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생활문화대전
차의 어원
차(茶)는 커피, 코코아와 더불어 지구상의 인류가 음용하는 3대 음료 중의 하나이다. 그 원산지는 중국 운남성(雲南省)일대로서 인류가 처음 차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원시적 농병축목시대인 BC 2,700년경 신농씨(神農氏)때부터로 약 5,000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 사료에 의하면 차의 명칭이 檟(가), 荈詫(천타), 蔎(설), 菜草(채초), 選(선), 瓜蘆木(과로목), 荈(천), 명(茗), 詫(타), 奼(타), 고로(皐蘆) 등 10여 가지였으나 보편적으로 도(荼)로 칭해졌다. 荼(도)자는 한 대(漢代)에 의미 茶(차)자와 섞여 쓰였으나 당시대에 와서 육우(陸羽)가 『茶經』을 저술하여(BC 758년경) 荼(도)자의 일획을 줄여차(茶)자로 씀으로써 글자의 형태와 음과 뜻이 차즘 고정되어 당시대 중기 이후인 9세기경에는 茶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중국 운남성 일대에서 발현한 차는 전파되는 경로에 따라서 다르게 발음되며 각 지역으로 전해졌다.
북동쪽과 서쪽의 주로 육로를 거친 북경을 비롯한 중국 내륙지방, 한국, 일본, 몽골, 러시아, 아랍, 터키, 이란, 그리스 등으로는 중국 광동어(廣東語)계통인 ‘Cha’라고 발음되며 전해졌고 서남쪽 해로(海路)를 거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스페인 등에는 중국 복건어(福建語)계통인 Te, Ti 라고 발음되며 전해졌다. 그 중 포르투갈만은 그 식민지령인 마카오가 광동성에 있었기 때문에 Cha 라고 발음되어 전해졌다.
현재 세계 어디를 가나 차를 나타내는 말은 광동어 계통의 차 Cha와 복건어 계통의 Tea 두 가지뿐이다. 우리나라의 차의 전래에 관한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제42대 홍덕왕 3년 (BC 828년)에 대렴공(大濂公)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차씨를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가야국(伽倻國) 김수로왕의 비가 된 허황옥(許黃玉)에서 비롯된다.
허황옥은 인도 코살라국 아요디아 출신으로 그의 조상은 이미 오래전에 운남성의 이웃인 사천성(四川省) 보주(普州)지방으로 이주해와서 집단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그들이 토착화하여 살던 보주지방 즉 현재의 안악(安岳)지방에서 중앙정부와 마찰을 일으켜 강제이주를 당하자 (BC 47년), 허황옥 일행은 바닷길을 거쳐 우리나라 김해(金海)포구에 도착한 것이다(BC 48년). 그렇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는 차(茶)가 어떻게 발음되며 전해졌을까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차라고 발음되어 왔음을 몇 가지 사료적 근거에서 알 수 있게 된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차는 운남성 일대에서 중국 본토를 거쳐 북동쪽으로 전해진 경우이기 때문에 Cha라고 발음되며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중국 청 시대에 편찬된 대표적 자전(字典)인 『강희자전(康熙字典)』에 의하면 茶는 진가절서가절(眞加切鋤加切) 장가반타가반(丈加反垞加反) 익사반(弋奢反)으로 발음됨을 표기하고 있으니 짜, 차, 사 로 발음됨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차사(茶事)와 관련된 용어가 우리나라 언해본(諺解本)인 『동국정운(東國正韻)』 『월인석보(月印釋譜)』 『두시언해(杜詩諺解)』 『훈몽자회(訓蒙字會)』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 『이두방언(吏讀方言)』 『역어유해(譯語類解)』 『동문유해(同文類解)』 『한청문감(漢淸文鑑)』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 등과 그 외 언해본 소설류 등에서 차로 표기되어 있다.
즉 이들을 살펴보면 ① 『동국정운』은 조선(朝鮮)세종(世宗)이 명(明)나라 『홍무정운(洪武正韻)』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왕명으로 신숙주(申叔舟), 최항(崔恒),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강희안(姜希顔), 이현로(李賢老), 조변안(曺變安), 김증(金曾) 등 9명이 편찬에 착수하여 1447년(세종 29년)에 탈고 하여 이듬해 간행한 운서(韻書)로 우리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茶가
로 나타내는데
자는 오늘날의 짜와 같은 된소리로 발음된다.
② 『월인석보』는 조선 세조(世宗)가 1459년 (세조 5년)에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편하여 간행한 책으로 『월인천강지곡』의 각 절은 본문이 되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의 『석보상절』을 주석같이 하여 편찬하였다. 이것은 『훈민정음(訓民正音)』 이후 제일 먼저 나온 불경 언해서이고 당시의 글자나 말을 그대로 보존하고 국어사(國語史)에 있어 귀중한 문헌으로 그 속에는 ‘
멀(8권 90)’로 나타나 있다.
③ 『두시언해』는 당나라시인 두보(杜甫 711∼770)의 시를 한글로 해석한 책인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의 약칭으로 1481년(성종 12년)에 왕명에 의해 유윤겸(柳允謙) 등이 주해하여 간행된 것으로 1632년(인조 10년) 오숙경이 중간하였다. 15권에 ‘봄
람에 차마시
’ ‘차 한번 다린다’등으로 나타내었다.
④ 『훈몽자회』는 1527년(중종 22년)에 최세진(崔世珍)이 아동을 위해 지은 한자 학습서(漢字 學習書)이다. 종래에 보급되던 『천자문(千字文)』 『유합(類合)』 등은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고사(故事)와 추상적인 것이 많아 아동들의 학서로서는 부적당하므로 보충하는 의미에서 지은 것으로 상중하 3권으로 나누어 한자(漢字) 3360자를 4자 유취(類聚)로 각 물목(物目)을 달고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았다. 생활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관한 글자로 되어 있어 국문 보급에 공이 컸을 뿐만 아니라 고어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그 속에 茶가 ‘
’로 발음 표기가 되어 있다.
⑤ 『박통사언해』는 조선시대의 중국어 학습서이다. 성종(成宗) 때 최세진이 쓴 것을 1677년(숙종 3년)에 권대련(權大連), 박세화(朴世華) 등이 다시 고증하여 간행한 것으로 초간본은 병화(兵火)로 타버렸다. 후에 주중(舟中)이 『노박집람(老朴集覽)』을 발견했는데 『노걸대』와 『박통사』 두 책의 요점을 모아 주해하고 『단자해(單字解)』를 수록한 책으로 이것 또한 최세진의 저서이다. 현재의 『박통사언해』는 『노박집람』을 참고로 하였으며 『노걸대집람』과 『단자해』를 수록한 고어 연구의 귀중한 문헌이다. 중간본 12권에 차방(茶房), 차먹으라, 차거래(茶去來), 찻반(茶盤), 차박사(茶博士), 차엽(茶葉), 차완(茶碗), 차반(茶飯),
할빗(차갈색), 차(茶)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⑥ 『이두방언』은 조선 헌종(憲宗) 때 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이두(吏讀)를 해독한 문헌이다. 이규경의 저서로 우리나라와 중국 및 기타 외국의 사물에 대해여 고증한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80여 개의 이두가 나오는데 그 속에 ‘
담(茶啖)’이라 발음 표기하였으며 이
담은 고려시대부터 써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오주연문장전산고』는 1959년에 고전간행회에서 영인본으로 간행되었다.
⑦ 『역어유해』는 우리말로 풀이한 중국어 단어집이다. 1690년(숙종 16년)에 김경준(金敬俊), 김지남(金指南), 신이행(愼以行) 등이 중국에서 늘 쓰이는 문장이나 단어 중에서 간단한 것을 뽑아 한글로 우리발음을 적어 편찬한 것으로 역과초시(譯科初試)와 한학의 강서로도 쓰였던 책이다. 하권에‘
탕관(茶罐)’으로 발음 표기되어 있다.
⑧ 『동문유해』는 조선 영조(英祖)때 청학훈장(淸學訓長)인 현문항(玄文恒)이 편찬하고 예조판서 이주진(李周鎭)의 건의로 예조에서 간행한 것으로 청나라말로 물명(物名)의 잘못된 것을 교정하고 책 끝에 어록해(語錄解)를 붙인 것이다. 여기에
통(茶筒)으로 나타나 있다.
⑨ 『한청문감』은 조선 정조(正祖)때 이담(李湛), 김진하(金振夏) 등이 만주어학을 집대성하여 편찬 간행한 책으로 그 원본은 파리에 있다. 38부 87류로 분류하여 먼저 각 단어를 한자로 적고 그 아래에 한글로 한음(漢音)을 표시하였다. 또 한글로 국어를 제시하여 다시 그 아래에 만주글자로 만주어를 적어 그 옆에 한글로 그 발음을 붙였다. 책 끝에 그 말에 대한 만주어 설명을 한글로 적어 놓았다. 한청문감 영인본 334쪽에 ‘
종대(茶盤)’ ‘
광기(차바구니)’등이 나타나 있다.
⑩ 『노걸대언해』는 조선 정조(正祖)때 이수(李洙)가 『노걸대』 중간본에 한글번역을 붙인 회화체로 된 중국어를 배우는 책이다. 『노걸대』는 조선 세종(世宗)때 왕명으로 편찬한 중국어 학습서이다. 그 내용은 고려 왕경에서 떠나간 마상(馬商)이 중국 북경까지 가서 말을 팔고 다시 고려에 가져다 팔만한 물건을 사가지고 북경을 출발하여 돌아올 때까지 사용되는 회화를 모아 48장 106절로 나누어 엮은 것으로 시대에 따라 내용이 다소 달라진 책이 나왔다.
한문본으로는 『노걸대』, 『중간노걸대』, 『노걸대신석』의 세 종류가 있고 각각 그 언해본이 있다. 하권에 차반(茶飯), 차(茶)로 표기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여러 언해류(諺解類)에서도 茶는 차로 발음 표기되어 있다. 또한 민간에 전승되어 사용되어온 차와 관련된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우리가 명절이면 조상의 덕을 기리며 추모하는 제례를 차례(다례 : 茶禮)라 하였고 옛 조세제도의 일종인 공물제도(貢物制度) 즉 지방의 토산물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던 것으로 차가 나는 지역은 차를 특산물세로 거둬들였는데 이 때 차를 만들어 보관하던 독을 ‘찻독(茶櫝)’이라 지칭하였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겪은 후 관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문란해져 이것이 폐지되었지만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의 차가 생산되는 곳에서는 거의 오늘날까지 사투리로 ‘챗독(찻독)’이라 불리며 쌀독으로 대신 사용되어 온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렇게 茶와 관련된 일이 차로 발음되어져 오던 것이 현대에 들어서 한자를 한글로 발음된 사전류를 만들면서 차가 다로 변형되어 표기되어 고착된 것이다. 고래(古來)로 전승되어온 전통 차문화를 제대로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음용하는 차사(茶事)에 관련되는 茶는 차로 발음함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즉 차인(茶人), 다도(茶道), 차실(茶室), 헌차(獻茶), 차례(다례, 茶禮), 『동차송(東茶頌)』, 『차신전(茶神傳)』 등으로 발음해야 한다. 현대 한국의 다도(茶道)를 중흥시키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허백련, 박영희, 최범술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최범술은 한국 최초의 차도 개론서이자, 자신의 저서인 『한국(韓國)의 차도(茶道)』(1973년 8월 발행)에서 차와 관련된 차사(茶事)는 차로 발음함이 옳은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가는 ‘효당차도가 반야로’에서는 茶를 차로 발음하며 전통 차도문화를 전승코자 노력하고 있다. 이제 계간지 『차생활』에서 고덕(古德)의 설(說)에 따라 그 뜻을 살리고자 하는 취지로 차로 발음하여 출발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차의 어원 (차생활문화대전, 2012. 7. 10., 정동효, 윤백현, 이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