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이제 예수님이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 고난을 받고 배척 받아 죽을거라고.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할 거라고.
그러면서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한다. 당시 이들에게 십자가의 의미는 더 컸을거다. 실제로 십자가라는 사형제도가 있어 그 두려움과 공포를 체감하고 있을테니. 그런 십자가를 날마다 자기 것으로 지고 따라야 한다는 얘기는 보통 무게감이 아니었을거다. 그만큼 예수에게도 십잡가에 대한 두려움, 그럼에도 짊어져야 하는 부담과 책임 동일하게 있었을거다.
9:41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안 그래도 십자가는 두렵고 죽음이라는 것 자체만도 공포를 이겨내기 쉽지 않건만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남겨 놓고 갈 이 세상을 보고 있자니 희망이 썩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이제 곧 나는 죽고 이들과 평생 함께 하지는 못할텐데 이들은 아직도 믿음 없는 모습들만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따르겠다는 이들은 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나를 따르는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가능하지 않음을 다시 얘기한다. 그럼에도 따르는 이들이 있으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다. 사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정도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들 이지만 예수님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나라 앞에서는 그 무엇도 우선될 수 없음을 보여주시나보다.
십자가를 앞두고 심란한데 어느 누구 하나 힘 있게 따르는 이 없이 분명함 없는 모습들, 걱정만 되는 모습들이니 답답하고 안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지금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계속해서 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고 죽고 떠날거라고 얘기해 줄 수밖에.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명과 힘으로 살아야 하는지 반복해서 알려줄 수밖에 없었겠지.
9:51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예수님마저 예루살렘에 가는 선택이 쉽지는 않다. 피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을거고 꼭 이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하고픈 유혹도 계속 있었을거다.
예루살렘에 가기로. 십자가 기꺼이 지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 분명한 정함이 필요했겠지. 그래서 예수님도 계속해서 기도의 시간 홀로 그리고 함께 치열하게 했던거겠지.
꼭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우리의 걸음 역시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걸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의 선택과 삶, 이만한 무게와 책임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명이 무엇인지 K에서 함께 배우고 배운대로 살아가려 애쓰며 한 몸으로 살아가겠다 이어 걸음하는 동지들 역시 망설이고 싫은 마음 어려움 마주하고 끝내 이겨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만 하더라도 그 먼 거리를 매주 오가며 1년 반 이상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럼에도 이 길은 분명했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끌림 있었기에 날마다 자기 십자가 진다는 마음으로 나를 비우고 마음 굳혀 걸음 내딛었다.
다만 십자가 지었다는 것 만으로 끝은 아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 죽음이 목적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부활해 새 생명이 중요하다. 죽음 이후 부활과 그로 인해 마주하는 새로운 존재로 살아감. 그러니 우리에게는 십자가라는 것이 죽음으로 단절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이 있기에 더 큰 희망을 본다. 예수는 부활해 모든 것 이겨내고 성령님 보내주셨으니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당연히 어려움과 괴로움 있겠지만 그 너머에 그리고 심지어 그 과정 중에도 함께 하시는 분 있으니 이 십자가 삶이 기쁨이요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홀로가 아닌 각자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가는 벗들 있어 보다 가볍게 질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신 기적과 권능이 우리의 십자가가 가벼워지고 즐거움으로 전환되는 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만족이 변하고 욕망이 변하고 관계가 변하고 시간과 공간이 변하고 일상이 변하는 이 삶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 살아가고 있는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삶나눔
오래 오래 뜀박질도 마쳤네요. 달리는 걸 좋아하니 함께 뛸 장 자체가 반갑고 즐거웠지요. 게다가 단순 달리기가 아니니 더 정성껏 , 열심으로 뛰지요.
이 기도, 운동의 자리에 손님들과도 함께 하고 밥상 나누며 교제해 풍성했습니다.
놀라운건 뛰는 우리 기운이 힘 있다는거. 작년에는 완주하는데 급급하고 많이 지쳐 했는데 이번에는 기록도 기록이거니와 정말 뛰며 즐거워 하고 거뜬히 완주하며 잔치로 보낸 시간이었어요. 이번에 뛰며 붙든 기도제목 끝까지! 이루어질 때까지!
K에서 계속 배움하고 기청아에서, 그리고 장구 수업도 하고 있죠.
이거 해봐야지 하던 거 혼자 하려니 다 내팽개쳐 못하다 이제 하나 하고 있네요.
근데 무슨 배움을 하고 말고보다 할 거 제대로 해야됨을 다시 깨달아요.
배움한 거 날리지 않고 후기 쓰고 나아가 삶으로 살아가는 거 뭐든 반복해 기억하고 익숙해져야죠 그러기 위해 연습하고 학생심 잃지 말아야지요.
지금 하는 것들 갈무리 잘 하고 배움들 체화하여 살아가는 거 연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