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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할 수도 있다. ‘여행’이라는 동일한 포맷. 예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노년의 배우들. 한때 ‘탑을 쳤던’ 남자 배우는 여전히 ‘할배’들을 안내하는 짐꾼 노릇을 한다. 화면 배경만 달라질 뿐 〈꽃보다 할배〉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꽃할배’들의 네 번째 여행 〈꽃보다 할배 in 그리스〉는 그럼에도 10%에 가까운 시청률이 나왔다. 동 시간대 케이블 종편 시청률 1위다. 역시 ‘나PD’다.
올해 초 방영된 〈삼시 세끼 - 어촌 편〉은 시청률이 13%까지 올라가며 지상파 프로그램을 위협했다. 출연자는 물론이고 방송에 등장한 강아지와 고양이까지 인기를 끌었다.
“〈삼시 세끼- 어촌 편〉의 인기가 높은 이유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솔직히 기자분에게 되묻고 싶어요. 왜 그렇게 높은 시청률이 나온 건지 저도 얼떨떨하거든요. 〈삼시 세끼〉 자체는 망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 큰 기획이었어요. 솔직히 ‘잘될지 몰랐는데 했더니 대박 났다’는 거짓말이고. PD라면 누구나 자기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잘되길 바라면서 만들죠. 그럼에도 〈삼시 세끼〉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매우 부족했던 프로그램이었어요.”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나PD가 누군가. 한때 일요일 저녁이면 (약간 과장해서) 전 국민의 반을 TV 앞으로 불러 모으던 〈1박2일〉의 ‘나PD’ 아니던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쉴 새 없이 웃기고 그래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어야 해요. 그런데 〈삼시 세끼〉는 고정된 장소에서 몇 안 되는 출연진이 딱히 하는 일 없이 흘러가는 프로그램이어서… 웃음의 포인트는 없지만 우리는 그게 포인트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먹히면 이슈가 될 것이고 아니면 처절히 망할 것이다. 빵 터지는 웃음은 없어도 조용히 입가에 미소 띠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다행히 나PD의 생각은 시청자의 욕구와 맞아떨어졌다. 잠깐 한눈을 팔고 딴 생각을 해도 보는 데 지장이 없는 편안한 예능의 탄생이었다.
게다가 〈삼시 세끼〉의 테마는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이 되는 ‘먹고 산다’가 아닌가. 〈삼시 세끼〉는 부엌 근처에 얼씬도 않던 남성 시청자들의 요리 본능도 깨웠다. 방송을 보고 “계란말이에 도전했다” “해물라면을 끓여보았다”는 ‘간증’이 이어졌다.
‘어촌 편’에서는 ‘차줌마’ ‘참바다씨’ 등 캐릭터의 힘과 맞물리며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죠. 시대의 트렌드가 존재하고요. 예전부터 요리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요리’라는 아이템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드디어 최상의 타이밍이 온 거죠. 이른바 먹방・쿡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고 요리만 갖고는 안 될 것 같아서 여러 가지 다른 요소와 섞어서 생각해낸 것이 〈삼시 세끼〉였어요. 좋아하는 걸 적절한 타이밍에 내놓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 사람의 평균적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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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
“PD는 평범한 사람이어야 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 그들이 갖는 관심과 시선 정도만 가져야 하죠. PD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게 돼요. 그러다 보면 대중의 평균 지점에서 멀어지죠. 〈1박2일〉 때 쓰던 텐트는 싸구려 기본 텐트였어요. 캠핑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는 쓰레기를 갖고 나가서 자는 거였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5년 내내 그 텐트만 썼어요. 그게 시청자의 기준점이라고 생각해요.”
나PD는 늘 다수의 시청자를 아우를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 살핀다. ‘소재는 보편적이되, (소재를) 푸는 방식은 참신하게’가 그의 모토다.
“〈1박2일〉이나 〈꽃보다〉 시리즈 모두 ‘여행’이 소재예요. 〈삼시 세끼〉도 밥해 먹고 설거지하는 일상이 소재죠. 특이한 소재가 아닌 거예요. 어떻게 보면 시장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보편적인 상품을 포장만 새로 해서 이렇게도 내보고 저렇게도 내보는 거죠. 여행이나 음식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보편성이 주는 굳건함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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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끼-어촌 편〉의 한 장면. |
“보통 첫 만남 같은 건 회의실 이런 곳에서 누구 등장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 곳에선 할 법한 이야기만 나와요. 하지만 실생활 공간에는 물건 하나하나에 누군가의 숨결이 있어요. 이유가 있어서 거기 있고. 누구 집에 가면 그 집에 있는 거, 그 사람이 먹는 것에 대해 누구나 한마디씩 하거든요. 이건 얼마야? 이건 맛이 어때? 저는 거기서 그 사람의 진짜 모습, 진짜 말투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10대가 넘는 카메라. 환하게 켜진 조명 앞에서 연기하지 않을 수 있는 배우가 누가 있으랴. 출연자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PD의 역할이라고 그는 말한다.
낯가림 심한 PD의 ‘캐스팅’ 선구안
나PD는 KBS 입사 초기 ‘연예인 울렁증’ 때문에 적잖이 고생했다. 방송 사고도 냈다. 연예인과 일할 운명인 예능 PD가 ‘연예인 울렁증’이라니.
시간이 약이랬다. 좋은 출연자도 많이 만났다. 개중에는 형, 누나 하는 사이도 많다. 하지만 천성적인 낯가림은 어쩌질 못했다.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출연자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의 프로그램에는 늘 나오는 사람이 계속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매번 친한 연예인하고만 프로그램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이순재를 필두로 한 〈꽃보다〉 시리즈의 출연진이나 〈삼시 세끼〉의 차승원・유해진 등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리얼리티쇼라는 장르는 자연스럽게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야 해요.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의 줏대, 주체성이 정립돼 있는 사람을 원해요. 나이로 따지자면 40대 이상을 좋아하죠.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이건 〈1박2일〉 할 때 박찬호 선수의 태도에서 배운 건데요. 한 번쯤 인생의 흥망성쇠를 겪어본 사람이 좋아요. 그런 사람은 험한 꼴도 당해보고 최고의 순간도 겪어봤기 때문에 쉽게 일희일비하거나 당장 인기를 얻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지 않거든요.”
나PD는 “그래서 마흔 넘은 사람이 좋다”고 했다.
“차승원씨나 이서진씨도 마찬가지예요. 이서진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다모〉 때처럼 어깨에 힘들어 가서 버릇없던 시절도 있었고, 폭삭 망해서 안 되던 시절도 있었다고. 출연자가 아주 편하게 그런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나이가 좋아요. 하지만 일하다 보면 젊은 친구들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마흔’이라는 나이가 캐스팅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에요.”
나PD의 직업병은 ‘사람 관찰’이다. 어릴 때는 사람한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직업은 리얼리티쇼를 만드는 PD. 리얼리티쇼의 큰 축이 ‘사람’인지라 ‘저 사람은 이 상황에 어떻게 할까’ 이런 것만 십 수년째 생각하다 보니 ‘사람 관찰’이 몸에 뱄다. 그의 이런 직업병 때문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삼시 세끼- 어촌 편〉이다.
“차승원씨와 밥을 먹게 됐거든요. 어촌 편과 상관없이 그냥 만났는데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수다스럽고 아줌마스럽고. 그의 이런 모습을 시청자에게 어떻게 보여주면 재미있을까 생각하다 떠올린 게 ‘어촌 편’이었죠.”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의외의 모습을 포착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재미있게 요리하는 것. 나PD는 그런 발전 과정이 편하면서도 재미있다고 했다.
나PD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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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장수상회〉 관련 인터뷰 자리에서 나온 “나PD도 망해봐야 한다”는 윤여정씨의 발언이 화제였다. 나PD가 “망해봐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은 〈삼시 세끼-정선 편〉 촬영을 위해 정선으로 가던 봉고차 안에서였다.
“첫 회 게스트였던 윤여정 선생님을 모시고 가면서 이번 프로그램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서 망할 것 같다고 징징댔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영석아, 넌 망해봐야 해. 망할 때가 됐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짓눌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될 거야”라고 하셨어요. 한번 망해서 다 잃어 보고 사람들한테 ‘병신’ 소리 들어봐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래야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걸 기쁘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어요.”
나PD는 “그때가 정말 조마조마하고 있을 때였다”고 고백했다. 〈삼시 세끼〉는 이미 촬영에 들어갔지만 찍어봐도 재미는 없고 망할 것만 같았다고. 그런데 하는 것마다 다 잘되고 성공하던 때라 이번 것도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굉장히 컸다.
“윤여정 선생님한테 그런 티를 낸 적이 없었는데 인생을 60년 넘게 사신 분의 내공인지 말 안 해도 다 아시는 것 같았어요. 지금은 성공만 해왔기 때문에 경직돼 있고 중압감이 심할 거라고. 그 말씀이 큰 위로가 됐어요. 사람이 더 큰 성공을 바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미지 관리하고 좋은 일, 올바른 일, 아주 뻔한 일만 하게 되거든요. 망할 것 같다는 건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PD라면 그런 위험한 일에 도전하는 게 맞는 건데 성공만 하다 보면 위험부담 없는 일만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어요. 요즘 새 프로그램 들어갈 때마다 윤여정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얻어요. 최근 들어 자주 만나는 ‘배우’이기도 해요.”
성공과 인기에 대한 부담은 팀원들과 나눠 갖기도 한다. ‘이번에 망하면 내 뒤를 봐주라’는 식이다. 그 정도로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아니면 협업의 시너지가 나올 수 없는 게 방송일이다.
‘나영석 사단’은 나PD에 대한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그는 지금 25명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팀을 이끌고 있다. KBS 시절의 딱 두 배다.
“실제로 팀원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요. 우리가 함께 만든다는 것에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 효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팀워크에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그만큼 각각의 스태프가 좀 더 잘해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끼는 지점도 분명히 있고, 일하는 데 있어서 몰입도도 높아져요. 그렇게 선순환을 만들어야 좋은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해요.”
나PD는 그의 저서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마흔이 되면 콧수염을 기르고 술집을 하고 싶다고 썼다. 김C가 자신을 찾겠다고 베를린으로 떠난 것도 마흔이었고, 이명한 PD가 〈1박2일〉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도 이 즈음이었다. 40대의 나PD는 어떤 사람일까.
“〈1박2일〉 그만두고 CJ E&M으로 오기 전에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그런 고민 안 해요. 고민의 시간 다음에는 책임지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의 제 선택은 한 번 더 열심히 일을 해보자는 거였어요. 앞으로 2~3년은 다른 생각 안 하고 일에만 집중할 거예요. 그런 다음 그때 가서 다음에 뭘 할지 고민할 것 같아요. 원래 프로그램 만들 때는 프로그램 이외의 것은 고민 안 하는 편이에요.”
〈1박2일〉을 시작할 무렵 태어난 딸은 어느새 초등학생이 됐다. 요즘 주말에는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더 이상 딸에게 아빠는 집에 와서 잠만 자고 가는 하숙생이 아니다. 그래도 딸이 잠든 밤이면 사무실에 나오기도 한다.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들고 또 그 결과가 좋은 시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그렇게 길게 가지도 않을 거고요. 나중에 돌이켜 보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재능을 다 소진하고 더 이상 해볼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해도 더 해볼 걸, 더 노력할 걸 후회할 것만 같아요. 그래서 지금 일이 많아서 힘들고 짜증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하고 싶은 것을 더 해보자는 생각을 해요.”
〈삼시 세끼-정선 편〉은 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나PD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아직은 기획 단계라 구체적인 내용은 훗날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겠지만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 세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의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작품이 될 듯하다.
첫댓글 삼시세끼와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를 거의다보았는데
1박2일할때부터
나영석pd의 팬이되었어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인기가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