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 궁 화(無 窮 花) ♥♥♡♥♥
무궁화 꽃을 이야기 하자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집니다.
꽃은 꽃인데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무궁화는 영어로 어떻게 부를까요?
글로벌 시대라 영어에 익숙하다 하지만, 무궁화의 영어 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직역해서 “Endless flower”가 아니냐고 말한 사람이 있어 함께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무궁화의 영어 명은 “Rose of sharon”이며 "샤론의 장미" 라고 해석합니다.
샤론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의 척박한 땅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를 "샤론의 장미"로 비유하며 찬송가로 부르기도 합니다.
린네는 무궁화의 학명을 'HIbiscus sirianus'로 명명했는데 'Hibiscus althea'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Hibiscus는 히브리어로 신의 이름이고 althea는 치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sirianus는 지역 이름이지요.
우리의 나라 꽃 무궁화가 어떤 연유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사실 무궁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많이 피어있는 꽃입니다.
부탄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무궁화가 심어져 있으며, 미국 워싱턴 D.C.에도 무궁화 꽃과 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와이에는 가로수로 무궁화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하와이 주화가 무궁화였습니다.
무궁화 꽃을 아름답게 여기고 귀하게 대접하고 있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무궁화 꽃을 천덕꾸러기처럼 취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진딧물이 많이 끼는 꽃, 피부에 닿으면 피부병을 유발하는 꽃, 핏빛을 닮은 꽃,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지조 없는 꽃 등등...
기가 막히고 슬픈 역사적 사실입니다, 알고 보면 설사와 구토 등에 효과가 있어 요즘 유행하는 히비스커스(Hibiscus)라는 고급 차의 원재료가 되는 무궁화이고, 서양에서는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다고 하여 인기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무궁화가 폄훼되었는지, 그 이유가 정치적이라는 것도 서글픕니다.
하나의 꽃에 불과한 식물이 정치적인 이유로 뿌리째 뽑히고 불태워지고, 구석진 밭의
울타리 용으로 취급받기도 했습니다, 일제 때 행해졌던 폐습 중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일체시 되는 민족의 꽃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법률적인 근거는 없지만 관습적으로 무궁화는 우리의 국화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국화로 받아 들여진 것은 역사가 대단히 오래 되었습니다.
신라 때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내는 문서 (사불허북국거상표, 謝不許北國居上表)에서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 라고 지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본다면, 우리가 스스로 무궁화를 나라의 대표 꽃으로 생각한 역사는 적어도
천이백년 가량이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무궁화를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라고 머리에 꽂아 주었고,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이 꽃이 지는 훈화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지조가 있는 꽃으로 예찬했습니다.
무궁화는 7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늦게는 10월까지 매일 새로운 꽃을 피웁니다.
그렇게 해서 한 해에 2, 3천 개의 꽃을 만들어냅니다, 유구한 역사를 살아오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애환을 함께해 왔습니다.
무궁화의 꽃말이 영원함, 아름다움, 순수함이지만, 색도 은은하고 꽃이 오래가서 우리 민족이 무궁하게 발전하리라는 염원을 담아 ‘무궁화’라고 명명한 것이 아닐런지요?
"샤론의 장미"는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고난의 역사를 딛고 세계 속에 우뚝 선 영광의 꽃을 피워낸 대한민국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궁화는 이제 영광을 의미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국가 원수에게만 수여하는 훈장이 무궁화 대훈장입니다.
대통령 휘장, 대통령실의 문양, 국회의원 배지, 법원의 문장, 그리고 경찰관, 국군의 장교
계급장 등에 무궁화 꽃문양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듯 무궁화는 고귀하고 높은 품격을
표시하는 문양이 되었습니다.
무궁화의 아름다운 꽃과 색깔 그리고 의미를 생각하며, 무궁화가 전국 방방곡곡에 무궁무진하게 활짝 피어있는 대한민국을 상상합니다.
영광과 수난이 반복하던 질곡의 역사와 함께 무궁화는 오늘도 피고 지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내며,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계속 발전하고 빛나도록 대한민국
국민에 걸 맞는 소명과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우리나라 국화 무궁화를 재조명해 봅니다! ♣♣♣
출처 : 조용한 동기 게재 글
★★☆★★ 황석공(黃石公) 이야기 ★★☆★★
(中國 장가계의 由來)
漢나라 유방과 楚나라 항우가 천하의 패권을 다투며 싸웠다는 楚漢誌에는 당시의 뛰어난
戰略家 張良(張子房)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휘황하게 달이 밝은 추구월 보름달 밤 개명산에서 옥퉁수를 슬피 불어 항우의 정예군 강동의 8천 군사를 흩어 버린 인물로 유명하다.
장량이 어린 시절 서당에 다녀오는 길에 시냇물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한 신비로운 노인을 만난다.
그는 장량이 보는 가운데 다리위에서 짚신을 시냇물에 일부러 빠뜨린다.
장량은 그 즉시 시냇물로 뛰어 내려가 그 짚신을 주어다 공손히 그 노인에게 바친다.
그 노인은 또다시 짚신을 물에다 빠뜨린다. 장량은 또다시 시냇물로 뛰어 내려가 짚신을 주어다 그 노인에게 공손하게 바치는데, 그러자
그 노인은 또다시 짚신을 시냇물에 빠뜨린다.
장량은 이번에도 아무 불평 없이 시냇물로 뛰어 내려가 짚신을 주어다 그 노인에게 바친다.
그러자 그 노인은 ‘그놈, 쓸만하군!!’ 하더니 장량에게 ‘내일 아침 뒷산 느티나무 아래로 오라!! 내 너에게 줄 것이 있다’ 하더니 어디론지 가 사라져 버렸다.
장량은 어른을 만나는데 어른 보다 늦게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새벽에 그 느티나무 아래로 갔는데,
그 노인은 벌써 거기에서 기다리시며 이놈!! 어른을 만나는데 어른보다 늦게 오면 되겠나? 하고 호통을 치시며 내일 아침 다시 오라고 하고 하며 사라졌다.
장량은 그 이튿날은 밤중에 그 느티나무 아래로 갔는데, 그 노인은 벌써 그곳에 와 있으면서 장량에게 이놈!! 어른을 만나는데 어른보다 늦게 오면 되겠나? 하고 또 호통을 치고
내일 아침 다시 오라고 호통을 쳤다, 그 다음날 장량은 아예 초저녁부터 그 느티나무 아래에 가서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그 노인이 나타나 오늘은 일찍 왔군!! 하더니 장량에게 한 권의 책을 주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다.
이 책은 내가 일평생 동안 연구하여 治國平天下에 대하여 쓴 책이다.
이 책을 열심히 읽어 훌륭한 인물을 잘 보필하여 그가 천하통일을 하도록 도와드려라.
그리고 그를 황제로 만든 후 권력을 차지할 생각을 하지 말고 표연히 사라 지거라!!!
만약 네가 권력을 차지하려 하다가는 큰 화를 입게 된다!! 나는 여태까지 이 책을 줄 사람을 찾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책의 임자를 찾을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네가 천하를 통일한 후 심산궁곡으로 은거한 후 너의 집 뜰을 보아라. 그곳에 누런 바위가
하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다!! 라고 한 후 그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장량은 그 노인이 사라진 쪽을 향해 수십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 노인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지만 누런 돌이라 하였기에 후세인들은 그를 황석공(黃石公)이라 부른다.
張良은 그 책을 열심히 탐독한 후, 한나라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의 제1공신이 되었으나, 노인의 말에 따라 심산유곡으로 사라지고 만다. 楚漢誌에는 여기까지만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 深山幽谷이 여러분들이 여행을 많이 다녀온 장가계(張家界, Zhangjiajie)라 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그 때 張良이 사라진 뒤 정착한 곳이 바로 張家界라는 것을 열심히 설명하고 자랑한다.
그리고 장량이 그곳에 오기 전에는 그곳 사람들이 벼농사 짓는 법을 몰랐었는데 장량이 그곳 사람들에게 모내기 등 벼농사 법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거의 수직의 바위산이 있고 그 정상에는 산소 비슷하게 생긴 부분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張良의 산소라는 것이다.
원래 장가계는 大興市였는데 장량을 기리기 위해 都市名을 장가계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역사책에는 '장량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라고만 되어 있지, 장가계로 갔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또한 天涯(천애) 깎아지른 바위 절벽 위에 장량의 산소를 만들었다는 것도 전혀 신빙성이 없다. 지금 같으면 헬리콥터로 시신을 운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BC 200년 경에 헬리콥터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장량이 장가계에 가서 살았다는 사실, 깎아지른 바위산 꼭대기에 장량의 산소를 만들었다는 사실 등은 다 그곳 사람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장량이 은거한 후 뜰 앞을 보니 누런 바위가 하나 있었고 장량은 그 바위를 자기의 스승이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매일 절을 올렸다고 전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나쁜 짓을 하려고 눈에 핏발을 세운 유방보다 일생동안 연구한 실적을 뛰어난 영재에게 남기고 표연히 사라진 黃石公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나이 들어 갈수록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면서, 정치인들의 쓸데없는 권력욕과 자기중심적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정권을 잡으려 무슨 짓이든 벌이는 꼴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張良같이 국가를 똑바로 세우고, 권력을 초개처럼 버리는 시원한 정치인,
그리고 黃石公같은 기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봅니다! ◈◈◈
출처 : 知人이 보내온 글
첫댓글 6일 tv 안봤드니 살만했는데,오자마자 tv 켜니 제몸만 챙기는 정치꾼,의사나부랭이들
꼴보기 싫어 큰일입니다.
장가계 유래 현지 가서도 배우지 못한것 일깨워 주시니 상보형 감사합니다.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