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금오서원 정학당 보물2102호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유학길 593-31(원리 276)
「구미 금오서원(金烏書院) 정학당(正學堂)」은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포함하여 선산부와 연고가 있는 점필재(拈筆齋) 김종직(金宗直), 신당(新堂) 정붕(鄭鵬), 송당(松堂) 박영(朴英),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배향된 금오서원(金烏書院)의 강당으로, 임진왜란 직후 새로 건립하여 변형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이를 증명하는 기록과 현판들이 남아 있어서 서원의 역사와 변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 양식적으로는 영쌍창(靈雙窓)이 남아 있어서 임진왜란 직후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역적 특징과 고유한 특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건축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고 임진왜란 직후 창건된 건물로 조선중기 강당 건축의 모범을 보인다. 금오서원(金烏書院)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처음 금오서원(金烏書院)의 위치는 길재(吉再)가 노년을 보냈던 구미 금오산으로 1572년 봄에 창건하였으나, 선조 8년(1575)에 사액(賜額)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화재를 당하여 선조 35년(1602) 선산부사(善山府使) 김용(金涌)과 지방사림(地方士林)들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건(再建)하였고 광해군(光海君) 원년(元年, 1609) 다시 사액되어 중수(重修)하였으며, 재건 이후 중건 기록이 없이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청방칸에 고주를 사용한 가구구성, 영쌍창, 창틀 구성에서 고식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온돌방 부분까지도 원기둥을 사용하고 부재의 규격을 크게 하였으며, 장식은 배제하여 엄격한 느낌을 주며, 여기에 지붕가구 세부와 공포 형식에서 절제미 등 미학적인 건축 양식과 조형미가 돋보인다. 또한 정면 간살의 경우 정칸에 비해 퇴칸을 한 자 정도 크게 하여 일반적인 건물과는 반대로 하였는데 이는 기능적으로 온돌방을 크게 쓰려는 의도이지만 고도의 미학적 관점이 녹아있는 점이 뛰어나다. 정학당(正學堂)은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역적 특징과 고유한 특징을 간직하고, 건축적으로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며 임란직후 창건된 조선 후기의 강당건축의 모범을 보임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