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라 (28, 41) :
이 말씀은 성직자가 하느님께 의식을 거행할 준비를 하는 방법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것을 연구해 보면 많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는 동의어가 반복되고 있지
않는다.세 개의 단어가 각기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며 그 셋은 차례차례
로 전반적인 준비기간을 망라하고 있다.
첫째, 「기름붓다」는 말은 비교적 단순하며 성령이 사제적 직능을 수행하는 자와
소통한다는 상징을로 실제로 관유를 가져다 머리에 바르는 것(29,7)을 묘사한다.
둘째, 「위임한다」는 말은 펼친손의 충만함이라는 말과 함께 두 히브리말을 번역
한 것으로 그 직능의 이행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완전한 준비를 할 것을
의미한다.
셋째,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순결 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사제가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모든 불결에서 떠나 있는 것을 가리킨다.그처럼 모든 사
제적 직능은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기름부음으로
능력이 전달되고 정결해지는 바 그것 없이는 하느님 앞에서의 사제적 직능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서 배열된 히브리경륜의 의식(儀式)이 백성들에게 근
본적으로 중요한 진리를 전달하고자 어떻게 의도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의
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상징하는 모든 것들은 '그분'
안에서 또 '그분'을 통해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사제들이라면 우리가 성령의 기름 부음과 우리의 직능을 위
한 능력과 정결해짐을 받는 것은, 그것이 '그분' 속에 있기 때문이며,그러한 것들
이 없이는 그러한 직능의 수행은 불가능하다. 기름이 부어지고 위임받아 거룩하게
된 영혼들은 하느님 앞에서 사제로서의 직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 그에게 하느님의 성령을 채워 주어, 온갖 일을 멋지게 해내는 지혜와
재간과 지식을 갖추게 하겠다 (31, 3) :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봉사하도록 지명 하신 자들을 어떻게 준비케 하셨는
가를 계시해 주는 찬연히 아름다운 말씀이다. 이 백성들은 수 세기 동안 노예상태
였기 때문에 하느님 양식에 따라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예술적 세련성을 결여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브살렐을 불러 그에게 그
일을 맡기신 것이었다.
언급된 적합성에 대한 기술은 매우 세심하다. 각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그
계열이 계시되어 있다. '지혜'는 능력이고 '재간'은 진보 즉, 주어진 관념을 이해
하여 행하는 능력이며 '지식'도 이 능력있는 지적 행동에서 나오는 재주의 궁극적
인 달성이다.
이것은「온갖 일을 멋지게 해내는」바로 그것,주어진 양식에 따라 지정된 일을 해
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느님 성령에 충만된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와
같이 인간은 신(神)적인 행동의 도구가 된다.
그분의 작업을 하기 위해 하느님의 성령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 그분의 일을 하기
위해 인간은 하느님의 성령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사제 혹은 예언자의 일을 위해
서가 아니라, 금, 은, 놋, 돌, 목재로 하는 작업을 위한 완전한 협력이다.
확실히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는 작업은 하느님
에 의해 우리에게 지정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그렇다면 우리는 근심할 필요
가 없는데 그 까닭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장비를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 모세는 거기에서 야훼와 함께 40주야를 지내는 동안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34, 28) :
본문에 암시된 사실을 우리는 조금도 과장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모세에게 찬란한 빛이 임했던 것이다. 모세는 하느님과 함께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을 뚜렷이 의식했고 확신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세는 이 때 지상의 모든 사물의 의식(意識)에서
떠났던 소위 탈혼상태(ecstasy)에 빠졌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모세는
하느님의 감각(感覺)때문에 진정한「빛」속에 지상의 사물을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일치」안에서 모세는 백성들을 보았고, 그들의 곤경을 이해했으며,그들의
약점을 알았고, 그들의 안전과 기력에 대한 가장 중대한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주야로 40일 동안 그 기간에 모세는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법과 그들의 예배
에 대한 규정을 받았다. 체험에서 그는 과거의 황홀경을 들이키고 이야기하는
몽상가로서가 아니라 전과는 달리 시나이 산에서 받은 규제에 따라 지상의
모든 생활을 지도하고 규제하는 한 업무자가 된 것이다.
모세가 잊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기간 동안에는「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않았다.
그러나 그러한「몰아」속에서도 무의식이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가 산에서 사람들에게 내려 왔을 때 그의 얼굴은 여위고, 창백하게 헬쓱해 보이
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힘있게 보였고 빛나는 모습이었으며 아름답게 보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대한 가르침을 일러 주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일치인 지고의 체험이 종종 당신의 종들에게
허락되어 그 종들로 하여금 봉사를 위한 능력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 거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속죄판을 덮고 속죄판 쪽으로
얼굴을 맞대게 하였다 (37, 9) :
천사들에 대한 지위와 계급에 대해서는 그러한 지위와 계급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성서에 그 이상 자세한 계시는 없다.「천사」란 말은「전갈자」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로 모든 천사들에게 적용한다.
거룹들의 특별한 역할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성서에 거룹들에 대해서 언급함은 읻르이 하느님 성성(聖性)의 종들이라는 것과
창조의 수호자들이라는 것밖에는 없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성서에 거룹들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온 것은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 하느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는 거기에서이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거룹들 이야기는 상당히 암시적이다.
여기서 그들은「날개를 위로 펴서 속죄판을 덮고 속죄판 쪽으로 얼굴을
향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는, 하느님 성성의
수호자들이라는 뜻이다.
하느님 성성을 표현하는 이들은 그것이 어떻게 하느님 은총의 작용 안에서
수호되며 실현되는가를 지켜 보는 자들이다. 그들이 지켜본다는 것은 자비의
행사에 있어서 하느님께서 당신 성성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베드로는「구원」「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뒤에 올 영광」에 대해서 언급할 때
그늘지워 주고 응시하는 거룹들을 염두에 두면서「이것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
하는 것」(베전1,12)이라고 했다.
하느님의 성성과 자비보다 당신의 방법과 역사(役事)의 모든 존엄과 신비에
있어서 더 놀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최고의 지성이 숙고해 볼만
한 주제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 사실에 진지하고 정직하며 그리고 부단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 우리는 그 깊이와 높이 그리고 그 범위를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는 다만 그 속에서 기쁨과 희열을 발견할 따름이다.
* 야훼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40, 34) :
이것이 인간의 복종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다.
그 복종을 차치할 경우 그 집을 신(神)의 영광으로 충만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충만함이 없었다면 그 집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야훼의 영광이 이처럼 성막에 내리심은 오순절 날 성령이 교회에 내리시고
믿는 자의 마음속에 자리하실 시간에 대한 전조이다.
따라서 하느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 우리가 세우는 건물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야훼의 영광이 내리심으로 해서 성화될 때까지는 완성된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일 야훼의 영광이 성막이나 사원에서 이탈하는 시간이 온다면,그 때 그 구조는
재료의 면에서 제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로는 야훼의 영광을 확신할 수 없다.
반면에 구조가 제아무리 평이하고 보잘것 없다 하더라도 만일 야훼의 영광이
거기에 있으면 그것은 진실로 아름답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낮에 일을 할 때 수호받고 밤에는 안식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영광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 영광 속에서 신의 성스러움과
자비가 담긴 것들이 나오고 사랑과 빛과 생명이 있는 것들이 나온다.
이러한 것들이 있을 때 비천한 것들이 숭고해지고 작은 것들이 위대해진다.
그것들이 없을 때 모든 것은 약해지고 죽어 가는 것이다.
만일 하느님의 영광을 놓친다면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영광이 있는 곳에서만 만물은 결실을 맺는 것이다.
자료출처 : 베소라성서 김정원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