어가 분출과 굴착음신고, 25사단 서모 소령은 앞에 지나가는 차량을 모두 정지후, 남침땅굴임을 신고, 이후 여타한 미조치 이것을 재차 1998년 9월초 연천군백학면 노곡리 노곡교회 안에 500만원을 우물시추업자인 윤태원씨에게주고, 시추로 한곳이 땅굴과 관통하여 찬바람이 치솟고 새벽 3시경 관통구에서 불이 밝혀지고 인민군이 지하에서 궤도차를 움직여 작업하는것을 본인과 목사 ,노곡주유소 사장인 류병희 (031-835-5227, 031-835-3939)목격, 이를 25사단에 신고하고 SBS그것이 알고싶다에 방영, 이를 은폐함. 이건은 소송건이 자체가 없고, 자체를 조사하지않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여 군법령을 위반하고 자기자신은 직무유기하고 또는 제3자인 적에게 적에게 이익을 주는 다시 말해 적에게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입니다. 국방병무보훈민원과 이한상님 귀하 ----
땅굴 징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명백히 증인과 증거가있고, 군 탐지과에선 무조건 조사도 하지않고 아니라고 단정짓고 무시해버린것은 지금 기신고 한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은 전쟁에 진 장군은 용서가 되지만 경계에 진 장수는 있을수 없다는 지론이 팽배해 죽어도 내부종결 된것이나 전임자가 종결처리한것을 다시 재론 할수 없다는 곤조에 이른다는것을요... .
이것을 다시 정리하여 연천지역만 신고한것을 밝히고 재차 특정된 지역의 처소가 명확한 땅굴 징후를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하고 경계를 해야 할 것을 목적으로 신고합니다. 우리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밝한것은 그 포상을 받을려고하는 취지가 아님을 양심과 주님이름으로 밝히고 모든것을 버린자는 모든것을 이미 가진것이나 다름없다는 신앙심의 결단이니 다소 번거롭더라도 특정된 지역의 땅굴징후신고에 권익위의 판단을 고대합니다.
1. 의정부시 가능3동 이국진씨네 집 지하 20미터
의정부 식당지하에서 나는 땅굴파는 소리 ---------------------------------------- 연천땅굴이 북의 전동리를 지나 연천군 백학면 백학 주유소 정면 논을 지나 노곡리 노곡교회를 관통하여 구미리 이승환씨집과 임진강을 건너 의정부방향으로 굴진된것을 아는 우리는 (92년도부터 팀으로 활동함 정지용,이준,이창근) 뜻밖의 제보를 받았다. 당시 우리의 징후를 굳게 믿으시고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되신 정명환장군께 모든것을 밝혀 주시리라 믿고 의지 할때였다.)
이국진씨는 우리가 땅굴을 찾으러 다닌다는 것을 알고 지인에게 부탁하여 우리에게 신고 했으나 우리는 신고를 받을 기관이 아니기에 군에 신고요령등을 가르쳐 주고 직접 신고하고 군에서 어찌 대처하는가를 유심히 관찰했다.
요지는 이국진씨 딸이 침대에 자고 있는데, 기겁을 하고 놀라 잠자고 있던 이국진씨부부의 방으로 뛰어 들어온 1993년 여름부터 1년간 이국진씨가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이다.
95'. 1월, 의정부시 가능 3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국진씨가 제2땅굴을 발견했던 정명환 퇴역소장에게 연락하여 일기장이 공개되었다. 이 일기장은 얼마후 월간조선에서 보도됐다.
1) 1994년 여름, 방바닥에서 나는 굴착 소리에 잠을 깼다. 날이 갈수록 커졌다.
2) 1994. 7.14, 국방부에 신고했지만, 아무런 조사도 없다
3) 1994.8.21 국방부에 두 번째 신고했지만, 무응답, 공포만 지속됐다
4) 9.10, 국방부에 세 번째 신고했지만, 무응답, 우리집밑에선 기계소리가 점점 더 심해진다.
5) 10월 중순, 마지막으로 신고했다. 역시 무응답, 매우 이상한 현상은 신고할 때마다 며칠간은 작업 소리가 멈춰지는 것이었다.
6) 12. 4, 우리집 지하에서 밤새도록 두들겨 대는 작업소리에 잠을 못 자고 뜬눈으로 새웠다. 잠자던 딸아이가 놀란표정으로 방에서 뛰쳐나왔다. "방바닥 밑에서 쉬쿵-쉬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요"
* 기무사 최계장에게 연락했더니 달려왔다. 최계장도 구둘 밑에서 나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그후 동료 직원 몇명이 와서 몇시간동안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으나 그날은 아무소리가 나지 않았다.
7) 12.6, 밤새 계속되던 작업소리가 새벽 6:20분에 멈췄다.
* 민간탐사자 에게 연락하자, 우리는 이사실을 국방부에 즉시 항의했다.
8) 12.6일 오전 9:45분, 국방부 탐사반 대령과 윤상훈 사무관이 나왔다. 그런데 조사는 커녕 오히려 "당신 보상금 탐나서 신고했나?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무슨 땅굴이 있어?" 호통치고 돌아갔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저런 사람들의 봉급을 주다니! 한숨이 터저 나온다.(국방부내 간첩이 북한에 연락해 기계소리를 멈추게 한 후, 나와서 어디 무슨 소리가 나느 냐? 고 호통친 게 아닐까? 의심이 간다)
9) 땅굴신고를 받고 나온 군관계자들과 현장을 확인한 기무사요원의 언쟁
국방부: 주민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큰소리로 "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래?"
기무사 최계장: "나도 소리를 들었다"
국방부: "잘 못 들은 것이다. 전문가가 볼 때, 절대로 땅굴은 아니다"
* 기무사 직원이 땅굴소리를 직접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국방부 땅굴요원들의 기세는 당당하다.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게 아닐까?
10) 12. 9, 쿵쿵 하는 소리에 또 잠을 깼다. 새벽 3:20분. 쿵 크드드, 쿵 쿠드드, 갱차 지나가는 소리가 분명했다. 가끔 탕, 탕, 탕 하는 쇠 마찰음도 들린다. 너무나 가까이서 들린다. 오전 10시,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와 유언비어를 조심하라며 겁을 주고 갔다. 동직원도 한통속일까? 자신의 업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일부러 찾아와 겁을 주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11) 12. 19, 오후 2시, 굴착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시쿵, 시쿵. 때로는 1시간을 쉬었고 때로는 2시간을 쉬다가 다시 작업을 했다. 무섭기는 하고 하소연할 데는 없고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다.
12) 12. 29 새벽 3시, 굴착 소리에 잠을 갰다. 소리의 템포가 매우 빨라졌다. 아내는 집을 팔아서 이민 가자고 졸랐다.
13) 95'. 1. 7 새벽 6:45분, 5분간 시쿵 소쿵 하더니 조용해졌다.
14) 1.9, 초등학교 5학년 조카가 놀러왔다가 놀라며 물었다. " 방바닥 밑에서 나는 소리가 뭐야?"
15) 1. 13, 처형이 놀러와 안방에서 잠을 잤다. "방고래 밑에서 웬 소리가 그렇게 나느냐? 밤새도록 무슨 작업을 하는지,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16) 1. 14 아침 6:40분,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방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7) 1. 17 새벽 2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방바닥이 진동해 엉덩이가 경련을 일으키듯 떨렸다. 땅굴이 구둘장 가까이 올라온듯 싶다.
18) 1. 18, 부산에서 형이 올라오더니 놀라면서 부산으로 이사가자고 권했다. 앞마당에 있는 우물,물이 빠졌다가 다시 차 올랐다. <우물 깊이:7m> 땅굴이 지하 7m위로 올라온것이 아닐까 ?
음식점 지하에서 갱차 소리와 함께 "날래날래 타라우" 사람목소리가 났다 ------------------------------------------------------------------------- 1) 95'. 1. 27 오후 7:20, 방바닥에 청진기를 대고 있던 민간탐사자들의 귀에 말소리가 들렸다. 궤도차 소리가 점점 가까이 나더니 무엇을 싣는 소리가 들렸다. 민간탐사자들은 경악해했다.
"밥먹으러 가자우"
"날래 날래 타라우"
궤도차 소리가 멀어져 갔다.
2) 땅굴 징후가 명확해지면서 이웃주민들 중에 민간탐사자들을 감시하는 어두운 눈동자들이 보였다. 이곳은 황해도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모여서 어렵게 살고있다. 그들은 주민이 우물을 뚫을려고 하면 땅에 들어누우며 저지하곤했었다.
3) 식당 주인 이국진씨는 "무서워서 도저히 이곳에서 살수없다" 며 음식점을 세내주고 남쪽인 청주로 이사가 버렸다.
4) 월맹에서는 주월 미군기지 영내로 땅굴을 파고 들어와 결정적 시기에 사용한 사례가 있다. 이국진씨의 식당은 미육군 2사단사령부 보다 남쪽으로 1k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땅굴파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음식점 영업도 포기한채 남쪽으로 이사까지 가게한 곳은 의정부 경민대학을 지나 구파발방향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 산뒤엔 미 2사단이 주둔하고 있어 북한군이 땅굴출구로 삼을만한 곳이기도 하다.
이국진씨로부터 이같은 기 맥힌 이야기를 들은 정지용씨와 당시 경찰관였던 이 준씨는 1주일동안 음식점에 기숙하면서 확신을 갖게된다음,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95'. 1. 4, 대통령이 다니셨던 충현교회 김지길목사가 땅굴 진정서를 들고 급히 청와대로 향했다.
2. 연천군 백학면 백학주유소 앞 논에 강한 에어가 올라온다.
2001년 7월 나는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이승환씨네 집에서 끝날 줄알았던 우리들의 숭고한 애국심에 치산자라는 오명으로 철수해야만 했다. 모든것을 역사에 뭍고 철수를 할려고 콘테이너 박스와 현장을 정리하고 25사단장님앞으로 편지를 썼다.
이를 정보참모인 문 모중령께 주고 다음주에는 철수를 한다고 하였으며 요지는 우리가 찾은 땅굴은 북의 전동리를 지나 백학주유소 - 노곡리- 구미리지선과 아미리지선 그리고 주월리로 갈라졌으며 이미 그 한 땅굴을 우리가 분쇄했으므로 그 정거장으로 판단되는 백학면 백학 주유소 앞논에는 분명히 이상 징후가 있을것이니 예의 주시를 부탁했고, 우리를 믿어 달라고 했다.
그 주는 장마비가 많이 내렸고, 이 비가 그치면 나는 다시는 남침땅굴을 하지 않겠다. 이제 이민을 가자고 모든것을 잊자고 체념했다. 비가 그칠때... 25사단정보참모인 문중령과(2000년당시25사단정보참모) 병사들이 내가 있는 콘테이너를 두들기고 '지금 난리가 나서 주민들이 신고 새벽부터 이 고을로 달려 왔다'고 했다. 내가 편지를 전달한지 10여일 후, 문중령은 '분명 자연현상이라고는 나조차도 믿을 수없다. 이창근씨가 편지로 쓴 지역에 강한 에어가 분출 되면서 땅이 들끓고 있다.' 나는 군인으로서 이창근씨 말을 믿는다. 오늘 육본에 보고하겠다고 했다.
이는 구미리땅굴을 우리가 찾아내니 이를 수맥을 발파하고 도주, 차단벽으로 2땅굴처럼 막아 방어하니 당연히 여기까지 왔던 공기가 차단되고 장마비로 땅에 수막이 생겨 땅속에 제일 많이 모여있는 공간에 공기의 상승효과로 크렉을 타고 들끓은 것이분명했다. 이는 땅속에 김이나 에어가 분출되면 땅굴징후이니 신고해달라는 "땅굴징후신고 요령의 숙지사항이다."
3.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 땅굴 징후
2000년 5월경 군남면에 사는 이발소사장이자 마을 이장인 김모씨로 부터 이상한 징후가 있다고 신고를 받고 시추를 하고 조사를 했다.
땅굴 징후는 다음과 같다.(이는 증거를 위해 SBS뉴스추적팀이 증언들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였다.)
마을에 사는 똘이 엄마는(아직도 그마을에는 똘이 엄마로 인식되어 있으며 굳이 이름을 밝히길 거부함) 집에서 자고 있는데 tv를 크게 틀어도 땅속에서 소리가 나고 침대에서 자고있는데도 도저히 시끄러워서 잘수 없었다고 했다.이후 똘이 엄마는 이웃 아주머니 들과 저녁을 초대해 늦게 까지 만찬을 하고 있을 때 땅속에 나는 소리를 모두 듣고 이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의논했다고 하고 모두 소스라치게 놀랬다고 진술했다.그때가 2000년 2월 구정연휴때였다. 바로옆집에 사는 전상진씨도 늦은 밤에 우리집 근처에 누가 공사를 하는가 하고 집을 배회하며 땅속에 나는 소리를 들었다.이소리는 2개월간 지속적이였다고 했으며 집모퉁이에 소리가 가장많이나서 추후 우리가 탐지한 방향과 위치를 말하니 "그럴줄알았다" 이 모퉁이서 지나간것이 분명하며 이곳에 소리가 가장컸다고 진술했다.
나는 똘이 엄마와 전상진씨집 사이를 시추코아로 밝히려 했는데, 갑자기 군에서 이창근에게 협조하지 말고 땅굴은 없다. 우리가 다 알고 왔으니 땅굴은 아니다라고 이장과 마을 사람에게 협잡을 하고 방해를 하였다. 나는 이를 문서로 국방부에 항의를 하니 1주일 후 군에서 나와 마을 회관에 불러놓고 땅굴이 아니라고 하고 이창근에게도 오라고 했는데 불르면 도망간다고 거짓과 기만을 하였다. 나는 군에서 나온다는 소식도 받지도 않고 조사를 위해 군 시추기나 청음기를 가지고 왔는줄알고 있었는데, 가지고 온것이라곤 카메라와 주둥아리 뿐이 었다.
난 땅굴 찾기에 호의적인 홍구만씨가(011-1733-0209) 여기 군에서 나왔는데 당신이 도망가고 협조를 않 한다고 거짓말만 하고 다닌다고 하는데 어디냐 빨리오라고 하여 나는 급히 택시 타고 도착하여 군탐지과의 거짓이 탄로가 났다. 온다고 이야기 한적도 없고, 마을 사람의 신고도 없었는데 땅굴 징후를 지어낸것이라고... .
마을 회관에 도착 했을땐 땅굴 징후를 들은 똘이 엄마나 전상진씨는 온간데 없고 증인이 없이 이야기로만 끝냈고 군은 땅굴 징후가 아니니 걱정하지말라는 식이였다. 분에 이기지못한 나는 저녁에 다시 찾았는데 마을 이장은 '미안하다. 우리는 현지 사람이고 어떻게는 군에 무조건 협조해야 할 상황이고 도움을 받아야 산다.하다 못해 대민지원도 군에 협조를 못하면 장마나 위급시 누구에게 조언을 받을것인가? 하고 인근 부대에서 이창근씨를 돕지말라는 부대원사의 당부가 있어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군남면 진상리 마을 입구인 홍능종묘앞과 마을 노인정 뒤논에 땅주인의 협조를 받아 60미터,45미터시추후 청음에 들어 갔다. 바로 이곳에서 갱차음과 굴착음 철판에 돌이 우를르ㅡ떨어지는 청음을 하고 관계기관에 신고했으나 아직까지도 묵묵부답이다.
3. 현직 파출소 소장의 항변 "동두천시 동안 파출소 지하에 남침땅굴이 침투한것이 사실이다"
이준씨 전직 경찰공무원(011-237-1045)은 1992년부터 동지가 되었다. 이준씨는 동두천시 동안파출소의 소장시절 당직시 처음에는 모기만한 굴착음이 점점 크게 들리고 심지어 반지하 당식실에 근무교대로 다른 동료 경찰과 쉬고있는데 갑자기 쿵하는소음과 파출소내 벽이금이가고 이를 군에 신고하였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고, 말도 되지않는 (자연적으로지하에는 여러소리가난다) 것에 격분하여 땅굴을 찾아 다닌다는 우리에게 제보를 해주었다. 이 땅굴은 전곡을 지나 동두천시내 방향으로 굴진한 땅굴로 우리는 분석을 하고 있다.
4. 육군 홍광락 중사의 땅굴진술 "난 직접 굴착소리를 들었다"
홍광락 중사는 1993년 우리 팀에 전역을 하자마자 합류했다. 나는 9사단 모부대의 GP초소장으로 근무 했다. 갑자기 GP가흔들리고 나중에 중대장CP까지도 흔들리며 밤만되면 착암기소리로 요동을 쳤다. 땅굴임을 나는 확신 한다. 홍광락 중사는 경기북부의 불당골이라는 지역의 기독교묘지 모 포병부대 GP에서 근무를 하며 땅굴징후를 직접 제보한것이다. 1994년 우리팀이 현지를 확인하니 홍광락 중사가 징후를 본 땅굴은 2곳이며 처음은 1땅굴과 같은 소규모였으나 그 우편으로 장거리를 기획한 땅굴이 진출되었으며 다우징탐사에 의하면 이미 수색을 지나 있었다.
1땅굴 발견도 모 병사의 징후 였으며, 2땅굴 역시 초병의 순간적인 호기신의로 지휘관의 관심과 조력으로 발견되었다. 3땅굴은 첩보가 있어도 못찾았고 미리 시추한 시추공 덮게가 지하 발파로 날아간 후에 지역을 순시하던 김 상사가 발견 당시 사단장이던 전두환장군에게 보고하고 코아 시추를 하여 화약성분이 검출 되어 국방과학연구소에 보냈는데 " 지하에는 화약성분이 검출 될수도 있다는 애매한 보고에 군당국의 협조가 없게되자, 차지철경호실에 보고 박대통령은 전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후 발견되고 보안사령관으로 영전했다. 대통령이된 전두환장군은 ADD를(국방과학연구소) "꽁짜로 밥먹는 놈들"이라 여기고 규모를 축소했다. 이렇듯 최초 보고자는 보호되고 조력과 사실여부를 떠나 보고한 공로를 격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후술--------군에 대한 민원인의 통언!!!
나는 북이 땅굴을 파고있다는 결정적 소리와 발파음을 직접듣고 1988년 11월부터 현재까지 20년 간이나 땅굴탐사와 그 진실만 매달려왔다. 남침땅굴이 침범했는데도 방치되면 제일먼저 군인들이 피해를 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군인들이 땅굴을 신고하는 민간인들에 대하여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미워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다.
이제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지난 2006년9월 24일 육사 총동창회사무실에서 박세직 회장등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육본탐지과에서 『시중에 유포된 땅굴민원은 사실이 아니다.』는 설명회를 가졌다. 모 동창회간부의 연락으로 국방장관과학보좌관을 역임한 윤여길박사와 (017-267-1609)함께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2시간가량 탐지과장의 브리핑이 끝난 후 윤 박사가 흥분된 어조로 반론을 제기했다. "내 가슴이 떨려 말문이 막힌다. 방금 탐지과장이 설명한 브리핑 챠드와 video테이프는 80%이상이 허위내용으로 조작된 것이다. 내가 국방장관과학보좌관으로 재직 시에 민원인과 탐지과 양쪽의 주장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때 땅굴민원내용은 사실로 밝혀졌으나 탐지과 요원들의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국방부 장관님께 보고한바 있으나, 당시 땅굴민원을 부정하는 육본수뇌부의 농간으로 인하여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고 폭로했다.
윤 박사가 폭로한 당사자인 탐지과 요원들은 모두 침묵했다. 이어서 윤 박사는 문제의 브리핑 챠드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탐지과장은 거절했다. 브리핑 챠드가 허위내용으로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민원인인 저에게도 감춰왔던 것이다.
탐지과는 문제의 이 자료들을 가지고 지휘계통과 관련기관 그리고 땅굴에 관심을 갖는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허위해명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땅굴 민원인들은 사기꾼 내지는 정신병자로 둔갑되어서 그동안 냉대를 받아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볼 때 탐지과 요원들의 수법은 과거 공산주의자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또한 그들은 각 기관에서 암약 중인 간첩들과 직무유기로 얽힌 사람들과 합세하여 민원인들이 제시해온 결정적인 땅굴증거들을 철저히 압살해 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① 지하에서 녹음된 북한억양의 사람목소리 (김포, 여천, 동두천, 화성등 4곳) ② 김포지하 96m 암반속에서 빼낸 시멘트덩어리 ③ 지하에서 녹음된 각종 굴착작업소리 (10여곳) ④ 연천지하 36m 에 잠수부가 들어가 촬영한 땅굴영상(폭 2.5m, 높이 2.0m) ⑤ 연천지하 37m 암반 속에서 수거된 갈대, 실, 은박지뭉치 등 묵살된 증거들이 수없이 많다.
그리하여 나는 이같이 땅굴문제를 은폐해온 탐지과 요원들을 이적행위로 고소를 제기한바있다.
최근 탐지과는 국방부 홈페이지에 "땅굴 상습민간인들의 주장에대한 군의 입장" 이란 제목으로 설득력 없는 변명과 허위내용을 게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간탐사자들이 접촉하는 인사나 단체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비전문가가 듣기에는 그럴듯한 논리로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또한 민원인들과의 접촉을 차단시키기 위해서 민원인들을 음해하는 공문을 각 부대에 내려보냈는가 하면, 유력 인사들에겐 민원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으면 간첩으로 몰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땅굴을 빙자하여 자금을 받아낸 후 공사를 하는척하면서 돈을 갈취하고 있다는 등 민원인들을 사기꾼으로 근거 없이 음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원인들은 탐지과에 수 차례에 걸쳐 요구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딱부러지게 대질 토론을 하자." 고 제의했지만,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언급한대로 자신들이 설명하게될 브리핑 챠드와 video테이프 내용이 정상적이라면 대질토론을 피할 이유가 없다. 탐지과 요원들은 더 이상 반역행위를 중지해야한다.
지금이라도 반성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상적인 땅굴탐사에 임해야한다.
부연의 글월----------------------------
국민 권익위 담당자님께
지금까지 모든 기록에 거짓이 있다면, 저는 할복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까지 이글이라도 받아서 읽어 줄수있고, 받아 줄수가 있어 그나마 가슴에 맺힌 한은 풀을것 같습니다.
과거 10년은 진실을 앞에 두고 우리는 치산자로 취급 되었으며, 다된 통일에 찬물을 뿌리는 역사에 반동으로 취급 되었습니다.
북은 마지막에 한번 그 비밀의 문을 열때 까지 마지막까지 지킬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그것을 사용할것입니다.
연천구미리의 답변을 잘 받아 보았습니다. 구미리건은 곧 국가배상청구로 소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분명 한계가 있을 줄로 알고 있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의 무게로는 힘들겠지만, 그 와 같은 중량감으로 진실을 밝혀 주시길 소원합니다.
2008년 6월 14일 땅굴 찾는 사람 이창근 올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