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미투리 한 켤레…'421년 전 사부곡' 세계가 감동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안동대 박물관에 전시된 미투리 한 켤레를 주목했다.
20일 안동대에 따르면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의 사진과 사연이 '사랑의 미투리'라는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11월호에 실렸다. 기사는 이렇게 정리돼 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가 애절한 편지와 함께 발굴돼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1586년 6월 1일 지금의 안동시 정상동 지역에서 살던 임신한 과부가 사별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그녀는 병든 남편의 쾌유를 빌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를 한데 삼은 미투리를 편지와 함께 남편의 무덤에 묻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유물들이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작업 중에 발굴됐다.
편지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그녀의 사랑이 담겨 있다. '꿈에 몰래 와서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소이다'.
이 편지를 소재로 한국에서는 소설 두 권과 다큐멘터리 한 편이 제작되고 무덤 자리엔 여인의 동상이 세워졌다. 수많은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편지의 사본을 구입했다. 이들의 사랑을 주제로 오페라를 연출 중인 박창근 교수는 "편지의 내용이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고 말했다.
이 미투리는 1998년 안동시 정상동 고성이씨 무덤에서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함께 출토된 것으로 마()와 머리카락을 섞어 짠 짚신형 신발로 길이 23㎝, 볼 너비 9㎝가량이다. 출토 당시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18년 전통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잡지로 영어와 한국어.프랑스어.독일어.히브리어.중국어 등으로 발행되고 있다.
안동=송의호 기자 :2006.11.24.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에서 대대로 벼슬을 하던 고성 이씨(固城李氏) 17대손 이응태(李應台 1556∼1586 )라는 사람이 오랜 병석에 있다가 죽었다.
평소 남다른 부부 사이였던 이응태의 부인은 남편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또한 사내 아이“원이”와 유복자가 될 배 속에 든 아이와 함께 살아가야 할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마지막 가는 남편에게 편지를 한 통 적었다.
부인은 이 편지를, 망자 이응태의 가슴에 펼쳐 놓은 후,앞으로는 잘 입지도 못할 자기의 갖가지 옷으로 남편 시신을 감쌌다. 또한 갖가지 장신구도 넣었다.
그리고 부인은 지난 몇 년간 남편이 병석에 있는 동안 남편의 쾌유를 기원하며, 자기 머리카락으로 몰래 만든 미투리(신발) 한 켤레도 관 속에 가지런히 넣어 놓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412년이나 흐른 지난 1998년 4월.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택지 조성공사를 하던 중, 무덤이랄 수 있는 비석이나 봉분 등 아무런 흔적도 없는 맨 땅 속에서 무덤이 하나 나타났다.
이응태의 무덤이었다.
관을 개봉하자 그 속에는 몇 겹의 여자 옷으로 감싸진 미이라가 나왔다.
그래서 발굴팀은 처음 여자 무덤으로 생각했다.
몇 겹의 여자 옷을 조심스럽게 펼치자, 고문체 한글로 쓴 편지가 시신을 감싸고 있었는데 편지는 모든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아래에 있는 “원이 아버지에게”라는 편지가 그것이다.
원이 아버지에게
_ 병술년( 15 8 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_
(번역문)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서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 ***
*다음은, 이응태의 무덤에서 함께 나온 이응태의 형 이몽태가 동생을 보내며 쓴 편지(輓詩)다. 요사이 보기 드문 형제애를 느끼게 하는 편지다.
이 편지는 泣訣舍弟(울면서 아우를 떠나 보내며)라는 제목으로 된 5언고시(五言古詩)로서 아래에 있는 것은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
(번역문)
아우와 함께 부모님 모신지 지금까지 31년이 되었는데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 버리니 아우는 이렇게 급히 간단 말인가
땅을 친들 그저 망망할 뿐이요,하늘에 호소한들 말이 없구나
외로이 나만 내버려 두고 죽어서 뉘와 더불어 함께 할런지
자네가 남기고 간 어린 자식 내 있어 보살필 수 있구려.
바라는 바는 어서 하늘에 오름이니 삼생은 어찌 빠르지 않을쏜가
또 바람은, 힘껏 도움을 내려 부모님 만세토록 장수하심이라
형이 경황없이 곡하며 쓴다.
***
* 매장자 약력 : 종 8품 奉事를 지낸 李命貞(1504-1577)의 처이며, 郡守 文繼昌의 딸이다. 이명정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인 이굉의 손자이고 부친 李孝則은 典醫監奉事를 지냈으며, 이명정도 전의감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 이응태 약력 : 일선문씨의 손자, 아버지 堯臣(1523-1611)은 군자감 참봉을 지냈고 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를 받았다.
응태는 요신의 2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31세에 요절하였다. 조선후기 간행된 족보에 묘미상으로 되어 있어 이번에 수백년만에 분묘가 획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