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의 바탕.1
강사/김영천
어제 강의 중 多作은
무조건 시를 많이 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즘 기성 시인들 중에 일년에 한 편도 작품을 안 쓰는
경우도 있어요. 시란 것은 아무리 마음 속에 시심을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으면 필요가 없는 것이고.
시인은 시를 써야 시인이지
시를 좋아한다고 시인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숙제를 하듯 늘 시를 쓰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편이라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며칠 만에 한 편씩, 적어도 1주일에
한 편씩은 써야한다고 봅니다.
좋은 작품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계속 써보라는 것이지요.
시를 쓰지 않을 때엔 시작품을 읽고, 생각하고
자기 작품을 고치고
이런 것도 저는 시를 쓰는 행위의 연속으로 봅니다.
다작을 멸시하는 시인들도 있지요.
그러나 불과 수십편 밖에 없는 윤동주도 80까지 사셨다면
수 백, 수 천편을 남겼을 것입니다.
현금의 조병화님, 김남조님, 김춘수님들과 타계하신 서정주님도
아주 다작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 보석 같은 시는 몇 편 안되는데
일 년에 두 세편 써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작에 대해 너무 부담은 갖지 마시되
열심히는 쓰셔야지요.
왜냐하면 한 번 필을 놓으면 영 다시 잡기 힘드니까요.-
저는 이미 이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강의 계획에서
조태일님의 『알기쉬운 시 창작 강의』를
사용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외에도 여러 시
이론 책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서적들이
너무 어려운 표현으로 되어 있어 그대로 옮기지 못함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교재에서는 시 창작을 체험과 기억, 상상력의
세 가지 바탕으로 나누었는데, 우린 이미 제4강에서
<많은 문학적 경험을 하라>는 강의를 들은 바가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복습하는 차원에서 간단히 설명하면 시를 창작
하는 이들에겐 의미있고 인상 깊은 체험, 고향이나 유년
시절의 경험처럼 가슴 속 깊은 곳의 체험,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체험들이 시상이 되고, 시 창작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전에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체험을 씨앗으로 쓴 시를
한 번 감상해보지요
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地圖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壁과 天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歷史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욱 자리마다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1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윤동주,<눈오는 地圖> 전문
이토록 우리의 체험은 우리의 가슴 속에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이 상상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릴케조차도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만약 감정이라면 젊은 나이에 넘쳐 흘러 버릴 정도
로 시를 갖게 될 것이다. 진실로 시는 체험인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시창작의 두번째 바탕인 기억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들이 잘 보존된 창고입니다.
과거의 경험이 기억으로 발전하고 이 기억은 다시
상상력의 근원이 되어 결국은 시를 창작하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의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체험들도 의식
속에서 잘 삭아야 합니다. 모든 발효식품처럼 좋은 식품이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숙성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체험이 중요하다고 당장의 체험은 오히려 감정
에 휩싸여 객관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감정만
노출되는 아주 좋지 않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앞 서 말했듯이 시는 체험이라고 주장했던 릴케도
되도록 체험을 빨리 잊어버리고 그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익어 과일처럼 떨어지는 그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시를 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처럼 시는 체험 그 자체가 아니라 체험의 기억인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김종길의 <성탄제>를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마치 내 체험과 내 기억으로 쓴 시처럼 생각하고 읽어 보세요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봄이면 피는 산수유의 노란 꽃과 붉은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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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어린 시절 심하게 앓던 열병의 체험을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체험의식 속에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는
가난한 젊은 아버지, 약 한 첩 사오지 못하고
눈밭을 얼마나 헤메어 그나마 따온 빠알간
산수유 열매가 약효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껏 화자의 혈액 속에 뜨거운 사랑으로
녹아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화자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더욱 새록
새록 느껴지는 사랑. 열병에 몹시 앓는 아들을
위해 약 한 첩 사지 못하는 가난한 아비의 마음과,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 두 알 남았을
산수유 열매를 찾아 헤메었을 아버지의 절대적
사랑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화자에게 기억으로
다시 살아나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상상력에 대해선 내일 강의해야겠군요.
박의상님의 짧은 시 하나 더 읽고 강의 마치겠습
니다.
<나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른 새벽 꽃밭이었다
물을 한 잔 들고 있었다
꽃 한 포기에 그 물을
천천히 주고 있었다
주면서 반짝 웃고 있었다
그리곤 갔다
해가 떴다
-이어서 작가는 자신의 시에 "기억의 위대함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붙입니다.
아내를 잃고 나서 그가 맞는 세상은 꽃도 꽃이
아니고, 돈도 돈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도 자신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힘이 되는 것은 기억이란
힘이었습니다.
『나의시, 나의 시쓰기』란 책에 있는 그의 해설을 잠깐
옮깁니다.
"세계가 없었던 느낌, 당연히 그 속의 나도 아이들도
<없다>는 느낌이 어떻게 그렇게 <있다>는 쪽으로 달라
졌느냐. 기억의 힘 이외에 다른 설명의 방도가 없다.
기억, 추억, 회상, 반성 이런 힘, 에너지가 아니었으면
아이들이나 나나 전혀 새로운, 낯선 존재였을 것이다."
여러분, 기억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요?. 우린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많은 기억들을 일깨워야겠습니다.
시의 씨앗을 영원히 창고에 잠재울 것이 아니라 깨워서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그 상상력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시 창작의 바탕.2
강사/김영천
먼저 시간에 시창작의 바탕에는 체험과 기억,그리고
상상력이 있다고 했는데 이 시간엔 마지막으로 상상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상력이란 우리가 모두 너무나 잘 아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상상력 하나로 뉴턴이 보이지 않는 만류인력
을 발견했고, 에디슨이 발명품들을 만들어냈지요.
장님이었던 호머가 세계 최대의 훌륭한 서사시를 남긴
것이라든지 청각장애자인 베토벤이 위대한 교향곡을
남긴 것 모두가 다 상상력의 결과입니다. 오직하면
아인슈타인도 "지식보다 더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하였겠습니까?
그러면 문학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의 밑바탕이 되는
이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그 개념을 살펴보면
상상력이란 과거에 체험했던 사물의 이미지를 기억해
내고 이를 다시 재생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어떤 상황에 의해 환기된 감정을 하나의 시 작품으로
형상화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상상을 할 줄 압니다. 상상이란
쉽게 말하면 현재에 없는 그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꿈꾸고 갈망하고 그것들을 표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또한 현실을 새롭게 재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진규님의 <산수유>를 읽고 넘어가겠습니다.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이 바로 지척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떼들, 꿀벌떼
들, 우리집 뜨락에 어제 오늘 가득하다 잔치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만개의 산수유, 노오란 꽃숭어리
들에 꽃숭어리들마다에 노오랗게 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
미터 이상 왕복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
들었던가 그래, 무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 통신망을 갖게 되지 광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카맣게 웅크려
있던 사랑아, 다시 노오랗게 사랑을 채밀하고 싶은 사람아,
그 건 아직도 유효해!
이 시는 벌이 날아드는 노오란 산수유 꽃을 매개로 하여
자신이 나타내려는 생각을 표현하였습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감각으로 받아들여야 하기에 다른 해설은
생략합니다만 아무튼 이 시의 상상력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랑의 속성을 일상적인 자연 정경을 통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정진규는 사물을 새롭게 보고 그것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재구성함으로써 독특한 인식의 차원을
얻어낸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시를 많이 읽어보는 것이 좋으므로 여기에
이수익님의 <산수화>를 올리니 함께 읽어볼까요
세상 물정 어두운 山 하나와
제 갈 길에 취한 계곡물 하나가
서로 잘 만나
단란한 一家를 이루며 사는 곳.
남루도 이쯤이면 괜찮다.
수척한 배낭 메고 入山하는 중늙은이
하나
가물가물 흔들리며 가는 閑中.
이 시에 대한 이숭원 박사님의 해설을 잠깐 빌려봅니다.
"대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하는
것은 시인의 특권이다. 이 시에는 산으로 올라가는
중늙은이가 등장하는데 그가 과연 한가한 마음으로
올라가는지 보는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시인은 그 대상을 거의 자연과 동화된 듯한 상태로 묘사
하고 있다. 한 곳에 붙박혀 있는 산과 끊임없이 흐르느
물을 세상 물정어두운 산과 제 갈 길에 취한 물로 대비적
으로 비유한 것도 시인의 주관적 해석에 의한 변용이다"
그의 해설은 한참이나 더 이어지지만, 생략하기로 하고요.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늘 보면서도 알아내지 못한 것들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시로 형상화해내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더러 쓰라 하면 이렇게 쓰겠지요.
깊은 산
구비구비 골은 흐르고
어디를 그리 급히 가는가
중늙은이 하나
바랑을 매었네
구름은 저리도 한가로운데.
이 시는 내가 지금 급조한 것인데 위의 시와는
그 품격이 다릅니다.
밑의 시는 자기가 보는 것을 아무 상상력의 재
창조 없이 그대로 사생화 그리듯이 그려낸 것이고
위의 시는 그야말로 자기의 모든 체험들을 녹여
상상력을 발동시킨 훌륭한 시인 것입니다.
초보이신 분들에겐 아직 조금 어려운 단계이지요.
그래서 아래에 제가 강의하면서 바로 써내려간
그런 시이어도 만족합니다. 우선은 그렇게라도
시가 되겠다하는 것들은 바로 시로 옮겨보십시오
그리고 어느 정도 되면 그 시들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보십시오.
자, 그럼 오세영의 <음악>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잎이 지면
겨울 나무들은 이내
악기가 된다.
하늘에 걸린 음표에 맞춰
바람의 손끝에서 우는
악기
나무만은 아니다
계곡의 물 소리를 들어보아라.
얼음장 밑으로 공명하면서
바위에 부딪혀 흐르는 물도
음악이다.
윗가지에서는 고음이
아랫가지에서는 저음이 울리는 나무는
현악기,
큰바위에서는 강음이
작은바위에서는 약음이 울리는 계곡은
관악기,
오늘처럼
천지에 흰눈이 하얗게 내려
그리운 이의 모습이 지워진 날은
창가에 기대어 음악을
듣자.
감동은 눈으로 오기보다
귀로 오는 것,
겨울은 청각으로 떠오르는 무지개다.
정말로 상상력의 극치이지요.
우리가 늘 들으면서도 귓가로 흘러버리는 소리들을 잡아
하나의 심포니로 만들고 있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겨울 날 우리들의 귀에 익은 일상적인
소리들을 전혀 새롭고 신선한 것들로 바꾸어 놓고 있습
니다.
여기서 잠시 조태일님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예전에 들을 수 없었던 자연의 소리를 시적 공간 속에
서 아름다운 세계로 창조해놓은 것이다.독자들은 이러한
창조된 세계 속에서 자연의 소리가 빚어내는 오묘하고도
깊은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체험 역시
독자들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시인으로 하여금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을 변용하여서
그에 값하는 새로운 의미와 세계를 창조하게 하는 힘이
면서, 독자에게는 그 창조된 세계를 체험하고 공감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상력이 시인과
작품과 독자를 한데 묶어주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정현종님의 <사물의 꿈>을 한 번 읽어볼까요?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부비며 나무는
소리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아주 짧은 시이지만 의인화된 나무는 여러가지 우리
삶의 이미지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이러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미지들을 통해 황홀한
한 생명체로서의 나무의 존재를 체험하고 그 것의
구체적인 형상까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좀 길어졌지만 좋은 시 한 편을 더 올리니
조용히 묵상하듯 실지 시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셔서
맘껏 상상력의 세계에 심취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준관의 <부엌의 불빛>
부엌의 불빛은
어머니의 무릎처럼 따뜻하다
저녘은 팥죽 한 그릇처럼
조용히 끓고,
접시에 놓인 불빛을
고양이는 다정히 핥는다.
수돗물을 틀면
쏴아 불빛이 쏟아진다.
부엌의 불빛 아래 엎드려
아이는 오늘의 숙제를 끝내고
때로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이 등유가 되어
부엌의 불빛을 꺼지지 않게 한다.
불빛을 삼킨 개가
하늘을 향해 짖어대면
하늘엔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첫별이
태어난다
시 창작의 단계1
강사/김영천
시 창작의 단계는 따로 학문적으로 정립된 항은 아닙니다.
이는 다만 조태일님의 분류에 따르는 것이며, 이제 껏
강의해온 이야기들을 네 단계로 정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루이스란 비평가는 시 창작의 과정을
1.시의 씨앗을 얻는 단계
2.씨앗의 성장과 발전의 단계
3.구체적 표현을 찾는 단계로 나누었는데
조태일은 여기에 시다듬기 과정을 하나 더 첨가한 것입니다.
이는 그도 교재에서 밝힌 바 있지만 정답일 수 없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마다 시 창작과정이나 그 방법은 천차만별
이며 천인천색이기 때문입니다.
1)시의 씨앗 얻기
루이스는 시의 씨앗 얻기를 가리켜 "그 것은 어떤 감정,
어떤 체험, 어떤 관념, 때로는 하나의 이미지나 한 행의
구절일 수도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불현듯 스쳐오는영감, 무의식 속에서 툭,하고
떨어져나온 하나의 생각, 강력한 심리적 충격이나
어떤 인상들일 수 있겠습니다.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 모를 충동에 의하여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생기게 하는 것들이 모두 시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시를 하나 읽어 보고 살펴볼까요?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별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이는 신경림의 <갈대> 전문입니다. 그러면 신경림은
어디에서 이 시의 씨앗을 얻었을까요? 시인 본인의
말을 들어볼까요?
"내 고향 마을 뒤에는 보련산이라는 해발 8백여 미터의
산이 있다. 나는 어려서 나무꾼을 쫓아 몇 번 그 꼭대기
까지 오른 일이 있다.
산정은 몇만 평이나 됨직한 널따란 고원이었다. 그 고
원은 내 키를 훨씬 넘는 갈대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강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에
갈대들은 몸을 떨며 울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갈대들의 울음에서, 나는 사람이 사는 일의 설움 같은
것을 느끼곤 했었다"
이렇듯 시의 씨앗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체험한 데서
얻을 수 있긴 하지만,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좀더 의도
적이며 집중적인 태도로 씨앗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모임에서 산행을 하더라도,
그저 옆사람과 재잘재잘 이야기만 하고 올라가서
밥먹고 술먹고 그냥 내려왔다가는,시를 쓰기 위해
고민하며 무엇인가 떠올리려 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지만 반드시 메모할 만한 연필과
노트를 가지고 가서 작은 풀꽃의 이름을 동행에게
물어서 적고, 그것들의 상태도 메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옹기 종기 모인 것이 병아리떼 같다든지, 잎은 초라한데
꽃이 예쁘고 향기가 천리는 갈 것같다든지,
꽃이름을 모르면 그려가지고라도 오는 것이 좋습니다.
시 창작의 단계.2
강사/김영천
지난 시간에 우린 시창작의 네 단계 중 우선 씨앗
얻기와 씨앗의 성숙과정에 대해서 공부한 바가 있
습니다. 이번 연휴 동안도 아마, 새로운 씨앗을
가슴에 많이 품어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는
매사를 시의 씨앗으로 보려고 하는 노력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지겠지요
오늘은 그 연속적인 강의로 세번째 단계인 구체적
인 언어찾기를 한 번 이야기해 볼까요?
우리는 시의 씨앗도 심었고,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하여 이제 무성히 자라기 까지 했습니다만, 열매를
맺는 과정을 위해선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야합니다.
전에 누구시던가. 시를 쓰는걸 산모의 해산
고통에 비교하신 분이 계시는데요. 정말 그와 꼭
같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 건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시인은 적당한 시어를 찾기 위해서 정신
집중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알맞는
시어를 찾기는 매우 힘이듭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도
없는 새벽에 일어나 시를 쓰곤 했구요. 시를 쓰다
막히면 노트를 덮고 남의 시를 읽곤 했지요.
이렇듯 정신집중을 하기 위해 시인들은 아주 괴팍한
버릇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요. 보통은 커피를
계속 마시거나, 줄담배를 피워대지만,실러는 서랍에
사과를 넣어놓고 그 향내를 맡는 버릇이 있었다하며
웃으운 이야기이지만 온통 옷을 다 벗어부치고서야 시
를 쓰는 괴벽의 시인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무조건 시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이 번에 자기 스승인 서정주를 공격해서 구설수에 오른
고은은 서정주를 '언어의 정부'라고 칭할 정도로 서정주
시인은 언어 구사력이 능수능란했지만 그에게도 이런
고통은 마찬가지이었습니다.
그가 <국화옆에서>를 쓸 때 맨 먼저 쓴 것이 1연이
아니고 3연이었다합니다. 3연을 써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는 사이에 1연과 2연의 이미지가 저절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 때의 심정을 시인은 "그 것은 마치 내게
있어서는 어느 구석에서 잊어버렸다가 앞서 찾아내어
쓰게 되는 낯익은 내 옛날의 소지품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감개이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연만은 사정이 달라 며칠이나 걸렸다 합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볼까요?
"그러나 마지막 연만은 좀처럼 표현이 되지 않아, 새
벽까지 누웠다 앉았다 하다가 그만 자버리고 말았습니
다. 그리하여 이 것은 며칠 동안 있다가, 우연히 어
느날 새벽 눈이 뜨여서 처음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밖에선 무서리가 오는 듯한 늦가을의 상당히 싸늘한
새벽이었는데, 내가 안 자고 혼자 깨어있다는 호젓한
생각 끝에, 밖에서 서리를 맞고 있을 그 놈을 생각하자
그것이 용이하게 맺어졌습니다."
언젠가 한 번 인용한 시이기도 하고, 지면상 번거러워
여기 옮기지 않으니 위의 글을 참조하며 여러분들이
각자 한 번 <국화옆에서>를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오세영님의 <열매>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가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쪽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늘 보면서 그냥 쉽게 지나처버리는 것
들이지요. 과일마다 다 둥글다 하는 것 여기
모르는 분들 없쟎아요.
능금을 먹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시의 씨앗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제 주위의 아주 평범한 곳에서
시의 씨앗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 시는 "자기 희생으로서의 사랑의
정신"을 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 이 시인의 생각이 어떠한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 표현하는지 시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
습니다.
"이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상상력의 작용이다.
그리하여 우선 나는 열매와 대립되는 사물의 기능성
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원래 대립되는 기하학적
모형은 직선이라는 것, 직선은 원과 달리 둥글지
않고 날카로운 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의 지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서 생각은 다른 한 편, 원의
상징이 열매라면 직선의 상징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
으로 발달하여 갔다. 물론 쇠창살이나 젓가락이나
텔레비젼 안테나 따위의 사물도 직선의 상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소제인 능금의
전체 의미만으로서는 적합한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쇠창살이나 젓가락이나 텔레비젼의 안테나
는 인식 대상인 능금과 아무 관련 없는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즉 그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인식 대상으로서의 능금과 관련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드디어 나뭇가지와 뿌리, 가시
라는 직선의 상징들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뿌리와
가지는 안테나나 젓가락, 쇠창살 등과 달리 능금
열매가 거느리고 있는 사물이라는 점에서 무책임한
사고인 환상과는 달리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시인의 말을 들어볼 때 우리가 시를 쓰며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말들을 조합해 놓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며 그렇게는 결코 좋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의 씨앗의 성장이나 발전, 그리고 가장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시의
지망생들은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과 아울러 깊이 있는
시적 사고, 정확한 언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
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 다듬기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조태일은 지금 막 태어난 시를 천연의 옥이라고
한다면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 옥을
더욱 정련되고 세련되게 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에 제가 누구에겐가 이 말을 한 것 같습니
다만, 즉석에서 다듬는 것이 아니라 며칠이나 몇 주가
지난 후에 하는 것이 좋다구요. 지금은 똑같은 감정과
정서를 가지고 하기에 다듬는 효과가 적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작가의 입장이 아닌
독자의 입장으로 보고 객관적인 마음의 상태에서
다듬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 창작의 네 단계가 모두 끝이 났지만
여러분들을 위해서 좋은 시를 몇 편 올릴 테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를 쓰다가 막히면
좋은 시들을 꺼내놓고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강연호 님의 <상처>
밑바닥 상처는 고요한 법이라고
나 어느 날 무심코 중얼거렸네 강물 위
빗방울에 흔들리는 무수한 파문처럼
사소하게 가슴 다치면서 살아왔는데
하지만 그것도 아파서 자주 엄살 떨었는데
저 파문 이는 강물의 표면
한없이 부드러운 물살도 제 힘 다 해
빗방울 튕겨내는 걸 보았네
깊은 속내까지는 덧내지 않으려
멈칫멈칫 맺혔다 풀리는 동심원을 보았네
이 사내 저 사내 다 받아주는 작부의 자궁 속에도
딱딱한 각질처럼 굳은 순정 하나는 있어
열리지 않고 끝내 고요하리라
나는 너무 쉽게 가장했나 보네
돌아보면 한 뼘도 못 되는 길을 걸어오면서
상처 아닌 상처를 들쑤셨더랬네
그 길의 상처에 빚 갚을 일 많았네
나 어느 날 강물 위 무수한 파문을 따라가다
무심코 중얼거림에 걸려 넘어졌지만
가슴 밑바닥 돌쩌귀처럼 박힌 상처는
꿈쩍도 않고 고요했네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네
강희안 님의 <돌>
머물렀다 다시
떠나는 것 있데
삐비꽃 안고 쓰러진
깊은 강 물결 소리
뿌리 밑 남은 힘으로
풀이 다시 일어나데
시간의 깊이로 묻힌
파란 달빛 그늘 아래
강물이 지고 가데
시 들이 좀 어려운가요?
그러나 여러분들도 이런 시는 많이 읽어보셔야 합니다.
난해한 시는 읽으실 필요는 없지만 여기 올리는
시들은 아주 잘 표현된 것들이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아주 흔히 보면서도 시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시로 써낸 좋은 시 한 편을 마지막으로
읽으며 오늘 강의를 마칩니다.
고형렬<선암사>
그 곳에 가면 셋이시면서 혼자이신 분이
단연 방문을 닫아놓으시고 고요히 계십니다.
한 분은 오른 편 한 분은 왼 편에 계신데,
어느 한 분도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혼자이면서 셋으로 계신가 봅니다.
변함이 변함 없어 세상이 무료하지 않아
구멍이 없으면서 온몸으로 숨을 쉬시면서
남해를 숨긴 산을 내다 보시고 턱, 앉아 계십니다.
한 세월 더 넘게 셋이 방문을 내다보시며
말 한마디 나눔이 없이 아침저녁을 맞습니다.
아무래도 선암사 대웅전의 삼존불에서 시의
씨앗을 얻은 것 같은데요. 그 전개과정을
보면 은연 중에 기독교의 삼위일체 이론이
접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를 위해선
이렇게 전혀 다른 요소가 하나로 녹아들어
시를 만들 수도 있으니 우리가 아는 것 하나
하나가 다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여러분의 지식, 지혜, 마음들을 아주 소중히
다루시기 바랍니다.
혹시 절에 갔다하면 약수나 마시고 대웅전 부처나 보고
오는 것보다는 절의 내력을 적고, 부처님이나 문의 무늬
핑경(풍경)의 소리, 노거수(오백년, 천년된 나무들의
내력) 절에 있는 전설, 절의 뜰에 자라는 꽃들, 기타
우리가 그냥 흘러지나가버리는 여러가지 메모장을 빽
빽히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전혀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집안에서 일을 하다가도
문득 창 밖을 내다 보다가도
정말 갑자기 시의 씨앗이 툭 튀어나오면 바로 적어놓으라
는 것입니다. 물론 그 즉시 시를 쓰기시작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곧바로 메모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있다 써야지 하고 일이 끝난 다음엔 이미 기억은
사라지고, 내가 무엇을 시로 쓸려했더라 아무리 생각
해도 이미 늦습니다.
2)씨앗의 성장
이 과정은 부단히 시적 사고를 가짐으로서 쉽게
해결할 수가 있지요.
좋은 글을 쓰는데 3多를 주장했던 구양수는 다독, 다작
보다 多商量을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다상량은
생각을 깊고 풍부하게 많이하라.
사유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젊은 학생들이 구양수더러 묻기를 나랏일에
그렇게 바쁜데 무슨 틈을 타서 그렇게 훌륭한 글을 줄줄
쓰느냐하니, 나는 정말 시간이 없다. 나의 시간은 전부
억지로 짜낸 시간이다 고 대답했습니다. 이어 어떻게
시간을 짜내는가 묻는 학생들에게 아주 솔직히 대답합니다.
첫 째는 말을 탈 때, 둘째는 잠 잘 때, 셋 째는 화장실
에서 일 볼 때 시간을 짜낸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업무외의 시간은 모두 시적 사고를 하는데
썼던 것입니다. 우리도 시를 쓰는데 따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이나 책상 앞에 백지를 펴놓고 시험
보듯하는 것은 오히려 시상을 막는 일입니다.
정말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도 어딜 가나 메모지를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던, 손가락질을 하던 일일이 메모하곤 합니다.
자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얼른 일어나서 단 한 줄의
시상이라도 적어놓고 잠을 잡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그 시상에 연상 작용으로 시를 쓰곤 하였습니다.
이 시적 사고는 무수한 체험들과 상상력이 가장 큰
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부분입니다.
조태일에 의하면 "과거의 체험들이나 또는 앞으로 겪게
될 체험들이 적당한 햇빛과 물, 바람이 되어 시의 씨앗
들에 싹을 틔우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상상력은 여러
체험들을 유기적으로 조직하면서 질서를 부여하고 구체
적인 이미지들을 만들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적
사고란 상상력을 펼치면서 시의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 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 한 편을 읽어 봅시다.
감정을 실어서 소리를 내어 읽어봅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전문
시가 참 좋지요.
이 시를 쓰게된 과정을 씨앗을 얻으면서부터 성장하는
과정까지를 시인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곧 종이쪽지를 꺼내 '샘=슬픈 눈'이라고 메모를 해놓고
역시 평소의 버릇대로 한동안 이리저리 생각을 굴렸다.
그러자 이윽고 떠오른 것이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이라는 구절이다.마음에 드는 구절이
었다. 성숙한 영혼의 샘터에 고이는 맑은 물은 승화된
고통의 표상이 아닌가. 눈은 그러한 영혼의 창이다.
그리고 그 눈에는 그 수많은 고통을 참고 견디는 동안에
느꼈던 갖가지 슬픔이 어려있을 수 밖에 없다.
다시 생각에 잠긴 내가 한참 만에 찾아낸 것은 '낙화
속의 이별'이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 발견이
우연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상 그 '낙화 속의 이별'은 그 무렵 내가 막연하게
품고 있던 감정의 한 갈래와 유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로부터 버림을 받은
듯한 감정이었는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다. 그러나
한창 여자가 그리운 나이에 객지에서 혼자 고달프게 살다
보니 때때로 그런 실연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 해서 어느 날 나는 자신의 그 상상적
실연을 꽃잎이 지고 있는 벚나무 아래서 헤어진 아름다운
이별이었다고 역시 상상적으로 미화해 본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낙화 속의 이별'이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용문이 좀 길지만 왜 이렇게 다 여러분께 말씀드리냐면
우리가 시를 쓰는 방법의 예시와 같아서 입니다.
이제 그의 결론 부분을 다시 들어볼까요?
"일단 떠오른 그 말은 곧 새로운 연상 작용을 일으켰다.
그것은 낙화 자체가 바로 꽃과 꽃나무의 아름다운 이별
이요. 또 장차 열매를 기약하는 값진 이별이라는 생각으로
발전하는 연상이다. 나는 이 연상의 내용을 처음에 얻은
마음에 들었던 구절과 결합시켰다, 그랬더니 낙화의 이별
의 고통이 인내를 통해 '슬픈 눈'을 가진 '성숙한 영혼'을
이루어 간다는 줄거리가 잡히게 된 것이다. 줄거리가
잡히면 시를 쓸 수 있다."
지루하신가요?
어려운 이론보다 시인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시를 써
나아가는가를 엿듣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론 강의와 이렇게 시인이 자기가 쓴 시를 설명하는
것을 한 편씩 넣으면 어떨까요?
그 것이 더 시 쓰기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종해님의 <겨울 메시지>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시들 것은 다 시들고 떨어질 것은 모두 떨어졌다.
들판이여,
목마른 이땅을 기르던 여인들은 모두 집으로 숨고
새벽에 일어나 저희 우물을 긷던
그 부산한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집집마다 등불을 끄지 않고 이 밤에 다들 자지 않지만
오오, 이제 바람이 불면 마을의 문들은 꼭꼭 닫으시오
허나 대문에 빗장을 내다지르고도 저희는 잠들지 못한다.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익숙하게 비벼댈 이 깊은
어둠속에서
저희의 불빛은 더 희게 번쩍인다
캄캄한 숲속에서 컹,컹,컹,컹 울리는 저 울부짖음
사나운 한 마리 짐승의 울부짖음이 차라리 그리운
이 외롭고 어두운 날
목마른 대지에 젖을 먹여 기르던 여인들은 모두
집으로 숨고
들판은 새로 태어날 제날을 안고 머리를 숙이었다
이 외롭고 어두운 날, 아버지여
시들은 풀꽃의 죽지 않은 뿌리, 짓밟히고 억눌린
모든 것의 얼굴들에
이제 곧 저희의 배가 가까이 옴을 예언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