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모차르트 외갓집 나무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동남쪽, 1526년 합스부르크 제국을 세운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헝가리 제국과 함께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로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과 같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그 위상이 무너지고 지금은 영세중립국이다.
하지만 옛 제국의 위대한 역사는 자부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 등이 활동한 음악의 나라, 현대 언어철학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슈뢰딩거 고양이의 물리학자 에어빈 슈뢰딩거, 그림 ‘키스’의 구스타프 클림트, 근대건축의 선구자 오토 바그너, 미술사의 에른스트 곰브리치, 정신분석학의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프레드 아들러,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경제학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보디빌딩의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고향이 오스트리아이다. 그리고 스스로 절대 권력자 ‘퓔러’였던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의 고국이다. 또 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 이승만의 배우자 프란체스카 도너 리의 고국이다. 더하여 2019년 기준 노벨상 수상자가 22명으로 국립 비엔나대학교는 수상자 20명을 배출했다.
무엇보다 노벨상이 참 부럽다. 허나 아시아의 한국이 오스트리아에 못 미칠 일이 없다. 그리 생각하면 그 부러움이 한탄이 된다. 어리석은 지도자에 백성마저 어리석으면 답이 없다. ‘기회가 오면 세를 규합해 일어나는 호민이 무섭다’고 한 허균의 호민론, ‘불의가 제도가 될 때 저항은 국민의 의무가 된다.’고 한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떠올리며 잠시 회한에 젖는다.
아무튼, 오스트리아에 가면 네 가지는 보고 올 일이다. 첫째는 알프스이다. 만년설의 스키도 좋고, ‘호남가’ 한 자락을 요들송으로 불러도 좋겠다. 두 번째는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사냥터였던 아름다운 샘 ‘쉰부른 궁전’이다. 이곳 정문의 두 기둥 오벨리스크는 정복자 나폴레옹이 세웠다. 그 뒤 나폴레옹이 이슬로 사라진 뒤, 오스트리아인들은 기둥을 허무는 대신 그들의 문장인 황금 독수리를 꼭대기에 올려 역사의 반전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황제 카를 1세는 1차 세계대전 뒤 왕국을 내놓는 문서에 서명하며 손을 발발 떨었다. 다시 지울 수 없을까? 하고 서명도 연필로 했다. 그날 그가 앉았던 보석이 박힌 탁자와 의자에는 이제 세월의 먼지만 쌓였으니 박제된 역사가 거기 있다.
또 있다. 황실의 방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 속 마리아 테레자 여왕의 의자가 황제 요셉보다 높고, 테레자의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요셉은 테레자를 가리킨다. 심지어 요셉 쪽의 개는 두 다리를 뻗어 공손하고, 테레자의 발아래 개는 한 다리를 높이 들어 금세라도 누구를 후려칠 듯 건방지다. 황제나 왕이 될 왕자들은 테레자 쪽에 서 있고 시집가면 힘없는 공주들은 요셉 쪽에 서 있다. 무엇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지 한 폭의 그림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세 번째로 ‘멜랑쉐’라는 비엔나커피다. 모차르트가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9년 뒤엔 조문객도 없이 장례를 치른, 남쪽으로 곧장 가면 이태리 베네치아가 나오는 6백 년 상인들 거리의 성 스테파노 성당 앞 노천카페가 좋겠다. 모차르트의 시신이 방치된 성당 쓰레기장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달달한 커피도 마시고 잠시 고개 숙여 명복을 빌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모차르트의 외갓집이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 동쪽 잘츠감머굿의 볼프강 호수마을 장크트길겐은 그냥 그림이다. 여기 모차르트 외갓집에서 볼프강 호수 쪽으로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역시 그림처럼 서 있다. 운이 좋다면 호수의 산들바람에 이파리를 흔드는 보리수나무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곡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