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 5분정도 명상을 하겠습니다. 음악을 들으시면서 허리를 펴시고
기도를 하시던지 참선을 하시던지 5분 명상을 하겠습니다.
예. 앞으로 보십시오.
저를 가만히 보십시오. 안면이 있습니까?
"네"
어제, 그제 강의시간에 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예.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Long time no see라고 참 오랜만입니다.
아주 감사한 일이고 이렇게 선연으로서 만나게 된 것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아주 좋은 인연으로 만난 것을 우리는 자축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옆사람 하고 악수 한번 하십시오.
오늘은 부처님 출가를 기념하는 출가재일입니다. 음력2월8일입니다.
부처님 5대 명절이 있으니 첫 번째가 부처님 오신 날이고 두 번째가 성도재일이고
세 번째가 부처님출가일 그리고 일주일 후에 있는 부처님열반일 이렇게 해서
4대 재일에다가 백중을 포함해서 불교5대재일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특히 출가재일로부터 시작해서 열반재일까지 약 8일동안 모든 불교인들은
이 동안에 정진을 좀 해야되겠다 해서 “ 불교도 정진주간”이라 정해놓고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불교도 정진주간” 현재 우리 절에서는 불교도 정진주간에 숙제가 뭐냐?
다 적어 주십시오.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108배 하루 두 번하기
108배 두 번하기 하니까 웃으시는데 처음 하는 분들은 힘듭니다.
아주 초보 신도님들을 중심으로 숙제를 드립니다.
따라 하십시오.
첫째: 108배 하루 두 번하기.
둘째: 참선 특히 선관쌍수 한시간 하기. 하루 한시간 참선하기.
셋째: 다라니, 신묘장구대다라니 7독하기. 일곱 번 읽기.
넷째: 포교 두명하기
앞에건 쉬운데 끝에건 어렵습니까?
어찌 보면 끝에 것이 제일 쉽습니다. 포교 두명 하기.
반드시 하셔야 돼요. 네 개의 수행 숙제를 드렸습니다.
출가에 대해서 그리고 출가 요인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출가라....출가....출가라고 하는 말을 미국말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출가라...여러 가지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마는 제가 봤을때 가장 적당한
표현이 수도자,수행자가 되는것 그걸 출가라 그래요.
그래서 출가라 하면 바로 수행자가 되는 것인데 오늘 이렇게 하루
절에 오는 것도 결국은 수행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넓게 생각해야 돼요.
예. 출가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왜 출가를 하게 되느냐?
지금의 많은 수행자들 그리고 부처님조차 어떻게 왜 출가를 하셨는가?
“이고득락”(離苦得樂)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다 했어요.
따라 해보십시오. “이고득락”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다.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노라.
우리가 절에 오는 것도 그렇지요. 괴로운일 그것이 정신적이던지, 물질적이던지
무엇이던간에 다 떨쳐 보리고 즐거움을 얻자.
무엇이던 좋은 것을 얻자 해서 절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에 하루 오는 것도
하루 출가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로를 구하기 위해서 출가 하실 때
그 목적이 나는 생로병사가 없고 무고안온(無苦安穩)한 행복의 삶 열반을 얻기
위해서 출가한다.그러셨어요.
바로 부처님께서 출가 하실 때 그 목적도 요즘 말로 하면 “ 이고득락”
하기 위해서 출가를 하셨다. 그런 얘깁니다.
출가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출가 요인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다 적어십시오.
첫 번째: 사친출가.
두 번째: 삼계출가.
세 번째: 오도출가. 다 적었습니까?
“ 예 ”
첫째는 뭐죠? “사친출가”
둘째는 뭐죠? “삼계출가”
셋째는 뭐죠? “오도출가”
사친출가라고 하는 말은 가족으로부터 내가 출가했다. 이말입니다.
절에 오신 것도 하루 가족으로부터 출가한 것입니다.
삼계출가라고 하는 말은 물질로부터 출가했다. 이말입니다.
오도출가라고 하는 말은 정신으로부터 출가했다. 그래서 사친출가니.
삼계출가니, 오도출가니 하는 말은 옛날부터 쓰여지던 말인데
제가 현대적인 의미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가족으로부터 출가하고 물질로부터 출가하고 정신으로부터
출가하는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출가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출가는 여기서 출가라고 하는 말을 썼는데 출가는 보통의 사전적인 의미는
“모든걸 포기했다.”그러는데 그건 정확한 표현이 못됩니다. 정확히 현대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 초연하다.” 초연하다 이 말입니다.
출가라고 하는 말이 출가는 초연하다. 이런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가족으로부터 초연해졌다. 이 말이요.
물질로부터 출가했다는 말은 물질로부터 초연해졌다.
정신으로부터 출가했다는 말은 정신으로부터 초연해졌다. 이말이죠.
우리가 출가할 때 “가”는 집가(家)자인데 “가”라고 할때 “가”자는 고정된 틀을 말합니다.
“ 틀” 우리가 가정이라고 하는 가 자는틀을 말해요.그 고정된 틀에서 내가 뛰쳐나왔다.
거기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졌다.내가 초연하게 나왔다.
그래서 출가라고 하는 말은 첫째는 초연하다. 둘째는 자유로워졌다.
이런 많은 개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사친출가 라고 하면 나는 가족으로부터 출가했다. 가족으로부터 초연해졌다.
또는 가족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이말입니다.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 바로 초연입니다.
의미를 잘 새겨야 돼요. 오늘 하루 절에 나오게 된것도 바로 가족으로부터
초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가족을 버렸느냐? 가족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가족을 한명도 버리지 않고 내가 좀 더 큰 삶. 가족이라고 하는 틀을 넘어서서
초연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나오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절에 나오게
된것은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할 일은 다하면서 좀 더 넓은 범위의
가족을 생각하고 더 넓은 범위의 가족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절에 나온다.
이렇게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가족 그대로 있고 덤으로 많은 가족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 사친출가” 라 사친출가의 의미입니다.
가족출가죠. 가족으로부터 내가 출가했다.
그 다음이 두 번째 이야기 되고 있는 “삼계출가”
삼계출가는 물질로부터 초연해졌다. 물질로부터 내가 출가했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내가 물질을 다 버렸느냐. 그건 아닙니다.
물질로부터 초연해졌다 물질로부터 내가 출가했다. 물질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
이말입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물질이 안 생기느냐 그건 아닙니다.
사람이 물질을 쫓아가다 보니까 힘들어지고 애가 타고 그런데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물질은 그냥 자연스럽게 진리대로 순응해서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한 것을 절에 오게 되면 배우게 되는 거지요.
절에 온다는 것은 바로 삼계출가를 자꾸 몸에 익히고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맘을 자주 느끼게 되는 거죠. 잘 생각해봐야 돼요.
물질에 집착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고 내가 기도한 만큼 물질이
갖춰지는가요? 그러니까 초연이란 말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은 완전히 버린다.
완전히 떠난다 그런말이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스님들이 물질이 넉넉하겠습니까? 우리 신도님들이 물질이 넉넉하겠습니까?
물질이 넉넉하기로 얼른 생각하면 우리 신도님들이 물질이 넉넉할것 같지마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니다 보면 신도님들이 그래요. “스님은 참 좋겠다”그래요.
돈걱정 안해도 되니까 좋겠다 그래요. 스님들은 걸어 다닐 만큼 차를 탈만큼 돈이 없느냐
그건 아닙니다. 절에 오면 먹을거 다 있고 냉,난방 시설 잘 되어 있고 스님들만큼
많이 가진것도 없어요. 그렇지만 스님들은 그 물질에 거의 탐착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그냥 출가해서 열심히 사는데 그런 것이 기본적으로 갖춰지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삼계출가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도님들도 절에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해도 삼계출가가 되는 겁니다.
물질계에 초연해졌는데 내가 탐착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바라는 것을 가지게 되는 거지요.
그 얼마나 좋아요. 애가 타지 않았는데도 가질건 다 가졌다. 그게 바로 출가인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출가를 뭐라 했지요? “ 오도출가”
오도출가라 이것은 정신으로부터 생각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겁니다.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말이죠. 우리가 고정관념 또는 번뇌 망상에 집착하다 보면
새로운 정신세계를 새로운 행복을 찾을수가 없습니다. 내가 절에 오게 되면 어떻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다 내려놔도 손해 보는게 없어.내가 가진 모든 생각을 다 내려놔
버리고 부처님 말씀을 듣고 얘기를 들으면 바로 거기서 전혀 새로운 행복이 가슴
밑바닥에 알 수 없는 샘으로부터 솟아나는거 아니요.
그게 바로 “오도출가”라. 절에 나오면 자기 생각은 다 비워버렸는데도 또 다른
행복한 생각들이 다시 차게 되지요. 내가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버린게 아니라
오히려 초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도출가라 하면 나를 새로운 행복의 에너지
행복의 생각들이 내몸에 갖춰 내마음에 들어오게 되는 그러한 이치 그것을
오도출가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입니다.
이 세 개의 출가의 의미를 우리가 늘 생각하면서 절에 다니시면 돼요. 절에 오면 내가
가족으로부터 초연해지는구나. 가족이라해서 다 자기 가족만 ..이사람 아니면 못살아.
이렇게 하는 것은 본인도 괴롭고 병이 됩니다. 좋을것 없어요. 가족이라해도 자기는
자기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고 내할일로서 부모로서 할 일을 해주는것 그게 바로
초연한 삶입니다. 그게 바로 사친출가지요. 가족으로부터 출가하는거죠.
그다음이 삼계출가 물질적으로 얽매이지 않아도 절에 와서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가질것
다가지게 된다 이겁니다. 세 번째 오도출가 정신적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내려놓아 버려도 새로운 부처님 말씀들 새로운 생각들이 다 내려도 새로운 정신영역으로
자리잡게 되는 거지요. 그럼 얼마나 행복해지느냐 이거죠. 그래서 우리가 절에 다니시면서
나는 정말 있는가? 가족으로부터 초연해지고 있는가? 물질로부터 초연해지고 있는가?
내갇힌 생각, 내갇힌 정신으로부터 조금은 초연해지고 있는가?
오도출가의 중요한 것은 절에 오면 법문을 들을때는 온갖 것을 다 내려놓고 들어야 되고
참선할때나 기도할때도 자기 생각 다 비워버리고 해야 하는겁니다.
그래서 오도출가라 하는 것입니다. 출가라 하는것은 훤칠한 아주 훤칠한 초연의 삶이고
출가라 하는 것은 완전한 자유의 삶이라. 이것이 바로 “이고득락”의 삶이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출가라고 하니까 집을 나와서 가출인지 출가인지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출가는 이만큼 중요한 뜻이 있어요. 출가는 반드시 수행을 전제로 합니다. 수행하지 않는
출가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 수행숙제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루 왔지마는 하루 수행자고 쭉 날짜가 지나가면서 8일간 수행을 한다면
8일 수행자니까 우린 수행숙제를 받은 것입니다.
수행숙제가 처음에 뭐라 했지요.“ 108배” 두 번째 뭐라했죠 “ 참선” 세 번째는“다라니7독”
“ 다라니 몇독?”
“ 7독” 그라고 뭐지요? 포교2명하기. 숙제는 해야 되는게 숙제입니까?
안해도 되는게 숙제입니까? 해야 하는게 숙제입니다. 반드시 해야 되는게 숙제입니다.
안하면 선생님한테 어떻게 되지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 같으면 매맞습니다.
옛날에는 숙제 안해가면 선생님이 때렸습니다. 어른들이니까 다 알아서 하시길 바랍니다.
출가는 모든 이들이 출가인데 전문 출가자들이 있어요. 전문출가자를 뭐라고 합니까?
“스님”이라고 그러지요. 우리 재가신도의 입장에서 전문 출가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그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전문출가자“스님” 스님이 없으면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가 없어집니다.
불교가 무너집니다. 이런 경우는 미국에서 많이 있습니다.
스님이 없어서 절문 닫는 수가 아주 많은걸 제가 봤습니다.
스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one temple(절하나)의, one monk(스님하나)라 생각해봐요. 그런걸 보면 스님들이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 그 절을 떠나가 버리는 겁니다. 그럼 그 절은 망하는 거지요.
우리 신도님들 입장에서는 스님들을 잘 보필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전문출가자가
되는데도 특별한 인연이 아니면 출가가 힘들어요. 특별한 인연이 아니면 정말 출가가
힘듭니다. 본인이 좋다 했을때는 일도 아니고 부모가 “스님 좀 돼라” 그리한다 해서
출가가 되는 일도 아닙니다. 모든 여건이 다 맞아지고 과거 속세에 인연이
성숙되어져야 이생에 와서 머리를 깎고 가사장삼을 입는 스님이 됩니다
출가할때는 가족들의 가슴에 말할수 없는 이별의 슬픔을 안기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는 없지마는 잠시 다른 볼일로 간 행자가 있는데 제가 미국에서 같이
데리고 온 행자입니다. 행자어머니를 만났는데 아주 독실한 불자입니다. 오랫동안
신행생활을 했고 그러한 신행마음의 상태같으면 아들 둘인데 하나는 흔쾌히 출가를
시키기도 하겠죠. 왜냐하면 본인이 원하니까. 본인이 그렇게 원하는데도 어머니는
얼마나 반대를 많이 했는지...나중에는 어머니가 포기를 한것입니다.
저하고 통화를 하고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거기서 모정이 무엇인가?
어머니의 정이라는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했어요.
옛날에 우리 부모님도 저 출가를 애달프게 생각하면서 참 많이 우시기도 하셨지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시를 하나 썼어요. 미국에서 쓴 시니까 합장을 좀 하고 들으세요.
" 모정"
“그것이 선업이라 할지라도
마음 아려서 말도 못한다.
장가가서 애도 낳고
평범하게 살면 좀 좋으련만
말듣지 않는다.
출가는
어머니의 시린 가슴을 딛고
무정하리만큼
휑하니 이루어진다.
밤중에도 벌떡 일어나 앉는
애닯은 눈물의 강을
오늘도 이 미국 땅에서 보고 있다.
삼세에 걸친 대작불사
니르바나는
너무도 큰 것을
막무가내로 요구한다.“
합장내리시고
출가는 예사인연이 아닙니다. 보살님들이 출가자 스님들을 볼때 저분들은 예사인연이 아니구나. 늘 생각해야 됩니다.
이건 저보고 하는 애기가 아니라 일반 많은 출가한 스님들을
그렇게 봐야합니다. 모든 여건이 인간적인여건 인간적인 관계여건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시절인연이라고 해서 그 시절인연이 맞지 않고 상황이 맞지 않으면 안돼요.
같이 오기로 했던 흑인수행자가 한명 있었는데 그 수행자를 포교 스님을 만들려고
하는데 장장 3개월이 필요했어요. 3개월 동안 만나서 저는 영여를 잘못해도 애써서
얘기하고 몸짓에서 느낀 바가 있었던지 처음에는 불교를 샤머니즘이나 종교가운데서도
하등종교 불교를 염세적인 종교쯤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 생각을 바꾸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3개월쯤 지나자 흑인행자가
“ 스님, 불교가 그토록 좋다니 저도 가서 불교공부를 하고 언어능력이 생기면
승가대학이나 동국대학교도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부처님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데리고 왔는데 미국공항도 통과하고 열세시간반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잡혀버렸어요. 왜 잡혔냐하면 흑인행자는 5~6년 전에 한국 땅에서
잠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4~5넌 기간을 보낸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니까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했는데 관광비자로 들어 왔기
때문에 학원에 나가서 강의를 하니까 불법취업이 된것입니다.
불법취업에 걸려 거지고 강제로 여기서 쫓겨 갔습니다.
미국사회에서는 불법취업자가 더 많습니다. 10~20%가 불법취업자라. 그 사람들이
미국경제를 움직여 갑니다. 미국에서는 그리해도 별로 쫓아 내는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비행기 태워 보내 버리지요. 그때 쫓겨 가면서 영사관에 가서
물어 봤답니다. 한국이 좋은데 나중에 와도 되느냐? 문제없다(no problem)는 겁니다.
문제없다 해놓고 들어 올때 잡힌 겁니다. 날짜가 재년3월28일까지 못들어 온다고
되어 있었답니다. 벌써 4~5년전에 이미 날짜를 받아 놓은 것입니다. 거기서 2~3일간
얘기하면서 이쪽으로 계속 전화하고 결국은 미국에 돌아갔는데 미국 가서도
“ 스님 내년에 오면 받아줍니까?” 그래요. 출가라 하는 것이 모든 여건이 맞아야지
출가가 되는구나. 라는걸 제가 느꼈어요. 행자 한명은 미국에 있으니까
제가 이번에 포교한 행자가 세명이라 세명.
“ 박수칠것 까지는 없고” 제가 백인행자를 한명 데리고 안왔습니까?
“스티브” 큰스님께서는 행자님을 부르시면서 인사를 시켜주셨다.
이 행자는 수행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는 수행자입니다.
인연이 잘 성숙되어 와서 저한테 잡힌 겁니다. 하루 천배를 일년간 한 사람입니다.
삼천배 두 번 했어요. 저희들이 하루 천배를 대원력 관세음보살님을 모시면서 수천명이
동시에 시작을 했는데 100일 하는데도 끝에 남은 사람은 26명밖에 없었어요.
저도 끝에는 힘들더라구요. 무릎이 덜렁덜렁 하더라구요.그래도 저는 체면 때문에 했지요. 마당에 모셔진
대원력 관세음보살님 아닙니까? 하루 천배를 100일 동안 그 여름에 .
여름이라서 더 힘들었던것 같아요. 그래서 모신 부처님이니까 들어 올때
“ 부처님 저 왔습니다.” 하고 인사 좀 잘해요. 그래서 출가라 하는 것이 얼마나
기이하고 기이한 일인지 저는 요즘 출가한 분들을 보면서 자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도님들은 출가한 사람을 잘 도와야 하고 외호(外護)해야 됩니다.
출가자들을 절대 험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도들이 딴데서 들을수 없는 오늘
출가재일이고 해서 제가 느끼고 있는 바에 대해서 네가지정도 이야기 하겠습니다.
재가불자들 입장에서 출가자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첫 번째: 수행자(행자를 포함해서)에게 딴생각으로 접근하지 마라.
벌써 의미를 다 아는지 웃으시네. 수행자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연예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얘기할때도 1미터 떨어져서 이야기해요. 스테판의
발음이 " stephen" 스테판이라고 되어 있는데 미국 사람들은 “스티브”라고 말을
줄여서 합니다. 그래서 미국말이 어려운 겁니다. 원말이 있고 줄여서 말을 하고
어렵죠. 스티브 행자는 아주 귀공자 스타일로 키도 크고 영국출신이니까 영어는
아주 정통이죠. 그렇다해서 너무 가까이서 “ 행자님, 우리 hug해봅시다.
(안아봅시다).한다거나 미국식으로 “ 스님 악수한번 할까요?” 이렇게 하면
제가 가만 안놔둘 겁니다.^^ 절대 안될 일이지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출신 제 상좌들을 우리 보살님들이 몇 명 데려갔어요. 지금 잘 사는지 모르겠어요.
스님이 여기서 절을 떠나면 잘 사느냐?
이미 이사람은 출가에 맛을 본 사람이기 때문에 세속에 나가서 못살아요.
그러면 그것까지 책임을 지느냐 못지잖아요. 제가 아는분 스님중에서 출가한지 10년쯤
됐는데 절에 가보니까 멋있는 스님이 있어요. 보살님의 딸이 나이가 서른쯤 되었는데
시집을 못간 딸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딸하고 스님하고 결혼을 시켰는데요.
나중에 스님이 폐인이 되어 버렸어요. 절 생활 하다 나갔으니 적응도 안되고 재미도
없는 거요. 조금 우스운 얘기 같지마는 수행자에게 딴생각으로 접근하지마라
“ 접근금지” 알았지요.
“ 네 ” 슐팀스님도 계시고 외국스님들도 계시고 다른 분들도 계시는데 스님
공부하도록 도와야 됩니다.
두 번째: 수행자를 흉보지 마라.
수행자를 절대 흉보면 안됩니다. 초심자라 해서 초심자. 막 출가했기 때문에
법력이 없겠거니 생각하는 것도 착각입니다. 어찌보면 초심자가 제일 마음이
순수하고 법력이 있습니다. 만공스님의 제자“수월”이라는 큰스님이 계셨는데
행자때 만공스님께서 어디 갔다 오시는데 돌던 물레방아가 멈춰져 있어요.
어쩐일인가 싶어서 조금 때가 늦은 저녁이었는데 불을 켜놓고 방아를 찧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수월제자가 방아 밑에 손이 들어가서 잠이 들어버렸어요.
수월스님은 딴걸로 교체를 얻은 것이 아니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많이 해서
도인이 되었어요. 뭐던지 하나만 열심히 하면 되요. 신묘장구대다라니로 큰
힘을 얻은 수월스님. 돌아가던 물레방아가 내려오면 깔려 죽게 되는데. ..
행자때 얼마나 법이 있었는지 돌아가던 물레방아도 행자의법,신심에
감동해가지고 멈춰서있는 겁니다. 만공스님이 꺼내었더니 물레방아가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 사람은 출가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천도재 지내는데 되겠나.
저 같으면 막 출가한 행자한테 내천도재를 지내게 합니다.
저처럼 묵은디기(사투리입니다)가 되면 재비 많이 안가져오나 그런 생각해요
내가 너무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가요?^^
행자는 내힘으로 영가를 천도해야지 이생각 밖에 없어요. 잘 새겨들어야 돼요.
흉보지 마라 했지요. 왜 흉을 봐요. 어디가면 스님이 고기를 먹는다고 그래요.
고기를 먹으면 먹는거지 자기가 고기를 사줬느냐 이말이요. 저거는 맨날 고기먹고.
그렇잖아요. 저거는 맨날 고기 먹으면서 스님이 몸이 아파서 고기 먹을수도 있어요
만약에 스님이 고기를 먹고 다른 일은 잘해요. 고기를 먹었다면 그 스님이 먹은거
지. 스님하고 고기사이의 문제지. 자기가 왜 개입을 해요.
고기 먹어서 생명체를 상하게 해서 만일에 지옥에 갈일이 있다면 스님이 가는거지
왜 본인이 그래요. 그렇잖아요. 신도님들은 스님건강 생각해 본적도 없으면서 왜 자꾸 남일 가지고
헛된 생각을 하느냐 이거죠.
미국에 갔더니 미국에서는 스님이 골프친다고 난리요. 저도 골프 치는거 반대하지 않아요.
저는 골프채를 한번도 잡아본적 없는 사람입니다. 미국땅에서 살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잘 생각해봐요. 허물없는 사람이 없어요. 고기 안먹고 식물만 먹는다지만 시금치 한뿌리
한뿌리가 다 생명체지요. 배추한포기 한포기가 다 생명체지요. 그거 안먹고 어떻게 사느냐
이거죠. 우리는 남의 생명체를 통해서 우리 생명체를 유지하고 있지 않느냐 이거죠. 그것만
해도 우리는 허물덩어리가 아니요. 우리 자체가. 그런데 남의 허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요.
다른 종교 얘기지만 예수님이 뭐라고 했어요. 한여인을 두고 죄없는 사람은 저여자를 돌로
쳐보라고 했지요. 돌치는 사람 없었어요. 죄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말이죠.
어렵게 기연해서 출가한 스님들을 ,왜 흉보느냐 이거예요. 쓸데없이 말이요.
흉보는 자체가 무명이지마는 대부분 탐진치 삼독에 기인해서 시기질투에 기인해서
흉을 보는거 아닙니까? 아주 못된 버릇이지요. 세속에서도 그리하면 안되는데
스님들께 그러하느냐 이말입니다.
세 번째: 수행자의 허물을 대신 지고 가라.
만약에 허물이 있으면 자기가 뒤집어 써라 이말입니다. 적어도 보살은 그정도는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만일에 목탁 좀 못치고 서툴다 이러면 저사람은
염불이 수좌염불이야. 이렇게 말해줘도 되잖아요.
수좌염불이 뭡니까? 선방 다니고 이러다보니 염불이 서툴러요. 조계종 스님들은
대부분 수좌염불입니다. 염불을 전문적인 기관에서 배우지 않고 그냥 우리 도량 같으면
절안에서 구전(口傳)으로 마지밥 내려 먹을 정도로 완전 프로가 아닙니다.
완전 프로로 하는 종단이 따로 있어요. 염불 배우는 종단이.
조계종은 염불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그냥 구전으로 배우는 거지요.
정성이 중요하지 염불소리가 뭐 그리 중요해요. 열심히 따라하자 이렇게 해서
스님의 허물을 덮어서 자기가 지고 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그런 일도 있었어요. 어떤 스님이 이야기를 하는데 “ 자기가 고기를 안먹으면
회복이 안되는 병이 있는데(폐병같은것)한번은 식당 구석에 가서 먹는데 먼쪽에 사람들이
여러명 모여서 소리는 안들리지만 스님은 눈치껏 살거던요.
자기 쪽을 보고 힐끔힐끔 보는게 고기 먹는다고 흉보는것 같데요. 그러니까 주인이
나와 가지고 그 먹는 사람들한테 스님을 변론하는 겁니다..
스님이 가까이 모시는 스님인데(가까이 모시는 스님도 아니죠) 병이 들어서 특별히
오시라 해서 안드시면 안됩니다, 해서 이해를 하시라고. 나중에 보살이 절친한
모시는 스님이 된거죠. 그렇게 해서 허물을 대신해라 이거지요.
왜 그렇게 못하느냐. 미국에서 살다 보면 미국 사람들은 결혼안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봐요. 하다 하다 안되면 동성연애라도 해야되요. 미국땅에서는 동성연애자들이 많아요.
제가 미국 행자들을 데려 오면서 세사람이 다 내한테 한말이 있어요.
“ 스님, 결혼은 어떻게 해요?” 그래서 내가 나중에 생각해보자. 스님생활 하다가
결혼하는 사람도 더러 많습니다.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스님 생활해보고 나중에
네가 알아서 해라. 그쯤했지요. 미국에 있어서는 결혼이라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미국 가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미국생활 하다가 결혼한 사람도 많습니다.
옷을 완전히 벗는 수가 있고 결혼해도 되는 다른 종단으로 가는 스님도 있고 그래요.
한번은 누가 이야기를 해요. 자기가 아는 스님이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도 나오고 박사학위도 받고 우수한 인재가 되었지요. 건강하고 하니까 여자를 만나
아기가 생겨서 낳았지요. 근데 정말 위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사가 그 애를 자기
호적에 올려 줄테니 스님은 미련없이 스님 가실길 가시라고 했어요. 스님의 허물을
대신하고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그게 바로 허물을 대신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사의 인격에 흠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요. 오히려 아는 사람은
참으로 저사람은 대보살이라 그러잖아요. 살다보면 주위에 스님들이 풀먹는 것도
허물인데 허물이 없을수가 있느냐 말이죠. 정말 대보살이라면 한 수행자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수십년 내지는 죽을때 되어야 위치가 잡힙니다. 뒤에서 자꾸 외호를 하고
후원을 하고 그래야지요.
네 번째: 수행자를 도우라. 수행자를 도우라 이랬어요.
수행자들 공부를 돕는게 뭡니까? 혹시 스님들 중에 정말 병이 들어서 올데갈데
없으면 자기 집에 모셔다가 치료를 할수 있어야 되요. 그런 신도들도 가끔 있습니다.
그정도 신심이 되어야 돼요. 우리 감포도량에 선방후원회,그건 바로 스님들 후원하는
겁니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우리절에는 일단 들어오면 외국스님이던지 어떤
스님이던지 관계치 않고 지원할건 다합니다. 써포터 다합니다.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많은 정성과 많은 물질이 필요합니다. 마침 신심있는 한 보살님이 계셔서
“ 스님, 저는 스님들 공부를 뒷바라지 하겠습니다,”연세가 62살이 넘으신 보살인데
벌써 10년전부터 스님들 장학금을 계속 대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다가
“ 스님, 이걸로는 안되겠습니다.” 해서 작년,재작년에 장학회를 만들었지요.
“보덕장학회” 보살님하고 보살님친척들로 해서 기금이 아마 한 일억정도쯤 모았을겁니다.
그걸로 제 상좌들 대학도 가고 공부도 안합니까? 그게 바로 스님들 수행자를 돕는 일이
되는 거지요. 사람없는 불교 우수한 스님 없는 불교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생각해서도
안되는 거지요. 사람이 절을 지키고 스님이 가람을 발전시키고 불교를 홍보하고
그러는 거지요. 스님 없으면 뭐해요. 스님이 그래서 삼보(三寶)라 안합니까?
수행자를 도우라 이말이요. 수행자 공부를 도와주라. 사람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미국가서도 실감을 했습니다. 제가 나중에 여건이 되면 미국 어느
지점에 사람 길러내는 인력 양성소를 차리고 싶어요. 스님을 모으고 거기에 있는
미국사람을 모으고 맨해턴에 공부하러간 젊은 학생들을 모아서 편안하게 공부하고
생활할수 있도록 저는 사람불사가 제일 중요하다.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로 수행자는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그점을 생각해야 됩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가 뭐라 했지요. “수행자에게 딴생각으로 접근하지 마라.”
두 번째는 수행자를 흉보지 마라.
세 번째는 수행자의 허물을 대신 지고 가라.
네 번째는 수행자의 공부를 도우라.
적긴 잘 적으셨네요. 실천을 과연 하실련지요. ^^
합장하세요. 제가 또 한편의 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길손여행에 나오는 시입니다.
도반속퇴(道伴俗退)
그것은 서산 갯마을의 꾸지람이었다.
저녁 노을은 파편처럼 흩어진
제 감정을 추수리고 있었다.
무심한 승합차는 조개 고도의 구멍난 갯벌을 짓이기고
천연덕스럽게 간월암 바다밑을 내달리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도반스님을 생각하면서 쓴 시입니다.
서산쪽에 서산시에 강원 도반스님이 절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절을 운영할 생각은 없었고 계룡산 쪽에서 공부를 하는데 서산 시내에 신도
여러명이 와서 “ 스님, 우리가 절을 만들테니 와서 절을 좀 운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도반스님은 나는 그리할 여유도 없고 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 스님, 그냥 앉아계시면 됩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신도들 손에 이끌려서
갔어요. 점심은 해주는데 아침은 안해 준데요. 가정을 가진 주부보살이다 보니
아침은 자기 가족들하고 먹어야 되는데 점심은 돌아가면서 해주는 거지요.
마침 서른살쯤 넘은 사무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님이 아침밥을 굶고 사시예불을
드리는걸 보니 마음이 아프잖아요. 7시쯤 와서 밥을 해서 스님 밥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남구청 앞에 있었을때 법당처럼 법당 있고 옆에 종무소 있고 공양간에 화장실도
다같이 그 안에 되어 있는 구조였습니다. 가보니 6개월정도 어렵게 살다가 종무소에
사무원 아가씨가 밥을 해줘서 아침밥을 먹고 점심,저녁은 신도들이 와서 해주는걸
먹었지요. 시간이 지나고 6개월쯤 지났는데 무슨 재일이었는데 아침 일찍 아가씨가
와있고 밥을 해서 밥상을 차려서 스님께 드리고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성심리적인 면에서 그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안편하겠습니까?
마음이 안편하지요. 마음이 안편한 정도가 아니고 조금 있다가 화가 나기 시작해요.
저여자가 사무는 안보고 일찍 와서 스님의 밥을 해주다니...자기는 스님이 밥을 먹는지
신경도 안쓰면서 말이요. 아가씨 입장에서는 스님이 배를 굶고 염불하는걸 보니까
안타깝지요. 가족은 있지마는 결혼을 안했으니까 일찍 와서 따뜻한 밥해드렸는데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 그 아가씨가 스님하고 겸상해서 먹더라”
나중에는 집에도 안가고 저녁가지 종무소에 있더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스님이 한번은 저한테 전화를 해서 이일을 어떡하면
좋겠느냐 그래요. 나도 대책이 있습니까?
아가씨의 입장에서는 혼삿길이 막혀버렸어요. 서산 바닥은 좁거던요.
스님이 마음이 아프니까 어쩔수 없이 아가씨를 감당해야 되는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어요. 아가씨의 부모 입장에서 보니 도저히 안되겠지요.
스님은 내가 이생에서는 포기하고 아가씨를 데리고 호주에 가버렸어요.
그래서 쓴 시가 “도반속퇴‘ 시입니다.
일년에 한번씩 전화가 와서 사는게 어떠냐 물어보면 물질적으로는 힘들지만 신도들을
안봐서 마음은 편하다고 그래요. 자기들이 모셔놓고 나중에는 애를 먹이고 뒤로
일년쯤 절이 운영되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이야기 들으니까 신도가 많지는 않았지만
80명쯤 중에 40명은 나가 버리고 40명은 자기들끼리 목탁치고 살았어요.
성지순례도 다니고 그랬어요. 성지순례를 가다가 산허리를 돌아 오다가 10년전에
큰 사고가 있었어요. 차가 굴러서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사는게 더 괴롭지요.
스님에게 그리하면 과보가 없겠느냐 이말이죠.
우리가 신도의 입장에서 출가수행자는 우리가 외호(外護)해야 합니다. 적어도 아까
말씀드렸던 네가지 자세는 늘 견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이런 어려운 세월에 가족중에서
보면 형제도 없고 혼자 독신으로 외아들로 외동딸로 살아가는 얘들이 출가를
잘 합니까? 출가 안해요. 과거 전생에 부처님하고 인연이 되어 가지고 이생애 와서
스님이 되어 살면 그 얼마나 기이한 인연이요. 그러한 것을 참고해서 우리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없으면 불교는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이건 현실적입니다.
미국을 가서 보면 알아요. 물론 부인이 있는 스님도 있지만 극히 한계가 있어요.
독신으로 수행하는 스님들 과거 전생부터 인연이 아니었던들 이렇게 될 수가 없어요.
이 네가지를 늘 생각하면서 불교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 합장 하십시오.
출가재일 발원문이 있어서 한편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만생명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
오늘은 부처님께서 국왕의 자리도 가족과의 안락도 모두 버리시고
생사해탈을 구하고자 출가 하신 날입니다.
이제 부처님의 출가 용기를 거울삼아 새 각오로 법을 배우고 익혀서
실천수행 할 것을 발원합니다.
한없는 옛적에 성불하셨지만 사바세계 중생을 깨우치고 구하고자
출가의 구도를 보이신 부처님의 자비 원력은 만중생에게 빛이요
길이오니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그 길을 믿고 따라서 번뇌도 끊고 고요한 열반을 이룰때까지
서로 존중하고 평화 이루도록 원력을 세워서 정진하겠습니다.
초연하고 흔들림 없이 수행하고 포교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어둠과 차가움을 녹이는 햇살이 되어서 무명에 빠진
중생들을 구하고 세상을 밝혀 가겠습니다.
이발원과 인연공덕으로 이고득락 하기를 지심 발원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제가 다시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오늘 출가재일은 부처님을 기념하는
출가재일이지만 출가재일의 의미를 내마음공부의 밑천으로 내마음
공부의 소재로 삼으셔야 됩니다.
기도 수행숙제 네가지를 반드시 하셔야 하고 스님들 수행자들에 대한
자세 네가지를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오늘 출가재일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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