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잉친이 여러분. 실리콘밸리로의 이직을 꿈꾸며(아님) 화상영어를 1년째 하고 있는 김잉친입니다.
1회에 30분씩, 주 3회로 화상영어를 시작해 (한 65시간 정도 한 것 같네요) 정말 만 1년을 채웠는데요. 딱히 이거 한다고 원어민이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얻어간 것은 있어 팁을 좀 남겨보겠읍니다.
1. 선생님께 구라치지 맙시다.
화상영어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실력"이라기보단 "자신감"에 가깝습니다.
자신감이 중요한 이유?
영어 회화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는 "올바른 영어"를 구사하지 않으면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다 큰 어른이 "할머니 맘마 잡수셨어?" 라든가 "이모는 스물둘세에요?" 라고 말한다 생각하면 좀 부끄럽죠. 하지만 우린 학습자니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프리 토킹을 할 때에는 문법과 표현의 적절성보다는 내 생각을 어떻게든 전달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단계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하는 부분이 "구라치지 않는 것"입니다.
토익 스피킹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영어 실력 늘리겠다고 화상 영어하는데 표현 못 하겠다고 구라치는 건 사실상 주객전도입니다. 싫어하는 외국인이 "나 너 좋아해 사귀자"라고 고백했을 때 거절하는 표현을 몰라서 "좋아. 사귀자"라고 대답하실건가요?
그러니 "영화 뭐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영화 안 좋아한다"는 대답을 하기 귀찮으니 좋아하지도 않는 마블 영화를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상황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근데 그럼 영화 안 좋아하는 이유 설명을 도대체 어떻게 하냐고요? 다음을 봅시다.
2. 선생님이 수준을 맞춰주도록 유도합시다.
어차피 화상 영어는 학생-선생 관계의 수업입니다. 선생님들도 학생이 개쩌는 화술을 가지고 있을거라 기대 안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난 영화 보는 거 안 좋아해" 정도를 그냥 "I don't like watching movies." 정도로만 이야기 해도 튜터는 "why?" 정도로 다음 내용을 풀어나가도록 가이드할 것입니다. 그 다음엔 천천히 이유 하나하나씩 정리하며 말해보면 되겠죠. "나는 나가는 걸 안 좋아한다" 혹은 "나는 오래 앉아 있는 걸 싫어한다" 등... 너무 간단해서 애기들 말 같나요? 간단하게 말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죠. 한국어 직역하듯이 말하면 오히려 상대방이 "왓더퍽 이새기 뭐라는거야 쉽게 좀 말해" 라고 할 겁니다.
화상영어의 장점은 1:1이며, 인터랙티브하다는 점입니다. 유능한 튜터는 학생의 회화 수준에 맞춰서 자신이 사용할 어휘와 말 속도를 조절해줄 수 있습니다. 이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합시다.
3. 단골 튜터를 만들자
튜터 여러명을 만나다 마음에 드는 튜터를 찾아냈다면 수업을 여러번 계속 진행하도록 합시다.
튜터와 처음 만나게 되면 자기소개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매 수업마다 다른 튜터를 만나게 되면 결국 학생은 자기소개의 달인이 되어버릴 뿐, 다음 이야기는 진행할 수 없게 됩니다. 영어로 소개팅을 하겠다는게 목표라면 이 방법도 뭐 나쁘진 않겠네요
그러니 단골 튜터를 몇 명 정해서 수업을 계속 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나름 서로의 안부도 묻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꽤 재미가 있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긴 재미있는 일화들이 몇 개 있는데, 마지막에 쓰겠습니다.
4. 가급적이면 사전 찾지 말자
예전에 영어 회화 수업을 받을 때 원어민 교수가 하던 말이 있습니다. "사전 찾지 말아라".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 데,
첫째로는 "막힐 때 찾아보는 식으로 해결해버리면 나중에 어차피 기억이 안 난다" 가 있고,
둘째로는 "사전은 맥락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으므로 정확하지 않다"가 있습니다.
spontaneous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수능 영어에서도 종종 나오는데요, "자발적인"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원어민 교수님(미국인임)은 "나는 태어나서 이 spontanoeous라는 단어가 jabaljeok-in 이라는 그 의미로 쓰이는 걸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늘부로 그 뜻은 머릿 속에서 지워버려라" 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사전만 찾아서 한국어 표현을 치환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위라는 것이죠.
'아니 그럼 ㅅㅂ 단어를 모르는 데 어케 말함?' 이라고 말하실 것 같습니다. 쉽게 풀어 쓰면 되죠. 알고 있는 단어를 최대한 활용하면 튜터에게도 어떻게든 전달될 것이고, 튜터는 "그건 OOO라는 단어가 따로 있어" 식으로 알려줄 것입니다. 이 방식은 '한정된 단어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는 방법' 끝에 '결과'를 얻게 되니 표현력을 늘리는 데는 매우 좋습니다.
정 안 되겠다 싶을 때에만 사전을 씁시다.
5. 실력을 높이고 싶다면 따로 공부를 하자
사실 표현, 어휘는 따로 공부하는 게 더 효율이 좋습니다.
경험상 튜터들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지적해주지 않습니다. "너 방금 그 단어 이해는 됐는데, 이런 단어를 쓰는 게 좋아" 등의 조언을 해주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해주는 경우는 드물었고, 또 "나는 이런 의도를 전달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해야하지?" 싶은 부분들은 영어권 화자인 튜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언어들 중 1:1 직역이 잘 되는 언어 관계는 별로 없습니다. 영어로 예로 들자면
"야 너 방금 뒤질뻔 했어!" 는 "You were going to die!" 가 아니라 "It was close!" 가 더 적절합니다.
"진짜 억울하네!" 는 "It's unfair!" 가 적당합니다. 영어에는 "억울하다"에 해당하는 감정 표현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불공정하잖아!" 식으로 본인이 빡쳤음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나서 "방금 이런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영어로는 뭐라고 했을까?" 라면서 따로 찾아보고 학습합니다. 이런 식으로 틈틈이 "영어다운 표현"을 찾아서 라이브러리에 저장해두는 과정을 따로 해주는 게 좋습니다.
6. 화상영어 하며 생긴 썰들 푼다
마지막으로 화상영어를 하면서 튜터들과 나눴던 대화 중 재미있었던 것 몇 가지를 풀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A. 김치 냉장고
튜터 : 안녕? 잘 지냈니?
잉친 : 너야말로 잘 지냈니?
튜터 : 지금은 괜찮지. 하지만 지난 주에는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었단다.
잉친 : 그것 참 안 됐구나. 지금은 건강하니? 후각은 어때?
튜터 : 나는 별 문제 없었어. 울 엄마도 같이 걸렸는데.. 엄마는 정말 냄새 못 맡으시더라.
잉친 : 한국에선 어느 유튜버가 취두부라는 냄새나는 음식을 맡고 후각을 되찾은 사례가 있어
튜터 : ㄹㅇ임? 취두부가 대체 뭐해먹는 음식이길래? 그 정도로 냄새가 심함?
잉친 : 어.. 이름부터 취두부니까? (영어로 stinky tofu라는 걸 첨 앎). 이거 아마 발효음식일거야. 한국으로 따지면 김치와 같은 원리의..
튜터 : 김치가 뭔데 십덕아
잉친 : 오 김치를 모르는구나! 김치는 코리안 트래디셔널 푸드로, 아시안 캐비지에 레드 칠리 페퍼 파우더와 솔트 등을 섞어 발효하는 음식이야. 한국인들의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지
튜터 : 그것 참 흥미롭구나. 그럼 집에서 그런 걸 만드니?
잉친 : 물론. 한국에는 Kim-Jang이라 불리는 애뉴얼 이벤트가 있어서, 이 때 내 마더와 앤트들이 모여서 1년치 먹을 김치를 제조하는 과정을 거쳐
튜터 : 1년치나 만들어?! 그럼 대체 그걸 어떻게 보관하니?
잉친 : 이 말 하면 다들 놀라던데 음.. 한국에는 Kimchi Fridge가 있어
튜터 : ???????????????????????????????
B. 명왕성
...생략...
튜터 : 방금 대륙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너는 지구상의 대륙들을 다 알고 있니?
잉친 : 이걸 왜 물어보지? 진짜 오랜만이네.. 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남극 뭐 이렇게 되지 않나?
튜터 : 너 방금 오스트레일리아 빼먹었어
잉친 : 오세아니아에 오스트레일리아 들어가
튜터 : 오세아니아가 뭔데 십덕아
잉친 : 구글링 해보셈
튜터 : ??? 뭐지 나 학교에서 이런 거 배운 적 없는데
잉친 : 넌 미국 사람이고, 나보다 나이도 많고 그러니 교육과정이 달랐던 거 아닐까? 너무 충격받지 마.
튜터 : 흠.. 어쨌든. 생각해보면 시간에 따라 바뀌는 과학적? 사실들이 몇 가지 있지. 명왕성.. 너 명왕성 아니?
잉친 : 오 방금 나에게 명왕성을 물어본거니? 명왕성은 퍼시발이란 사람이 발견한 행성(이었던 것)이란다. (나중에 찾아보니 퍼시발은 예측을 한거고 발견은 클라이드 톰보가 함..) 참고로 퍼시발은 옛날 한국에 왔다 간 적도 있어. 지금까지의 행성 발견은 다 유럽 천문학계의 업적이었던 것에 반해 명왕성은 미국 천문학계의 첫 발견이었기에 퇴출을 반대했었지.
튜터 : 뭐지 이새기 내가 뭐 잘못 건드렸나
C. 번데기
튜터 : 안녕? 하왈유?
잉친 : 나쁘지 않아. 배고픈 거 빼고는
튜터 : 왜? 밥 안 먹었어?
잉친 : 보통은 이 시간에 밥 먹는데 튜터링을 잡아버렸으니.. 아니 사실 내가 점심을 샐러드로 먹지 않았더라면 지금 안 배고팠을거야
튜터 : 샐러드를 먹었다니! 다이어트하니?
잉친 : 물론. 닭가슴살 넣어서 야무지게 먹었지. 원래는 아버지가 저녁 차려주시는데 요즘엔 다이어트 때문에 내가 해먹어
튜터 : 요리 잘 하는 편이니?
잉친 : 나쁘지 않을걸? 지금도 부모님 생신이나 결혼 기념일 이럴 땐 스테이크 같은거 구워드려
튜터 : 오 스테이크! 나 들었어. 한국 소는 쌉 하이퀄리티라 비싸다며?
잉친 : 맞긴 한데 난 사실 닭고기를 제일 좋아해. 싸고 맛있고 생산량도 많잖아.
튜터 : (구글링) 그렇네!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소비되는 육류는 닭이라고 나오네!
잉친 : 일단 돼지랑 소는 특정 문화권에서 밴 당하니까 당연히 닭이 1위가 되지 않을까. 닭을 밴하는 문화권은 비건 문화밖에 없어
튜터 : ㅋㅋㅋ 듣고 보니 그렇네. 너는 비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잉친 : 난 비건이 아니지만 그들의 의지에는 경의를 표해. 동물들의 고통을 생각해 육류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거잖아. 그 사상자체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나는 못 하겠지만. 실제로 현대인들은 육류를 과소비하고 있고, 그에 따른 환경 오염 등의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배양육 사업이 발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튜터 : 오 배양육! 나 들어봤어. 그거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하던데?
잉친 : 나도 그렇게 들었어. 하지만 충분히 성숙하면 판도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길 바라야 할 걸. 식량 부족에 대한 다른 대안은 충식이야. 배양육 실패하면 우리 메뚜기 처머거야 함
튜터 : 으으~ 충식 이야기도 들었어. 영양상으로는 오히려 좋다고 하는데 역시 비주얼 상으론 좀 그렇지?
잉친 : 참고로 한국은 이미 충식 제품이 하나 있어. beondegi라고 부르는데, 실크 웜의 번데기를 쪄서 먹는거야. 한번 검색해봐.
튜터 : 오.. 생각보단 덜 징그럽네? 맛은 어때?
잉친 : 맛이 뭐.. 단백질 맛 나지 뭐. 딱히 표현할 방도가 없네. 참고로 한국이 번데기를 식용으로 사용한 건 양잠산업이 쇠퇴하고 나서 남아 도는 누에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 대통령이 "음식으로 만드셈"이라고 명령한 게 계기라고 알고 있어
튜터 : 개웃기네
D. 미친 여자
튜터 : 오 잉친! 네 책상에 붙어있는 저 여자 사진은 뭐야? 여자친구?
잉친 : no. she's just a crazy girl
튜터 : ?
첫댓글 예전에 어학원 다녔을때 겁나 어이없었던게
맨날 아침 일찍 학원 가서 수업하는데 맨날 묻는게 오늘 뭐함?인데 씻고 밥 먹고 준비해서 왔다라고 하면 왜 그거 밖에 안했냐고 뭐라함 겁나 어이없어
말 잘하기는 어려워..
크레이지걸ㅋㅋㅋㅋ
마지막뭐죠
책상에 우정잉 사진 붙여놓은 잉친이
지금은 다 정리하고 오프때 같이 찍은 사진만 붙여놓음
와 대단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화영어 공포증 있는 잉친이들을 위한 꿀팁 고마워~
그냥 크레이지 걸 말하고 싶어서 글 쓴 잉친이
들킴?
저격글ㄷㄷ
계속 연재해주세요
She is an idol star 해줬어야지
사실 korean streamer라고 했고 방송스타일이 어떻냐 하길래 crazy girl이라 한거지만 극적인 효과를 위해 줄였어
ㅋㅋ 오 잼따 실리콘밸리는 어때? 날씨 좋아?
보내줘야 알것 같은데요
마지막 문단 개추박고 감
마지막 글 쓰고 싶어서 이렇게 빌드업을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 나도 영어는 1도 못하는데 문법 다 무시하고 아는 단어들만 자신있게 말해도 외국인들 입장에서 영어 잘하는데? 라는 말 많이 들었어 아직도 그들이 왜 잘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중요한 요소인것 같아
근데 4~5번이 조금 이상한데
따로 공부할 때 그럼 사전이 아니라 대화에 맞는 단어를 이용하는걸 볼려면 방법이 거의 없을거 같은뎅
아 4번은 수업 중에만 한정입니다.
@코끼리는생각하지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