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의 정식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黃帝功德碑>다. 비문의 글씨는 몽골어 여진어 한자 3개 국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비문은 대제학 이경석이 지었고 참판 오준吳峻이 글씨를 썼다. 나는 최근에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책을 읽다가 어제는 혼자서 삼전도비와 남한산성 행궁을 찾아 갔었다.
조선의 인조 임금은 삼전도 여기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로 항복의식을 했다. 우리나라 최대 치욕의 현장이다. 임금이 푸른옷(당시 천한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청태종에게 삼배三拜 세번 절하고, 구고두九叩頭 아홉번 머리를 조아린 항복의식을 했다.
이때부터 청나라와 조선은 군신君臣관계다. 청나라는 임금의 나라이고 조선은 신하의 나라다.
1637년 1월 30일에 현재 송파공원부근 삼전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계절도 요즘같은 한겨울의 일이다.
삼전도비앞에 서니 주화파 최명길, 척화파 김상헌의 절규가 들리는듯 했다.
병자호란은 인조임금의 삼배구고두례로 남한산성에서의 48일 고난은 종결되지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훗날 효종임금)은 볼모로 잡혀가고 조선의 백성 60만 명 이상이 청군의 노예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갔다.
병자호란은 은 1636년 12월 9일 시작되어 1637년 1월 30일 끝났다.
처음에는 강화도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서 어가御駕는 강화도로 향하는데 발빠른 청나라의 기마병들이 이미 홍제원에 당도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어가御駕의 방향을 돌려서 1월 12일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남한산성은 전시戰時의 수도였다. 최근에 내린 눈으로 흰눈이 쌓인 남한산성 행궁에서는 인조 임금님의 숨결이 느껴졌다.
혹한기에 48일을 남한산성에서 버틴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과 영화는 실감을 더해 주었다.
이날 이후 매년 청나라에 바쳐야 할
<조공 목록>
황금100냥, 사슴가죽200장, 담배1,000근, 수달피 가죽 400장, 다람쥐 가죽200장, 후추10말, 패도26자루, 고급한지1,000권, 용무늬 돗자리 4채, 화문석40개, 흰모시100필, 색색가지 명주2,000필, 삼베4백필, 색색가지 곱게짠 베 1만필, 보통베 1천필, 쌀 1만석
청나라는 조선에게 1639년 가을부터 매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군신관계의 비참함입니다
강화도에 들어가지 못한 후회를 거울삼아 효종 임금은 월미도에 행궁을 마련하여 강화도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 후일을 대비하였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에 푹 빠져보는 것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첫댓글 늘 공부하고 탐구하시는 모습~~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오늘도 화이팅하세요.
귀한 글과 사진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새기며, 읽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오늘도 화이팅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좋은 글과 좋은 책 선한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많은 자료와 공부 공유해 주세요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날 이후 매년 청나라에 매년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