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3 (목)~9.25까지 (2박 3일) 즐거운 한가위 명절이 끝나고 요즘 학교에서 백제문화에 대한 공부를 배운다며 할아버지께
백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역사탐방을 함께 하자기에 백제의 고도 공주, 부여와 익산지역을 답사하며
즐거운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할부지하고 문화탐방한다면 출발전에 집에서 손주와 엄마가 같이 책을 읽어 사전 예습을 하고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
1) 국립공주박물관 관람
공주박물관 입구에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로 출토된 최초의 발견된 것으로 국보 162호로 지정된 석수(진묘수)입니다
백제 역사유적지구(2015)는 공주, 부여, 익산지역을 한 지역으로 묶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잘 조성 및 계속 발굴하고 있답니다.
공주박물관 관람은 코로나 감염으로 인원제한을 시간별로 제한으로 사전 예야 제로 관람을 못하고 주변만 둘러보기로~~~
2) 공주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 답사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답사를~~~
백제의 제25대 왕으로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뒤 혼란에 빠져 있던 백제를 안정시켰다. (재위 501~523)
무령왕은 백제가 강성했던 한성백제의 마지막 왕 개로왕의 아들로 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무령왕은 백제의 왕들 가운데 출생과 사망 연대가 처음으로 정확히 확인되는 왕이기도 하다. 공주 송산지 고분군에서 발견된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지석(誌石)에는 무령왕을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이라고 나타내고 있으며, 그가 62세 때인 계묘년(癸卯年) 오월병술삭칠일(五月丙戌朔七日)에 죽었고, 2년 뒤인 을사년(乙巳年, 525년) 팔월계유삭십이일(八月癸酉朔十二日)에 대묘에 안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은 “신장이 8척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그는 501년(동성왕 23)에 동성왕이 사냥에 나갔다가 좌평(佐平) 백가(苩加)가 보낸 자객에게 칼에 찔려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병사들을 이끌고 우두성(牛頭城)으로 가서 한솔(扞率) 해명(解明)으로 하여금 백가의 근거지인 가림성(加林城)을 공격케 하여 백가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뒤 매우 큰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져 있었다. 무령왕은 고구려의 남하에 맞서 국방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려 노력하였다.
1971년에는 5호분과 6호분의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은 피장자와 축조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중요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고분 문화 연구와 백제사 연구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송산리 고분군은 현재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 돌방무덤인 송산리 1~5호분, 파괴분, 9호분, 29호분으로 분류된 고분을 포함한 다수의 굴식 돌방무덤, 7~8호분으로 구분된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이 알려져 있다.
웅진 지역의 지리적 조건은 방어하기에 좋은 요충지이나 한 나라의 수도로서는 협소하였다. 이에 성왕(聖王)은 무령왕대에 이루어진 안정 기반을 바탕으로 백제의 중흥과 왕권강화를 이루기 위해 사비로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사비 지역은 금강이 감돌아 방어에 유리하고 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한 곳이었다
3) 공주 공산성 답사
백제 웅진시대의 초석을 다진 25대 무령왕의 동상이 공주의 관문, 공산성 교차로에 우뚝 섰습니다.
좌대 포함 9.5미터 높이의 동상은 천5백년 전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갱위강국 선언 국서를 중국에 보내는 무령왕의 위엄있는 모습을 재현했습니다.
공주 공산성은 성벽의 둘레는 2.2㎞ 정도인데, 돌로 쌓은 부분이 약 1.81㎞이고, 흙으로 쌓은 성벽은 약 390m이다. 성벽은 2중으로 축조되었지만, 만하루(挽河樓)터 주변에는 동성왕이 쌓았다고 전하는 무너진 성벽이 있어서 모두 3중으로 축조된 셈이다. 이것은 규모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성 북쪽의 영은사(靈隱寺) 밖에도 높이 7.4m, 길이 43m의 성벽이 2중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돌 홈통인 석루조(石漏槽) 2개가 있고, 그 위에는 너비 2m의 수구문과 문의 주춧돌 2개가 남아 있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거처하였고, 이곳을 거점으로 나당연합군에 대항하는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뒤 822년(헌덕왕 14)에 김헌창(金憲昌)이 일으켰던 반란은 이곳에서 진압되었고, 1623년에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가 잠시 피난하기도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공산성을 끼고 흐르는 금강입니다.
강물 위에는 임시 제작한 부교와 황포돛배 등이 곳곳에 들어섰습니다.
2년 전 공주 금강보의 상시 개방으로 최근까지 모래톱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수심이 낮았지만 공주보 수문을 닫아 담수를 하면서 설치한 겁니다.
4) 공주 한옥마을 숙박 및 체험
공주한옥마을은한국 전통난방으로 구들장 체험이 가능한 시설로 설계되었고, 친환경 건축양식인 소나무 · 삼나무 집성재 사용, 도시 · 현대인들이 머무는데 편리 하도록설계된 신 한옥으로, 가족여행, 수학여행, 기관 · 단체의 워크숍 등 관광과 휴양으로 아주 훌륭한 곳입니다.
그리고 공주한옥마을에 오시면 백제문화를 체험으로 배울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옥마을 곳곳에 휴식공간과 한옥마을 둘레길을 걸어도 좋고, 무인자전거를 빌려타고 작은도시 · 옛도시(古都) 문화유적을 만나셔도 좋습니다
5) 금강 공주보 관광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과 우성면 평목리를 잇는 금강(錦江)에 설치된 다기능보로서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부설되었다. 2009년 10월에 착공하여 총 공사비 2,081억원이 투입되었으며 2012년 8월 준공 완료되었다. 보의 총 길이는 280m이고, 수위조절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문형 가동보(승강식 수문) 3문, 복합형 가동보(전도식 수문) 3문, 콘크리트 중력식 고정보 2문으로 건설되었다. 또한 공주보에는 3,000kw를 생산하는 소수력발전소가 있으며 보의 교각에는 낙하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최상단에는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가능한 공도교가 길이 465m, 폭 11.5m로 개설되어 있으며, 보의 주변 일대에는 생태공원과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석굴암과 불국사(1995), 해인사 장경판전(1995), 종묘(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2000), 경주 역사유적지구(2000), 조선 왕릉 40기(2009), 하회·양동마을(2010), 남한산성(2014), 백제 역사유적지구(2015), 통도사·부석사·봉정사·법주사·마곡사·선암사·대흥사(2018), 소수서원·도산서원·병산서원·옥산서원·도동서원· 남계서원·필암서원·무성서원·돈암서원 등 9곳이 포함된 한국의 서원 등 총 13개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연속 둘째날 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