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42) - 4월에는 꽃길 걷는다(4)
5월 9일의 장미대선을 앞둔 선거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른다. 지난 16일 마감한 대통령후보 등록에 문재인, 안철수 두 야당 후보가 양 강을 이룬 가운데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많은 15명의 후보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수만 명의 회원이 이용하는 빛고을건강타운에는 어제(4월 19일)에 이어 오늘도 유력 후보자의 선거운동원들이 대거 출동하여 머리를 숙이며 주권자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후보자의 아내와 경선에 나섰던 이의 부인이 함께 서 있기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엄중한 상황, 국민 모두 난국에 슬기롭게 대처하여야 하리라. 주말의 가족 행사에서 가문은 의로운 뿌리로 좋은 결실 맺기를, 교회의 예배에서 나라를 평화와 번영으로 이끌 좋은 일꾼이 뽑히기를 기도하였다.
가족 행사로 고향에 모인 주말, 모교인 초등학교 주변의 벚꽃터널이 아름답고 주초에 다녀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경주 일원의 유채 밭이 화려하다. 조선통신사 행렬 따라 살핀 ‘4월에는 꽃길 걷는다(4)를 살펴본다.
1. 천년고찰 은해사와 귀화공신 녹동서원 탐방
4월 17일(월),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전날(4월 16일)까지 서울에서 경주까지 보름 넘게 완주한 일행들은 휴식일인 이날 오전 9시, 영천시에서 제공한 버스에 올라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포은 정몽주기념관,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은해사,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녹동서원 탐방 길에 나섰다.
전날 대구로 이동한 아내와 나는 대구에 사는 처제(일행들과 교분이 있는)와 함께 기차(동대구-하양)와 버스(하양-은해사)를 이용하여 낮 12시경 은해사에서 일행들과 합류하였다. 문경에서 헤어진 후 9일 만에 만난 일행들은 연일의 강행군과 불순한 일기 탓인지 다소 피곤한 기색, 감기에 걸린 이들도 여럿이다.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때9809)년에 창건한 천년 고찰로‘한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는 진표율사의 시구처럼 심오한 뜻을 지닌 팔공산의 대찰이다. 영천시에서 파송한 진민욱 문화관광해설사가 한 시간여 안내하며 성보박물관, 극락보전, 종탑, 거북바위 등의 건립 유래와 얽힌 사연을 흥미 있게 설명한다. 사찰에서 제공한 공양으로 점심을 들고 오후 1시 경 녹동서원으로 향하였다.
오후 2시 경 녹동서원의 한일우호전시관에 도착하니 녹동서원의 책임자인 사성 김해김씨 종친회의 감상보 회장과 김재성 이사가 일행(일본인 22명, 한국인 11명)을 반가이 맞는다. 녹동서원은 조선조 임진, 병자전쟁과 이괄의 난에 큰 공을 세운 모하당 김충선(1571-1642) 장군을 배향한 사당이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주력부대인 가도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우선봉장으로 참여한 후 귀화한 일본인(일본명 사야가), 정부 지원으로 건립한 서원 옆의 달성한일우호관에는 김충선에 관한 사료와 조선시대 한일관계를 조명한 자료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어 역사공부와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충선 장군을 배향한 녹동 서원, 오른 쪽 건물은 달성한일우호관
김충선 장군의 12세손인 김상보 종친회장은 일행을 영상실로 안내하여 환영인사를 한 후 입체화면으로 10여 분 간 그의 행적을 살피게 한 후 김재성 이사와 일본어를 구사하는 해설사를 통하여 전시실의 여러 자료와 서원의 이모저모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경내를 두루 돌아본 후 접대실에서 이어진 다과회에서는 전통한복을 차려 입은 다인들이 정성으로 끓인 차를 대접하며 한일우호전시관과 사성 김해김씨 종친회가 추진하고 있는 한일우호 증진 활동에 대한 다각적인 설명이 이어지고. 김상보 종친회장은 한일우호의 등불 밝히라며 전시관에서 제작한 등잔을 선물하기도. 엔도 야스오 일본대표를 비롯한 일본인들이 미처 몰랐던 김충선 장군의 행적과 한일우호와 실상을 접하며 크게 감명을 받은 듯, 일행 모두 피곤함도 잊은 채 진지한 표정이다.
오후 4시,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녹동서원을 나선 일행은 경주로 출발하고 우리는 대구로 향하였다. 안내를 맡은 종친회의 김재성 이사는 김충선 장군의 14세손으로 아내의 외사촌 매제, 친절하고 짜임새 있게 일행을 맞아준 김상보 회장과 김재성 이사에게 지난 연말 녹동서원에 들렀을 때 적은 소감문을 전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처제는 일행들에게 경주 명산 황남빵을 선물로 드리고.
* 지난 연말에 이곳을 찾은 후 쓴 글의 일부를 덧붙인다.
지난 연말,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녹동서원을 찾았다. 녹동서원은 조선조 임진, 병자전쟁과 이괄의 난에 큰 공을 세운 모하당 김충선(일본명 사야가, 1571-1642) 장군을 배향한 서원이다. 이곳은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는데 김충선 장군이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可藤淸正)의 우선봉장으로 참여하였다가 귀화한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김충선이 귀화의 뜻을 밝히며 조선 절도사에게 보낸 글.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하려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오,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 길의 성곽을 무너뜨릴 만합니다. 아직 한 번의 싸움도 없었고 승부가 없었으니 어찌 강약에 못 이겨서 和(화)를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서원 옆에 있는 달성한일우호관은 역사공부와 체험학습장으로 잘 꾸며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한일우호관에 들어서니 친절한 직원이 영상실로 안내한다. 입체화면으로 10여 분 간 그의 행적을 지켜본 후 전시관을 돌아보며 관련 자료를 살폈다. 귀화한 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괄의 난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운 일, 22세에 귀화하여 30세에 조선여인과 결혼하여서 지금까지 7,500여명의 후손이 번성한 것, 충실한 삶의 지표를 가훈(한 가지 덕을 닦아서 후세에 백 가지 경사가 오게 하고 한 가지 선을 행하여 자손들이 만 가지 복을 받게 하라 등)으로 남겨준 내용 등 훌륭한 인품과 뚜렷한 발자취를 새긴 그의 삶이 국적을 초월한 인격자로 다가선다.
2. 유적도시 경주에서 개발이 한창인 외동으로
4월 18일(화), 아침 일찍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로 향하였다. 하양, 영천을 거쳐 기차는 한 시간여 만인 8시경에 경주역에 도착한다. 시민들에게 길을 물어 첨성대까지 걸어가니 20분 거리, 5분여 기다리니 신라문화원에서 출발한 일행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첨성대로 들어선다. 신라 선덕여왕(632-647년 재위) 때 천문관찰용으로 지었다는 첨성대는 마침 수리 중, 관리실에 지난해의 지진여파로 훼손되었느냐 물으니 약간의 피해는 있었지만 원래 보수 계획에 따른 수리라는 대답이다. 첨성대 주변의 샛노란 유채꽃이 눈부시다.
천년 고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첨성대 주변에서는 지금도 유적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반월성을 돌아 석빙고를 거쳐 안압지를 지나서 불국사, 울산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따라 선덕여왕릉 입구에서 한적한 도로로 접어든다. 산림환경연구원과 통일전에 이르는 도로는 비교적 한산한 편, 차량들이 질주하는 대로를 걷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이번에 새로 개설한 코스다. 헌강왕릉, 정강왕릉 묘역을 지나 10시에 통일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김원태 한국체육진흥회 경주지부장이 준비해 온 식혜와 떡으로 간식을 들며. 이날부터 사흘간 경주 - 양산구간 걷기에 참가한 오혜란 회원도 맛있는 떡을 가져와서 간식이 푸짐하다.
통일전을 출발하여 하천 길로 접어드니 멀리 토함산과 불국사 주변이 시야에 잡히는 들판 길이 두 시간여 이어진다. 한적하고 운치 있는 길인데 농사짓느라 뿌린 거름냄새가 거슬리는 것이 흠, 매사가 다 좋을 순 없으렸다. 들판 길 걷는 중 전날 은해사 등의 탐방에 동행한 영천의 조선통신사기념사업회 직원들이 나와 일행을 배웅한다. 걷는 도중 오쿠아 코이치 씨는 논바닥에 세운 허수아비의 발음을 묻고 고바야시 카쥬이치 씨는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진입과 관련하여 전쟁의 가능성을 염려하기도 하는 등의 대화가 즐겁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불국사 건너편의 경주 들 길이 편안하여라
12시 경에 시골길을 벗어나 양지초등학교 앞의 큰 길로 나오니 2차선의 도로에 차량이 붐빈다. 한 줄로 서서 조심스런 행보, 북도리의 순지회관과 순지대박수퍼의 화장실을 이용한 후 외동읍 사무소가 있는 구어지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구어로 접어드는 도로변을 다시 걷기는 6년 만, 새로운 고속도로가 뚫리고 울산 - 포항 복선 전철공사가 한창인 주변에 새로운 아파트와 공장들이 들어서 활기찬 모습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을 실감케 하는 발전상이 놀랍구나.
점심도 거른 채 열심히 걸어 외동읍사무소 근방의 목적지에 이르니 오후 2시, 곧바로 길옆의 식당(풍경소리)에 들어서니 점심상이 차려져 있다. 메뉴는 능이버섯 전골, 모두들 늦은 점심을 맛있게 든다. 오후 3시경 경주행 버스에 올라 전날 묵은 경주의 모텔로 향한다. 버스를 대기하는 동안 일행을 살핀 길가의 약국주인이 비타민 음료를 세 박스나 들고 온다. 낯선 이에게 물 한 잔 대접도 쉽지 않은 일, 일행을 보자마자 따뜻한 정을 베푸는 선심이 고맙다.
버스에 오르니 종일 걸어온 길을 30여분 만에 주파한다. 숙소 근방의 사거리에서 먼저 내린 일행들이 터미널까지 가는 우리를 손 흔들며 배웅한다. 경주터미널에서 광주행 고속버스에 올라 집에 돌아오니 저녁 9시, 우정걷기와 문화탐방을 겸한 이틀간의 동행이 뿌듯하다.
첫댓글 수학여행 이후 경주 불국사에 갈 일이 없었는데 덕분에 다시 보게 뵙니다. 비가내려 운치는 있어 보이는데...걷기엔 힘드셨을듯 싶네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