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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고등학교 54회 동창회 대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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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랑과 낭만이 있는곳 스크랩 낭만이 있는글 심청전의 원류인 관음사의 주지스님이 우려내던 햇차에 빠지다
고재윤 추천 0 조회 90 10.07.03 10:4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심청전의 원류인 관음사의 주지스님이 우려내던 햇차에 빠지다

 

 

 

 

* 다녀온 날 : 2010년 6월 15일(화)

 

* 장       소 :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관음사

 

 

 

마른 장마가 들어서인지 무더운 날들이 흐르고 있다. 6월 중순은 예년 같으면 장마의 중반에 들어가는 시기인지라... 날씨는 선선하고, 곡물은 왕성하게 자라는 계절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올 해는 봄장마까지 들어서 농사 일정을 늦추게 하더니... 급기야는 채소값을 폭등시켰는데, 이러한 이상기후 현상은 근래 들어 건장마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지구는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일정한 기후 규칙은 요즘 들어 종종 무시되기 일쑤이고... 심지어는 한반도가 아열대화 되어 간다고 모두들 서슴없이 말하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가치관의 혼란이 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기후의 가치관! 기존의 관습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이상기후의 현실감은 그 수용을 강압하고 있다. 언제 한반도가 이렇게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고 예측이나 하였던가 말이다. 그런데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기상이변의 증상들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니... 참! 변해도 너무나 속도가 빨라 어지러울 지경이다. 최근 들어 아이들이 한겨울에 들판에서 얼음 지치기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왔던 눈이 금새 녹아 버리니, 언제... 썰매 만들 시간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요즘의 날씨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은 성장기에 비해 중년에 바라보는 날씨가 너무나 수상하여 그 소회를 밝혀 보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관음사에서 십여년째 주석하고 계시는 지인스님을 만나러 나서는 길이다. 필자는 미리 전화를 드리고 찾아가기로 했는데... 물론 전화를 하지 않고 찾아가도 반가히 맞아 주실 스님은... 필자와 똑같은 오디오 매니어인지라 평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즉, 우리 말로 소리쟁이 친구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 스님을 처음 뵌 것은 몇 년 전의 한울림 음악감상 동호회의 모임에서였다. 묵언과 침묵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스님들의 세계에서... 소리는...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나서 명상으로 진입하는 첩경을 이루게 해 주는 반려자로 소문이 나서... 많은 명상가들이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이라고 해서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명상을 근간으로 하는 요가원에서의 명상음악은 바로 소리가 명상의 가장 든든한 반려자임을 입증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기에 음악은 수행자에게 있어서 대오각성에 이르게 해 주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 심오한 음악의 세계에 들어서면 우리는 위대한 작곡가들을 많이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음률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각각 이야기 하는 듯 하나... 기실 그 음악의 해석은 바로 하나로 귀일된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집시음악이라는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루바이젠에서 '집시의 탄식'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함께 비애감에 빠져 들게 되는데... 이러한 단조의 마이너 음계는 전세계인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슬픈 가락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역시 만국공통어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베토벤은 발했다.

'나는 신의 소리를 옮겨 적는 대필자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라고...

음악의 운률 속에는 만국공통어로서의 심오한 깊이가 내재되어 있는 까닭이다.

 

 - 관음사 초입의 멋진 누교樓橋인 금랑각을 필자는 피안루彼岸樓라 부른다 -

 - 와담과 계류의 중심부에 피안루는 세워져 있다 - 

 - 피안에 이를 수 있으니... 피안루라 할 만하지 않는가 - 

 

 

지금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는 노래는 독일의 명상가수 데바 프리말이 부르는 '가테 가테'라는 곡이다. 이 곡은 산스크리트어語로 불리우고 있는데... 가락을 조심스레 살펴 보면...

'가테 가테 파아라 가테 파아라 상가테 보드히 스바하'라는 진언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사가 바로 반야심경의 핵심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의 원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즉 한글로 뜻을 풀이하자면,

'가니 가니 건너가니 피안이 저기 있네'라는 뜻으로서...

이 진언을 세번 반복하여 외는 것으로 반야심경의 결미를 채우는 것이다.

저 언덕에 이르기 위한 불가행의 고달픈 수행은 바로 대자유인의 완성을 향하는 것이니... 석가모니 부처는 이 진언이야말로 최고봉의 입멸까지 타파한다 하였으니... 불가의 핵심요체라 할 수 있는 진언인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 산스크리트어인 이 진언을 접할 때가 바로 이십대 후반 무렵이었으니... 생각해 보면 근 삼십여년이 넘었다.

그때 필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아람코에서 근무하던 때인데... 휴가를 받고 돌아와 무등산 초입의 광륵사라는 절에서 친구랑 겨울 한 철을  난 적이 있는데...(뜨거운 열사의 사막에서 필자는 눈 내린 고국의 겨울 산사를 얼마나 동경하였는지 모르겠고... 삼개월의 휴가를 받고 귀국하자마자 동안거에 들어가는 심정을 안고 바로 산사에 들어 앉았던 것이다)  그 절의 회주會主 되셨던 분이 바로 동국대에 소속을 둔 고익진 교수님이셨다.

 

고교수님은 당시 한문이 아닌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의욕적으로 하고 계셨는데... 지금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 당시 광륵사에서 필자와 기숙했던 도반인 이중표 교수와 함께 귀감이 되는 좋은 가르침을 종종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회주실에 기거하시면서 정말 건강도 챙기지 않고 번역 작업에 몰두하시던 고교수님은 학인의 사표가 되는 길을 걸어 오신 분인데... 장래 불교음악의 정립에도 많은 애정을 가지고 계셨던 분으로 기억되나... 지금은 피안 건너에 가셨고... 이곳에는 안 계시는 분이 되어서... 이제 무척이나 교수님이 그리웁다.

 

데바 프리말의 노래인 피안가와 함께 관음사의 금랑각을 바라보니 옛날 추억이 간절하게 떠올라 몇자 적어 보았는데... 선암사의 승선교나 송광사의 우화각과 같은 화려함은 없으나... 시골여인의 간결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관음사의 금랑각을 필자는 예전부터 피안루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단아한 계류를 건너는 그 행위 자체야말로 피안에 이르는 의식을 상상하게 하였으니... 무슨 군더더기 요체가 필요하겠는가. 피안루라 이름하면 되는 것이지... 기타의 의론은 바로 사사로운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늘의 테마음악도 바로 피안에 관한 주제가 선정되었던 것이다. 즉... 금랑각이 있는 관음사는 필자에게 피안을 떠 올려 주며 마음을 여미게 해 주는 그런 멋스러움을 항상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절로 각인이 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 피안루를 지나 저 언덕에 이르면 금강문을 지나야 경내에 들어설 수가 있다 -

 - 피안에 이르니 불보살의 세계가 펼쳐 지는구나 -

 - 종무소에 계신다는 주지 지인스님을 뵈러 갔다 -

  - 종무소 앞 뜨락의 아리따운 모습 -

  - 지인스님은 침묵 속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분으로 유일하게 정말 통하는 스님이다 -

 

 

종무소에 계신다는 지인스님을 찾아 뵈니 참으로 반갑게 맞아 주신다. 지인스님이 관음사에 주지스님으로 주석하신지도 어언 십여년이 넘어간다는데... 그동안 스님은 성품에 어울리지 않게 머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참으로 많은 불사를 일으키셨다. 필자는 스님의 원력이 얼마나 깊으면 당대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로 승화시켜 놓을 수 있을까...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백제 초기의 유일한 관음도량으로 전국에 알려진 관음사는 임진왜란에 이르러 수많은 가람들이 왜군에 의해 원통전만 남은체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한다. 그런데 일제때 국보로 지정되었던 원통전과 관음불상마저도 한국동란 때 아군에 의해서 소각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문화유적이 그만 사라지고 만 것이다.

 

관음보살이 누구신가.

관세음(觀世音)은 한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구세보살救世菩薩], 세상을 구제하는 청정한 성자[구세정자救世淨者],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이[시무외자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는 보살[대비성자大悲聖者]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지인스님은 줄곧 관음도량에서만 수행을 해 오신 분이다. 세상의 소리를 관한다는 관세음(觀世音)의 뜻과 어울리게 스님은 음악과 오디오에도 매우 조예가 깊으셔서... 필자와는 코드가 딱 맞는 분으로... 대화를 나누기가 참 편한 분이며... 오랜 수도로 인한 스님의 경지는 필자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멋스러움을 한껏 간직한 분이라 할 수 있겠다.

 

지인스님은 한국동란 때 아군에 의해서 불질러진 문화말살의 저변에는... 서양세력이 서세동점西勢東占하던 시절의 기본 정책이었던... 식민지 고유 문화와 기존 종교를 말살하려는 음모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 보았을 때 한 나라의 역사를 뒤바꾸고 그 민족의 혼마저도 바꾸려면... 먼저 문화와 기존 종교를 말살하지 않고서는 의식의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논리이니... 지당한 말씀이지 싶다. 강자의 논리 앞에 그 어떤 평가의 잣대도 필요치 않는 것이 세계사의 냉정한 현실이니... 그로인한 민족혼의 피부이식에 어린 상처는 지금도 아물 길이 없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보자면... 불교의 전래도 우리의 고유종교인 단군교를 점점 산신각으로 밀어내고 말았으니... 천년의 잣대로 보자면 모두가 장단이 있을 수 있겠다.

 

지인스님과의 대화는 점점 불교의 어려웠던 시기인 법란法亂에 대한 이야기로 화두가 옮겨지고 있었다. 스님이 들려주는 법란의 시대 중, 근자에 들어 가장 아픈 시기였던 한국동란과 5공화국 '10.27법란'의 일화는 바로 앞의 이야기를 증명하는 예증의 자료로서 틀림이 없는 일화였는데 간추려 보면 이렇다.

일본 항공병 소위 출신인 모장군은 한국동란 당시에 ??이라 불렸던 F86 세이버기 조종사였는데, 어느날 유엔군 지휘사령부는 해인사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명령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모장군은 해인사의 하늘에서 결국 팔만대장경이 보존되어 있는 장경각의 폭격을 중지하는 과감한 결단을 보였는데... 결국 모장군은 명령불복종죄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갖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증언을 하였다는 것이다. 혹자는 일본군 항공병 출신인 백선엽 장군이라고도 하나... 1950년이면 백장군이 육군사단장으로 임관하는 때라 시기적으로 안 맞다.

 

세계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은 이렇게 해서 법란을 피해가게 되었으니... 생각만 해도 우리의 문화 유산이... 우리의 민족혼의 자긍심이... 사라질 뻔한 아찔한 사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세동점의 법란은 지속되었는데... 관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신세마을 원로의 증언을 이야기 하면서 스님은 가까운 백아산에 공산당전남도당이 있어서 관음사도 빨치산의 주요 거점의 하나였기 때문에 아군은 어느날 관음사의 모든 건물을 소각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정말 아까운 국보 두 점인 원통전과 관음불상은 사라지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어... 임진왜란과 한국동란에 의해 관음사는 완전 폐허가 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삼십년 전의 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퍼블릭카를 몰며 찾아갔던 관음사는, 요사채 두어동과 조그만 원통전이 복원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그 때의 주지이신 종국스님은 분재를 너무도 좋아하셔서 뜨락 이곳저곳에 참으로 이쁜 분재들이 많았던 기억이 떠 오른다. '분재란 사람의 발길에 채이는 산길에서 매번 꺾어지는 아픔을 견뎌내며 성장해야만 멋진 분재로 거듭난다'는 법문같은 분재 채취 요령을 말씀해 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관음사의 상채기는... 그러나 지금의 지인스님에 의해서 임진왜란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씩 복원이 되어간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겠다.

 

주지스님의 자격으로 한국동란 때 폐허로 소각된 관음사의 도량은 당연히 현 정부에서 복원시켜주어야 한다는 논지로 소송을 재기하여 십여년째 이끌어오고 있다 하시니... 참으로 대단한 배짱과 백년 안목의 소유자라 할 수 밖에 없는 분이다. 자기 공부도 바쁜 터에 백년 후의 관음사의 조감도를 현실로 옮기는 그 용기있는 행동이야 말로 바로 관음행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참으로 스님의 행동에서 느끼는 바가 크다. 성찰이 크다.

 

    

"言出如箭不可輕發 언출여전불가경발

一入人耳有力難拔 일입인이유력난발

 

말의 화살을 가벼히 던지지 말라

한번 사람 귀에 박히면

힘으로는 빼낼 수 없다

 

庚辰冬 三樂子쓰다"

 

 

상기 글은 종무소의 벽에 걸린 편액의 싯구인데 삼락자가 어느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슴에 깊이 다가오는 격언이라 할 수 있겠다. 말의 화살은 한번 시위를 벗어 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 말을 가벼히 하지 말라 함이니... 새겨 들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무심코 내 뱉는 생각없는 말 한마디... 사색없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지... 잘 새겨 들어야 한다. 연못에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가 개구리에게는 미사일이 되어 날아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주지스님은 대흥사 일지암의 햇차로 필자를 피안에 이르게 했다 -

  -  다담을 나누던 중 지인스님이 찍어주신 필자의 모습 -

 - 몇 년전 겨울의 어느 날에 필자의 우거를 방문하셨던 지인스님 -

 

 

지인스님은 곡성군이 군의 축제문화로 자리매김한 '심청축제'의 공로자이시기도 하다. 관음사의 창건설화가 바로 심청전의 원류가 되는 원홍장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요약하자면, 원량이라는 장님아버지를 둔 원홍장은 불전 건립을 희사하기로 약속하고 원나라의 황비로 간택되어 간다. 그후 원홍장은 황비가 되어 관음불을 모국에 희사할 대원을 품고 불탑과 금동관음보살상을 배에 실어 보내니 지금의 벌교 포구에 이르렀다 한다. 이를 옥과현의 성덕이란 처녀가 꿈에서 현몽을 받아 벌교에서 관음불상을 실어오게 되는데... 하늘재를 넘어 오며 백아산 가는 길에 그만 불상이 꿈적도 하지 않게 되어 그곳에 절을 지은 것이 바로 태초의 관음사였다는 것이다.

  

원홍장의 아름다운 효심이 서려있는 이야기라는 '관음사연기설화'는 바로 심청전의 원형이라 할 수 있으며... 2001년에 지인스님의 편저로 관음사에서 발행되었고... 이러한 연유가 곡성군에서 심청축제를 기획한 의도와 맞아 떨어질 수 있었다. 관음사 초입에는 바로 폐교를 활용한 심청문화관이 건립되어 있어서, 관음사와 함께 심청축제의 핵을 이루고 있다. 장성의 홍길동 축제도 그렇거니와, 지역의 이벤트성 기획은 그 지방의 관광문화 진흥을 위해서 홍보와 병행되어야 한다. 옛문화와 현대의 문화가 접목되어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는 작업이야말로 창조의 재탄생이며... 지역문화의 발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시도는 홍보를 통해서 그 결실을 맺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인스님과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주지실에 있는 오디오 세트가 문득 생각난다. 벌교 부근의 어느 절에 있던 알텍의 유명한 스피커인 매그니피션트(806A Horn Driver Type과 15inch 803A Woofer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800Hz에서 끊는 2Way Type인데 그 청량한 소리가 탄노이 오토그라프와 함께 명기의 반열에 올라 있는 스피커이다)를 그곳 스님의 부탁으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하니... 금동관음보살상이 벌교에서 건너 온 사실과 일맥 상통하여 이래저래 관음사의 지기地氣는 벌교와 인연이 깊은 듯 하다. 해석이 비약적이며 우스운가.

 

 

 - 성덕산 관음사의 핵심은 바로 원통전이라 할 수 있다 -

 

 - 한국동란 때 불 타 없어진 국보 원통전을 상류쪽 대은암大隱庵을 옮겨와 복원하였다 -

 

 - 관음사는 심청전의 원류가 되는 본향本鄕이다 -

    - 국내에서 유일하게 어두漁頭 형상을 취한  어람관음상漁籃觀音像이 원통전을 지키고 있다 - 

 

(어람관음漁籃觀音은 삼십삼 관음 중의 한 분인데. 나찰, 독룡, 악귀의 해(害)를 없애 주는 관음이며, 물고기를 담은 어람을 들고 있거나, 큰 물고기를 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는데 여기서는 오른손에 물고기를 들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 피안의 끝자락을 돌아 나가면 새로운 경지가 또 펼쳐진다 -

 

 

지인스님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뜨락를 바라 보는 지금의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 대자유인이 되신 법정스님은 그래서 현재의 진행형을 순간순간 놓치지 말고 즐기며 열심히 살라 하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고 법정스님은 말씀하셨고... 벽암록에도 비슷한 이론이 나온다.

 

삼십대 초반에 필자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하시처귀향何時處歸鄕이오"라는 시를 지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돌아갈 때와 장소가 있으리오'하면서...

이 시詩에서 무無와 향鄕을 취해 호를 무향이라 부르며 화순의 무향산방無鄕山房에서 기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적을 소小자를 취해 소향小鄕이라 부르기를 즐겨하고 있다.

대웅이라는 이름의 대大자가 너무나 무거워 소小자를 취해 중화를 이루고자 함이 처음의 의도였으나...

지금은 대大자도... 무無자도 필요 없고... 다만 적을 소小자가 너무나 좋을 뿐이다.

소小자에는 모든 우주가 담겨있다는 진리를 알았던 까닭이다.

 

그래 필자를 소향小鄕이라 불러 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호가 무려 백여가지에 이른다던가.

 

주지실 가는 길에 바라 보았던 정말 살고 싶은... 아담하고 정갈한 요사채인 벽안당碧眼堂을 바라보니... 예전에 벽안碧眼의 안목으로 불가의 세계를 그렸던 현각스님의 '만행'이라는 수필집을 떠 올리게 해 주었다. 그 수필집 중에 현각스님은 지인스님을 도반으로 논하고 있는데... 지인스님에게 오늘 물어보니 오래 전에 지리산 토굴정진 때 함께 만났던 인연이 있는 도반이라 하신다.

 

하바드대학원에서의 어느 날, 미국 하바드대학의 강당에서 설법하던 숭산대사의 설문을 듣고 눈과 귀가 열린 현각은... 바로 한국으로 날아와서 숭산가崇山家에 귀의하게 된다. '만행'이라는 책은 바로 숭산대사의 높은 이론을 살필 수 있으며, 한국의 불교가 외국에서 얼마나 신비롭고 청아하게 비쳐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글들로 내용이 채워져 있어 일독을 권해 본다.

 

기억하는 바로는, 푸른 눈의 미국인이었던 현각스님은 육조 혜능스님의 좌탈입망(등신불)이 안치되어 있는 중국의  광둥(廣東)성 사오관(韶關) 인근의 남화선사(南華禪寺)에서 숭산대사에 의해 중국승려 백여명과 함께 수계를 받게 된다. 그러한 점 또한 소설적인 묘미를 더해 주어 현각을 신비롭게 하였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카톨릭 집안의 현각은 그렇게 백여일여百如一如를 깨우치게 된다. 백가지와 한가지가 모두 같다는 법문이리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법문이 불가에서도 그대로 통용이 되는 묘용의 세계를 현각은 바로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인연도... 수상치 않은가.

 

대자유大自由의 진리眞理는 이렇듯 걸림이 없다.

걸림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眞理가 아니다. 

 

 

     - 주지실과 토굴 가는 초입에 자리한 요사채인 벽안당의 단정한 모습을 보며 아래 현각스님을 발췌해 본다 -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온 벽안의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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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때 생각할 뿐, 들을 때 들을뿐, 볼 때 볼 뿐, 먹을 때 먹을 뿐,
그게 다입니다.
생각할 때 생각하세요.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면 생각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생각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 누가 만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직 '모르는 마음'_을 갖고 똑바로 가십시오.
이 모르는 마음이야말로 어떤 철학, 하느님, 부처님, 하버드 대학보다 나은 것입니다.
모르는 마음을 간직하면 당신의 진정한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만행]中  숭산 큰스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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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스님의 책 ‘만행’ 살펴 보기

 

TV 타규멘터리 <만행>으로 널리 알려진 벽안의 선승 현각스님(35)이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진리를 찾아 정진해온 이야기를 담은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전2권·열림원 刊)를 내놓았다.

이 책에는 현각스님의 어린시절부터 숭산스님을 만나 스님이 되기까지, 그리고 외국인 수행자로서 느끼는 불교와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어린시절 종교적 전통을 강하게 고수해 온 집안에서 자란 폴 뮌젠은 ‘진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의 말을 따라 진리를 찾아 한없이 고민하던 시절, 그가 다닌 교회와 학교는 그에게 또 다른 의문과 회의를 안겨주었을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 2월 어느날 하버드신학대학원에 다니던 저자는 숭산스님의 강연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가 품었던 의문들의 해답이 숭산스님의 어눌한 영어 강연속에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과 독일의 유명대학에서도 찾기 못했던 ‘진리’가 바로 선(禪)안에 있었던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를 통해 신과 종교에 대해 고민하던 청년 폴 뮌젠은 이렇게 해서 현각스님으로 다시 태어나 구도생활을 시작한다. 가정, 종교, 명문대학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이역만리 한국땅을 어떻게, 왜 밟게 됐는지를 실타래 풀듯 하나씩 풀어간다.

 

 

현각스님과 지인스님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1980년대에 송광사 국제선원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조선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지도중이던 데이비드 교수의 친구가 미국에서 날아와 송광사의 국제선원을 공부하고 싶다하여 함께 포니2를 몰고 송광사로 내려갔었다. 우리는 걸림 없이 무심코 방장실인 미소실微笑室로 찾아가서 구산큰스님을 뵈었다. 한가롭게 수좌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던 구산큰스님은 필자의 찾아간 내력을 듣고서는 옆방에 있는 시자에게 국제선원에로의 안내를 명했다.

 

그렇게 뵈었던 구산큰스님은... 필자가 젊은 시절 흠모하며 그 발자취를 따랐던 효봉대선사의 제자되시는 분이다. 법정스님과 고은 선생과 함께 효봉대선사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분으로서, 그 분의  저서 '석사자'는 너무나도 친근하게 필자의 평생 반려자가 되어 주었다. 그 깊고 심오한 뜻은 감히 논외의 경지라 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통영 미륵사에 가 보면 석두화상과 효봉대선사, 구산큰스님으로 내려 오는 법맥의 사리탑을 친견할 수 있는데, 한국불교 선맥의 큰 획을 그으신 분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는 젊은 시절 효봉대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밀양 표충사까지 순례한 적이 있어서 그 기억이 새롭다, 뭐, 곁가지였겠지만... 표충사에서 사자평고원을 지나 얼음골로 내려와 석남사로 빠지던 도보 여행길은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필자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국제선원에 안내받아 찾아가... 그 당시 그 곳에서 정진 중이던 영국과 스리랑카에서 오신 두 분의 벽안승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바라보던 영국승려의 이름은 지금에 와서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대단한 지적 소유자임이 분명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주 첨예한 신앙적 논리들을 진지한 자세로 한점한점 꺼내어 토론하며 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든든함을 서로의 미소에서 확인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다.

인생이란 것이 뭐... 별 거인가.

짧게나마... 옷깃을 스치듯 지나가더라도... 함께 하는 구도의 길이었기 때문에 결코 외롭지는 않다는 '확인!' 하나만 얻어도 배 부르지 않던가 말이다. 스치듯 지나가며 서로 나누는 미소 하나만 있더라도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을... 말이다.

구산큰스님을 뵈었던 미소실微笑室은 그렇게 지금까지도 필자에게 아름답게 각인이 되어 남아 있다.

 

 

 

 

피  안

彼  岸

 

 

저 언덕에 가기 위해서

강을 건너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강의 기슭을

서성거리며

많은 번민을 해 왔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입멸의 해탈이

저기에 있다 하는데

저 기슭으로

건너 가야 하지 않겠는가

 

건너지 않으면

고집멸도에 이르지 못하니

건너감이 옳지 않겠는가

 

서성이며 서성이며

그대 한 번 뿐인 인생을

종반에 이르게 하려는가 

 

 

                                       - 小   鄕

 

 

 

[고집멸도苦集滅道]

성자(聖者)의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얻는 법문(法門). 오(悟)의 인과를 설명한 불교의 교리로서 곧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인 고(苦),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인 집(集), 고와 집이 없어져 깨달은 경계인 멸(滅), 그 깨달은 경계에 도달한 수행(修行)인 도(道)의 사제(四諦)를 말한다. 붓다가 강설(講說)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들이 스쳐 지나가는 선선한 바람들과 함께 하모니를 이루고 있어 기분이 참으로 상쾌하였다. 거기에다가 해남 대흥사에서 보내 왔다는 햇차를 음미하는 호사로움도 함께 했었으니... 대흥사 차茶라면 바로 다성茶聖으로 불리우는 초의선사의 일지암 차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정성으로 우려 내는 스님의 손맛도 함께 어우러져 그 감미로운 햇차맛의 심오한 경지가 향기로 승화되고 있었다. 한옥에 어울리는 기와굴뚝을 멋들어지게 만들고 있던 일꾼들이 가끔 찾아 와서 공사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듯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이 어느덧 역사가 되어 수백년이 지난 어느날에는 지인대선사가 법당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남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기록을 소향의 문집에서 찾아 내었다 한다면... 하~ 이것도 참, 재미있고 보람이 있는 의미지 싶다.

역사는 그렇게 정리 되어지고... 인걸은 결국 오갈데 없어 지리니...

 

다시한번 강조하거니와!

백여일여百如一如다!

 

오갈 데 없는 육신아!

 

법정스님 다비식때 외치던 시자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 오른다.

 

"큰스님!

 불 들어 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

 

어디로 나오라고?

 

 ......

 

끈끈한 정이 맛있게 묻어 나오는 일상 중의 속세 이야기에도 묘용妙用은 있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사진을 정리하며...    小  鄕   權 大 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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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이곳 카페에 더 있습니다.

http://cafe.daum.net/valeriano

 

 

  

 

 

- 흐르는 음악 -

 

"Gate Gate" - song by Deva Premal

 

Gate                                   가니

Gate                                   가니

Pa Ara Gate                  건너 가니

Pa Ara Sang Gate              피안이

Bo Dhi Sba Ha               저기 있네

 

<반야심경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의 산스크리트語입니다.>

 

데바 프리말은 독일 태생이며... 인도 명상순례 중에 이 곡을 떠 올렸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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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07.03 10:47

    첫댓글 너무 좋은글과 음악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려 합니다.

  • 10.08.06 13:34

    모르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사실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 온다 재윤아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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