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순조실록
감분이 당파를 삼기다.
1800 순조 즉위년
7.4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영의정 이병모를 영부사로, 심환지를 영의정으로, 이시수를 좌의정으로, 서용보를 우의정으로, 좌부승지 김조순을 총웅사로 삼다.
7.14 수렴에 대한 비답을 수정하다.
7.20 대행대왕의 의리를 고수할 거라며 불령한 무리를 경계하다.
8.7 문안의 차서를 대왕대비(정순왕후), 왕대비, 혜경궁, 가순궁의 순서로 정하다.
12.18 대왕대비가 장문의 언문 하교를 내려 오희연교를 해석하고 의리를 간범한 자들의 자수를 촉구하다.
12.25 대왕대비가 정조 24년 5얼에 이조 판서 이만수를 공격했다가 정조의 비판을 받은 김이재의 상소를 사주한 김이익이 자수하지 않는다며 절도 안치를 명하다. 또한 전 유수 서유린을 극변에 안치하고, 자명 자수하는 이가 없는 데도 조용히 있다며 대간을 힐난하다.
12.26 양사에서 홍낙임을 탄핵하다.
1801 순조 1년
1.1 대왕대비가 홍국영의 관작 추탈을 명하다.
1.10 대왕대비가 감사, 수령들에게 사학의 엄금을 명하고 오가작통법의 시행을 촉구하다. 또한 탐람하는 풍속은 다대부의 염치가 사라진 소치라며 엄벌을 명하다.
1.28 내노비, 사노비의 혁파를 명하다.
2.14 국문장에서 사학죄인들이 시종 당당한 모습을 보이다.
2.25 정약종이 시록한 글과 소지한 문서로 인해서 정약전과 정약용이 혐의를 벗다.
2.26 이승훈, 정약종 등 사학 관련자들을 대거 정법하고 정약용, 정약전 등은 유배하다. 황사영은 도주하다.
3.15 주분모가 자수했다는 보고가 있다.
3.16 주문모의 공초에 따라 이인의 처 송씨와 이담의 처 신씨도 사학을 신봉했음이 드런자 사사를 명하다.
3.19 대왕대비가 사학죄인들을 섬으로 유배를 보낼 경우 서로 교통하고 외국과 통교할 수 있다며 각 고을의 읍옥에 한명씩 가두라고 명하다.
3.19 김상헌의 봉사손 김건순도 서학 신봉자로 드러나다.
4.17 장진 부사 이여절이 고문으로 가짜 황사영을 만들어내다.
4.20 주문모, 김건순 등의 사학죄인들을 정법하다.
5.25 삼사가 홍국영, 서명선, 정민시에 대한 추죄를 청하다.
5.28 강화 유수가 이인과 그의 아들 철득이 어둠을 틈타 가시울타리 사이로 빠져나가다 붙잡혔다고 보고하다.
5.29 홍낙임을 사사하다.
6.28 김조순을 이조 판서로, 김관주를 예조 판서로 삼다.
7.4 김조순이 이조판서와 장임을 면해달라고 상소하다.
8.11 이여절의 죄상을 밝히고 백성을 위무하는 하교를 내리다.
9.2 김조순이 본직과 겸직의 해면을 거듭 청하니 총사만 해면을 허락하다.
10.3 황사영이 체포돼 압송 중이라고 포청에서 보고하다.
10.13 집의 홍희윤이 황사영의 흉서와 관련해 유배 중인 정약용 등의 국문을 청하다.
11.5황사영 등을 정법하고 정약용, 이치훈 등은 다시 유배하다.
11.10 이조판서 김조순이 사직을 청하니 허락하다.
12.15 양사에서채제공의 추탈을 청하다.
12.18 채제공에 대한 청을 받아들이다.
1802 순조 2년
1.20 심환지의 청을 빌려 장용영을 철폐하다.
5.18 김조순을 홍문관, 예문관, 교서관의 대제학에 제수하다.
6.4 김조순이 네 번에 걸쳐 사직소를 내니 허락하다.
7.6 대왕대비가 암행어사들이 현달한 거족은 적발하지 않는다며 경계하고 장오죄에 대해 엄히 경계하다.
8.10 대왕대비가 대신과 예조 당상을 소견하고 삼간택, 친영 모두 하루가 급하다는 뜻을 보이다.
1803 순조 3년
2.14 대왕대비가 각도 경시관과 도사를 불러 과거의 폐단에 대해 하교하고 단단히 경계시키다.
12.28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다.
1804 순조 4년
대비가 다시 수렴하여 근래 대간의 상소 등을 문제 삼자 이시수가 수렴에 대해 강력히 저지하다.
6.24 대비가 언문 하교를 내려 당시의 일을 해명하고 대간의 비판이 자신을 겨누고 있음에 대해 분개하다.
1805 순조 5년
1.12 대왕대비가 승하하다.
12.27 우의정 김달순이 경모궁(사도세자) 을 비판했던 박치원, 윤재겸을 추증해 간언을 용납하는 덕을 드러낼 것을 청하다.
1806 순조 6년
2.15 모든 논단에 남보다 뒤질세라 과격해지는 습속을 지적하다.
4.7 대신들의 거듭된 청에 김달순의 사사를 명하다.
5.13 도승지 김이영이 소를 올려 김한록의 8자흉언을 거론하다.
6.25 삼사의 합계에 따라 김귀주의 관작을 추탈하다.
효안전(정순대비의 사당)을 찾아 김귀주, 김관주, 심환지 등을 처리한 일을 고하다.
1807 순조 7년
41.27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홍낙임의 죄를 씻어주다.
1808 순조 8년
11.4 상소해 시파, 벽파에 대해 논한 이심도를 양비론을 빌려 김귀주 측을 옹호했다고 국문한 뒤 정형하다.
11.29 홍봉한의 집에 승지를 보내 치제하다.
1809 순조 9년
9.25 증광감시 초시를 설행하는 중에 서울 제2소에서 난종이 일어 2만6천여명의 참가자 중에 시권을 7천장 밖에 받지 못하다.
9.28 과거를 보는 곳에 시중드는 사람을 데려오지 못하는 금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 등에 대해 말하고 엄히 경계하다.
1810 순조 10년
9.21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이 격쟁해 아비의 신원을 청하자 향리로 추방하라고 명하다.
1811 순조 11년
7.23 김조순을 금위대장에 제수했으나 끝내 사양하자 받아들이다.
8.8 잠을 못 이루고 수라를 잘 못 드는 상황이 계속되다.
10.5 좌의정 김재찬이 탐관오리는 국가와 백성의 원수라 아뢰다.
12.20 평안 병사 이해우가 반란군이 가산을 점령했다고 보고하다.(홍경래의 난 발발)
1812 순조 12년
1.1 지난 12.29일에 승전했다고 평안 병사가 보고하다.
1.10 가산 군수 정시의 의연한 죽음에 대한 보고가 있다.
4.21 정주성이 함락되고 반군이 무너지다. 전투 관련 제반 보고가 있다.
7.27 홍경래의 목과 홍총각 등을 압송하고, 생포한 남녀 3천명 중 여자와 10세 이하를 뺀 1917명을 효수하다.
8.20 토벌에 공을 세우고 전하산 의병장 허항을 위해 복수하고 따라 죽은 그의 아내를 정려하다.
1813 순조 13년
12.3 양제해가 모반을 꾀하다 적발되었다고 제주 목사가 보고하다.
1814 순조 14년
11.23 다리의 종기 고름이 터지다.
1815 순조 15년
12.15 혜경궁이 경춘전에서 승하하다.
1816 순조 16년
충청 수사가 장계를 올려 영국 배 2척에 대해 보고하다.
1817 순조 17년
11.30 이인의 아들들을 딴 곳으로 옮겨 지키게 한 데 대해 신하들이 뒤늦게 알고 이의를 제기하다.
1818 순조 18년
9.20 영남 유생 천여명이 연명으로 채제공을 변론하는 소를 올리다.
1819 순조 19년어영청 화약고가 불타 건물 100간, 화약 9만3천여 근, 연환 61만여개를 태우고 20명이 죽다.
1822 순조 22년
2.28 이인의 자녀들 집의 가시울타리와 감시를 철거하고 비용을 제공해 혼인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하다.
1823 순조 23년
7.25 서얼 유생 9,996명이 상소해서 등용을 약속한 선왕의 뜻을 이어줄 것을 청하다.
1825 순조 25년
8.18 김조순의 회갑에 술을 내리고, 아들 김좌근에게 6품직을 내리다.
1826 순조 26년
4.11 청주 북성문에 흉서가 걸리다.
5.3 홍경래 등이 죽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흉서를 괘서한 김치규 등을 정법하다.
1827 순조 27년
2.9 왕세자에게 서무를 대리하라고 명하다.
2.18 세자의 대리청정이 시작되다.
1829 순조 29년
10.3 화재로 경희궁이 거의 절반이나 불에 타다.
1830 순조 30년
4.9 음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옛 음악을 익히도록 하라고 하령하다.
윤 4.22 세자가 각혈하다.
5.6 왕세자가 희정당에서 흉서하다.
7.12 왕이 친히 제문을 짓다.
1832 순조 32년
4.3 김조순이 졸하다.
5.12 복온공주가 졸하다.
6.13 병온공주가 졸하다.
7.21 홍충도 감사가 고대도에 정박한 영국 배와 그 배의 선원과 대화한 내용, 그들의 주장 등에 대해 보고하다.
1833 순조 33년
3.8 도성 안 백성이 가겟집을 부수고 불을 지르다.
3.11 백성 7인을 효수하다.사간이 37고을 중에서 20고들에 출두한 경기암행어사 이시원의 행태와 폐단을 밝히다.
1834 순조 34년
1.22 과거의 폐단에 대해 말하며 단단히 경계하다.
7.9 심상규를 영의정에, 홍석주를 좌의정에, 박종훈을 우의정에 제수하다.
10.28 두통, 대소변 불순이 계속되다.
11.8 다리가 불편하다.
11.12 맥후가 크게 부족하다.
11.13 경희궁 회상전에서 승하하다.
(그동안 역사서나 소설, 드라마에서 그녀는 무척 사악하게 묘사돼왔다. '영조의 계비로 들어간 열다섯 살 나이부터 그녀는 이미 사도세자 죽이기의 축이었고, 세손의 정적으로 세손을 제거하려 온갖 노력을 다했으며, 정조 즉위 뒤에는 정조의 정책을 사사건건 뱐대한 벽파의 수괴였는가 하면, 급기야 순조 초에는 수렴청정을 통해 정조의 모든 것을 부정해버린 반동정치의 수괴였다'는 식으로.
정조가 영웅화되면 될수록 정순왕후는 악의 캐릭터로 고착돼갔다. 김조순의 딸을 순조의 비로 삼고자 했던 정조의 뜻을 이어받고, 순조 나이 열다섯이 가까워지자 선선히 수렴을 거둔 일 등도 그다지 평가되지 않는다. 공노비의 해방 같은 그녀의 개혁적 조치들은 단지 민심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렇게 완벽한 영웅에 완벽한 안티 영웅이 만들어졌다.
순조실록 후반기의 기록이 극히 부실하기 때문에 정도 외에 순조의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기록의 부실은 대부분의 결정이 비변사에서 이루어졌고, 왕은 의례적으로 신하들을 불 보고 추인하는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임을 의미한다 하겠다.)
(쩡이는 어느 맑고 푸른 가을날 오전 중국으로 떠났다. 아비는 과연 먹먹한 존재인 채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했다. 햇빛이 찬란한 이 가을에 쩡이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고난의 출발선, 외국에서 새롭게 출발을 한다. 쩡이와 함께 했던 긴 날들. 여행... 오늘 퇴근 이후부터 쩡이는 존재감이 엷어져 가리라. 때론 지저분하게 널린 침대위의 옷가지를 보며 혀를 차고, 빗질 후 방에 떨어진 쩡이의 머리칼을 쓸면서 푸념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캄푸라치 하고도 남는 쩡이의 애교와 선진 지식들. 이제 쩡이 없이 늙은이들끼리 의견을 내고 수군구군대며 삶을 이어나가야 하리라. 존재의 부재로 인해 가슴이 먹먹하고 눈가가 시큰해오리라...)
(어제 양덕초교 동문 체육대회. 10시에 도착. 말머리고개에서 밤 줏다. 야문 아람의 계절이다. 밤나무에 올라가 흔들어 따는 외지 사람들. 인심좋은 농가. 어디에서 코스모스 무리를 봤더라. 아! 차는 너무나 빨라요. 가을은 코스모스다. 아내의 내락의 고마움. 함께 참석했다. 상효.태섭.완서.종균이 참석. 오후에 차가 한대 와서 멈춰 족구하는 시야를 가렸는데, 내리는 사람은? 경복이였다. 그는 한없이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달관해 있다. 의정부 사돈은 음전한 자태와 차분한 맑음으로 8기 기수총무일을 보더라. 훌라후프돌리는 사진 찍다. 넉넉하고 흐뭇한 부드러운 엷은 구름의 파란 하늘. 멀리 바라다보이는 감악산. 운동장에 퍼지는 사무국장 범석이의 목소리. 각종 시의원 국회의원 똥파리들. 병운이 여동생과 그녀의 남편의 남성스러움. 6기 선배의 호기심같은 밝은 표정. 종철에게 인사. 그는 어딘가 야위어가는 느낌. 볼이 파였다. 인과응보를 생각했던가! 피구하는 여자들 틈에 종균이 동생 발견. 그런데 왜 그녀에게서 비호감 같은 느낌을 받는 걸까? 나도 선뜻 나서서 아는척할 수 없는 건. '종균이에게만은 내 결백을 예기해야 할까봐.' 그런 생각을 하다. 나는 떳떳하고 무탈하고 선하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옳고 단정한 생애는 지금 보상을 받고 있지 않은가. 지금 송총무와 메시지. "아내가 젊어 그대가 감시해야 할 판에~~에그~~ 뭔일인지 모르겄네. 암튼 와이프가 그댈 많이 사랑하나봐~~ㅋㅋ" 태선이형이 아는 체를 해 주었고, 그런데 나는 왜 즉각 대답을 못했는지... 바보처럼. 봉준이가 운동장을 질러 가는 게 보였으나 아는체하기 싫었다. 원준이는 내손을 붙들고 놔 주지 않았다. "흥규가 잘돼야 내가 술한잔 얻어먹는데, 자꾸 돈이 말라서 안타까워." 그를 지역유지라고 떠받들고 그는 손사렐 쳤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고. 동생 좀 봐주라고 부탁했고 그는 진짜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진정이 어떤건지 모르겠으나 그의 큰형님은 내가 존경한다고 말해주었다. 송총무는 족구할 때 옆에서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치고, 탄성을 지르고 안타까워했다. 흥규네 기수가 우승했다. 수비를 현대.완서.광원이가 봤는데 수비가 문제였다. 되돌아보니 범석이가 뛰었으면 좋았을텐데... 그 생각을 못했넹. 잣나무와 리기다송이 아주 굵고 그 옛날에도 크게 보였던 뒷동산의 잣나무도 사리산을 배경으로 여전했다. 교사는 측면을 벽화로 그려 옛생각을 희석시켰고, 백일홍이 뒷 교사 뜰에 소소하게 피었다. 방명희는 원래 이름이 순희였다고 했다. 그녀의 가지런한 치아와 여린 얼굴선. 관리를 잘했구나 싶다. 이순신장군 부인도 '방'씨였다. 기범이는 굴곡이 이쁘다고 좌중에 말해 주었고 그는 노래를 불러 배호노래 대상을 차지했다. 빈 박스의 부상과함께ㅋㅋ. 나중에 사무국장의 '실수'가 언급되었고 십만원 상품권 예길 했다. 헤프닝. 완서와 옥자들과 헤어져 기와터로 갔다. 가지 고추를 따 담아 놓은 김원사. 그의 부인과 그들의 고장까지 주행하다. 노을. 아침이 벌써저녁 노을이 되었다. 새말. 경방? 무슨 '대방'인가? 횟집에서 술. 그도 그녀도 술을 잘햇다. 처음 만날 때 예기와 진섭이가 이틀에 한번 덤벼서 고민이라는 그녀. 진안태생. 마이산 있는 마을. 마음씨가 곱게 생기긴 했다. 이런 농담을 나누면 진섭이는 얼굴을 붉힌다. 내가 모범생이었다고, 자신을 올바르게 생장시켰다고 함부로 야, 너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가 고마왔다. 그래, 그랬었지. 옳바른 삶을 살았었지. 고지식하고 재미없고 고독했던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지금 보상을 받고 있잖은가. 착한 아내, 아내는 대리비를 애초에 요구했고, 주 5만원에서 3만원을 대리비로 달라고 했다. 하수오와 삼지구엽초를 먹고 정신을 놓았고 집에 도착했다고 아내가 깨웠다.)
18 헌종. 철종실록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1834 헌종 즉위년
11.18 왕이 숭정문에서 즉위하다.
11.19 대행왕의 묘호를 순종으로 하고(철종 때 이르러 순조로 개칭) 효명세자를 추증해 익종으로 하다.
1835 헌종 1년
4.19 순조를 장사지내다.
7.19 김유근을 훈련대장.조만영을 어영대장으로 삼다.
8.25 과장에서 소란을 일으킨 유생들을 정거시키고, 그 아비의 죄를 무겁게 물도록 하다.
1836 헌종 2년
1.8 대왕대비가 하직하는 수령들을 희정당으로 불러 선정을 당부하다.
1837 헌종 3년
3.18 김조근의 딸을 책봉해 왕비로 삼다.
5.12 대왕대비가 징계를 받은 수령이 이내 복귀하는 문제를 지적하다.
11.25 신하들이 오순 기념잔치를 청하자 이에 반대하여 '여군女君'이라는 표현을 쓰다.
1838 헌종 4년
윤 4.13 <순조실록>이 완성되다.
1839 헌종 5년
3.5 우의정 이지연이 사학의 일을 끝까지 파헤칠 것을 청하니 따르다.
4.12 사학죄인 9명을 참수하다.
5.25 대왕대비가 사학을 징계하고 다스리는 일에 소홀하고 지체되고 있다고 지적하다.
6.6 대왕대비가 조세를 나르는 배의 침몰 등이 늘어나는 데 대해 간사한 폐단이 있는 것 같다며 엄중한 처리를 명하다.
6.10 사학죄인 8명을 참수하다.
7.13 비변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오가작통법을 거듭 밝혀 사학죄인 연좌를 강화하기로 하다.
7.26 사학죄인 6명을 참수하다.
8.14 서양인 신부 3명을 포함해 관련자들을 추국하고 참수하다.
8.19 사학죄인 9명을 참수하다.
12.28 사학죄인 3명을 참수하다.
1840 헌종 6년
3.25 사신으로 다녀온 이정리가 중국에서 천주학을 금했다는 것. 영국이 변경을 어지럽힌다는 등의 정보를 아뢰고 황제의 아편 금지령을 별도 문서로 올리다.
7.10 대사헌 김홍근이 윤상도, 김노경 문제를 제기하여 처벌을 청하다.
8.11 윤상도를 대역부도로 능지처사하다(익종의 대상에 대관으로서 박종훈,유상량을 논하여 세자의 덕망을 무함한 죄)였다.
9.4 우의정 조인영이 김정희의 처리를 청하자 증거가 없으니 사형을 감함이 마땅하다며 제주도 대정현에 위리안치를 명하다.
12.17 김유근이 졸하다.
12.25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다.
12.30 제주 모슬포에 영국 배 두 척이 정박해 포를 쏘고 소를 잡아가다.
1845 헌종 11년
6.29 영국 배가 호남, 제주 바다 등지에 나타나서 측량한다는 보고가 올라오다.
1846 헌종 12년
5.20 황해 감사가 김대건을 잡아 가두자 의정부에서 엄히 조사케 하다.
7.3 충청 감사가 장계를 올려 이양선과 섬 백성이 문답한 기록과 프랑스 신부 살해에항의하고 내년에 답장을 받으로오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양인의 글을 올리다.
7.15 이양인(불랑국)이 올린 글과 김대건 문제 처리를 영의정 권돈인과 의논하다.
7.25 김대건의 효수를 명하다.
1847 헌종 13년
7.18 대왕대비가 언문 교지를 내려 후사를 위해 빈을 간택할 것을 요구하다.
1020 주부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삼다.
1848 헌종 14년
5.9 아편을 빠는 기구를 가져오다 의주에서 붙잡힌 박희영을 추자도로 보내 종으로 삼다.
12.6 조병현, 김정희의 석방을 명하다.
12
29 이해 여름 이래 이양선이 경상,전라,강원,함경 등지에 셀 수 없이 여러 번 출몰했다는 사실을 기록하다.
1849 헌종 15년
4.10 체기에서 비롯된 병환에 의원이 들어와 진찰하다.
5.14 얼굴에는 부기가 있고 먹은 뒤 배가 거북하다고 밝히다.
6.6 대보를 대왕대비전에 바치라고 명하고, 창덕궁 중희당에서승하하다.
1849 철종 즉위년
6.9 인정문에서즉위하다. 대왕대비가 왕에게 언문 교지를 내려 나아갈 바를 가르치다.
7.14 전 정언 강한혁이 조병현과 윤치영을 탄핵하다.
8.23 조병현을 사사하다.
1850 철종 1년
10.10 김좌근을 금위대장으로 삼다.
1851 철종 2년
4.4 김좌근에게 훈련대장을 제수하다.
7.22 김정희를 멀리 북청부에 유배를 보내다.
12.28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다.
1852 철종 3년
10.22 삼정, 특히 환곡의 폐단과 백성의 고통을 말하고, 수령들에게 방책을 받아서 관찰사를 통해 올리라고 이르다.
1854 철종 5년
1.25 탐관오리의 해로움을 말하고 경고하다.
4.27 이양선이 포를 쏘아 백성이 죽었는데 이에 대해 묻지도 못한 영흥, 덕원 부사를 죄줄 것을 비변사가 청하다.
6.12 대사헌 강시영이 함경도 연해읍에 이국선이 와서 교역하는 폐단을 엄중하게 타이르고 경계할 것을 청하다.
7.10 아들을 낳은 궁인 박씨를 귀인에 봉하다.
1855 철종 6년
4.18 홍인한의 관작 회복을 명하다.
4.20 대간의 반대로 홍인한에 대한 명을 거두다.
5.15 경상도 유생 1만여명이 소를 올려 경모궁(사도세자) 추승을 거론하자 대사헌 유장환이 영남 유생을 죄줄 것을 청하다. 왕이 영남 유생의 수두를 불러 경모궁 추숭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다.
8.2 오혁 등 팔도의 유생 3,416명이 윤선거, 윤증, 조석우, 이현일을 탄핵하는 소를 올리자 소두를 정거조치하다.
8.8 박홍양이 오혁을 비판하다. 팔도의 유생들이 다시 소를 올리다.
9.1 느닷없이 70~80년 뒤에 와서 시비의 단서를 일으킨다며 모혁을 귀양 보내라고 명하고, 만인소.팔도소라 부르며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릴 경우 소두를 엄벌하겠다고 경고하다.
1856 철종 7년
10.10 김정희가 졸하다.
1857 철종 8년
8.4 대왕대비가 양심합에서 승하하다.
1858 철종 9년
10.17 원자가 탄생하다.
10.25 홍인한의 관작을 회복하다.
1860 철종 11년
8.8 일본이 노서아, 불란서, 영길리, 아묵리가 등 네 나라와 통화했다는 소식을 전해오다.
8.29 탐관오리의 약탈과 착취를 엄히 경계할 것을 의정부에 명하다.
11.2 대사헌 서대순이 소를 올려 안동김씨의 세도를 비판한 경평군 이호를 탄핵하자 이호의 문외출송을 명하다.
11.6 이호를 강진현 신지도에 유배하고 집 둘레에 가시울타리를 쳐서 가두다.
1861 철종 12년
3.26 과장에서 화폐가 나돈 데 대해 샅샅이 조사해 처벌하라고 명하다.
3.27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에게 중국의 정세를 묻자 양이와 억지로 화친했으나 천하가 어지럽다고 답하다.
4.3 과시에 편법을 행한 이들을 합격자 명부에서 삭제하고 10년간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다.
6.19 열하사를 불러 중국 정세를 듣다.
1862 철종 13년
2.29 경상 감사 이돈영이 진주에서 민란이 발생했다고 보고하다.
4.2 익산군에서민란이 발생해 전라 감사 김시연의 관직과 지위를 빼앗다.
4.4 경상 안핵사가 진주민란의 원인은 우병사 백작신의 탐학이라고 보고하다.
4.21 전라도 가도사가 함평에서 민란이 일으켰다고 보고하다.
5.12 회덕 백성의 소요가 보고되다.
5.20 연산현 초군들의 소요가 보고되다.
5.21 은진 백성의 소요가 보고되다.
5.25 삼정의 폐단을 개혁할 기구를 설치할 것을 결정하다.
5.29 생사당의 철거를 명하다. 경상 감사가 선산, 상주, 거창 백성의 소요를 보고하다.
8.27 좌의정 조두순이 환곡을 폐지할 경우 그 급대를 전결에 부과시켜야 한다는 것과 정당치 못하게 전결에 첨부하는 것을 엄금할 것을 아뢰다.
윤 8.8 궁인 이씨가 아들을 낳다.
10.29 비변사의 아룀에 따라 삼정을 다시 옛 규칙에 따라 행하게 하다.
1863 철종 14년
5.29 중국의 사서 <약편>에 조선 왕실에 대해 잘못 기록된 것을 보고 사신을 보내 문제를 제기하자 중국 조정이 수용했다는 보고가 다다르다.
7.30 가극 죄인 김시연, 위리 죄인 백낙신 등을 대거 고향으로 돌려보내다.
12.8 대보를 대왕대비전에 보내다. 묘시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19 고종실록
쇄국의 길, 개화의 길
1863 고종 즉위년
12.8 대왕대비가 흥선군의 둘째 아들 이명복을 익성군으로 삼고 익종대왕의 뒤를 잇게 하겠다고 말하고 언문 전교를 내리다.
12.9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에 봉하다.
12.13 고종이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12.20 선전관 정운귀가 최제우와 동학에 대해 보고하다.
1864 고종 1년
1.21 대왕대비가 수령과 변장에 제수된 이들과 벼슬에 처음 오른 이들을 불러 경계의 말을 하다.
1.24 대왕대비가 궁방, 내수사, 각 관청이나 군영, 고관의 집안을 등에 업고 보를 파거나 둑을 쌓는다며 폐단을 지적하고 엄금할 것을 명하다.
2.5 대왕대비가 조선을 고의로 침몰시킨 선주와 멋대로 선주를 귀가 조치한 수령의 처벌을 명하다.
2.28 함경 감사 이유원이 러시아인 3명이 두만강을 건너와 통상을 요구했다고 보고하다.
3.2 최제우를 효수하다.
3.3 전 의주 부윤 심이택이 각종 비리와 부민들에게 강탈한 재산이 27만냥에 이른다는 암행어사의 보고에 큰 거리에서 한 차례 형신한 다음 제주에 위리안치하라고 명하다.
3.13 의정부에서 방곡의 폐단을 엄히 경계할 것을 청하니 윤허하다.
3.20 좌의정 조두순이 전 참봉 이항로의 6품직 제수를 청하니 받아들이다.
4.7 철종을 예릉에 장사지내다.
4.22 대왕대비가 전국의 서원,향현사,생사당 등에 소속되어 있는 토지와 일꾼의 수를 상세히 기록해 보고하라고 명하다.
4.29 대왕대비가 포구에서 조세를 거두는 일, 보를 쌓아 이익을 취하는 일, 5일장에서 도고를 차리는 일을 없앨것을 거듭 밝히고 실태를 조사 보고하라 명하다.
5.18 대왕대비가 선파로 죄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중 의리에 크게 관계되거나 역적 을 제외하고 심사 복권하라 명하다.
6.6 대왕대비가 운현궁과 금위영 사이에 문 하나를 내라 명하다.
6.15 조두순을 영의정에 임명하다.
7.27 대왕대비가 서원의 폐단과 금령을 무시한 설치에 대해 지적하다.
8.20 대왕대비가 청탁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잡과의 폐단을 말하고고치게 하다.
12.13 청탁을 위해 서울에 머물러 있는 지방 아전들을 잡아들여 엄히 다스릴 것을 명하다.
1865 고종 2년
2.9 대왕대비가 의정부 청사를 새로 지을 것을 명하여 내탕금 2만냥을 내리다.
3.15 왕이 이번 식년시 합격자 명단 끝에 응시한 선파 사람 전원과 풍양 조씨 전원을 적어넣으라고 명하다.(풍양조씨는 대왕대비의 반대로 명을 거두다).
3.29 대왕대비가 비변사를 의정부에 통합하라 명하다.
4.2 대왕대비가 경복궁 중건을 명하다.
4.3 대왕대비가 경복궁 중건에 대해 대신들이 의견을 듣고, 일체를 대원군에 맡겼으니 의논해 처리하라 명하다.
윤 5.16 <철종실록>이 완성되다.
7.27 경상 감사가 장계를 올려 이양선이 영일현에 정박했는데 큰 배가 파손되어 배와 양식을 내주었다고 보고하다.
7.28 경기 감사가 원환곡 16만 8천여 석 중에서 실제 수효는 1만 4천여석 뿐이라고 보고하다.
7.30 영의정 조두순이 삼정參政이 경비에 보탬이 되는 것은 다른 세수에 비할 바가 아니라며적은 분량이라도 몰래 가지고 나가면 적발 즉시 사형에 처할 것을 청하자 대왕대비가 따르다.
8.9 경기도 장부에 남아 있는 환곡의 1/3을 탕감하다.
8.20 황해 감사 홍순목이 청국 배가 들어왔는데 그중 1인은 영국인으로 한 뭉치의 종이(성서와 역서)를 던져놓고 떠나갔다고 보고하다.
9.10 대왕대비가 정도전의 훈봉을 회복하고 봉사손을 건원릉 참봉으로 의망하라 명하다.
11.26 경상 유생 1,468명이 만동묘 제사를 청하다.
1866 고종 3년
1.5 형조에서 사학죄인 전장운, 최형의 부대시참을 청하니 따르다.
1.11 포청에서 사교를 전교한 서양인을 체포했다고 보고하다.
1.20 남종삼, 홍봉주와 서양인 신부 4인을 효수키로하다.
2.13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다.
2.18 영국 선박 로나호가 12일에 해미현 조금진으로 와서 정박하고 선주와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통상을 요구하다.
2.25 부산 첨사가 미국 배가 와서 교역을 요청했으나 불응하고 음식물은 제공했다고 보고하다.
3.6 중회당에서 민치록의 딸을 삼간택을 통해 중전으로 맞기로 하다.
3.11 영돈령 김좌근에게 안석과 지팡이를 내리다.
5.10 대왕대비가 30만냥을 내리며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으라고 명하다.
7.5 영국 상선이 해미현 조금진에 와서 통상을 요구하다.
7.8 청나라 예부가 보낸 자문(프랑스가 전교사 살해를 이유로 조선을 치려 한다는 )과 이에 대한 답서, 의정부가 프랑스쪽에 신속히 소식이 전해진 것은 내부자들 때문이라며 사학 무리의 엄단을 청하니 따르다.
7.15 이양선 6척이 다미현에 정박하고 큰 배 1척은 평양 쪽으로 갔다고 평안병사가 보고하다.
7.18 평양 경내 포구로 들어온 이양선이 통상무역을 요구한다고 평양병사가 보고하다.
7.22 이양선이 뒤쫓은 우리 순영중군을 억류하고 대포와 총을 발사하자 백성이 분개해 돌을 던지고 활을 쏘았으며 퇴직 장교가 돌진해 중군을 구해왔다고 평안 감사 박규수가 장계를 올리다.
7.27 화공을 써서 이양선을 공격 해 제압했고 포로로 잡은 자들은 흥분한 군민들이이 때려죽였다고 평안 감사 박규수가 보고하다.
8.13 이양선 1척이 부평지방에 들어섰다고 영종 방어사가 보고하다.
8.16 척사를 주장하는 부호군 기정진의 상소가 있다.
9.6 크고 작은 이양선 6척이 팔미도에서 올라와 큰 배 1척은 부평 앞에, 나머지는 세어도 쪽으로 이동했다고 경기 감사가 보고하다.
9.8 전날 이양선이 강화도 동쪽 성에 돌입해 총을 쏘고 성을 파괴했으며, 장년전의 어진은 백련사로 옮겼다고 강화유수 이인기가 보고하다.
9.10 사헌부가 강화도를 빼앗긴 강화유수이인기와 선봉중군 이용의의 처벌을 청하다.
9.14 사학죄인 이의송 등 3명을 효수하다.
9.16 각 도와 감사들에게 화포과를 실시해 포 쏘는 기술을 익히게 하다.
9.19 문수산성이 함락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9.21 이시원, 이지원 형제가 강화도 함락에 음독자살하자 추증하고 정려문을 내리다.
9.22 하루 전 적들이 광성진 문루와 옥포 강변의 민가와 화약고에 불을 질렀다고 보고하다.
10.3 정족산성 수성장 양현수가 매복하여 기습공격을 감행 해 적들에게 타격을 가했다고 보고하다.
10.9 부평 일대에 정박 중이던 이양선 5척 중 3척이 세어도 밖으로 빠져나갔다고 순무영이 보고하다.
10.13 이양선이 모두 팔미도 밖으로 나갔다는 보고가 있다.
10.15 의정부의 건의에 따라 이양선과 결탁한 사학죄인들을 철저히 색출하기로 하다.
10.25 문수산성, 정족산성 싸움 참가자들에게 포상하다.
10.30 좌의정 김병학이 당백전 주조를 청하다.
11.5 근래 있었던 일들과 관련해 중국 예부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움직임에 대한 자문을 보내오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당당한 답서를 보대다.
11.6 조두순이 당백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다.
12.1 이달 10일부터 당백전을 통용키로 하다.
1867 고종 4년
1.9 익종대왕을 추상하고 대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다.
3.7 중국에서 보내온 자문 중 일본이 조선을 치려 한다는 내용이 있어 쓰시마 도주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서계를 보내다.
5.4 당백전 주조를 이달 15일 뒤에 철폐하라 명하다.
5.18 김병학을 영의정에, 유후조를 좌의정에 임명하다.
6.3 환곡 총량이 줄어든다며 새로 주조하는 돈을 내려보내 영남 60만냥 등 환곡을 만들라 명하다.
6.11 경기, 삼남, 황해에 사창을 설치하다.
10.1 쓰시마 태수가 편지를 보내 조선정벌설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다.
11.16 경복궁에 나아가 축하받고 사면령을 내리다.
1868 고종 5년
1.2 도주盜鑄 엄금을 명하다. 이후 도주자 효수가 꾸준히 이어지다.
2.30 암행어사를 각 도에 보내 당백전 사용을 점검하여 촉진케 하다. 이와 관련해 대원군이 암행어사들에게 내린 분부를 기록.
4.14 궁궐 공사가 해이해졌다며 기간 내 완공을 명하다.
4.23 영종에 정박해 있는 서양 배에서 대원군에게 교만하고 위협적인 어투의 편지를 전하다. 이에 이런 편지를 대원군에게 전할 수 없다며 영종 첨사가 답서를 보내다.
5.29 수원 유수 이경하가 지난번 이양선 구만포에 정박하고 있을 때 환호하고 아첨한 백성 둘을 효수했다고 보고하다.(사학죄인. 도주 죄인에 대한 효수는 계속됨)
7.2 왕이 새 대비전과 중전과 함께 경복궁으로 이어하다.
10.6 대원군이 공사부족을 말하며 관리나 양반들의 집안 하인으로 부역을 면제받은 이는 1인당 당백전 1엽씩 바치게 하다.
10.10 최익현이 소를 올려 세태를 비판하고 토목공사의 중지, 원납전과 당백전 혁파, 문세 금지를 청하다.
11.30 칠원현 백성이 수령을 몰아냈다고 경상 감사가 보고하다.
1869 고종 6년
1.2 대군, 왕자군, 적왕손, 왕손을 제외하고는 종친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게 하다. 대군, 왕자군의 사손으로 7품 이하에 있는 자는 모두 6품으로 올려 제수하다.
3.29 이달 24일에 광양현 난민이 현감을 위협하고 인신 병부까지 빼앗았으나 현감이 아전, 백성을 모아 적들을 체포하고 인부를 되찾았다는 전라감사의 보고 가 있다.
5.8 비적들이 의주 강변에 모여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는 한편 약탈까지 한다는 보고가 있다.
8.20 영의정 김병학과 우의정 홍순목이 개간지는 물론 장부에 올라 있는 경작지까지 서울과 지방의 모리배들이 내수사와 각 궁을 들먹이며세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아뢰다.
10.21 아오지의 군민들이 비적과 호응해 배반하고 약탈해 국경을 넘었다는 함경 감사의 보고가 있다.
12.13 쓰시마 도주의 글이 격식에 어그러져 있어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일러서 수정토록 하다.
1870 고종 7년
1.13 종묘 영녕전 수리비용으로 선혜청에서5만냥을 보내게 하다.
1.24 능이나 원의 정자각 개수 비용으로 선혜청에서 5만냥을 보내게 하다.
2.27 태묘와 각 능의 공사비용으로 선혜청에서 10만 냥을 수송케 하다.
3.15 화성행궁에 나아가 어제사를 내리며 대신들에게 답시를 명하다.
9.10 붕당을 만들고 폐해가 백성에 미치는 서원은 사액서원일지라도 헐어버리라 명하다.
10.8 조두순이 졸하다.
12.20 은그릇을 만들어 운현궁에 바친 보은 군수 이동순을 파면하다.
1871 고종 8년
1.3 성균관에서 선파 유생을 응제하고 2명을 직부전시하다. 이에 직부전시된 이재긍의 나이가 어리다며 대원군이 밤중에 나와서 눈물로 사양하다.
2.21 미국 사신이 중국을 통해 조선에 전한 편지와 그에 대한 조선의 답변.
3.16 정도전, 은언군, 은전군 등 90여명의시호를 추증하다.
3.18 영해부 백성 수백 명이 수령을 죽이고 인신과 병부를 빼앗아가다.
3.20 전국 서원 중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다.
4.9 김창실, 이여강 등 남연군묘의 도굴을 도운 이들을 친국한 뒤 부대시참에 처하다.
4.14 이양선 2척이 종선 4척을 거느리고 손돌목으로 향하자 광성진에서 대포를 쏘다. 이에 저들이 반격하여 손돌목을 지나가다.
4.17 교역 거부를 밝힌 대원군의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히 미군 제독이 답신을 보내다.
4.24 광성진이 함락되다.
4.25 화친을 마하는 자를 매국의 율로 처벌하겠다고 밝히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다.
5.25 강화도에 군사를 증원하고 보루를 튼튼히 할 것을 명하다.
8.11 조령에서 민란을 기도했던 44명이 체포되다.
11.4 원자가 탄생하다.
11.8 원자가 대변이 통하지 않아 죽다.
1872 고종 9년
1.18 조령의 민란 기도 사건과 관련해 이필제, 정기현의 잔당 5명을 효수하다.
2.16 백성의 사정에 따라 세금을 곡식 대신 돈으로 내는 것을 허락하다.
2.22 박영효를 영혜옹주의 남편으로 정하다.
3.3~3.9 개성에 거둥하다. 만월대에서 문무과 정시를 행하다. 돌아오는 길에 폭우로 24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다.
1873 고종 10년
윤 6.0 관학 유생 이 세무가 상소해 대원군을 대로라 부를 것을 청하니 따르다.
10.25 동부승지 최익현이 상소해 대신, 대간, 조정의 기풍을 강력이 비판하고 각종 세금으로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고 지적하다.
11.9 최익현의 답변만 듣고 형신을 가하지 않은 채 제주에 위리안치할 것을 명하다.
11.11 홍순목 등 대신들이 최익현에 대한 엄정한 처리를 청하여 명소패를 바치고 물러가자 파직하다.
11.14 전 헌납 이규형이 호포법 폐지 등을 청하다.
1874 고종 11년
1.19 이경하를 훈련대장에, 조영하를 금위대장에 제수하다.
2.9 충청도 보은의 유생 조영표 등이 만동묘 복원소를 올리다.
6.24 중국 예부에서 자문을 보내 일본이 조선을 노린다며 프랑스나 미국과 조약을 맺으면 일본이 함부로 못할 것이라는 서양상인의 뜻을 전하다.
7.15 탐오한 수령이 거둔 돈의 처리 문제에 대해 영의정 이유원과 우의정 박규수의 논쟁이 있다.
10.20 부사과 이휘림이 대원군이 도성으로 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돌아오도록 청하지 않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소를 올리자 고금도에 위리안치 하다.
11.28 민승호가 누군가가 보내온 함을 열었다가 폭발해 죽다.
1875 고종 12년
2.5 새로 가져온 일본의 서계에 대해 논란 끝에 부사가 가서 연항을 베풀어 위로하고 조목조목 이치를 따져 고쳐오도록 하다.
2.9 제주에 위리안치 중인 최익현의 석방을 명하다.
5.10 일본에서 보내온 서계나 그들이 주장하는 연향 의식, 복식 등에 대해 대신들과 논의하다. 우의정 김병국은 강경한 반대의사를 보였고 좌의정 이최응은 융통성 있는 태도롤 보이다. 역관을 보내 조목조목 바로잡고 다시 보고하게 하다.
5.17 대원군 문제로 물러갖지 않은 유생들에 대해 대신들이 가서 타일러 돌려보내게 하고, 이후에도 계속 같은 일로 상소하면 위를 범한 부도의 율로 시행할 것이라 하다.
6.17 다시 상소한 유생 최화식 등 4인에게 형구를 채워 잡아다 남간에 가두라고 명하다.
8.22 영종 첨사가 난지도에 이양선이 정박하고 있다고 보고하다.
11.20 이최응을 영의정으로 삼다.
1876 고종 13년
1.2 일본 사신의 배가 강화로 떠났다고 동래 부사가 보고하다.
1.5 판부사 신헌과 부퐃관 윤자승을 보내 일본 사신을 만나보게 하다.
1.19~1.20 일본과 조선의 사신이 만나 나눈 대화 기록
1.21 일본 측에서 한시가 급하다며 조약 문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다.
1.23 최익현이 상소해 화친에 대해 결사 반대하다.
2.3 신헌과 구로다 기요타카가 수호조약에 서명하다.
2.9 일본과의 조약 체결 소식을 전국에 공포하게 하다.
6.1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 온 김기수를 불러보다.
7.6 조일수호조규 부록과 무역구칙 내용.
11.4 경복궁의 화재로 인해 830간이 소실되다.
1877 고종 14년
3.5 직부전시하게 된 민영익에게 음악을 내리다.
6.4 조세 상납을 지연시킨 수령, 아전들을 엄벌하라 명하다.
9.21 혜산과 운총 두 진 사이 우리 백성이 비적 무리와 결탁해 국경을 넘어가 난동을 부린다는 보고가 있다.
1878 고종 15년
4.4 거듭되는 서원복구 주장에 반대 뜻을 분명히 하다.
5.4 프랑스 사신이 중국을 통해 조선에서 붙잡힌 선교사를 구해줄 것을 청하자 의주를 거쳐 내보내기로 하다.
5.5 지난 4월 3일 서수라에 비적 수백명이 배를 타고 와 포를 쏘며 진영을 습격하고 사람과 물건을 실어갔다고 북병사가 보고하다.
1879 고종 16년
(정융휴가 왜 불퉁스럽게 느껴질까?! 그 놈에 대한 트라우마까 생길지경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찌 변명할 수 있으랴. 그렇치 않다하더래도 바뀌는 게 뭐 있겠노. 공연히 스스로에게 빌미잡혀 안으로 곱추지 말고 떵떳하게 내 자세를 잡자. 점심 때 옆자리에 와 앉았는데 은근히 그와 나 사이에 암묵적 유감이 흐르더라.)
3.25 세납 지연에 대해 논의하다.
윤 3.22 일본 공사가 지나는 길에 백성의 접근을 금지케 하다.
4.19 대리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가 인천과 원산의 개항을 요구하다.
7.9 영국과 독일, 프랑스, 미국과 통상해 일본을 견제하고 러시아가 엿보는 것을 방지하라고 권고하는 북양대신 리홍장의 편지와 이에 대한 이유원의 답장.
8.15 김병학이 졸하다.
1880 고종 17년
3.23 김홍집을 수신사로 삼아 일본에 갈 것을 명하다.
4.10 흑암 앞바다에미국 배가 와서 우호를 맺고자 하는 서계를 가녀왔으나 받지 않았다고 경상 감사가 보고하다.
7.9 무기 제조법을 비롯해 기술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중국에 자문을 청하다.
8.28 김병국을 좌의정으로 삼다.
9.8 영의정 이최응을 불러 김홍집 일행에 대한 일본 측의 후대와김홍집이 가져 온 <사의조선책략>에 대해 논의하다.
12.21 대원군을 불러보다. 의정부에서 통리기무아문 설치 관련 절목을 올리다.
1881 고종 18년
2.4 무기 제조법 등을 배워오는 문제에 대해 중국의 긍정적 답변이 오다.
2.27 통신사를 줄이고 이름도 신사로 고치기로 하다.
3.23 <사의조선책략>, <만국공법> 등의 서적들을 종로거리에서 불태우고 예수교 배척 뜻을 널리 밝힐 것을 촉구하는 홍시중의 소가 올라오다.
5.22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나무를 베어 원산과 부산으로 실어 나른다는 보고에 검찰사를 파견하다.
1882 고종 19년
1.13 서당보를 영의정에, 송근수를 좌의정에 제수하다.
3.3 홍순목을 영의정으로 삼다.
4.6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관세 조항을 넣다.
5.23 교린 때 국서에 찍을 대군주의 인장과 대조선국 대군주의 인장을 만들도록 하다.
6.5 훈련도감의 군졸들이 13개월간 밀리다 한 달분의 급료를 받았는데 이마져도 모자라자 고지기를 구타하다.
6.9 무위대장 이경하에게 동별영으로 달려가 군졸들을 불러 조사하고 타이른 뒤 보고하라 명하다. 수백 명의 군졸이 의그부에 뛰어들어 옥문을 부수고 남간에 갇힌 백낙간을 데리고 가다. 또한 난민들이 청수관에 와 있던 일본인을 죽이고 인근 집들을 불태우고 경기 감영의 무기고를 부수어 탈취하다.
6.10 난병들이 궐을 범하다. 선혜청 제조 민겸호, 지충추부사 김보현, 영돈령 이최응이 살해되고 중궁전이 승하했다고 발표하다. 무위영을 종전대로 훈련도감으로 돌리고, 나머지 각 영도 옛 규례를 회복하다. 아울러 기무아문을 혁파해 삼군부로 되돌리다.
6.11 의정부에서 대원군을 받드는 의절에 대해 별단을 만들다.
6.22 각종 도고를 혁파하라 명하다.
6.27 무위영에 이속시킨 미, 전, 포, 목 등을 해당 아문에 환속케 하다.
6.29 중국 사신의 배가 인천에 정박해 대관 만나기를 청하다.
6.30 일본 공사의 배가 제물포에 정박했다고 의정부에서 보고하다.
7.12 마젠충이 이현에 가서 일본 영사곤도 모토스케를 만나다.
7.13 우창칭이 100명을 거느리고 딩루창, 마젠충과 함께 운현궁으로 가다.
7.15 청국 군대가 대원군을 텐진으로 압송하다.
7.17 50만원 배상, 공사관에 군사를 두어 경비, 조선이 대관을 보내 사과 등의 내용을 담은 조일수교조규를 체결하다. 일본인의 통행 가능 권역을 확대하고 1년 뒤엔 양화진까지 개시한다는 내용을 담은 수호조규속약도 체결하다.
7.20 모든 것이 자신의 죄라며 새로워지겠다고 백성에게 다짐하다.
7.22 서북인, 송도인, 서얼, 의원, 중인, 역관, 서리, 군오를 가리지 않고 재주 있는 자는 등용하겠다고 밝히다.
7.25 뱍영효를 수신대사로, 김만식을 부사로 삼아 일본으로 보내기로 하다.봉상시정 서상조가 중궁전이 살아 계시다며의장을 갖춰 맞아들일 것을 청하다.
8.1 중궁전이 청국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환궁하다.
8.5 서양과 교류해야 할 이유를 밝히고 척화비를 모두 뽑아버리라고 명하다.
8.23 유학 지석영이 상소해 원을 하나 두어 서양 관련 서적을 수집케 하고, 각종 기계들도 구비해 고을마다 유생, 관리를 1명씩 뽑아 소속시켜 보고 익히게 한 뒤, 잘하는 자는 서용할 것을 청하다.
9.2 김병국을 좌의정에 임명하다.
9.22 김옥균을 우부승지에 임명하다.
9.23 민정들을 선발해 우창칭 군문에교습을 청하다. 이에 위안스카이(원세개)500명을 선발해 1개 군영을 만들어 훈련시키고, 다시 추가로 1개 군영이 편성되다.
9.24 중전의 상사를 발표했던 당시의 문임 임응준과 예조판서 이희정을 도배하다.
10.7 전적 변옥이 소를 올려 일본시그, 중국식 따지지 말고 우수한 것을 취해 군사훈련을 할 것과 운선, 대포, 전선도 각국을 본받아 설치하자고 주장하다.
10.17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다.
11.2 새로 급제한 이완용에게 음악을 하사하다.
11.17 통리아문 설치를 명하다. 파울 뮐렌도르프를 참의통리아문사무로 삼다.
11.22 홍순목을 영의정에 임명하다.
11.28 돌아온 수신사 박영효를 불러 보다.
12.25 중국인 마젠창을 의금부 찬의 겸 회판교섭통상사무에 임명하다.
1883 고종 20년
1.17 김욕균 등 4인을 교섭통상사무 참의에 제수하다.
1.23 한성부에 순경부를 설치키로 하다.
1.24 부산항 해저 전선 설치 조관을 체결하다.
1.27 국기를 제정하다.
4.5 김옥균을 이조 참의로 삼다.
4.29 중궁에 대해 국상 처리를 맡았던 조병창, 조우희, 이회정, 임응준 등을 사사하다.
5.11 파울 묄렌도르프가 명을 받들고 12마력의 화륜기기를 구매하고 주사 김명균이 텐진의 기술자 4명을 고용해 귀국하다.
5.23 기기국 설치를 명하다.
6.5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을 미국 답방 담당관으로 삼다.
6.10 임오군란 관련자인 장태진, 허욱 등 7인을 부대시참하다.
6.22 조일통상장정, 항행이정약조를 체결하다.
8.1 삼군부 혁파 후 보부상들이 아직도 귀속할 곳이 없다며 군국아문에 속하게 하다.
10.27 조영수호통상조약과 조독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다.
11.20 조헌과 김집을 문묘에 배향하다.
12.3 평톈과 조선변민교역장정을 체결하다.
1884 고종 21년
1.11 울릉도에 일본인들의 벌목이 여전하다며 김옥균이 보고하다.
1.25 수령들이 백성에게서는 엽전으로 거두고 상납은 당오전으로 한다고 김병국이 아뢰다.
3.27 우정총국을 설치하고 홍영식을 우정총판으로 삼다.
3.29 파울 묄렌도르프를 공조 참판에 제수하다.
5.22 김병국을 영의정에 임명하다.
5.26 지린과 조선상민수시무역장정을 체결하다.
윤 5.4 조이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다.
윤 5.5 러시아 전권대신 카를 베베르가 상륙해 서울로 향하다.
윤 5.15 조러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다.
윤 5.24 홍단령을 금하고 관복은 흑단령만 입게 하다.
6.3 왕의 명을 맏들어 예조에서 복식 개혁 절목을 올리다.
8.26 군영제도를 전영, 후영, 좌영, 우영체제로 개편해 전영사, 후영사, 좌영사, 우영사를 두다.
9.15 편전에 나아가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와 육해군 사관을 접견하다.
일본 천황이 배상금 중에서 40만원을 돌려 주다.
10.17 우정국 낙성식에서 정변이 일어나 밤에 경우궁으로 옮기다.
10.18 정변 주도자들이 좌영사 이조연, 후영사 윤태준, 전영사 한규직, 좌찬성 민태호, 지중추부사 조영하, 해방총관 민영목, 내시 유재현을 죽이다. 욍이 이재원의 집을 거쳐 관물현으로 옮기다.
10.19 청나라 군대의 공격에 김옥균 등이 일본군과 함게 인천을통해 일본으로 도주하고, 홍영식, 박영교는 피살되다.
10.23 창덕궁으로 돌아오다.
11.24 살해당한 일본인 유가족들에게 배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성조약이 체결되다.
1885 고종 22년
1.17 경복궁으로 돌아오다.
2.29 광혜원을 설치하다.
3.4 리홍장과 이토 히로부미가 텐진조약을 체결하다.
3.10 영국이 거문도를 얼마간 차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다.
3.20 리홍장이 영국의 뜻을 허락하면 안 된다는 편지를 보내오다.
5.28 이탈리아와 수호조약이 체결되다.
6.16 교섭통상사무협판 묄렌도르프를 파면하다.
8.25 흥선대원군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도승지를 보내 문안하게 하다.
9.10 대원군을 조정의 신하들이 사사로이 만나지 못하게 하다.
1886 고종 23년
1.2 사노비 사역은 한 몸에만 그치고 세습하지 못하게 하다.
1.23 부사과 권봉희가 상소에서 무덤을 몰래 파헤치고 해골을 자루에 담아 돈을 요구하는 세태를 거론하다.
3.5 미국인 데니를 협판내무부사 겸 관외아문장교사 당상에 임명하다.
3.11 노비 문제에 관한 절목을 만들어 전국에 알리다.
4.10 김옥균 등과 편지 연락한 신기선 등 5명을 원악도에 안치하다.
5.3 프랑스와 조약을 맺다.
7.15 내무부 공작사에서 사온 윤선이 인천항에 정박하다. 이에 각 도의 공물 납부는 이 윤선을 쓰도록 하다.
7.29 위안스카이가 조선 정세를 논하며 청에 복속되어야 함을 강변하는 장문의 글을 의정부와 왕에게 올리다.
9.10 무명잡세를 혁파하라는 명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며, 한성부와 각 도의 어떤 세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조사해 혁파할 것을 명하다.
11.23 심순택을 영의정으로 삼다.
1887 고종 24년
4.5 광무국을 새로 만들고 민영익을 총판으로 삼다.
4.17 의정부가 거문도를 점령했던 영국군이 철수했다고 보고하다.
8.17 일본 배가 가파도에서 전복을 따다가 모슬포에 상륙한 뒤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다.
10.29 좌의정 김홍집을 총리대신에 제수하다. 전환국의 조폐창과 기기국의 기기창이 완공되다.
1888 고종 25년
10.8 동래항을 통해 다른나라의 쌀이 들어와 쌀값이 떨어지다.
11.10 화륜선 2척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짐을 운반하는 배와 삯배도 이용해 곡식을 운반하게 하다.
1889 고종 26년
1.30 정선군에서 백성의 소요가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다.
6.28 의정부가 인제, 통천의 민란에 대해 설명하다.
9.17 광양에서 일어난 민란에 대해 조사하도록 명하다.
11.14 수원에서 소요가 일어나다.
1890 고종 27년
4.17 대왕대비가 승하하다.
11.23 미국인 클래런스 그레이트하우스를 협판내무부사로 삼고 외국 법률에 관한 사무 처리를 명하다.
1891 고종 28년
8.22 일본 배들이 증명서도 없이 제주에 정박해 약탈하고 살인을 저지르다.
12.29 왕자 강에게 의화군의 직위를 내리다.
1892 고종 29년
3.10 함흥에서 소요가 일어나다.
5.29 오스트리아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다.
11.2 회령에서 소요를 일으킨 백성에 대한 처리를 명하다.
1893 고종 30년
2.2 심순택을 영의정으로, 조병세를 좌의정으로 삼다.
2.25 홍문관이 동학의 우두머리를 목 벨 것을 청하다.
2.28 의정부가 서울과 지방에 통지해 동학의 소두를 체포하고 엄히 조사해 실정을 캐낸 후 그 우두머리는 형벌을 내리고, 잔당은 잘못을 깨우치게 만들어야 한다고 아뢰다.
3.26 대신들과 동학 문제를 논의한 뒤 어윤중을 충청과 전라의 선무사로 삼다. 이때 왕은 청국 군사를 빌리기를 희망했으나 대신들이 반대하다.
3.30 선무사 어윤중이 보은군 난민을 타일러 해산시켰다고 보고하다.
4.1 충청과 전라에 윤음을 내려 괴수를 사로잡아 바치거나 종적을 신고하는 자에게는 상을 내릴 것이고 도망쳐온 자는 용서하겠다고 하다.
8.21 부호군 이건창이 소를 올려 군인을 보내 동학의 무리를 다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10.23 은언군의 사손인 이완용은 나이에 구애되지 말고 벼슬에 추천하라고 명하다.
1894 고종 31년
1.15 전라 감사 김문현이 장계를 올려 고부에서 난을 일으킨 백성에 대해 보고하다.
3.9 중국 병선이 김옥균의 시체를 싣고 월미도에 정박하다.
4.2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삼다.
4.4 좌의정 조병세가 고부의 민란은 한가지 폐단이라도 바로잡아 백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뢰다.
4.8 인천을 떠난 경군이 군산포에 상륙하다.
4.27 인정전에 나아가 김옥균이 처단된 데 대해 축하를 받고 대사령을 내리다. 전라 감영이 동학 무리에게 함락되다.
5.1 청군 1,500명이 두 척의 군함에 타고 아산으로 들어오자 공조 참판 이중하를 청 함대의 영접관으로 삼아 보내다.
5.9 진주성이 회복되다.
5.23 편전에 나아가 일본 공사 오토리케이스케를 접견했는데 그가 조선의 내정개혁안을 건의하다.
6.21 일본 군사들이 대궐을 점령하고 대원군이 입궐해 개혁 문제를 주관하다.
6.22 모든 서무에서 중요한 사안이면 대원군의 결재를 받으라고 명하다.
7.1 군국기무처에서 개국기념 사용 등을 건의하다.
7.2 군국기무처에서 천인 신분 해방 등을 건의하다.
7.9 호서 이인역에 동학 무리가 모였다는 보고에 정경원을 호서선무사로 삼아 내려보니다.
7.22 청일전쟁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조일동맹조약이 체결되다.
7.30 동학당 수천명이 성 안에 난입해 무기 등을 빼앗아갔다고 전라 우수사가 보고하다.
8.1 박영효가 사정을 하소연하는 글을 제출하니 받아들이다.
8.4 박영효의 죄를 말소하다.
8.9 영천군 난민 수천 명이 관아에 뛰어들어 군사 대장을 불태우다.
8.22 연좌제를 금지하다.
9.10 평안도 곳곳의 수령들이 도주했다는 보고가 올라오다.
9.17 동학당이 남원부를 점령하다.
9.22 호위부장 신정희를 양호도순무사로 삼아 보내다. 이때 모인 동학군이 5~6만 명이라고 보고하다.
9.25 지석영을 포토사로 삼다.
10.1 관동에도 비적이 출몰한다 하여 포토사를 보내기로 하다.
10.2 동학군이 제천과 음죽의 무기를 빼앗아가다.
10.29 일본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20개의 개혁안을 제출하다.
10.25 대원군의 재가를 받도록 한 하교를 거두다.
10.27 옥천 세성산에서 수천 명의 동학군을 물리치다.
11.4 토벌에 나선 일본군을 칭찬하고지원할 것을 명하는 윤음을 내리다. 희덕 전투에서 동학군 수십 명을 쏘아 죽이고 적들은 흩어졌다는 보고가 올라오다.
11.13 갑신년 관련자들의 죄명을 말소하다.
11.20 청나라 상인을 보호하는 규칙을 마련하다.
11.21 박영효를 내무대신으로, 서광범을 법무대신으로 삼다.
12.5 양호도순무영이 비적 37명을 사살한 내용을 포함한 승전 보고를 올리다.
12.6 지난 12월 2일에 김개남을 생포했다는 보고가 있다.
12.10 지난 12월 9일에 전봉준을 생포해서 압송한다는 보고가 있다.
12.16 군신간의 예절을 간소화하고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쳐 궐 안에 둔다는 등의 조칙을 내리다.
12.17 주상 전하를 대군주 폐하로 바꾸는 등 왕실의 존칭을 고치다.
12.27 능지처참 등의 잔혹한 형벌을 폐지하다.
1895 고종 32년
2.2 교육 강령을 내리다.
3.1 서재필 등 9명의 관작을 회복하다.
3.5 일본 은행과 300만 원의 차관조약을 맺다.
3.10 내무아문이 각 도의 백성에게 우리 역사와 글을 가르칠 것, 남편의 폭력 금지, 조혼 금지, 병에 무당이나 주술을 동원하는 것 금지, 각 동리의 총, 칼, 화약 등을 거둘것 등을 훈시하다.
3.12 8도의 환곡을 사환으로 고쳐 부르고 지방관이 간섭하지 못하게 하다.
3.25 재판소구성법을 반포하다. 내각관제, 중추원관제 등을 반포하다.
3.29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조치를 해제하다. 전봉준, 손화중 등 5인을 교형에 처하다.
4.5 예복 중 답호를 없애고 관리나 백성 모두 검은 두루마기를 입도록 하다.
4.19 특별법원에서 동학당과 연결해 왕과 왕비, 대신들을 제거하려 했다는 혐의로 이준용, 박준양 등 27명을 심리하고 판결하다. 그중 5명은 교형에, 이준용은 종신 유형에 처하다.
4.27 내무대신 박영효에게 총리대신 사무를 대리하게 하다.
윤 5.9 봉수대와 봉수군을 폐지하라 이르다.
윤 5.14 반역을 꾀했다며 박영효를 엄히 조사하여 죄를 다스리라고 명하다.
8.20 묘시에 왕후가 곤녕합에서 훙서하다. 이날 시위대장 홍계훈은 광화문 밖에서 살해되다.
8.22 왕후를 폐서인하다.
9.9 태양력을 쓰되, 개국 504년 11월 17일을 505년 1월 1일로 삼게 하다.
9.28 장동, 계동 등 네 곳에 소학교를 세우다.
9.29 인정과 파루를 중단하다.
10.10 왕후 민씨의 위호를 회복하고, 8월 20일 사건의 관련자들을 체포해 엄히 신문하여 형벌을 내리라고 윤허하다.
10.15 왕후가 지난 8월 20일에 곤녕합에서 승하했다고 반포하다.
11.14 법부에서박선을 왕후시해 당사자로 판결해 교형을 선고하다.
11.5 왕이 단발을 하다.총리대신 김홍집이 연호를 건양으로 의정해 올리니 따르다.
1896 고종 33년
1.7 특진관 김병시가 단발령에 반대하는 소를 올리다.
1.11 단발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을 따라 단발할 것을 권하는 명을 내리다.
2.11 왕과 왕태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다. 김병시를 내각 총리대신으로, 박정양을 내부대신으로, 이완용을 외부대신으로 삼다. 김홍집과 전 농상공부대신 정병하가 백성에게 피살되다. 도망친 죄인 유길준, 조희연, 우범선, 이범래 등을 잡아오게 하다.
2.18 의병들의 해산을 권고하다.
2.25 최익현이 소를 올려 두 차례나 역괴의 소굴이 되었다며 일본을 비판하고, 의병을 옹호함과 아울러 단발령을 철회할 것을 청하다.
3.29 미국인 제임스 모스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주다. 이해 5월 일본인에게 넘김.
4.9 의병장들을 석방하라 명하다.
4.17 모스에게 운산금광 채굴권을 주다.
5.14 제1차 러일협상이 체결되다.
6.9 제2차 러일협상이 체결되다.
7.3 프랑스 회사에 경의철도 부설권을 주다.
7.24 종묘 등의 제사를 모두 옛 법대로 돌리고 옛 역서의 날짜로 하도록 하다.
9.24 내각을 폐지하고 다시 의정부로 돌리다.
11.21 독립협회가 독립문의 기공식을 갖다.
1897 고종 34년
2.1 지난해 10월에 대신들을 살해하고 왕을 모시고 환궁하는 거사를 도모했던 한선회, 이창렬 등에 대한 공소 심리와 처벌이 있다.
2.20 왕이 경운궁으로 돌아오다.
5.1 전 승지 이최영 등이 황제 즉위를 청하다.
7.3 목포와 증남포를 개항하기로 하다.
8.14 연호를 광무로 정하다.
10.1 의정부 의정 심순택, 특진관 조병세 들이 백관을 거느리고 황제 즉위를 청하다.
10.3 황제 즉위를 수락하다.
10.11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다.
10.12 황제의 자리에 오르다.
10.13 국호를 대한으로, 연호를 광무로 종묘와 사직의 신위를 태사, 태직으로 고쳤음을 알리는 환제의 반조문을 내리다.
11.22 진시에 명성황후의 관을 현궁에 내리다.
12.8 명성황후의 졸곡제를 행하다.
1898 고종 35년
2.2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뜨다.
4.16 전 비서승 홍종우가 조선은 천하의 요충지라며 주변국을 공평하게 대우해 자주권을 지키자는 소를 올리다.
5.26 성진,마산, 군산을 개항하고 평양에 시장을 열다.
6.29 각국의 예를 따라 직접 육해군을 통소하겠다는 것과 황태자를 원수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다.
7.18 최시형에게 교형을 선고하다.
7.19 독일인 볼터에게 강원도 금성광산 채굴권을 주다.
7.22 황제를 폐하고 황태자를 옹립하자는 청년애국회 명의의 흉서가 우편으로 일시에 전해지다.
10.4 전 승지 이최영이 독립협회를 비판하는 소를 올리다. 이후 비슷한 상소가 여럿 이어지다.
10.10 황제와 황태자를 독살하려 한 김홍륙 등을 교수형에 처하다.
10.20 독립협회의 활동을 제한하라 명하다.
11.6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패거리를 모으는 자들을 잡아다 법으로 다스리라고 명하다.
11.12 전 승지 윤길병 등이 독립협회를 옹호하고 조병식, 민종목 등을 5흉으로 지적하며 공격하다.
11.17 고영근이 협회를 옹호하고 민회허락을 청하는 소를 올리다.
11.24 수천 군중이 모인 지 여러 날인데 보부상들이 난동을 부려 쫓아내다.
11.26 인화문 밖에 나아가 백성을 불러 타이르다.
12.10 친정 최익현이 소를 올려 민당을 혁파할 것과 차관에 대한 경계, 옛 군법으로의 복귀, 을미년 관련자 토역, 장발과 소매 넓은 옷을 입을 것 등을 주장하다.
12.25 민회의 11가지 죄를 거론하며 그간의 죄는 용서하겠으니 서로 이끌고 물러가라고 명하다.
1899 고종 36년
4.4 중학교 관제를 반포하다.
4.24 박영효과 연계해 황제를 태상황으로, 이준용을 황제로 세우려 한 권형대, 장윤상 등의 역모사건에 대해 보고하다.
5.17 전차 개통식이 있다.
5.26 어린아이가 전차에 치여 죽자 사람들이 기름을 부어 전차를 태워버리다.
6.22 대황제가 육해군을 통솔한다는 등의 원수부규칙이 반포되다.
8.17 조선이 자주독립국이고, 전제정치 체제이며, 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갖는다는 대한국국제가 반포되다.
1900 고종 37년
2.9 강성형, 윤세용 등이 박영효와 연계해 황제 등을 경복궁으로 옮기고 간신들을 제거한 뒤 평양 천도를 꾀한 사건을 보고하다.
4.17 훈장조례와 서구의 복제를 수용한 문관복장규칙을 반포하다.
6.22 특진관 이재순이 홍릉의 자리가 좋지 못하다는 여론이 있다며 옮길 것을 청하다.
8.17 이강을 의왕으로, 이은을 영왕으로 책봉하다.
11.12 경인철도 개통식이 있다.
12.31 일본에 가서 박영효를 만나 한국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와 돈을 마련하려한 이승린과 이조현 등에게 태형 100대와 종신 유형을 내리다.
1901 고종 38년
2.12 금화를 본위 화폐로, 은화, 백동화, 적동화를 보조 화폐로 하는 화폐조례가 반포되다.
3.23 한국.벨기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다.
6.31 제주도 대정군에 소요가 일다.
10.9 제주 소요와 관련해 오대현, 이제수, 이강에게 교형을 선고하다.
1902 고종 39년
1.27 국가歌를 제정하라 명하다.
3.19 한성과 인천 사이에 전화를 설치하는 일에 대한 통신원령 제1호를 반포하다.
4.13 함흥에서 백성의 소요가 일다.
능을 헤친 지 한 해가 넘었는데도 천장이 행해지지 못해 도로 봉분케 하다.
12.20 천연두 치료법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며 의학 교장 지석영에게 훈장을 내리다.
1903 고종 40년
1.18 서경 창건 공사로 인해 평안도의 세금을 2년 동안 3분의 1을 줄여주도록 하다.
3.19 다섯 방위의 큰 산과 진산, 네 방위의 바다와강을 정하다.
5.25 윤용선을 의정부 의정에 임명하다.
11.23 장차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할 때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하다.
1904 고종 41년
2.6 일본과 러시아의 국교가 단절되다.
2.9 일본이 인천에서 러시아 함대를 기습하다.
2.23 한일의정서를 체결하다.
3.11 유길준과 연계해 정변을 도모한 장호익, 조택현 등 8명을 참형에 처하다.
함녕전에서 황태자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접견하다.
3.23 지난해 4월 이후 러시아가 차지했던 용암포를 통상 항구로 만들다.
4.14 경운궁에 불이 나 함녕전, 중화전 등이 모두 타다.
8.22 재정, 외교 고문을 두고, 관련한 사안은 모두 고문에게 물어 시행한다는 내용의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되다.
9.2 의정부 참정 신기선이 황제의 행태에 대한 강경한 비판소를 올리다.
9.15 시흥군 백성 수천명이 군수와 그의 아들, 외국인 2명을 해치고, 직산군 광부 수천 명도 군수를 해치다.
9.22 동학 무리를 소탕하라고 명하다.
9.24 일본인 30여 명에게 각급 훈장을 내리다. 이후 비슷한 일이 허다했다.
11.13 홍릉을 옮기기 위해 설치한 두 도감을 없애라고 명하다.
12.27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외부 고문에 초빙하다.
1905 고종 42년
1.18 봉조하 김병국이 졸하다. 금본위제의 실시와 구화 교환 등을 담은 화폐조례가 실시되다.
4.1 우편,전신, 전화의 관리를 일본 정부에게 위탁한다는 일한통신기관협정서가 체결되다.
4.29 <형법대전>이 완성되어 중앙과 지방에 반포되다.
6.23 지평과 양근에서 의병이 일진회원 8명을 쏘아 죽이다.
6.24 화폐교환소가 설치되다.
7.19 지석영의 상소에 기초해 국문실시안이 마련되다.
8.1 멕시코에 이민 가서 고생하는 백성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라고 명하다.
8.12 조선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고 보호조치 권리를 인정하는 제2차 영일동맹이 체결되다.
9.5 포츠머스조약이 체결되다.
10.18 의병소탕을 명하다(지랄떨고 있네씨발놈들ㅜㅜ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다)
11.10 일본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를 접견하고, 이 자리에서 이토가 국서를 올리다.
11.15 이토와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졉견하고 협약문 초안을 받다.
11.17 을사조약을 체결하다.
11.19 특진관 이근명이 조약을 맺은 대신들의 처벌을 청하다.
11.23 조병세가 청대해 박제순의 형벌을 정하고, 조약에 참여한 대신들의 나라를 판 죄목으로 다스릴 것과 조약무효화를 선언할 것을 청하다. 이후 비슷한 주장이 빗발치다.
11.25 안병찬이 오적의 머리를 잘라 거리에 달아매고, 각국에 공문을 보내 조약의 허위성을 폭로할 것을 청하다.
11.30 민영환과 주영 서리공사 이한응이 자결하다.
12.1 조병세가 자결하다.(정말 장엄한 선조를 가진 후예임이 자랑스럽다)
12.4 학부 주사 이상철과 3대의 상등병 김봉학이 자결하다.(치욕을 죽음으로 항거하는 이런 정신을 똥개새끼들은 새김해야 하리)
12.14 이완용이 을사조약이 이미 성립되었으니 각국 주재 공사들을 조환할 것을 청하니 따르다.
12.16 이완용, 박제순 등 5인이 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여 자신들을 변명하다.
1906 고종 43년
1.5 전 주사 오병서가 이완용 등의 주장을 반박하는 소를 올리다.
2.1 일본이 경성에 통감부를 설치하다.
2.1 경연관 송병선이 자결하다.(위대한 선조님 만세!)
2.17 간밤에 군부대신 이근택의 집에 자객이 들어 참상을 입혔다는 보고가 있다.
4.3 경의 철도가 완공되다.
4.25 경운궁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치라 명하다.
5.25 의병 해산을 촉구하다.
1907 고종 44년
1.24 중화전에 나아가 윤씨를 황태자비로 봉하다.
2.1 일본이 도쿄에 통감부 파출소를 설치하다.
6.11 박영효를 특별히 석방하다.
6.13 박영효의 직첩을 돌려주다.
6.14 내각 관제가 마련되다.이완용을 내각 총리대신에임명하다.
7.6 오적을 처단하려 한 나인영, 오기호 등의 공초를 보고하다.
7.11 총리대신 이완용과 법부대신 조중용의 건의에따라 최제우와 최시형의 죄명을 말소하다.
7.15 이재선에게 직첩을 돌려주다.
7.18 황태자에게 대리케 한다는 교지를 내리다.
1907 순종 즉위년
7.19 명을 받들어 대리청정을 행하고 이어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다.
7.20 헤이그 밀사들을 처벌하다.
7.24 정미7조약이 체결되다.
7.31 조서를 내려 군대를 해산하다.
8.2 연호를 융희로 정하다.
8.7 영왕 은을 황태자로 삼다.
8.23 일본이 통감부 파출소를 간도 용정촌으로 옮겨 사무를 시작하다.
8.27 돈덕전에 나아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다.(미친놈 일본놈들 밑에 있으면서 환제는 얼어죽을...)
9.6 김홍집, 조희연, 유길준 등의 죄명을 씻어주다.
11.19 황태자를 일본에 유학시키도록 명하다.
12.5 황태자가 일본으로떠나다.
1908 순종 1년
3.23 외교 고문 스티븐스가 휴가를 받고 본국으로 갔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명운과 장인환에게 피살되다.
4.10 통감부 임시 간도 파출소 관제를 발포하고 파추롯장을 임명하다.제사 제도 개정에 대해 반포하다.
8.26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반포하다.
10.8 내란죄로 이강년을 교형에 처하다.
10.13 내란죄로 허위를 교형에 처하다.
1909 1.8~ 1.13 남쪽 지방으로 순행을 떠나 대구, 부산, 마산 등지를 돌아보다.
1.27~ 2.3 서쪽 지방으로순행을 떠나 개성, 평양, 의주 등지를 돌아보다.
4.12 내부대신은 수시로 간도에 소속 직원을 파견하게 하고, 파견된 직원은 통감부 임시 간도 파출소장의 지휘를 따르게 하다.
7.12 사법과 감옥에 관한 사무를 일본에 위탁하는 약정서가 작성되다.
7.30 군부와 무관학교를 폐지하다.
8.16 한국은행 설립 협정서가 작성되다.
9.4 간도에 관한 일본과 청의 협약이 체결되다.
10.26 황태자가 오늘 오전 9시 하얼빈역에서 이토가 한국인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고 전보하다.
12.4 일진회장 이용구가 100만회원 연명으로 합방성명서를 발표하다.
12.22 이완용이 거리에서 이재명에게 칼에찔리다.
1910 순종 3년
6.24 경찰 사무를 일본에 위탁하는 약정서가 작성되다.
7.25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국서를 바치다.
8.22 국무대신, 황족 대표자, 문무 원로 대표자들이 모여서 한일병합조약안에 대해 어전회의를 갖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다.
8.23 토지조사법을 반포하다.
8.24 통감부가 경무 총감부령으로 당분간 정치 집회와 옥외에서의 대중 집회를 금하다.
8.29 일본국 황제에게 통치권을 넘기다.
이후
1910
8.29 일본 천황이 조서를 내려 순종은 창덕궁 이왕으로, 고종은 덕수궁 이태왕으로 격하되고 한국은 조선으로 되돌려지다. 아울러 조선 총독부가 설치되고 조선귀족령이 정해지다.
10.7 박영효 후작, 이완용 백작, 등 75명에게 귀족 작위가 내려지다.
10.4 직위를 받은 이들 가운데 김석진이 자결하고, 조정구가 자결에 실패한 뒤 작위를 거부했으며, 윤용구, 한규설, 유길준, 민영달, 홍순형, 조경호는 작위를 반납하다.
1911
1.9 왕세자가 학습원 중등과 1학년에 입학하다.
5.17 경복궁을 총독부에 인계하다.
6.26 경희궁을 총독부에 인계하다.
1917
3.22 이준(이준용)이 훙서하다.
5.9~6.28 순종이 일본에 다녀오다.
11.10 창덕궁 대조전에 불이 나다.
11.27 총독부와 의논해 전각을 중건하는 데 경복궁 전각을 옮겨 짓기로 하다.
1918
12.5 왕세자와 방자 여왕의 혼례를 결정하다.
1919
1.21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이 승하하다.
2.16 홍릉을 천장하다.
3.4 고종을 홍릉에 합장하다.
1920
12.9 왕세자가 육군대학에 입학하다.
1923
11.29 왕세자가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중대장으로 배치되다.
1925
3.24 덕혜옹주에게 일본 유학을 명하다.
1926
4.25 순종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끝-
(모든 왕조의 마지막은 다 처량하다. 아니 아름다운 이양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같은 민족끼리일 때 아름다운 법. 청나라나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서지니까 일본의 차지가 되었다?? 이것은 자주국방의 중요함을 충분하고도 남을만큼 대변하는 것. 지금 우리는 미국힘을 빌어 북한에 대치하고 있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북한조차 누를 수 없는 힘으로 세계를 제패한 미국과 중국과 일본은 또 어찌 견주어야 할 것인가. 차라리 이런 조국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한탄하고 말 것인가! 김대중 같은 사람이 대통령 됐을 땐 남북 간 어느정도 교류와 인식의 틀이 만들어졌었다. 노무현이 추진한 전시작전권 환수 노력도 지금은 다 물건너 갔다. 이명박과 박근혜 이후 남북은 어떻케 변해왔는가. 이 시대에 백성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게 될까... 오늘 혹시 누군가 두려워 보조키 비번 바꿨다.)
첫댓글 15년 10월 8일 12:56분에 집자옮김 완료하다.
8월 29일 일본황제에게 통치권 넘김 -끝-
왕이란 건 모하는 존재였던가!
왕실이 조종당하니깐 삼천리가 쪽을 못 쓰네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독립투사가 일본과 싸우다 죽었는가.
패망한 왕에게 눈꼽치의 위로도 주고 싶지 않다!
오늘날 우리의 위치는 어떤가!
미국이 해방시켜줬는데 남북으로 갈려 싸우고 휴전중이요
북은 핵개발한다고 하고 남한은 말린다고 돌아다니고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파고는 높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무얼 배웠는고?
왜 그리 못난 선조들과 그렇게도 비슷하게 닮았냐???
조선왕조 끝장 부분에 눈이 미친 후 가슴앓이가 자심타
우리는 여당.야당 싸우느라 지새고...
고종의 죽음과 장례식은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해 3.1 만세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종에게는 순종.의친왕 이강, 영친왕 이은이 있다.
귀인장씨 소생의 이강은 특파대사로 유럽순방 후 미국에 유학하기도 했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선언서를 보내고
"나는 한국의 한 서민이 될지언정 일본의 황족 되기를 원치않는 바이니
임시정부가 설립된 단지로가서 광복을 위해 만분의 일이라도보조코자 한다."
그는 망명을 시도해 국경을 넘었으나 붙잡혀 돌아왔다. 그뒤로도 끝까지
일제에 협조를 거부했다.
러일전쟁 와중 신기선이 올린 소
"점쟁이나 허튼 술법을 하는 무리들이 대궐안에 가득합니다. 대신은 폐하를 뵈올 길이 없고
하찮은 관리만 늘 폐하를 뵙게 됩니다...
굿판이 대궐에서 벌어지고 장수를 빌러 명산으로가는 무리들이
길을 덮었습니다.
도대체 뇌물은 무엇에 쓰는 물건이옵니까? 내탕고에 보내 나라의 비용을 넉넉히 만들자는 것
아닙니까? 아! 어찌 생각이 이다지도모자라십니까?
이 두 가지는 하인이나 아녀자도 모두 아는 것인데
명철하신 폐하만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