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삶과 동행하는 생명의 근원 탐색
--한홍섭 시집 『내 안에 거울이 있다』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자아 인식에서 탐구하는 인생관
현대시의 경향은 문명사회의 발달과 풍요로운 생활의 향상으로 삶의 방식이나 지향하고자 하는 인생관들이 다양하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은 불신의식을 조장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정신적인 퇴폐의 고통을 초래하는 위기의 시대에 살아가는 시대적인 현상들을 인식하면서 우리들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문제에 깊이 고뇌하는 작품들을 많이 읽을 수가 있게 된다.
시는 이와 같은 우리 인간들의 갈등이나 고뇌를 정화하거나 화해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감당하는 정신적인 수양으로 그 위의(威儀)를 정립하고 시의 본령(本領)에 충실하여 새로운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재정립하려는 의욕이 고결하고 숭엄한 시법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 한홍섭 시집 『내 안에 거울이 있다』의 작품들을 일별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먼저 새겨보는 것은 한홍섭 시인이 탐구하려는 인식 세계에는 무엇보다도 현재 실생활(real life)에서 탐색하는 삶의 문제에는 다변적인 굴곡의 현상들이 동행하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키는 현실에 대하여 적절한 카타르시스를 희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홍섭 시인은 우선 ‘내 안에 참 많은 거울이 있다 / 깨진 거울 / 트라우마 거울 / 관계의 거울 속엔 가면 쓴 내가 있다 // 깨진 나 / 우는 어린나이 / 가면 쓴 나 / 좌우가 바뀌어도 나는 나인 것을 / 나는 나를 벗어나지 못한다 // 나를 포옹하니 / 아름다운 내가 거울에 있다.(「거울」 전문)’는 이 겨울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내 안에 참 많은 거울이 있다’라고 역설적으로 나의 속내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내 안에’ 있다라고 현실적인 스스로 자신의 곡절(曲折)을 토로하면서 ‘나는 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홍섭 시학의 원류가 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관심은 집중되고 있다.
가을공원의 불타는 단풍나무
그 아름다운 가을빛에 이끌려
온전한 잎 찾으려 해도
상처 입은 잎들 만.
나는 완벽한 삶만을 추구해 왔는가
상처 입지 않으려고
아픔도 감추며 살아 왔다
이 찬란한 잎들은 벌레, 뙤약볕으로
구멍 나고 찢어진 붉게 물들은 황혼
켜켜이 아린 편린들
빛 잃은 별들의 가을빛 나무.
--「가을나무 옆에서」 전문
다시 한홍섭 시인은 ‘나는 완벽한 삶만을 추구해 왔는가 / 상처 입지 않으려고 / 아픔도 감추며 살아 왔다’는 어조(語調)는 바로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자문자답해보는 하나의 성찰에 대한 진지한 자애(自愛-self love)의 순정적인 이미지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의식(自意識)을 ‘가을나무’의 ‘상처 입은 잎들’과의 비유에서 어떤 상징적 의미로 ‘아린 편린들’에서 ‘나’의 완벽한 삶과의 대칭적 이미지는 바로 자아의 이해와 성찰의 시적 원류로 그의 내면에 깊게 흐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시적인 비유법은 그가 착목(着目)하는 무수한 사물에서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는데 ‘애환의 계단마다 새겨진 사랑 / 커다란 물고기가 사랑을 먹고 / 축대 위 색색의 바람개비 / 지금도 아픈 시간들을 돌리고 있다(「바람개비」 중에서)’거나 ‘뜨거웠던 열정도 / 이유 모를 슬픔도 내려놓고 // 붉게 녹슨 몸체 / 훵 뚫린 옆구리 / 이제는 아무 바쁠 것 없이 / 나와 너를 관조(觀照)한다.(「폐선 1」 중에서)’는 등의 어조에서 그가 탐구하려는 ‘나’의 인생관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현현되고 있다.
그 다음에 그의 시적인 의중(意中)이나 심연(深淵)에 잠재한 나 혹은 나의 삶에 대한 탐구는 ‘물기 없는 앙상한 가지들에도 / 눈꽃이 피었다 // 얼굴에는 버즘꽃이 피어도 / 삶의 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눈길 2」 중에서)’는 생기도는 어조는 그의 상처 혹은 찢어진 영혼에게 약간의 위안을 제공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거실의 축 쳐진 덴드롱 잎
목말라요, 온몸으로 말한다
옆자리 다른 식물도 늘어져 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발 물 좀 줘요, 신음소리 듣지 못했다
소리 나지 않는 고통의 몸부림을 알지 못했다
관심 두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것일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뿌리까지 마르진 않았겠지
당신의 관심은 나의 생명이에요
물 마신 잎들에 생기가 돈다
팽팽해진 초록이 가슴 펴고 호흡한다
붉은 입술에 하얀 드레스
저는 예쁜 꽃 피울 거예요.
--「대화」 전문
그는 외적인 사물과 많은 ‘대화’를 통해서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들을 화해하고 소통하는 시법에 공감하게 되는데 ‘목말라요’라고 신음하는 식물(덴드롱)에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는 화법으로 생명의 대한 이미지를 탐색하는 고차원의 시법은 우리들의 시향(詩香)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고통의 몸부림과 ‘제발 물 좀 줘요’라는 식물의 절규가 상호 교감하는 이미지가 그가 구현하려는 ‘물 마신 잎들의 생기’로 인간 구원의 절대적인 명제가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다시 ‘맺힌 한(恨)도 / 시간에 갇힌 사연도 / 숨은 쉼으로 / 쉼은 삶으로 흘러내리고 / 삶의 한순간도 공중으로 소멸된다(「하모니카와 동행」 중에서)’거나 ‘한 알에 박힌 탄생과 죽음 / 슬픔과 기쁜 사연이 / 붉은 정열의 이야기로 보인다(「석류의 숨소리」 중에서)’ 그리고 ‘세월이 지나 / 다시 들리는 뽀드득 / 꿈은 이뤘니? /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하얀길(「눈길 3」 중에서)’과 같이 자아의 이해에서 성찰과 소중한 생명에까지 광활하게 펼쳐나가는 흠숭(欽崇)의 경지를 그의 내면에서 이해하게 된다.
2. 시간과 동반하는 애환의 노정(路程)
한홍섭 시인에게서 다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시간성에서 창출하는 다채로운 이미지의 형상화이다. 이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등에 대한 체험에서 획득하는 애환이 그의 내면에서 곰삭아 외적으로 분사하는 진실된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은 일찍이 미국의 철학적 수필가 칼릴 지브란은 ‘시간은 허공을 뚫고 자아(自我)로 날아다니는 날개다’ 또 미국의 시인 롱펠로는 ‘시간이 무엇인가. 해시계의 그림자, 벽시계의 종소리, 모래시계의 모래의 흐름, 밤낮이 없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몇 달 몇 해 몇 세기이고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것들은 임의(任意)적이며 겉보이는 신호이고 시간의 척도이다. 시간이란 영혼의 생명이다’라는 말로 시간과 우리 인간과의 밀접한 상관성을 적시하고 있다.
한홍겁 시인도 ‘시간이 흘러 / 거대한 자연은 그 속에 생명을 낳는다 / 분출된 응축에너지는 / 생명 에너지의 산실이었다(「용암이 흐른다」 중에서)’는 시간과 자연의 융합으로 모든 생명의 에너지가 활력소로 응축되는 그의 지적인 혜안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태백산 정상의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허리에 구름 두르고
살아서 멋있고 죽어서도 멋있게
살아 있는 나무와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
세월바람 맞아 허리는 뚫렸어도
비바람 눈보라에도 꼿꼿이 서있다
무엇을 위해 버티는가
하늘 향해 뻗힌 팔은
무엇을 그리도 갈구하는 걸까
시간의 무게로 찢기고 부러져도
봄기운 한 줌 생기로 눈물겨운 꽃
겨울 오면 기다린 듯
서리꽃, 눈꽃 피운다.
--「고사목」 전문
그는 이러한 시간과 상관하는 자연에서 정감적으로 흡인하는 것은 우선 사계절에 대한 변화에서 ‘세월바람’과 ‘시간의 무게’를 절감하게 되는 현상에서 우리 인간들뿐만 아니라 만유(萬有)의 자연에서도 이 ‘고사목’과 같은 애환의 이미지가 삶의 노정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의 공감영역은 확대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비록 세월에 의해서 사그라진 생명의 화신이 ‘비바람 눈보라에도 꼿꼿이 서’서 지금도 ‘무엇을 그리도 갈구하는’지. 그러나 ‘봄기운 한 줌 생기로 눈물겨운 꽃 / 겨울 오면 기다린 듯 / 서리꽃, 눈꽃 피운다.’는 결론처럼 ‘죽어 천 년’에도 우리들에게 시간성에서 맞이하는 자연의 섭리를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성 차밭에서 바라본 산
점점이 다른
풋풋한 푸름의 조화가 황홀하다
빛 따라
시간 따라
나무마다 다르다
열매도,
낙엽도,
눈 맞을 때 처연함도,
다르다고
탓하지 않는다
다른 채
하나 됨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신록의 오월 」 전문
한편 계절의 다변적인 이미지가 바로 ‘신록의 오월’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빛 따라 / 시간 따라 / 나무마다 다르다’는 계절의 변화에서 감지하는 현상에서 교감할 수 있는 이미지는 바로 이 신록들이 ‘열매도, / 낙엽도, / 눈 맞을 때 처연함도, / 다르다고 / 탓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이며 수용의 아량이 시간 순환의 이미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보성 차밭에서 바라본 산’의 황홀한 푸름의 조화에서 감응하는 한홍섭 시인의 정감은 시간에 따라서 순응하는 자연 섭리가 바로 우리들 인간의 애환과 동일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그의 시법에 공감하게 된다.
그는 사계절의 시간성에서 살펴보면 우선 작품 「봄비 1」 중에서는 ‘추위 속에 동면하던 긴 기다림이 / 남쪽 바람을 만나 방긋 / 붉은 입술 내민 영산홍은 / 곧 붉디붉은 만찬을 펼치겠지 / 어둠의 태에서 디밀고 나오는 / 신비한 생명들이여.’ 작품「가을호수의 추색」 중에서는 ‘쓰다듬는 바람손에 / 너울너울 물결치는 억새 / 은빛백발은 세월의 열매인가 / 슬픔도 기쁨도 영광도 / 한없이 푸르렀던 여름추억 안은 채 / 친구와 손잡고 / 몰아의 춤추며 / 흰 빛 겨울을 맞는다.’ 그리고 작품 「설중매」 전문에서는 ‘새하얀 눈 속에 붉은 피처럼 / 처절하게 아름다운 설중매 / 매서운 바람에도 / 고운 자태 흐트르지지 않은 인고의 여인 // 붉은 아름다움은 / 그토록 / 아픔을 겪어야만 나오는 것인가.’라는 시간과 동반하는 인간들의 애환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홍섭 시인은 사계절 중에서도 유난히 가을 이미지들을 많이 원용(援用)하고 있는데 작품 「가을나무」 「가을 향기」 「가을 언어」 「가을 이슬」 「가을이 오면」 「낙엽」 「가을 담쟁이」 「허수아비의 독백」 등에서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 전해주는 인생의 의미를 적시해주는 그의 정서와 사유(思惟)가 넘치고 있다.
3. 서정의 향기, 혹은 ‘자연의 선물’
한홍섭 시인은 서정적 자아를 추구하는 서정시인이다. 그는 ‘시의 본질’에서 ‘나와 자연이 / 동화하는 것 // 너와 춤추고 / 자연과 춤추며 // 한 폭의 글이 되어 / 신의 창조에 동참하는 길.’이라고 시의 서정성에 대하여 천명(闡明)한 바가 있다. 이는 시의 위의나 본령은 서정에서 출발하고 서정에서 그 원류를 탐구해야 한다는 서정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봄길 가다보면
아주 작은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요
꽃마리꽃 별꽃 냉이꽃
뽀리뱅이 제비꽃 애기똥풀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나의 가슴 언저리에
자그만 웃음
살포시 내려놓지요
--「가슴에 피는 봄」 전문
그는 봄길에서 ‘아주 작은 꽃들’에게 시선을 멈추고 있다. 그의 시야에서 응시한 꽃들은 꽃마리꽃, 별꽃, 냉이꽃, 뽀리뱅이, 제비꽃, 애기똥풀, 등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가슴에서도 피어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서정의 향기를 자연의 선물로 단정하고 있다. 그의 가슴 언저리에도 꽃들은 언제나 ‘자그마한 웃음’을 내려좋으면서 봄의 계절적인 향훈에 젖어 정감을 나누고 있다.
그는 다시 ‘황국 시클라멘 포인세티아 / 화원에 있는 아름다운 꽃들 / 향기도 좋고, 탐스러우나 / 일순간 스쳐가는 인연일 뿐 // 그 중 하나의 꽃이 / 내 집에 오니 / 잎사귀 하나만 노래져도 / 물이 적은가 물이 많은가 / 관심을 둔다 // 마음으로 만나 / 몸으로 섬기니 / 우리는 이미 한 지붕아래 공동체.(「가족」 전문)’과 같이 그의 주변에서 감응하는 화훼류(花卉類)는 모두가 가족이라는 단정으로 ‘한 지붕 아래 공동체’임을 명징(明澄)하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작품 「봄맞이꽃」 중에서도 ‘따뜻한 봄날 / 승주 도신리 가족공원에시 김포공원으로 / 부모님을 모셔 왔다 / 노오란 솜방망이꽃 보라제비꽃이 점점히 피고 / 가녀린 줄기 위에 다섯 잎의 봄맞이 꽃 / 하얀 별들이 잔디밭에 내려 / 봄바람 따라 살랑거린다’는 어조로 그의 뇌리(腦裏)에는 자연에서도 ‘부모님’을 대입하여 서정적인 자신을 헌사(獻詞)하고 있어서 공감의 시심(詩心)을 흡인시키고 있다.
아파트에 자수정 구슬들이 열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연보라 좀작살나무꽃은
마스크 쓰지도 않은 채
여름을 지나 마술을 부렸다
봄바람 노오란 산수유 꽃도
가을바람 불어오면
주렁주렁 루비들로 슬며시
가지 사이로 영롱하게 빛난다
마스크 단단히 쓰고
아내와 산책길에
숨어있던 오묘한 보석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더욱 빛낸다.
--「자연의 선물」 전문
한홍섭 시인은 이와 같이 자연이 섭리에 따라 제공하는 ‘연보라 좀작살나무꽃’과 ‘봄바람 노오란 산수유 꽃’ 등의 현상에서 그는 ‘숨어있던 오묘한 보석들’을 발견하는 정취를 아내와 함께 감상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성은 자연과 가족들과의 정감 넘치는 시법이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그의 눈길이 멈추는 곳마다 꽃들은 화사하게 웃고 있다. ‘아침햇살에 초록 잎들이 빛납니다 / 소파에 앉아 꽃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 산세베리아 접란 율마 / 벵갈고무 드라세나 타라 사랑초 /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 각자의 사연이 있습니다(「거실화원」 중에서)’와 같이 거실 소파에 앉아서도 꽃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그의 서정적 자아의 심오한 시적 공감을 불러오고 있다.
그가 주로 애용하는 서정의 화원에는 다음과 같은 꽃의 담론이 전개되고 있다.
-보랏빛 백조가 새벽에 날아와 / 오후에 훌쩍 날아가듯 / 반나절 후엔 벌써 지는 학란(「네오 마리카 그리실라스」 중에서)
-소국 한 아름 / 품에 안고 / 코끝에 맴도는 향기 머금고 /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올려다보네 (국향기」 중에서)
-광주 변두리 학동 / 열 식구 살던 / 작두시암터 옆 작은 화단에 / 달밤꽃이 피었다(「달맞이 꽃의 추억」 중에서)
-여유로운 사람들이 지나고 / 한라산 가던 바람이 머무는곳 / 돌담사이 햇살이 비치는 / 난 이곳이 좋아(「돌담길 유채꽃」 중에서)
-꽃은 / 생명의 후손 남긴 채 / 시들어 사라진다(「秋心」 중에서)
-뙤약볕 시절 지나서 / 붉은 노을과 어울려 / 시름없이 황혼의 춤을 춘다(「억세꽃」 중에서)
한홍섭 시인은 이 밖에도 향수를 통해서 자연과 교통하는 시법도 두드러지게 현현되고 있는데 「담양 죽녹원」 「삼지내길」 「고향의 눈」 「크리스마스 트리」 「아버지를 추억하며」 「지도의 추억」 등등의 작품에서 고향과 부모님들, 가족들과의 순정적이 시적 화합은 바로 우리 서정시의 중심축에서 그 위상을 숭고하고 명민(明敏)하게 발현하는 중요한 매체가 되고 있다.
4. 박애정신으로 부할의 소리를 듣다
한홍섭 시인은 기독교 정신에 투철한 신앙인이다. 시인들 중에는 종교를 가진 분들이 시를 잘 쓸 수 있다는 견해는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연유는 하나의 사물에서 감지하는 이미지의 창출이 이미 신앙생활을 통해서 인본주의(humanism)의 진수(眞髓)를 교리나 성경에 심취하면서 시정신과 합치(合致)하는 점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홍섭 시인도 동일한 범주(範疇)에서 시와 신앙과의 융합이 그의 보편적인 일반 정서이면서 또한 시 창작에서 많은 정신적인 내면이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박애정신이 작품의 주제로 투영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그는 ‘나 처음 단풍진 정원벤치에서 예수 만나고 / 노을의 아름다움에 / 하나님 찬양했던 기억 만들고 / 그 위에 신앙이야기 쌓아온 것처럼.(「삶은 쌓여가고」 중에서)’이라는 그의 신앙적인 출발을 진솔하게 현현함으로써 그의 삶과 시는 상호 화해의 행보를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오감과 육감을 뛰어넘어 우리는 영감을 가졌습니다
육감도 신비의 영역이지만 영감은 영원한 하나님과 관계있는
영광스런 신비입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신비
자연의 광대무변한 자연계와 생태계를 붙잡고 계시는 신비
삼위일체 자체의 신비
사랑의 신비
아침의 묵상은 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늘나라를 회복하심이 신비의 경륜이며
우리의 죄를 도말하심이 신비이며
다시 죽지 않을 육체로 부활할 것이 신비입니다.
봄의 생명의 속삭임은 이 신비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봄의 기지개
봄의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속삭임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목련을 통해
수선화를 통해
나무줄기의 수관을 따라 힘차게 뻗쳐오르는 물줄기 통해
하나님의 속삭이는 사랑의 소리를
죽으심과 부활의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의 소리_봄」 전문
그는 이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생명의 계절 봄에서 듣는 중요한 메시지는 ‘부활의 소리’이다. 이는 그가 지혜롭게 음미하는 ‘육감도 신비의 영역이지만 영감은 영원한 하나님과 관계있는 / 영광스런 신비입니다’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영원한 하나님과 관계있는 /영광스런 신비’가 그의 영감으로 관류(灌流)하는 ‘사랑의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성경 누가복음 20장 38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라는 부활의 메시지를 만유의 자연과 함께 우리 인간들에게도 ‘하나님의 속삭이는 사랑의 소리를 / 죽으심과 부활의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내면의식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푸른 호수 물결 위에 홀로 서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숲속 작은 잎의 /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 그 떨림을 / 들으시나요’라고 속삭이는가 하면 ‘숲 위로 솟은 황혼에 비친 십자탑 / 평화위해 자기를 버린 예수(「고속버스 창가에서」 중에서)’라는 등의 그의 착실한 기독정신을 분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생 흘러흘러 한 줌의 먼지되어
단지에 고이 담겨 손자 품에 안기고
아들 딸 손자들이 그 뒤를 따르누나
적신으로 이 땅에 와 적신으로 돌아가나
그의 생각 그의 삶을 후손에게 남겨두니
오호라 나도 흘러 한 줌으로 돌아갈 때
무슨 정신 남겨둘까 무슨 삶이 기억될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땅의 짧은 목숨
사랑하고 사랑받고, 위해주고 위함받고
나눠주고 흩어주고 주님따라 살다가리.
--「한 줌의 흙」 전문
여기에서는 부활 이전에 이승을 떠나는 ‘작은어머니의 소천을 보며 2010.1.26.’이라는 주(註)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작은어머니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애상(哀傷)에서 결론으로 적시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땅의 짧은 목숨 / 사랑하고 사랑받고, 위해주고 위함받고 / 나눠주고 흩어주고 주님따라 살다가리.’라와 동일한 사랑과 부활의 신념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홍섭 시인의 신앙적인 신념은 그가 평소에 기독교적인 삶에서 획득한 소중한 지혜이며 지적인 사유의 재생과 실천을 위한 하나의 인생의 향방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시와 종교와의 융합을 조화롭게 발현하는 그의 깨어있는 의식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그는 작품 「세포의 기도」 중에서도 ‘내가 죽어 몸이 살게 하소서 / 내가 죽어 내가 살게 하소서.’라고 성경 엡 4:16을 인용하여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는 기도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밖에도 성탄과 교회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감응을 시적으로 해석하거니 상황 설정 및 주제로 투영한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는데 ‘아내 예림 예은 예선 / 과우들 나눔교회 어머니 그리고 빛고을 / 하늘에 펼쳐지는 빛살구름과 붉은 태양 바라보며 /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떠올린다 (「세부의 아침」 중에서)’ 또는 ‘붉게 물든 돌다리에서 손을 흔든다 / 지슈나메 발리바시 지슈나메 발리바시 /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인도선교 2-환송」 중에서)’들면서 ‘예수를 믿으세요(지슈나메 발리바시-벵갈언어)’를 기독교적인 계도(선교)를 계속하고 있어서 그의 신앙은 사랑과 시정(詩情)이 동행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 한홍섭 시집 『내 안에 거울이 있다』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이 시집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는 먼저 내 안의 거울과 거울 속의 나를 통찰하는 자아 인식을 근간으로 해서 인생관을 정립하려는 성찰과 지향점을 탐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신의 체험에서 재생된 다양한 이미지는 시간(세월)과 동반하는 인생적 애환에서 시정신을 투여하는 시법과 자연친화, 특히 꽃들에게서 교감하는 서정의 향기와 함께 그에게서 생활화한 기독교 신앙의 박애정신이 고르게 작품으로 형상화 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 영역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다만,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라고 사람들의 마음 뒤흔들면서 영혼까지도 시인의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고대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의 「詩論」도 겸허하게 수용할 필요성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