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재상량문 (念修齋上樑文)
서술하노니,
무덤에 기대 재실을 지었으니 제도는 주자의 한천(寒泉)을 본받았고, 염수재라고 편액을 걸었으니 뜻은 「시경」의 「대아(大雅)」에서 가져왔도다.
일이 마치 기다린 듯하였으니, 뜻을 어찌 이루지 못하겠는가.
삼가 각암과 정봉 전 선생(全先生) 형제를 생각하건대, 옥천(沃川)의 세족이자, 달성(達城)의 명문이도다. 형은 영리에 마음 두지 않고 초야에 자취를 감추었고, 아우는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진취에 마음을 끓었도다. 젊은 시절 지결(旨訣)을 듣고 함께 사계(沙溪) 김옹(金翁)에게 수학하였고, 만년에 봉마(蓬麻)에 의탁하여 같이 우암(尤庵) 송자(宋子)와 종유하였도다. 설씨(薛氏) 집안 세 사람에게 비견될 만하였고, 진씨(陳氏) 집안 두 형제에게 부끄럽지 않았도다.
양친을 섬기는 데 직분을 바치고 정성을 다하여 뜻과 몸을 아울러 봉양하였으며
맏형이 일찍 죽어 후사가 없음을 아파하여 형제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였도다. 아들을 보내어 화양동(華陽洞)의 담장에 서서 신의와 도리를 익혀서 실천하게 하였고, 손자를 가르쳐 동소남 (董邵南)의 행실을 따라 독서와 농사를 아울러 다스리게 하였도다.
사방에서 그 인함을 칭찬하였고,
종신토록 그 덕성을 칭송했도다.
고향이 가까이 있으니 공경히 사모 깃들이는 마음 감히 잊을 수 있으랴,
묘소가 이어져 있으니 잇따라 오르고 내리는 영령 상상해 볼 수 있도다.
매양 생각건대 형기를 나눈 형제이니 추모하는 마음 무슨 차이 있겠는가. 돌이켜 보건대 당대의 여러 종형제와 꽃나무의 모임 더욱 돈독히 했도다.
능히 정매(征遇)한 선대의 자취를 좇았고,
응당 당구(堂構)의 남긴 가르침을 따랐도다.
이에 거닐던 터에 나아가 트여진 자리를 정해놓고,
마침내 원근에서 힘을 합해 우뚝한 공업을 드러냈도다.
조상을 제향하되 상(嘗)과 증(蒸)을 지내며. 봄가을로 소홀치 않았고,
자손을 교육하되 시(詩)와 예(禮)로 가르쳐서 밤낮으로 허물이 없도다.
짧은 노래를 감히 지어서,
긴 들보 올리는 일 돕노라.
들보 동쪽으로 떡을 던지세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 문에 들어 붉게 빛나네
뜨락 가득 자란 초목 아름다운 광채를 더하니
물려주신 발자취가 여전히 눈앞에 있는 듯하네
들보 서쪽으로 떡을 던지세
은행나무 강단 위에 봄빛이 참으로 짙네
당년에 등림하였던 자리를 상상해보건대
형제가 서로 따르면서 길을 잃지 않았네
들보 남쪽으로 떡을 던지세
옥계에 흘러가는 물 쪽빛처럼 푸르구나
당일에 목욕하고 들아온 곳 어디인가
지금껏 지나는 객이 가리키며 말한다네
들보 북쪽으로 떡을 던지세
무릉산 산기슭에서 북극성을 바라보네
위아래 벌여 있는 무덤 눈앞에 들어오니
가을 서리와 봄 이슬에 마음이 처량하네
들보 위로 떡을 던지세
드높은 푸른 하늘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네
모름지기 포부와 사업 실추시키지 않게 하고
하늘의 눈이 밝고 밝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게
들보 아래로 떡을 던지세
무성한 가래나무 뽕나무 옛마을에 이어지네
손때가 아직 남아있으니 어찌 감히 잊겠는가
공경히 아침저녁으로 소아(小雅)를 부른다네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는
땅의 정령이 덮어주고 감싸주어,
동우가 더더욱 견고하게 하소서.
아들과 손자들이 시례를 서로서로 따르는 가르침을 계승하고
집집마다 대대로 효제를 독실하게 행하는 방법을 전수토록 하소서
단기(檀紀) 4319년 병인년(1986) 3월 상순에 밀양(密陽) 박효수(朴孝秀)가 삼가 쓰노라.
◎ 각암(覺菴)
전유경(全有慶, 1605~1643)의 호이다. 자는 여선(汝善)이다. 전시헌의 차남이다. 김장생(金長 1548 ~ 1631)의 문인이며,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교류하였다.
◎ 정봉(正峯)
전유장(全有章, 1612~1675)의 호이다. 초호(初號)는 취헌(醉軒)이었다. 자는 여환(汝煥)이다. 전시헌의 삼남이다. 1660년 연경서원(研經書院)의 원장직을 맡았다. 선공감 참봉(繕工監參奉) 을 지냈다.
念修齋上樑文
述夫
依墳築室制倣朱夫子之寒泉
念修揭楣義取文王詩之大雅
事若有待
志豈無成
伏惟覺庵正峯兄弟兩全先生
沃川世家
達城名閥
兄則無心榮利遯跡於林泉
弟兮薦除寢郎絶意於進取
早聞旨訣共受業于沙溪金翁
晚託蓬麻同從遊于尤庵宋子
堪比薛氏三鳳
無愧陳門二難
事二親而供職殫誠養兼志體
痛白眉之早沒無嗣懷切鴒原
送子立華陽門墻講服義理
訓孫遵董生事行兼治書農
四隣稱其仁
沒世誦其德
桑梓密邇敢忘恭敬寓思
丘壟相連象想聯鶣陟降
每念分形連氣何間於如見羹墻
追思當時群從益篤於相會花樹
克追征邁之遺躅
宜遵堂構之貽謨
爱就杖屢之墟卜爽嵦址
肆合遠邇之力見突兀功
格祖考而是嘗是蒸春秋非懈
教子孫而以是以禮夙夜無愆
短詞敢陳
修梁助學
拋梁東
朝朝旭日入門紅
滿庭草木增精彩
遺躅依依在眼中
拋梁西
杏壇春色正濃兮
當年象想登臨處
昆季相從路不迷
拋梁南
玉溪流水碧似藍
當日浴歸何處是
至今行客指而談
拋梁北
武陖山麓望中極
下上丘壟入眼前
秋霜春雪感悽惻
拋梁上
蒼穹遙廓人皆仰
須令志業荒無隳
天視明明不可妄
拋梁下
桑梓陰陰連古社
手澤尙存豈敢忘
敬恭朝夕歌宵雅
伏願上梁之後
地靈陰護
棟宇彌堅
子子孫孫相承克遵詩禮之訓
家家世世式蕃敦行孝悌之方
檀紀四千三百十九年丙寅三月上旬
密陽朴孝秀 謹
[출처] 국역 옥천전씨 수당공파 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