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목을 산다 / 이 환
아는 이의 전화를 받고 만나러 나온 종로. 부탁해 놓은 일자리와 관련해서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여유 있게 도착해 앉아 있던 나에게 카페 주인이 말을 걸어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찾아들어간 곳은 종로 골목마다 하나쯤 서 있는 하필 사주카페이다.
나무로 태어나셨네요, 내 생일을 받아 적은 그가 하는 말이다. 나는 나무의 기운을 받아 나왔단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구름 아니고 정처 없는 바람 아니다. 나는 살아있는 한 그루 나무이다. 집 근처 솔밭공원이 떠오른다. 천여 그루의 소나무들, 그들 속에 서 있는 나. 갑자기 외롭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카페 주인은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늦가을의 연약한 나무입니다. 가을은 금의 계절이고 금은 나무에게 극이지요. 서늘한 벌목의 기운이 느껴지는 시기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큰 연못을 지닌 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 연못의 물은 고인 물이라 그대로 두면 악취가 난다. 수질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고여 있는 물을 약품 처리와 함께 펌프질해 순환시켜줄 필요가 있는데 그 일을 내가 했다. 공원관리사무소의 구인광고는 술, 담배하지 않는 사람을 원했고 나는 그 기준에 적합했다. 여덟 시 출근 다섯 시 퇴근. 연못물을 한 바퀴 순환시키는 데는 사십 분이 걸렸다. 동작 버튼만 눌러주면 수처리 기계가 알아서 하니 사람이 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루 일곱 바퀴 운전하며 삼일에 한 번 약품을 챙겨 넣는 일이 전부였다.
수처리 기계실은 공원의 숲 속 외진 구석에 있었다. 말이 기계실이지 정문 경비실보다 작은 크기로 푸나무들 속에 들어앉아 잘 보이지도 않았다. 관리사무소와의 거리도 저만치 떨어져 있고 인적도 드문 곳이어서 중고생들이 숨어들어와 담배를 피우다 가곤 하는 곳이었다. 기계가 한 바퀴 돌아가는 시간 사십 분. 그 시간이 지루해 전임자들은 가끔 술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혼자 일하며 출, 퇴근 보고도 전화로만 이루어지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이 면접 때 괜히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좋았다. 성격이 비뚤어서인지 사람을 싫어하는 나는 혼자 보내는 일과가 좋았다.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자리를 뜨면 안 되었다. 하지만 어디 되는 일만 하며 살 수 있는가.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 나는 의자를 들고 나와 나무들 곁에 앉아 있곤 했다. 귀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신경 쓰면서 나무들 사이를 잠깐씩 걷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악수하듯 한 그루씩 만져가며 천천히 걸었다. 청설모도 보고 까치도 보고 지렁이도 실감 나게 많이 보았다. 지렁이가 사는 흙은 좋은 흙이다. 맨발로 걸어도 좋은 부드러운 흙길이다. 나는 나무를 좋아했다.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나는 소원했을까. 바싹 마른 내 몸에도 움 하나 트기를.
부족한 기운을 간단한 방법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카페 주인은 설명한다. 수기가 필요하면 집안에 어항을 두는 식이다. 불이 필요하면 방 안에 난로를 설치하느냐고 내가 짓궂게 말하자 그냥 빨간색을 가까이하면 된단다. 재미있다. 나는 애당초 연약한 나무여서 담쟁이처럼 생을 버티려면 목기를 보충해야한다고 그가 말한다. 목 기운은 푸른색이다.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부족한 생기를 보충하려는 내 무의식의 이끌림으로 설명한다. 물길 쪽으로 뿌리를 내는 나무들의 생리처럼 말이다. 어쩌자고 나는 연약한 나무로 태어났을까. 어쩌라고 이리 외따로이 심어진 것일까.
카페를 나와 네거리에 선다. 인사동 입구가 보인다. 집까지 걸어갈까. 천상병 시인은 수유리에서 인사동까지 걸어 다녔다는 일화가 있다. 막걸리 한 잔의 힘으로 걸었을 것이다. 나도 어느 날 어느때에 술에 취해 걷던 길이다. 그 길을 다시 걸어보려는 내 단주斷酒 유지의 일상. 한때 나는 엉망으로 취하기만 했다가 지금은 회복 중에 있다. 카페 출입문 안쪽에 놓여 있던 제법 큰 행운목 한 그루. 그 사주 카페 주인도 연약한 나무였나 보다.
행운목을 산다. 이름부터가 고마운 나무. 문자 수신음이 울린다. 주문이 접수되어 출고 준비 중이라는 안내이다. 내일 저녁이면 내 가난한 책상 위에 행운목 하나 알약처럼 놓일 것이다. 무엇에라도 마음 의지할 게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신호를 기다린다. 이윽고 푸른 등은 들어오겠고 나는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