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소년들
한낮의 어둠
하늘 끝자락을 말아 올리던 매캐한 연기
어둠과 어둠이 역사 앞에 내렸지
검은 기차에 실려 강제로 끌려온 어린 소년들
깊은 산속 붉은 물이 흘러내리는 동굴
그들은 동굴 벽에 구멍을 내고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지
굴을 파던 소년들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왔지
폭발음이 들리고 구름 연기가 피어올랐지
동굴 입구까지 돌먼지가 뿌옇게 밀려 나오면
소년들 다시 들어가 가슴에 돌덩이들을 안고 나왔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소년들 굴을 팠어
손톱이 빠지면 피가 멈추지 않았지
동굴은 너무 어두워
돌덩이들이 떨어지면 팔다리가 부러지곤 했지
해와 달을 데리고 굴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거운 돌들이 사라질까
매일매일 정 두드리는 소리에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지
종유석이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부평 지하호ⁱ
함께 끌러온 다른 소년들은 조병창²과
미쓰비시 제강³으로 흩어졌어
그들은 무기들을 실어와 지하호마다 숨기곤 했지
죽은 소년들 구름처럼 떠돌다
동굴을 발견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는 했어
붉은 물발자국이 고이고 고인
녹슨 열쇠가 녹아내리는
깊고 깊은 구덩이들
어두운 굴속에 갇힌 오래된 시간의 뼈마디들
소년들 죽어도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굴을 팠어
굳은 제 심장을 팠어
죽어도 죽지 않는 소년들
죽어서도 계속 굴만 파는
굴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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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태평양전쟁 시기에 일제가 조선의 어린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부평 함봉산 지하호(토굴)는 현재까지 총 24개가 발견되었다.
2)조병창(일본 육군 조병창)은 일제가 1939년에 만든 군수공장이다.
3)미쓰비시 제강三菱製鋼은 일본 전범 기업으로 군수물자를 만들어 조병창에 공급했다.
—월간 《현대시》 2023년 6월호 재수록, 시집 『굴 소년들』 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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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야 / 1968년 인천 출생.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굴 소년들』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