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1923년)
누구든 시집을 한 번이라도 펼쳐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었을 것입니다.
김소월의 감성적인 싯귀는 오랜동안 가슴에서 그리고 머리에서 잔잔히 울림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쌀쌀한 바람이 일렁이는 이른 봄에 산등성이에 호젓이 피어나는 발그레한 분홍빛의 진달래꽃을 한 입 따 먹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김소월의 본명은 김정식입니다.
일제 시대 김소월은 일본 유학길에 올라,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일본에서 배울 건 배워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국내에 들여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답니다.
지금은 일본에서 유학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거지만 일제강점기에서는 얼마나 힘든 용기였는지 모른답니다.
김소월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서른 네 살의 젊은 나이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시인입니다.
미래에 잘 살려면 과거를 제대로 알아아 하며 과거는 현재로 연결되고 또 미래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알고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김소월은 시 '진달래꽃 외 산유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먼 훗날 엄마야 누나야,' 등 대부분 아름다운 말로 이루어져 곧 노래로 만들어져 현재는 유명 가수들이 부르고 있답니다.
슬픔을 슬픔으로 만들지 않고 아름답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만든 김소월의 시를 읽고 있자면, 나도 함께 가슴이 아려와 눈물이 주르륵 흐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