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불행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 때 내 나이 몇 살쯤일까.
호젓한 산 속에 황토 집을 짓고, 벽난로에 통장작 불을 지피고, 문 창호지를 비집고 스미는 자연의 소리에 동무을 그리워하고. 목마른 길손에게 옹달샘 물을 바가지로 떠주며,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미소와 함께 살리라고 꿈을 꾸었다. 그려던 소녀의 맑은 눈빛에 잿빛 안개가 서리고 투병으로 세상밖에서 이방인이 되어 있다. 한 조각 구름처럼 오늘 위에 서 있는 나 ㅡ 게실염이란 의사의 오진과 반복된 수술의 후유증은, 내 인생에 먹구름을 몰고 와 이상과 꿈을 앗아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의욕의 상실로 우울증이란 검은 그림자는 나를 유혹하기도했다. 사망의 늪으로.
사면이 절벽이었다. 긴긴터널 생멸(生滅)의 갈림길에서 ‘이것이 아닌데’ 하는 생물의 발동은 '신은 나를 버리실리 없다'는 자각이 희망을 찾아 이천년 시월 말 태평양을 건너게 했다.
지금도 수술하기 나쁜 '소장과 대장 사이의 폐쇄증'과 기형된 장의 연동 운동 경직으로 ‘수술을 해보았자 재미없다’ 는 의사의 진단. 건강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안고 있기에 나는 생활주변과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다. 가족에게 원했다. 일년 동안만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유를 달라고. ‘어떻하던 살아 있는 것이 낳지 않느냐’ 는 가족간의 몸부림이었을게다. 고국을 벗어날 때 칭칭 휘어 감던 인연의 고리와 문화의 너울을 훌훌 벗어 던지고, 질병에 서린 억울함도 태평양에 사장(死藏)시킨다. 나의 많은 것들을 하늘에 맡기고, ‘죽으라면 죽으리라’ 는 체념과 어쩌면 돌아 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는 각오로 ㅡ 한 마리 꿈을 꾸는 파랑새 되어 이역만리 날아왔다.
요양! 홀로 퍼덕이는 파랑새를 보고 세상의 참새들은 재잘댄다. 처음에는 "남편이 참 너그럽기도 하다" "하루 저녁 술값도 안 되는 비행기 값인데 너무 무심한 것 아니냐" "가족이 지쳐서 될 대로 되라는 것이겠지.” 날이 갈수록 ‘혹시 문제있는 여자 아닌가’ 하는 눈초리다. 교회 안 자매들의 눈빛이 따갑다. “아플수록 가족의 보호아래서 전도을 해야지, 왜 사서 고생일까”한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누가 모르나.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사랑을 순환하며 사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행복 중에 가장 큰 선물이란 것을. 참새들이 어찌 자유를 누리는 파랑새의 마음을 알랴. 안보고 안듣고 비교할 것 없는 이곳에서 빈손 빈 마음, 빈 충만의 자유 ㅡ 위대한 마음의 나래를 누구도 가두거나 꺾을 수는 없지않는가. 잠시 중지시키거나 얽매어두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발가벗은 자신과 대면 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은 신이 파랑새에게 내린 꿈과 희망을 찿는 기회이다.
능력을 인정 받는 세상에서, 사람 구실을 못다한 미안함으로 - 자신을 얽어매던 양심의 갈등에서 탈피한다. 이제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강박 관념에서 해방한다. 공평치 못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회의를 묻는다.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 라는 질긴 자아는 진실의 모순에서 벗어난다. 왜 무엇이... 꼬리를 물던 의문의 비관도 사라져 간다. 때때로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자신과의 투쟁으로, 절규하던 마음 밭인 휴전선에도 평화의 봄이 오고 있다. 건강한 이로부터 위축당하며 비교되던 소외감도 없다. 순수를 꿈꾸는 담담한 기도로 영원을 향한 기다림이 있을 뿐이다.
고독! 식욕의 부자유와 절재, 배설의 산고(産痼). 치열한 인내는 거듭 된다. 이방인의 셋방살이 홀로서기 투병길은 참 나를 보게 한다. '유한한 생명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기회를 얻는다. 혹자는 이런 파랑새의 생활을 가족과 이웃을 떠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지 몰른다. 그러나 진리란, 그리고 진실이란 내재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기에. 어느 것이 옳고 어떤 것이 아니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할 수 없지 않는가. 본인이 겪어야 하는 아픔과 생존의 고통은 각자의 환경과 처지ㅡ 개인의 생각과 정도에 따라 다를 것.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받은바 은혜로 건강에 무조건 충실하고 싶다.
이곳에서 이민생활의 삭막함과 노인들의 향수병을 눈으로 확인한다. 꿈이여! 다시 한번 파랑새의 가슴에. 신이 기회를 준다면 속앓이 고질병으로 홀로 아파하며, 잠 못이루는 이에게 용기로 전해질 꿈과 혼이 담긴 투병기를 쓰고 싶다. 이곳에서 등반 ‘산우회’에도 갈 수 없이, 해발 1,000m 의 산도 오르지 못해 퍼덕이며 산기슬에서 맴도는 파랑새에겐 그 꿈이 히말라야의 영봉을 오르는 것만큼, 까마득한 어렵고 힘든 작업인지 모른다. 그러나 고국을 벗어날 때 세상을 향한, 욕망이란 전차에서 내려와 태평양을 건너지 않았는가. 인간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다.
타국의 초겨울, 나뭇잎이 인도(人道)로 곤두박질친다. ‘열정은 주고 재능은 주지 않는 신의 가혹한 형벌’ 이란 구절을 읽은적이 있다. 내게는 그 열정이나 재능보다 건강의 적신호등 대기가 가혹한 형벌이다. 남은 세월 앞에 아직도 꿈은 멀고 투병이란 터널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질병이란 ‘안개가 걷치리라 ’ 는 희망을 멈출 수 없어 자신과 싸우는 불씨를 집히는 열정. 머리가 작은 파랑새는 꼬리 있는 뒷 모습을 채색해 본다. 직립보행( 直立步行)을 하는 인간은 하늘로 향한 머리로는 희망과 이상을 꿈꾸고. 땅을 딛고 선 다리로는 현실에 순응하며 날개짓한다.
아! 살아 있음으로 자연은 이리도 아름답구나. 내가 이룬 소중한 꿈도, 앞으로 이루어야 할 꿈은 아직 파랑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노을빛 아름다운 은혜의 선물로…… . (원고지 10매)
메모:긴긴 투병사리 건강으로 하여 모든 것을 잃고. 심한 우울증의 늪에서
버둥거리다 세상밖으로 도망치는 현실 도피자였습니다
'인명은 제천이라 했던가요'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아닌가는 신만이 아실 뿐입니다.
첫댓글"파랑새"-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꾼 꿈을 극으로 엮은 것으로,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아니하고 우리네 인생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는, 말 그대로 동화극이지요 파랑새라는 닉을 가지신 정정숙님께 마음의 애정을 느꼈더랬습니다 많이 힘든 싸움을 하시고 계시군요
홀로 태평양건너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외로움은 더욱 힘드시리라 여겨집니다 힘내십시요 사랑하는 시원의 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님의 글을 읽으니 가슴한켠이 아려오고 왠지 모를 뜨거움이 용솟아 오릅니다 파랑새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스피노자가 했던 말로 기억합니
다/ 가족속에 있으나 홀로 있으나 인생은 어차피 외길아닌지요 그러나 파랑새님의 마음속에 계시는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다는 복음송을 좋아합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마디? 마침표가 너무 많아서 혼난스럽다고 하면 실례?
어떤 찬란한 유혹이 있다 해도/건강이란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밖에 없는 년말/마음의 애정을 느끼고 뜨거움이 용솟아 오른다는 /님! 성탄절 눈 산타크로스가 되어 밤새도록 혼자 도배를 하드니만/복음송을 좋아하는 지우가 있음도 은혜이지요/마침표? 요즘 수필은 속전속결로 똥똥 뜅기는 맛으로 쓰야 한다기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이 다가올 희망찬 날들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임박해 숨쉬기 조차도 버거워집니다 주어진 시간들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 이시간 내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듯 아파와요 청향님 새해에도 이쁜글 많이 쓰세요 마침표가 아닌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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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태평양건너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외로움은 더욱 힘드시리라 여겨집니다 힘내십시요 사랑하는 시원의 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님의 글을 읽으니 가슴한켠이 아려오고 왠지 모를 뜨거움이 용솟아 오릅니다 파랑새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스피노자가 했던 말로 기억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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