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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광평대군 묘소 일원, 서울 강남구 광평로 31길20, 중앙은 광평대군 묘표, 신도비도 있다. 종회당, 면적이 13만평, 일원역 15분 도보거리, 사진 권오철)
2023년11월9일 전주 이씨 광평대군 중중은 조상이 남긴 문집(世稿纂編)의 번역과 출간에 대한 제1차회의를 개최하고 이를 주관은 가평부정공파 종회,후원은 광평대군파 종회,추진은 진천종회, 업무 총괄은 이규흔 종현으로 하고 그 발간 목적,방침,일정등을 결정하였다.
광평대군은 1425년(세종 7)에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제5남으로 태어나 20세에 아들 하나를 두고 요절하였다. 아들 영순군(永順君)도 26세에 별세하고,남천군(南川君)·청안군(淸安君)·회원군(會原君)을 남긴다. 광평대군파는 현 종손 이규명(李揆明)에 이르기까지 19대를 내려오면서 무안대군(撫安大君) 방번(芳蕃)의 양자로 광평대군이 후사가 되니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실록에 세종과 왕비가 광평대군 이여의 집에 수시로 들르고 규격을 넘는 저택 문제가 거론 되자 짐짓 철폐를 명하기도 하고, 광평대군이 죽자 어의의 처벌을 요구하니 ‘운명이라!’고 하고 넘어갔다.
광평대군 묘역인 서울 강남구 수서동 산10번지 약 13만평 일원이 서울특별시 지방문화재 제48호로 한 지역내에 700여 기(基)나 되는 왕손의 묘역이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대를 이어 예장되어 있는 묘소에 묘비·신도비 등 석조물이 잘 보존된 것이 조선시대의 묘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세고찬편(世稿纂編)은 조선조 말 후손 이범석이 종중에 내려오는 글을 필사본으로 정리하여 남긴 것으로 글자 그대로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글을 모아서 편집’한 것인데 2011년경 발견되고 그 원본은 연세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글은 우선 15세기 세종대왕의 손자 영순군으로부터 19C까지 13명의 유무명인의 인물들이 다양한 글을 남겼기에 이의 분석은 당시 사회상과 왕족,사대부들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원래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번역할 만한 것이나 여건이 어려워 십시일반 종중의 비용으로 전문적인 기관이 아닌 한학관련인에게 의뢰하여 그 질에 대한 우려가 있으나 그래도 후손들이 그 내용의 대략이라도 안다면 그것 또한 대단한 일이라 하여 일단 ‘시험본’성격으로 1차발간하기로 한 것이다. 만일 이의 오류가 지적되어 다시 제작하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더욱 고무적인 일이다. 그나마 이런 일에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사진 세보찬편 건,곤 1917년 필사본, 승정원 일기도 다 번역이 안된 상태이니 이것 까지 국가에서 번역사업으로 하기는 어려우나, 각 문중에서 후손을 위한 노력으로 빛을 보고 있다. 사진 이규흔)
내용은 산문,시.임금에게 보내는 글등 다양하다. 그중, 세조의 왕실 과거로 등과하자 고마움을 표시하는 글도 있고,정암 조광조의 죽음에 ‘산 나 보다 죽은 정암이 낫다.’는 글도 있고, 조선의 사대 성향을 보여주는 만동묘의 명황제 찬양과 중화에 대한 소중화 사상 표출등도 있어서 당시 사대부의 사고방식일 수도 있지만 좋은 새대상 파악의 자료가 된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조상이 남긴 글을 잘 보존하여 이를 다음 세대에 남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핏줄과 함께 후손에 남겨주는 엄중하고도 훌륭한 유전자이다. 잘못된 것은 반면교사로 삼고 잘된 것은 이어가면서 모두 한 가족 같은 인식을 가지도록 한 것이 바로 숭조애족(崇祖愛族)의 전통이며 이것이 바로 통합으로 가는 한류의 원천이다. 남북간, 지역간, 세대별, 사고방식별로 대립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긍정으로 가는 견제로 승화 시킨 것이 바로 코리언 웨이브스의 핵심이다. 모든 종교나 사상도 다 코리언 스피릿(風流)의 하위 개념으로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잠시 외래 종교와 사상이 번득이는 것 같지만 한류의 물결에 비하면 찻잔속의 태풍 같은 것일 뿐이다.
이제 이런 한 전통의 하나로 비록 작은 ‘세보찬편’ 번역본 제작에 관한 일을 그 본보기의 하나로 소개하는 것이다.
세고찬편에 관한 개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제 그 편찬 과정에 서광이 비치기를 기대하면서 간력히 소개한다.
世稿纂編/李範奭 (1862-1940) 編
筆寫本,[刊寫者未祥],[刊寫年 未祥],(4巷(2) 2冊:四周單邊 半郭 21.5cm*16.2cm,有界。10行20字註雙行,無魚尾:32.1cm*21.1cm
序:丁巳(1917), 申應善 謹選, 跋:乙卯(1915), 李範奭 謹跋(44世),仙查集 李泰淵”,盧谷集 李德夏 謹跋,
卷1,明新堂集/李溥(朝鮮.永順君,1444-1470)著,副正公詩/李澄(朝鮮,加平副正,1484-1525)著, 判官公文/李恬(朝鮮,1517-?)著.退休堂集/李求益(朝鮮,1551-1620)著.秀菴集/李惟一(朝鮮,1577-1630)著.仙查集/李惟明(朝鮮,1595-1674)著
卷2.仙查集/李惟明(朝鮮)著.盧谷集/李惟明(朝鮮,1595-1674)著.
卷3.拙翁集/李昊中(朝鮮,敎官公,1747-1821)著. 稼隱集/李義輔(朝鮮,稼隱公)著.
卷4.盧溪集/李義守(朝鮮,盧溪公,1773-1834)著.華庵集/李義浩(朝鮮,華庵公)著.盧隱集/李義容(朝鮮,盧隱公,1782-1856)著.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국학자료실 소장
(글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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