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천사처럼 - 성 미카엘과 모든 천사 축일 (9월 29일)
주낙현 요셉 신부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서방 중세교회의 여러 성인 축일을 없앤 종교개혁자들도 성 미카엘과 모든 천사 축일만은 남겨서 기념했다. 5세기 때 거룩한 미카엘 천사의 이름을 딴 성당을 봉헌하고 9월 29일에 기념한 일에 기원을 둔다. 당시의 본기도를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는 약간 수정하여 성공회 첫 기도서(1549년)에 옮겨 놓았다.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모든 천사와 인간의 직분을 아름다운 질서로 세우셨습니다. 비오니, 주님의 자비를 베푸시어, 천사들이 하늘에서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듯이, 주님의 명에 따라, 이 세상에 사는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게 하소서.”
성서 희랍어에서 천사를 ‘앙겔로스’라고 한다. 사신(使臣:메신저)이라는 뜻이다. 이 하느님의 사신은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어떤 천사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그리스도교는 천사에게 강인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경계를 넘나들며 신속하게 움직이는 활동,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강력한 힘, 그리고 모든 것을 밝혀 보여주는 빛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천사는 인간의 모습에 날개를 달고 칼을 들고 빛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날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움직임을, 칼은 불굴의 능력을 상징한다. 빛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깨달음을 뜻한다.
성서에는 여러 천사가 나오지만, 네 천사만 그 이름을 알 수 있다. 미카엘, 가브리엘, 우리엘, 라파엘이다. 미카엘 천사는 하느님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천사장이다. 하느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는 분이다. 특히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이기고 새 생명을 얻도록 힘을 주는 천사이다. 미카엘은 한국 성공회의 수호천사이다.
이름 없는 천사들도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찾았던 세 나그네는 알고 보니 천사들이었다. 떠도는 낯선 나그네를 환대한 그들에게 천사들은 축복을 약속했다. 야곱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천사를 붙잡고서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했고 하느님의 축복에 매달렸다. 그 일로 그는 큰 상처를 입어 평생 장애인이 되었지만, 용서와 화해라는 큰 축복을 받았다.
마리아에게 예수 잉태 소식을 알려준 분은 가브리엘 천사였다. 천사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달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예수의 무덤가에 찾아와 슬피 울던 세 여인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려준 이들도 천사들이었다. 그들은 기쁜 소식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며, 부활의 생명을 전해준다.
세례자 성 요한은 인간으로 왔지만 천사로 그려진다. 그는 예수의 길을 준비했고, 주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했다. 그는 진리와 정의를 외치다가 세상 권력에 죽임을 당했다. 교회는 요한을 날개 단 천사로 그렸다. 세상에 하느님을 전하는 메신저였던 탓이다.
천사 이야기의 결론은 한결같다. 우리 자신이 천사가 되라는 초대이다. 우리 교회가 이 세상에서 천사로 활동하는 사명을 지녔다는 부르심이다. 교회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어준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하늘의 뜻을 전하며 산다. 교회는 세상에 진리와 정의를 선포한다. 세상의 고통을 감싸고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일한다. 세상의 그늘에서 억눌려 숨죽이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따스한 볕과 빛을 선사한다. 천사의 이름을 지닌 우리 교회의 선교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