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설을 쓴다
이용희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소설을 쓰는 꿈을 꾼다.
인생이 소설이라고 하듯 소설 같은 이야기를 흔하게 듣는다. 주인공의 길은 누구하고도 다른 특별한 이야기로 구성되고 이어진다. 그렇기에 소설이라는 장르는 모두에게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이야기거나 때와 시가 맞지 않는 상황 또는 감당할 수 없는 길들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감동을 주고 공감할 수 있는지는 그 작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소설 속에서 인물과 배경, 사건이나 구성이 달라지는 이야기를 대 서사시로 써내려간 작가가 있다.
한국에서 이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물론 그의 소설 토지를 읽지 않은 사람도 흔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박경리 선생님께서는 특별한 분이시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강원수필 문학인들의 기행으로 원주 박경리 문학관을 방문했다.
좋은 날, 좋은 때, 좋은 사람들과의 문학기행은 하루 동안 즐거운 그림을 그리게 한다. 박경리 문학관을 들어서니 박경리 선생님이 드나드시던 길에 나무 한 그루 서있다. 다른 나무들처럼 여러 갈래의 팔을 벌리고 방문자들을 환영한다.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그 느티나무 기둥에 손바닥만 한 상처들이 희끗희끗 얼룩져 있다. 때마침 지나가던 햇살이 그 나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는데 문득 박경리 선생님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을 지나치실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이 나무의 기둥을 쓰다듬으셨던 것일까.
원고지 채우시다 답답한 마음을 이곳에 나와 서성이셨을까. 하늘을 올려다보시면서 짚으신 손 자리인 듯 하얗게 얼룩져있다. 선생님의 답답한 속내를 이 나무기둥에 하소연하시며 털어내시지 않았을까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칸을 메우고 장을 이어가던 선생님의 손에서 배어 나온 땀이 지금 저 나무에 배어 있어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듯하다. 지금도 저 얼룩의 자리에서 손바닥을 떼지 못하시고 못다 하신 이야기를 쓰다듬고 있는 듯하다. 나는 소설가는 못되었지만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 한 자락을 덮는 듯 상처에 내 손을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을 허공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잡아내야 하고 활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원고지를 채워야 한다. 원고지 15매도 채 안 되는 수필 한 편을 내 놓으며 이 글을 누가 읽어나 줄지 몰라 수 없이 욕심을 접었다 펼쳤다 한다. 그런데 박경리 선생님께서는 5부 16권이나 되는 소설 토지를 집필하시기까지 26년의 기나긴 세월을 보내셨다.
최 씨 일가의 가족사를 그려서 우리민족이 격은 고난의 삶을 이야기하신 토지를 읽으며 지냈던 지난날 나의 세월은 한 편의 소설이다. 내가 30여년을 근무지로 지냈던 산골은 그냥 산골일 뿐이었다.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은 오직 텔레비전과 라디오뿐이다.
농촌의 자연 속에서 새들의 울음소리로 아침을 열고 석양의 해 떨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진료소의 문을 닫고는 했다. 그 때 내 손을 놓지 않았던 오직 하나의 친구는 책이었다. 그 세월동안에 나의 시간들을 함께 했던 토지다. 그 저자인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관에서 오늘 나의 옛날들을 돌아본다.
얼룩이 진 느티나무를 지나 선생님께서 생활하셨던 현관 앞으로 들어서는데 옷을 벗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반짝 빛난다. 열매인 듯 가지마다 달고 있는 빨간 눈들이 영롱하기까지 하다.
우리 집 마당에도 배롱나무가 있다. 수십 년 전 새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그리고 찾은 여유로 떠났던 서해바다 여행이다. 춘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배롱나무를 서산의 어느 나무 농장에서 만났다. 남편은 집을 꾸미기 시작했던 터라 두 말 않고 나무 두 그루를 사가지고 왔다. 정성으로 준 물과 양분과 햇빛으로 잘 자라고 꽃을 피웠다.
더위에 지쳐가는 긴 여름날이면 창 앞에서 새빨간 꽃 뭉치로 함께 견디어 주는 배롱나무다. 그런데 이 배롱나무는 꽃이 지고 가을이 되면 꽃 진 나뭇가지들을 싹뚝 잘라 준다. 모멸 차게 잘라주고 나면 저 곳에서 꽃이 다시 필 수 있을지 안쓰럽지만 지난해의 경험으로 마음을 달래며 겨울을 보낸다.
정말 신비의 새 계절이 오면 그 잘린 끝동에서 새 움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오늘 이 박경리 선생님의 집 창 앞에도 어김없는 계절은 배롱나무의 끝동에서 새 순을 키우고 있다. 물기에 젖은 순들이 반짝거리며 눈망울을 굴린다. 반갑고 대견하여 눈길을 멈춘다.
박경리 선생님께서 집필하시다 답답한 마음 여시던 그 창 앞의 배롱나무 가지들이 웃음을 건넨다. 선생님 속내인 듯 매끄러운 가지에 수도 없이 매달린 새 움들이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건네시는 듯하다.
막혔던 글 밥의 끝을 잡아내시며 쓸어내리시던 박경리 선생님을 생각한다. 이제 새 움이 터지고 자라나 한 다발의 배롱나무는 피어나겠지. 그 꽃술을 바라보며 환히 웃으실 박경리 선생님의 미소는 보이지 않는데 나는 선생님께서 책상에 앉아 6부를 엮으시는 소설 같은 생각 속에 잠긴다.
첫댓글 이용희 작가님! 지금까지 시와 수필 시조 티카 시 아동 문학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해 오셨는데 문학 활동의 대미를
소설로 마무리 하시는게 어떨런지요? 이용희 작가의 멎진 소설이 세상에 태어 나리라 확신 합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빌어 쓰고 있는데 골조 공사는 마치고 외부 벽을 쌓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완성되면 제일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도 소설을 쓴다 가 수필 제목이 아닌 소설가로의 첫 발을 딛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응원과 격려 고맙습니다.
그러게요
소설기대됩니다
강동구쌤 소설도
기대되구요
기다리는 독자있어요
잠이오지 않아
우연히 키페에 들어와
좋은글 접했어요
어째건 저는 수필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