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金煥基, 1913∼1974), ‘항아리와 날으는 새’, 캔버스에 유채, 72.7×53cm(20), 1958
돼지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지난 9월 16일 파주에서 처음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 강화도에도 침투해 돼지들이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역병이 강화도 내의 여러 면으로 번지자 인천시는 이곳 돼지 약 4만 마리를 모조리 죽여 씨를 말려 버렸습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맡겨놓은 애완 돼지 1마리는 주인이 도살을 거부하자 행정대집행으로 안락사 시켰습니다.
아무리 축생이라지만 이런 무참한 도살을 하늘이 용납할까요. 과거 불도저로 구덩이에 돼지를 생매장하던 사람이 못하겠다고 손을 든 영상이 떠오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수 도살은 파주, 연천, 김포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주 강화도 출입 때 길고 긴 차량의 대열 속에서 4번의 약품 살포를 경험했습니다. ‘돼지 흑사병’이라는 이 바이러스에는 치료제가 없다는데 자동차는 무엇으로 소독하는 걸까요? 한번은 멋모르고 에어컨을 가동했더니 소독약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습니다.
해괴한 질병이 상서로운 조짐은 아닙니다. 이 땅에 북한에서 전염된 것으로 보이는 사상 최초의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서 더 그렇습니다. 때마침 정의의 화신인 양 SNS로 온갖 것을 공격해 ‘조만 대장경’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이 나라를 흔들고 있습니다. 내신 서류 위조 등 딸 대입 부정 의혹, 자신도 이사였던 웅동학원 교사 채용과 뇌물수수, 재산 은닉 의혹, 수상한 조국 펀드 등 조국 일가의 의혹은 까도까도 양파라고 비판 받습니다. ‘앙가주망(engagement)’을 권력에 빌붙는 거로 착각한 폴리페서다운 지행일치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동서양이 애호하는 야채이자 구수한 중국 요리 냄새의 근원인 양파를 위선자 조국에 비유하는 것은 가당치 않죠.
내 친구 1명은 “조국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퇴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조국 장관이 자택이 압수수색될 때 현장 검사에게 건 전화를 격려라고 본 것일까요? 그는 ‘신의 한 수’처럼 미디어사에 기록될 100만 명 구독자를 넘긴 유튜브 채널이 왜 신뢰를 받는지 알지 못하거나 대법원 확정 판결 때까지 모든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말을 굳게 신봉하는 모양입니다. 대통령은 조국 씨가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장관으로 임명했죠. 그럼 그렇게 범죄 연루 의혹에 관용을 베푸는 사람들이 병고에 시달리는 전임 여자 대통령은 왜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2년 넘게 ‘묵시적 청탁’ 죄로 감옥에 처박고 끈질긴 구속 재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용기 있는 좌파 논객인 동양대 진중권 교수 말대로 조국 사태는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로 인식한 시민들이 진영과 무관하게 나서고 있죠. 여론조사도 사퇴 의견이 우세한데 대통령은 왜 조국을 비호하는 것일까요. 부인 정경심 씨 소환이 다가오자 대통령은 검찰 개혁과 인권을 강조했죠. 정 씨는 비공개소환으로 전환돼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습니다. 심야 조사도 없앤다는 것이죠. 많은 것이 조국 가족을 계기로 등장합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대라던 호언장담은 어디로 실종했나요?
백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영장을 뗀 명재권 판사의 조국 동생 구속영장 기각입니다. 그에게 몇 억 원을 갖다 바친 공범들은 다 구속되었죠. 가족이 부패 의혹에 쌓인 사람이 검찰을 개혁할 수 있나요. 검찰 개혁은 이해 당사자인 조국 퇴진 후에 해야 공정, 평등, 정의의 명분이 설 것입니다. 그가 밀어주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대통령과 친인척, 국회의원은 기소 대상에서 빼면서 검증 안 된 특정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 중국식 공안 통치 권력 기구를 신설하자는 건가요?
나는 문재인 정권이 조국을 어떻게 다루는가 주시했습니다. 처음엔 조국 손절매(損切賣) 시기를 놓쳐 부도 날 때까지 들고 가는 주식처럼 보았습니다. 그를 임명하든 말든 레임덕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상대로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최저 30퍼센트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10월 자유 항쟁이라고 일컫는 조국 퇴진의 함성을 검찰개혁 요구로 오독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조국을 못 자르는 것은 그가 문 정권에 사활적 존재로 운명 공동체이거나 이념 공동체이기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작년에는 민정수석의 권한을 초월했다는 비판 속에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직접 설명하는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개헌안 초안의 특징은 그가 부끄럽지 않다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전력처럼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하려는, 불온한 것이었습니다. 삭제는 미수에 그쳤죠.
얼굴이 반반하고 키가 훤칠하며 걸핏하면 긴 머리를 쓸어 올리는 조국의 모습에 일부 여자들이 환장한답니다. 서울대 법대 교수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는 배은망덕의 모순된 커밍아웃을 하고도 자본주의의 꽃인 펀드를 굴리고 호의호식하는 것은 국군 장병 외에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려고 16개국 6・25 참전 용사들 수십만 명이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함께 피를 흘린 덕분입니다. 그는 북한식 통일을 저해했다고 비난할지는 모르지만….
조국의 임명 강행에 국민적 분노를 촉발한 것은 아주 친숙한 대학 입시 부정 의혹 같은 이슈였지만 우리가 분노해야 할 더 큰 이유는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로 그 정체성입니다.
이런 불온한 환경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원인이 미궁입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지역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이 비무장지대를 통해 남한으로 넘어오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인천시는 멧돼지들이 북한에서 바다를 헤엄쳐 건너와 강화군 해안에 머물다가 월북한 녹화물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바이러스가 빗물에 섞여 흘러서 오염됐다는 추리도 나옵니다. 바닷물에 바이러스 농도가 얼마나 짙어야 전염될까요? 환경과학원은 한탄강, 임진강, 한강 하구 20곳 시료 채취 검사 결과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북한 자강도에서 5월 25일 처음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민족 공조는 말뿐, 북은 상세한 발생 정보를 우리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역병의 남한 첫 발생지인 파주는 남북의 관문이고 접경이라서 인적, 물적 교류도 의심하게 됩니다.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로 사람과 차량이 오갔을 테죠. 거기서 방역을 철저히 하지 못했다면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지난 6월 15일 삼척으로 노크 귀순한 북한 목선 선원도 6일이 지나서야 검역했습니다. 같은 달 30일에는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느슨한 대북 접촉 분위기에서 나타난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돼지들에게조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퍼온 글] / 출처; 2019.10.14 06:56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김영환(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 현 자유기고가)
늙어서도 아름답다면
중년과 노년을 구별하는 대표적 증상이 있다. 어느 순간 책이나 신문의 작은 활자가 보이지 않게 된다. 그 순간 인생의 정점을 지났다는 충격에 빠진다. 컴퓨터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눈이 너무 피로하다. 이제는 눈을 찡그리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나 같은 안경쟁이가 읽기 위해 안경을 수시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일상이다.
노화는 공평하게도 모두에게 찾아온다. 세속의 영화와 관계 없이 함께 늙는다는 것은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이들에게는 새삼스런 위안이다. 느릿하게 흐르는 마음의 시간과는 달리 내 얼굴과 신체는 정직하게 늙어간다. 이젠 나도 돋보기안경을 걸쳐 쓴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머리 희끗한 노인이 따뜻한 햇볕이 드는 거실의 흔들의자에 앉아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쳐쓰고 독서하는 영화장면은 이제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을 법한 장면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다. 세상을 두 배로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우울함도 두 배로 커진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경우는 젊고 어려 보이는 얼굴을 갖고 있을 때가 아니라 자신감에 넘치는 당당한 태도를 보일 때라고 한다. 미국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최근 “내 주름 말고 내 얼굴을 봐주세요. 나도 주름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이 받아들여지길 원하며, 당신도 역시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자신의 민낯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 바탕에는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사람의 얼굴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점차 변한다. 못생겼지만 귀엽고 신뢰가 가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깎아놓은 조각처럼 잘 생겼지만 야비함이 숨어 있는 얼굴도 있다. 마흔 이후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보면, 학창시절 늘씬한 키와 외모로 주위 사람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친구의 얼굴이 초췌하고 생기 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어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구나”하며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학생 때는 왜소하고 평범해서 눈에도 띄지 않던 친구들이 품위 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등장해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중년 이후의 아름다움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로 결정된다. 젊은 시절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중년 이후의 얼굴은 당신이 만들어 낸 공적이다. 중년이 되면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진다. 중년이 되기 전까지는 예쁜 얼굴, 균형 잡힌 몸매, 유행에 걸맞은 패션 등의 통속적 아름다움이 미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중년이 되면 각자 쌓아 온 인생의 결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스타일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뽐내게 된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는가로 판가름 난다. 그런 사람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그 당당함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얼굴이란 안의 것이 밖으로 뛰쳐나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얼굴은 표정을 담는 그릇이고, 표정은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많이 웃으면 얼굴 또한 주인을 따라간다. 젊을 때의 아름다움을 당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늙어서도 여전히 아름답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다. ‘저 사람 괜찮다’는 평판은 꾸준히 걸어온 발자국의 결과다. 걸어온 대로 보이고, 남긴 발자국대로 읽힌다.
세상을 살며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조각해 나가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가장 크고 원대한 평생의 도전이다. 자신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가라. 우리가 늙어서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영혼이 조각해 낸 아름다움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라. 그리고 바라보는 얼굴에 말하라. 이제는 그 얼굴이 다른 얼굴을 만들 때라고.
[퍼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윤경(더리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2019.10.14 04:40
솔체
"에티오피아의 기적"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운 아프리카 유일의 참전국이다. 지금도 참전용사 153명이 생존해 있다. 적도 근처에 있는 내륙국가인데도 고원지대여서 별로 덥지 않다. 로마 제국에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나라답게 인구 1억1000만 명의 절반이 기독교인이다.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에 맞서 십자군 전쟁에도 참여했다.
역사가 3000년에 이르는 이 나라는 한때 융성했으나 1974년 쿠데타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고난의 길을 걸었다. 독재와 부정부패, 종족 갈등으로 유혈 분쟁에 시달렸다. 접경국인 에리트리아의 분리독립 세력과 싸우느라 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국토는 황폐해졌고 1인당 국민소득은 934달러(2018년)에 불과하다.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1년 전부터다. 지난해 집권한 ‘아프리카 최연소 총리’ 아비 아머드 알리(42)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국가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범과 야당 지도자들을 석방하고 인터넷과 방송 차단조치를 풀었다. 에티오텔레콤과 에티오피아항공 등 국영기업들은 민영화했다.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 정책에 이어 에리트리아와의 분쟁도 끝냈다. 그 결과 내륙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양 무역의 길을 열었다. 국경분쟁을 벌이던 소말리아와의 관계도 개선했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그의 실용주의 정책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30세 이하 청년들은 “에티오피아의 기적”이라며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가 올해 100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어린 시절 물과 전기 부족으로 고통 받으며 자랐던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경제통이다. 올해 8월 방한했을 때는 “한국이 우리의 롤모델”이라며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와 한국을 연결하는 대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6・25 때 6037명의 전투병이 참전해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던 ‘아프리카 혈맹’의 변신 노력에 이제는 우리가 화답할 때다. 에티오피아 거리의 자동차 중 한국 차 비중은 20%에 이른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인상도 좋다. 마침 방위사업청은 방산기업 협력을 늘리기로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전력・지하수 등 농촌개발사업 지원에 나섰다.
[퍼온 글] / 출처; 한경닷컴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9.10.14 00:25
루엘리아
‘영웅’을 살린 로멜의 자살
[금주의역사 - 10월14~20일]
1944년 10월14일 독일의 명장 에르빈 로멜이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과 관련해 자살하자 세계는 슬퍼했다.
독일은 물론 연합국에서도 애석해했다. 연합국에서 로멜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그가 히틀러 암살미수에 관련됐으므로 얼핏 자기네 편처럼 비쳐서가 아니다. 그냥 영웅의 죽음을 슬퍼한 것이다.
로멜의 자살사건은 트로이전쟁을 읽는 이들 가운데 그리스 편이라도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고, 트로이 편 독자라도 아킬레스의 죽음을 아파하는 심리와 같은 것이리라.
로멜을 격찬했던 이들 가운데 하나가 처칠이었다. “전쟁의 참상과는 별개로 나는 로멜을 위대한 장군이라고 생각한다”고 처칠은 말했다.
로멜이 ‘사막의 여우’라는 명성을 얻는 과정이 북아프리카의 영국군을 괴롭히는 과정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새삼 장군으로서 로멜의 기량과 지도자로 처칠의 도량이 한눈에 다가오는 어록이다.
로멜은 그런 영웅상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명장이었다.
전시도 아닌 군사정부시절의 국내 신문에는 곧잘 ‘지장’이니 ‘덕장’이니 ‘용장’이니 하는 근거 없는 찬사들이 나돌았지만 로멜은 실전에서 지・덕・용을 보여주었다.
로멜은 초급 장교였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여우 같은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막상 그 전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는 여우가 아니라 사자처럼 과감해 무모해 보일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사병들에게는 극히 자상했으며, 곧잘 그들과 한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나 초급장교 시절 히틀러를 좋아해 신임을 얻었던 그도 갈수록 총통에 실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로멜의 자살은 애석하지만 그의 ‘영웅’ 명성만은 살린 셈이다. 불과 반년 후 독일은 패해 그는 어쩌면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에 서야 했고 그 순간 영웅의 광채는 사라질 판이어서다.
[퍼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양평(언론인) / 2019-10-13 22:41:13
좌표에 좌표를 잃다
별것 아닌 사과와 파리도 누군가에겐 세상을 바꾸는 발견의 계기가 된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했고 이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이어졌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좌표를 발견해 수학의 발전에 새 장을 열었다.
좌표(座標)는 직선이나 평면, 혹은 공간에서 특정한 위치를 지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값을 뜻한다. 평면에서는 가로축(x축)과 세로축(y축), 공간으로 확대하면 높이 축(z축) 상에 위치를 숫자로 표시한다. ‘30년 전쟁’(1618~48)에 참전했던 데카르트가 침대에 누워 천장에 붙은 파리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떠올리다 좌표를 고안했다.
좌표는 일상생활에도 널리 쓰인다. 내비게이션이 대표적이다. 세상 전체를 좌표로 놓고 위성으로 내 위치와 목적지의 위치값을 알려준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움직임과 표정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모션 캡처’ 기술도 좌표를 활용한 것이다. 몸에 센서를 달아 그 좌표값을 통해 표정과 동작을 생생하게 구현해낸다.
이렇게 길잡이 노릇을 하는 좌표의 의미가 한국에서는 비틀려 쓰이고 있다. 진영 논리가 첨예하게 맞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좌표를 찍는’ 행위는 상대를 향한 공격이나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뉴스 댓글이나 청와대 청원 등의 링크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틀고자 공격 지점의 좌표를 찍고 화력 지원을 받아 맹공을 퍼붓는 방식으로 세를 과시하는 것이다. 좌표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다라야 할 지점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하지만 난무하는 좌표 속에 한국 사회는 가야 할 좌표를 잃은 듯하다.
[퍼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하현옥(중앙일보 금융팀장) / 2019.10.14 00:28
무지개색 행복국화(七彩幸福菊)
신비의 무화과
중동이 원산지인 무화과는 밀, 보리 등 많은 종의 야채 또는 과일보다 더 오랜 경작의 역사를 지녔다. 현재 약 750종이 열대지역과 야생에서 자라며 생태학자들은 만약 무화과가 사라진다면 자연의 파괴를 일으켜 모든 생물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무화과 안을 드나드는 아주 작은 생물체가 존재한다는 내용을 서술해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무화과의 비밀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로마시대에는 거위를 살찌우기 위해 무화과를 먹이고 푸아그라를 즐겼다. 또한 로마 제정을 연 아우구스투스가 독약을 주입한 무화과를 먹고 죽었다는 루머설도 있다. 티베리우스를 황제로 만들기 위한 아내 리비아의 계략이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진 과일이다.
무화과는 다른 과일과 달리 수확 후 숙성 또는 저장이 힘들어 되도록 빨리 판매하고 먹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생산량의 90%가 마른 상태, 쿠키, 잼으로 가공 유통되며 터키는 세계 무화과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무화과는 이름이 말해주듯 과일이지만 꽃은 과일 안에 감춰져 있다. 몸길이 약 1.5mm인 무화과 벌의 수정 방법을 알면 그 신비로움에 깜짝 놀라게 된다. 약 6500만 년 전 공룡 시대부터 존재해 온 공생 관계로 무화과는 암수가 다른 나무에서 자라고 우리는 통통하게 결실을 맺는 암 무화과만 먹는다. 무화과 벌은 알을 낳기 위해 수나무의 무화과로 들어간다. 작은 통로로 들어갈 때 날개와 더듬이가 부러져 다시 나갈 수 없게 되고 알을 낳고 안에서 죽는다. 애벌레들은 암수 교배를 한다. 수컷은 암컷이 탈출할 수 있도록 구멍을 파 길을 만드는 목적도 있기 때문에 날개가 없는 상태로 암컷보다 먼저 활동을 시작한다. 구멍의 크기가 커지면서 수나무의 꽃가루를 몸에 묻혀 암컷이 탈출하면 수컷의 임무는 끝난다. 빠져나온 암컷은 48시간 이내 암나무 또는 수나무를 향해 돌진함으로써 무화과 벌의 인생주기가 돌아간다.
암나무를 선택한 벌은 죽어 몸을 영양분으로 만드는 단백질로 분해하기 위해 피신이라는 효소를 사용하고 꽃은 나중에 열매로 크게 자란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무화과 벌을 먹고 있는 셈이다. 꽃은 씨앗을 만들고 각각의 무화과 씨앗은 씹을 때 바삭바삭한 알갱이가 고소하게 느껴지며 적게는 수백에서 수천까지 품고 있다. 무화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종류를 진짜 무화과라 부른다.
이 복잡한 문제를 피해 진화한 브라운 터키, 블랙미션, 카도타 종은 자가수분이 가능하며 가지치기로 쉽게 번식도 가능하여 농부들이 선호하는 품종이다. 굳이 암, 수나무가 필요치 않아 훨씬 생산적이다. 무화과의 씨가 없어 쉽게 구분되며 요즘 생으로 유통되는 대부분의 무화과가 이 종류이다. 무화과가 간직한 신비하고 오랜 역사는 우리가 지구에 최근 도착한 종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과학자들은 우림 재생을 위해 무화과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놀라운 과일을 먹으면서 우리도 깊이 생각해 볼 일인 것 같다.
[퍼온 글] / 출처; 동아일보 / 요나구니 스스무(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 2019-10-14 03:00
장원급제 DNA와 장인 DNA
같은 주입식 교육 하는 韓日, 공부로 장원급제 꿈꾸는 문화
한 우물만 파는 장인 문화… 노벨 과학상 '24대0' 차이 만들어
일본에서 또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과학에서만 벌써 24번째다.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것은 우리 교육이다. 그런데 일본도 우리처럼 수십 년간 주입식 교육을 하고 객관식 상대평가를 해왔던 나라인데 왜 우리와 다를까? 서울대 물리학과 김대식 교수는 저서 '공부논쟁'(창비, 2014)에서 그 이유를 우리 공부 문화의 장원급제 DNA와 일본 공부 문화의 장인 DNA로 설명하고 있다.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은 관리를 시험으로 선발했다. 전 국민은 아니어도, 신분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상승될 수 있었던 여지가 동시대의 다른 나라들보다 더 있었다. 그러니 예부터 공부의 목적은 입신양명이었다. 장원급제가 모든 공부하는 이들의 꿈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숫집 주인은 자식이 국숫집을 물려받기보다 어떻게든 열심히 공부해서 입신양명하길 원한다.
그런데 일본은 열심히 공부해서 입신양명하는 체제가 없었다. 공부를 하겠다면 그 공부에서 대가가 되길 바라지 그 공부를 발판으로 다른 뭔가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어려웠다. 수천 년간 왕조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고 신분제가 뒤집힌 적이 없으니, 사무라이 집은 대대로 사무라이가 되고, 우동집 아들은 더 나은 우동을 만드는 것이 영광스러운 삶이었다. 즉 우리는 돈가스 집 아들이 고시 패스해서 판검사 된 것이 영광인 문화이고, 일본은 3대가 돈가스를 만드는 것이 영광인 문화다.
이러한 공부 문화의 차이는 교수들의 행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교수들은 테뉴어(정년 보장)를 받고 나면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학자의 길을 택할지, 보직이나 정관계에 발을 들여서 행정 혹은 폴리페서의 길을 택할지, 아니면 대중 강연이나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대중 지식인의 길을 택할지 고민한다. 교수직을 끝까지 연구자로만 생각하기보다 교수직을 발판으로 다른 무엇을 하려 한다. 보직이나 폴리페서로 발을 들이면 연구가 중단되기 때문에 다시 학자의 길로 가기 어렵다. 게다가 장관이나 총리로 입각하면 주변 동료 교수들의 부러움을 받는다. 이런 문화는 열심히 공부해 교수 된 것이 입신양명의 수단이 되는 우리의 장원급제 DNA가 반영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총리나 장관을 대부분 정치인 가문에서 대를 이어 하기 때문에 한번 교수면 끝까지 교수이지 중간에 정치나 다른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다른 길로 '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도 않는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가서도 은퇴까지 한 연구에만 매진하고, 교수가 되어서도 한 연구에만 매진한다. 이러한 장인 DNA가 오늘날 일본에 수십 개의 노벨상을 안겨준 원동력이 되었다.
10여 년 전 일본 홋카이도대학교에 초빙교수로 갔을 때 동료 교수들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어느 날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이를 전하자, 일본인 교수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너무나 놀라워했다. 그런데 쉽지 않은 영전이라고 놀라는 줄 알았더니 일본 교수들은 그 교수가 총리가 되는 일을 진짜 기꺼워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들은 교수가 총리가 되는 것을 영전으로 보는 것 자체가 정말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김대식 교수는 우리 엘리트의 한계를 냉철하게 지적한다. "시험 잘 보는 학생은 남들이 주는 문제 를 푸는 데까지는 해낼 수 있어요. 그러나 새로운 발견 혹은 발명을 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이라도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계속 망하는 거예요."
한 연구가 노벨상 수준에 이르기까지 대학 이후 평균 30년 이상 걸린다. 그러니 폴리페서가 영전인 문화에서는 대학 이전 12년 공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퍼온 글] / 출처; 조선일보 / 이혜정(교육과혁신연구소장) / 2019.10.14 03:11
‘우연’은 ‘순수’를 전제로 한다
학창시절 공부의 훼방꾼은 신필이라 불리는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였습니다. 고수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은 어릴 적 험한 환경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모험을 겪다 문파를 넘나드는 무공을 전수받고 영웅이 되어가는, 신화의 전형과 같은 이야기는 입시를 잊게 만드는 달콤한 마약이었습니다.
이야기 속 초인이 되기 전 주인공이 겪는 위험은 언제나 고수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타개되어집니다. 30년의 약속 정도는 우습게 하는 무도인들이 어쩌면 그렇게 딱 필요한 순간에 그 넓은 중원에서 만날 수 있는지 의심하기보다는 그러한 행운이 내 인생에도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던 사춘기 시절입니다.
우연히 내가 베푼 작은 선의에 훨씬 더 큰 보상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은 은혜 갚은 까치와 박씨를 물고 온 제비를 넘어 면접일 늦은 와중에도 쓰러진 노인을 도와주자 면접장에 회장님으로 나타나는 트렌디 드라마의 익숙한 설정으로 이어집니다.
현실에서도 패스트푸드점의 알바생이 유명해져 연예인이 되었다거나 친구 따라 오디션장에 갔다가 뽑혔다는 스타들의 데뷔담들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2015년 당시 5000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저스틴 비버가 궁금하다며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유명해져 모델이 된 스페인의 신디 킴벌리처럼 하룻밤 만에 신데렐라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시급 4달러의 베이비시터 일을 하던 일반인이 무도회장에서 유리구두를 남기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500만의 팔로워를 지닌 유명인이 된 것이죠.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업무 중에도 미담이나 열녀 효자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듯 순수하고 착한 사람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군주가 마땅히 알아보고 보상하는 바른 사회라 믿고 싶어하는 것이죠.
이제 곳곳에 설치된 CCTV와 인구수보다 많은 핸드폰의 고성능 카메라가 강남역에서 노숙자에게 빵을 먹여주던 “천사의 손”과 같은 우연의 채록이 손쉬워진 사회를 만들어냅니다. 방송사에는 블랙박스 영상들이 제보되고 교통시비에서 행패를 벌인 사람에 대해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수십만의 제청을 받는 것 역시 현장에서 녹화된 동영상에 기초합니다. 말하자면 현실세계의 절대 빌런을 보는 듯하기에 팍팍한 세상에서 마음 놓고 비난할 수 있는 실제적 대상을 만난 군중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연은 순수성을 기초로 합니다. 만약 기획사가 의도적으로 심어 놓은 연습생이 편의점에서 발견되길 기다리며 일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선거 기간에 시장통을 돌며 달동네에 연탄을 나르는 정치인의 모습 역시 의도된 연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성철의 책 <우연의 역사>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연이란 가능한 것, 또는 저절로 일어난 일로서 일종의 능력으로 보았다 합니다. 진화생물학자 조지프 손튼은 5억 년 전의 고대 단백질 유전체 변이 연구를 통해 진화의 과정 또한 최적의 결과가 남는 것이 아닌 우연의 산물임을 밝혔습니다. 네트워크 과학자 앨버트 바라바시 역시 그의 책 <성공의 공식 포뮬러>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갖춘 사람들 사이의 변별력은 그리 크지 않으므로 나머지는 운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우연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가 되기 때문에 매일의 출근이 힘든 갑남을녀들이 드라마 속 행운의 스토리에 매료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월요일 아침에 사놓은 로또가 주중의 스트레스를 견디도록 해 주는 부적과 같으며 일요일에 그것이 맞으면 가차없이 그만두겠다는 염원 또한 수백만 분의 일에 불과한 우연의 행운에 지친 마음을 조금은 기대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긴 탄생의 과정에서도 수억의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 속에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도 우연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연의 전제인 순수는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꺼진 곳에서 출발하기에, 작은 행운이라도 기대하려면 다친 제비를 모른 체하지 않았던 흥부와 같이 늘 착하게 사는 방법밖엔 없으리라 믿는 소시민입니다.
[퍼온 글] / 출처; 경향신문 / 송길영(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 2019.10.13 20:51
Abstract Painting People Horse Rac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