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선물 권정남(1)
1. 재잘대는 새소리에 눈을 뜬다. 대나무밭에서 딱새와 박새가 아침잠을 깨운다. 익히 듣던 소리인데 더 청아하게 들리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이다.
2. 크림색 벽지에 흰색 커튼이 산뜻하다. 커튼을 젖히면 창문 너머로 뒤꼍의 대밭이 보인다. 그 아래 빈터에 보라색의 나팔꽃, 희고 앙증맞은 정구지꽃, 닭의장풀이 파랗게 피어있다. 창문 옆에 매달린 수련은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준 작품이다. 검은색 배경에 초록빛 둥근 잎 위의 하얀꽃 자태가 고고하다. 또 지인의 전시회에서 구입한 백일홍 그림 석 점도 다른 크기로 높낮이를 달리해 걸려 있다. 노랗고 붉은 꽃송이와 빛바랜 다갈색의 마른꽃잎이 누르스름한 이파리와 어우러져있다.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는 소품이 있는 나만의 갤러리이다.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Gregory Porter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난 나의 모든 인내심을 다해서 기다릴거야. 너와 함께 하는 걸 기대하게 되니까. 〈Consequence of Love〉란 곡이다. 내가 아침마다 새 소리 다음으로 듣는 음악이다. 난 예전부터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좋았다.
3. 나의 방으로 들어설 때면 흐뭇해진다. 화장대 겸 책상은 남편이, 흙 침대와 방 분위기에 어울리는 의자는 아들이 사주었다. 텔레비전까지 놓였으니 이제 완벽한 나의 공간이다. 나는 나에게 침구세트를 선물했다. 부드러운 촉감에 가장자리의 페이즐리 무늬가 그려진 푸른색 이불과, 퀼팅자수가 촘촘한 패드도 구매했다. 결혼 전 혼수용품을 마련하던 그때처럼 설랬다. `혼수용이면 예쁘게 포장해 드릴까요?`라는 직원의 말에 속웃음을 웃었다. 나는 정말 그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다.
4. 내가 이렇게 아침마다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건 나의 방을 갖고 나서부터이다. 남편과 한 방을 쓸 때 못마땅한 점이 많았다. 텔레비전 보는 것도 관심 분야가 달라서 나는 감질났다. 남편은 킥복싱, 낚시, ‘나는 자연인이다.’, 일본 요리를 소개하며 맛보는 방송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란 프로그램 등 본인의 취향만 고집했다. 자다가 화장실 다녀온 뒤에는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곤 했다. 나는 거기서 나오는 빛과 움직임에 신경이 쓰여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5.그날도 남편은 영화 채널에서 서부영화를 밤늦도록 보았다. 나는 잠을 청해야 했는데 텔레비전 화면 조명이 방해가 되었다. `음소거 상태로 자막만 보는데 지장이 없지 않느냐.`는 남편과 실랑이를 했다. 더 이상 같이 잘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섰다. 수면의 패턴이 달라서 따로 자는 것을 고심했는데 결정적으로 그 시기가 당겨졌다. 그때 아래채 빈 방이 생각났다.
6. 큰 채의 안방에서 떨어져 나와 아래채의 방으로 옮겨갔다. 드나드는 문 이외에는 책장과 옷장이 빼곡히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컴퓨터를 쓰거나 영화를 볼 때 쓰던 방이다. 사정은 여의찮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매트를 깔 때는 비좁아서 삐뚜름하게 펴야 할 정도로 군색스러웠다.
7. 몇 달을 그렇게 지내다보니 뚝 떨어져 누리는 평온함에 익숙해져갔다. 시간에 거리낌 없이 영화나 음악, 책을 읽다 잠들 수 있어서 불편한 생활을 상쇄시킬 만큼의 해방감을 느꼈다.
8. 어느 날, 산행 모임에 가져갈 고구마를 구웠는데 가방에 못다 넣어 남겨두었다. 다녀와서 보니 빈 봉지와 잔 부스러기가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맙소사! 밤에 누워있으면 쥐 달리는 소리가 우당탕거리더라니 사라진 고구마는 놈들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쥐를 잡기 위해 쥐끈끈이를 놓았다. 군고구마 먹이로 유인하기를 여러 날 뒤에 놈이 잡혔다.
9. 또 한 번은 손등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는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지네가 자주 출몰했는데 물린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큰 지네가 대자리 밑에서 기어 나와 기함을 했다. 병원에 가서 해독주사를 맞고 나서야 안심했다. 몇 차례의 그런 일이 생긴 뒤 궁리 끝에 해충 퇴치기를 설치하고 나서 잠잠해졌다.
10.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한옥인 큰채와 달리 아래채는 시멘트 블록에 단열재도 쓰지않고 슬레이트를 얹어 지은 집이다. 여름의 볕과 겨울의 바람만 막아줄 정도였다. 안이나 밖의 기온차가 별반 다르지 않아 여름과 겨울을 나기에는 여간한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열악한 환경은 삶의 질을 끌어내려 침울해졌다.
11. 기분 전환을 위해 변화가 필요했다. 남편과 같이 쓰던 큰 채의 빈방으로 이사를 했다. 고육지책으로 각방을 강행할 당시엔 어머님의 거처였는데 그 후 돌아가시고 나서 비어있었다. 가구를 나르고 액자를 걸기 위해 꼬꼬핀과 레일 액자걸이를 설치했다. 내방 꾸미기를 수월하게 받아들인 남편이 고마웠다.
12. 새로 집을 짓자고 할 때마다 남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속내는 조부모와 부모 형제의 추억과 손때가 묻은 이곳을 허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매일 새집으로 이사 가는 꿈을 꾼다. 내가 나에게 줄 다음 선물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