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을 다시 숙달시켜봐야겠다고 맘 먹은 것이 언제였던가.
분명한 것은 심신이 지치고 어느 날 문득 나이를 먹어 인생이 칼라TV에서 흑백TV로 바뀐 것을 느꼈을 때였다. 오십대, 갱년기라 해도 좋고 뭐라 해도 좋다.
남자에게도 폐경기가 있는 것일까.
나는 뭔가 새로운 영감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아마 그때가 내가 '탱고레슨'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와 겹칠 것이다.
그때도 극장이 아니라 비디오로 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전에 배워두었던 사교춤도 있고 해서 손쉽게 사교춤을 다시 하기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뭐가 되었건 춤이라는 것은 언제나 나에겐 어려운 것이었다.
뭐가 문제인지 잘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 '탱고레슨'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다시 보고서 내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류 영화감독ㅡ샐리 포터ㅡ가 하얀 원형 탁자를 말끔히 닦고 그 위에 하얀 백지를 포개놓고 영화의 첫 장면을 집필하는 광경이 나온다.
그녀는 원고지의 각을 빈틈없이 정돈하는가 하면 탁자를 말끔히 닦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달리
ㅡ신경증 환자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ㅡ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서라, 그것은 쓸 데 없는 부수적인 행동이 아니라ㅡ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작가에게 글, 각본ㅡ영화 감독에게 영화는 한치도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는 그/그녀의 정체성임을 시사해 주는 장면에 다름 아니다.
미리 얘기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이 운명이고 만남이라는 것.
영화에 등장하는, 탱고를 배우고 추고, 영화를 만들고 찍고 하는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
샐리는 허리우드 자본을 끌어들여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각본을 집필하지만 잘 안 된다.
뭔가 본질에서 어긋난 듯 슬럼프에 빠지고ㅡ그녀는 엽기적인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미와 죽음의 찬가'ㅡ허리우드 자본을 설득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그래선지 파리에 와 있던 그녀는 어느 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탱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끌리고, 그리하여 탱고 공연을 구경하게 되고 탱고에 관심을 갖게 되어 '파블로'라는 공연의 주인공을 찾는다.
그는 탱고계의 에이스로 그녀를 신기해 하며 탱고를 가르쳐 준다. 거기에서 그들의 관계가 시작되고....
영화는 열두 번의 레슨으로 나뉘어져 있다.
생전 춤이라곤 춰본 적이 없는 샐리는 파블로의 공연 파트너로까지 격상한다.
그러나 작가와 무용수의 관계인 그들은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머리와 몸의 부딪침.
'춤은 머리로 추는 게 아니야.' ㅡ'당신은 힘과 긴장을 착각하고있어. 힘은 침착함에서 나오고 빠름은 느림에서 시작하는 거야.'
공연이 실패했다고 내심 격분하는 파블로는 그렇게 내뱉는다.
'당신은 나만 따라오면 돼. 도대체 춤을 추면서 뭔 잡념을 하는 거야. 춤은 잡념을 버리는 데서 나오는 거야.'
맞는 말이다. 그 점 춤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수행과 똑같은 행위다.
막작불식 지도무난莫作不識 至道無難(잡념을 버리면 도를 이루기란 어렵지 않다.)
내가 배운 스님은 수행이란 논리나 사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직관에 따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작가란 무엇보다 논리나 사유의 인간이 아닌가.
샐리는 파블로에게 항변한다.
'춤출 때 당신은 어디 있었던 거야. 당신은 내게 있지 않았어.
당신의 신경은 온통 관객에게 가 있었지. 그것이 당신의 자유인가.'
그들은 결별의 위기를 맞지만 극적으로 화해하고, 파블로는 샐리에게 그녀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한다.
애초에 그들의 만남은 그러한 교환행위에서 시작되었음을.
그리하여 역할이 바뀌고 이번에는 파블로가 그녀에게 복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재미있는 장면은 그렇게 역할 바꾸기 를 승인하고 그들 각자 자기의 꿈에 사로잡혀 있는 장면이다.
파블로는 마론 부란도의 전기를 읽는다. 그는 영화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샐리는? 샐리가 침대에 누워 읽는 책 제목이 흘낏 스쳐가는 데 그것은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이러한 장면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채기란 여간 명민한 관객이라도 어려울 것이다.
파블로는 샐리에게 영화의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고 자기의 역할이 뭐냐고 묻지만 샐리는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의 장면 자체가 영화라는 것을 관객은 안다.
샐리 포터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것은 현실과 영화 간에 구분이 없다.
무릇 예술이 그렇듯이 말이다.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이 영화는 그것을 묻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이 당신의 정체성인가.
춤출 때의 당신인가 일할 때의 당신인가 사랑할 때의 당신인가 싸울 때의 당신인가
등등.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어디인가? 진정한 예술가라면 그것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알리라.
예술가란 단지 그것을 극명하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에 다름 아닐 뿐 무릇 모든 존재의 정체성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 주옥 같은 탱고 음악과 탱고 안무를 통해서......
우리가 춤을 추든 무엇을 하든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룬다.
그리고 당신과 나, 파블로와 샐리가 만난 것은 그러한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라스트에서 파블로가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탄식하자 샐리는 그들의 만남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그것이 그들 만남의 이유라고 분명히 말해준다. 하나는 하나, 하나는 둘.....
아 그때야 비로소 그들은 진정한 파트너가 된 것이다.
둘 다 유태인인 그들은 파블로의 고향이자 그들 영화의 무대인 스페인에서 유대인 교당에 나란히 들어가 참배한다.
이 영화에는 탭댄스를 추는 파블로의 1인무, 탱고를 추는 2인무, 4인무 등 다양한 춤장면이 등장한다.
그러한 장면이 그토록 섬세하게 묘사되는 것은 그것이 영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눈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변호사가, 치과 의사가, 택시 기사가, 살림만 하던 주부가 어느 날 왜 춤을 배우겠다고 마음 먹는가?
그들은 그들의 숨겨진 정체성을 춤을 통하여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정체성이란 우리들이 하는 그것이 규정하는 것이므로.
그래서 춤을 배우는 과정은ㅡ진지하다면ㅡ그토록 어렵고 힘든 과정인 것이다.
작가가 원고지를 정돈하고 연필을 정성스레 깎고 마루에 난 조그마한 균열에까지 강박적으로 신경을 쓰는 것은 그의 작품이 그의 정체성에 한치도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의 무의식적인 표현이다.
결별했던 '거래처'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녀를 식당에 '버리고 간' 나의 행위를 사과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춤을 모른다'고 내게 주는 압박감이 견디기 힘들어 단지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나를 용서했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러나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새로운 우리는 전에는 몰랐던 우리에 다름 아니리라.....^^;
https://youtu.be/R6waGX7uKDs?si=JN7zhZ11dPjyqE9Q
https://youtu.be/shRiiug7sc4?si=dOWPm1zRkTDYU7rJ
원 이즈 원, 앤 원 알 투...
첫댓글
몸도 맘도 경쾌함으로 ~~
땡스~
춤을 추는 그.자체가 정체성..
무엇을 하던 사람들은 그것이 시덥잖을 때 그건 자기의 모습이.아니라 한다..
그러나 그또한 자기인 것을~~^^
난 춤을 즐기는 정체성으로 향하고 있는 정체성~
100점~
@지솔 옴마야 뭔일이래요???
@룰루라라 지솔엉아 정체성이 변해서 그래요
@스테어 ㅋㅋㅋ 아고 배야~^
제법무아인데 정체성을 알아가는 것을 집착이라고 하지요
무념무상이 좋습니다
제법무아라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정체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죠.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집착이 아니라 관통을 말합니다.
무념무상은 혼침에 불과함.
불교의 가르침은 오히려 성성한 각성을 요구합니다.
@지솔 히야... 대단한 지성임다. ㅋ
여튼 두분 대단!!엄지척.
어울림 최고~^^
@지솔 제 표현이 미숙 했습니다.
(제 미숙함을 바로 잡아줘서 지솔앙아가 좋습니다)
@룰루라라 시니컬한 스테어가 명문에 깐족거란거지 지적인건 아닙니다 :)
@스테어 제법무아는 다른 말로 자성自性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해제입니다.
원인과 조건으로 관계지워진 존재...
소위 연기법 아니겠습니까.
아는 체 해서 미안합니다 :p
이런 문자조차 해당 맥락을 달리 하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