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I Live Rick Rigsby
Cal Maritime 대학 2017년도 졸업식장에서 연설한 연설문
Making an impact, it’s not about making a nice impression It’s about making an impact It’s about doing your best
영향력을 만드는 것 그것은 좋은 인상을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영향력을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The wisest person I ever met in my life, a third-grade dropout. Wisest and dropout in the same sentence is rather oxymoronic, like jumbo shrimp. Like Fun Run, ain’t nothing fun about it, like Microsoft Works. You all don’t hear me. I used to say like country music, but I’ve lived in Texas so long, I love country music now. I hunt. I fish. I have cowboy boots and cowboy …
나는 내가 만났던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부터 영향력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한 사람입니다. 가장 지혜롭고 중퇴를 했다는 내용이 모순일 수도 있습니다. 대하(점보새우) 처럼 말입니다. 즐겁게 달리기 하는 것처럼 달리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마치 마이크로소프트 업무 처럼요. 여러분은 내말을 듣지 않겠지요. 저는 컨트리 음악처럼 말하곤 했지만 텍사스에 오래 살았고 지금은 컨트리 음악을 좋아합니다. 나는 사냥도 하고 낚시도 하고 카우보이 장화도 있고 목동도 있습니다.
You all, I’m a blackneck redneck. Do you hear what I’m saying to you? No longer oxymoronic for me to say country music, and it’s not oxymoronic for me to say third grade and dropout.
여러분 모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있습니까? 나는 검은 목과 붉은 목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가 컨트리 음악을 말하는 것은 나에게 더 이상 모순이 아니듯이 3학년과 중퇴자를 언급하는 것도 나에게는 모순이 아닙니다. (백인들이 좋아하는 컨트리 음악을 흑인이 좋아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That third grade dropout, the wisest person I ever met in my life, who taught me to combine knowledge and wisdom to make an impact, was my father, a simple cook, wisest man I ever met in my life, just a simple cook, left school in the third grade to help out on the family farm, but just because he left school doesn’t mean his education stopped.
초등학교 3학년 중퇴자인 그는 내 인생에서 만났던 가장 현명한 사람이며 영향력 있는 충격요법을 만드는 지혜와 지식을 합쳐서 나에게 가르쳤던 사람이며 바로 나의 아버지였습니다. 단순한 요리사, 내가 만나본 가장 현명한 사람이며 단지 단순한 요리사인 아버지는 가족 농장을 돌보기 위해서 초등학교 3학년으로 학교를 그만 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학교를 떠났다는 이유로 공부를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학교 다니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었지 공부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Mark Twain once said, “I’ve never allowed my schooling to get in the way of my education.” My father taught himself how to read, taught himself how to write, decided in the midst of Jim Crowism, as America was breathing the last gasp of the Civil War, my father decided he was going to stand and be a man, not a black man, not a brown man, not a white man, but a man. He literally challenged himself to be the best that he could all the days of his life.
마크 트웬인은 언젠가 말했습니다. “나는 배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학교 교육만이 배움의 길은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읽는 방법과 쓰는 방법을 터득했고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결단을 했습니다. 남북전쟁의 마지막 숨이 헐떡거릴 때 나의 아버지는 (홀로)일어설 것을 결심했습니다. 흑인도 아니고 황색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한 남자로서 말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야말로 말 그대로 스스로 도전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모든 날들이 최고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I have four degrees. My brother is a judge. We’re not the smartest ones in our family. It’s a third grade dropout daddy, a third grade dropout daddy who was quoting Michelangelo, saying to us boys, “I won’t have a problem if you aim high and miss, but I’m gonna have a real issue if you aim low and hit.” A country mother quoting Henry Ford, saying, “If you think you can or if you think you can’t, you’re right.” I learned that from a third grade drop. Simple lessons,
나는 4개의 학위가 있습니다. 나의 형제는 판사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가장 똑똑한 사람은 초등학교 중퇴자 아버지입니다. 3학년 중퇴자 아버지는 미켈란젤로의 말을 인용 했습니다. 너의 목표가 높게 잡아 실패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목표를 낮게 잡아 성공하는 것은 진짜로 문제다. 헨리포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네가 하는 것은 옳다.” 고 말입니다.” 나는 3학년 중퇴자로부터 배웠습니다. 단순한 가르침을 말입니다.
lessons like these. “Son, you’d rather be an hour early than a minute late.” We never knew what time it was at my house because the clocks were always ahead. My mother said, for nearly 30 years, my father left the house at 3:45 in the morning, one day, she asked him, “Why, Daddy?” He said, “Maybe one of my boys will catch me in the act of excellence.”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아들아! 1분 늦는 것보다 한 시간 일찍 서두르는 게 낮다.” 우리 가족은 몇 시인지 결코 알 수가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이 우리 집입니다. 왜냐하면 시계는 항상 빨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거의 30년 동안 나의 아버지는 아침에 3시 45분에 집을 떠났기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물었답니다. 왜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는 “우리 아들 중 한명이 나보다 뛰어날지도 모르잖아!” 라고 하셨답니다.
I want to share a few things with you. Aristotle said, “You are what you repeatedly do.” Therefore, excellence ought to be a habit, not an act. Don’t ever forget that. I know you’re tough. I know you’re seaworthy, but always remember to be kind, always. Don’t ever forget that. Never embarrass Mama. Mm-hmm (affirmative). If Mama ain’t happy, ain’t nobody happy. If Daddy ain’t happy, don’t nobody care, but I’m going to tell you.
나는 여러분과 몇 가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당신이란 자체는(품성, 성격, 등) 당신이 반복적으로 한 그 무엇(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수하다는 것은 습관에 달려있습니다. 행동이 아닙니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여러분이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여러분이 인생항로를 헤쳐갈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만 항상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오. 항상 말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불친절하게)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마십시오. 으흠(긍정적 추임새) 만일 어머니가 행복하지 않다면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느 누구도 관심 없습니다. (관중의 폭소) 이건 그냥 여러분에게 말하는 겁니다.
Next lesson, lesson from a cook over there in the galley. “Son, make sure your servant’s towel is bigger than your ego.” I want to remind you cadets of something as you graduate. Ego is the anesthesia that deadens the pain of stupidity. You all might have a relative in mind you want to send that to. Let me say it again. Ego is the anesthesia that deadens the pain of stupidity. Pride is the burden of a foolish person.
다음 교훈은 요리실 저 쪽에 한 요리사의 교훈입니다. “아들아! 너의 하인의 수건을 너의 자존심보다 크게 하라.” 나는 여러분들이 졸업할 때 사회 초년생들인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자존심은 마취제입니다. 자존심은 어리석음의 고통을 죽이는 마취제입니다.(자존심은 어리석은 짓이다.)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이 이 말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속의 관련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만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짐입니다.
John Wooden coached basketball at UCLA for a living, but his calling was to impact people, and with all those national championships, guess what he was found doing in the middle of the week? Going into the cupboard, grabbing a broom and sweeping his own gym floor. You want to make an impact? Find your broom. Every day of your life, you find your broom. You grow your influence that way. That way, you’re attracting people so that you can impact them.
존 우덴이란 사람은 사는 동안 UCLA 농구코치였습니다. 그의 소명은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충격효과를 주었습니다. 전국대회를 우승하고도 일주일도 안 되어서 해야 할 무엇인가를 찾았는데 무엇인지 아세요? 빗자루입니다. 청소도구함에 가서 빗자루를 잡고 자신의 체육관의 마루를 쓸었습니다. 여러분도 영향력 있는 충격요법을 만들고 싶은가요? 빗자루를 찾으십시오. 당신 인생에서 매일 당신의 빗자루를 찾아야 합니다. 이방법이 영향력을 성장시킵니다. 이 방법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그래서 여러분은 그들에게 영향력 있는 충격요법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Final lesson. “Son, if you’re going to do a job, do it right.” I’ve always been told how average I can be, always been criticized about being average, but I want to tell you something. I stand here before you before all of these people, not listening to those words, but telling myself every single day to shoot for the stars, to be the best that I can be. Good enough isn’t good enough if it can be better, and better isn’t good enough if it can be best.
마지막 교훈은 “아들아! 만일 직업을 갖는다면 똑바로 해라.” 나는 항상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내가 얼마나 평균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말입니다. 항상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하여 주의를 받아왔습니다만 나는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여기 모든 사람들 앞에 말입니다. 이런 교훈을 듣지 않고 내 자신 날마다 별을 향해 쏘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좋은 것은 더 좋게 할 수 있다면 좋은 게 아닙니다. 최고로 좋게 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도 좋은 게 아닙니다. (평범한 삶보다는 발전되는 삶을 추구하라)
Let me close with a very personal story that I think will bring all this into focus. Wisdom will come to you in the unlikeliest of sources, a lot of times through failure. When you hit rock bottom, remember this. While you’re struggling, rock bottom can also be a great foundation on which to build and on which to grow. I’m not worried that you’ll be successful. I’m worried that you won’t fail from time to time. The person that gets up off the canvas and keeps growing, that’s the person that will continue to grow their influence.
바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지혜는 여러분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옵니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돌 같은) 바닥을 찍었을 때 이것을 기억 하세요. 바닥은 여러분이 몸부림치는 동안 성장하고 일어서는 커다란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성장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실패하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처음(그림을 그리려는 도화지 같은 기초)에서 다시 일어나 계속 성장하는 사람은 영향력을 키우면서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Back in the ’70s, to help me make this point, let me introduce you to someone. I met the finest woman I’d ever met in my life. Mm-hmm (affirmative). Back in my day, we’d have called her a brick house. This woman was the finest woman I’d ever seen in my life. There was just one little problem. Back then, ladies didn’t like big old linemen. The Blind Side hadn’t come out yet. They liked quarterbacks and running back. We’re at this dance, and I find out her name is Trina Williams from Lompoc, California. We’re all dancing and we’re just excited. I decide in the middle of dancing with her that I would ask her for her phone number. Trina was the first … Trina was the only woman in college who gave me her real telephone number.
70년대로 돌아가서 내가 이 요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돕기 위해 여러분에게 누군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나의 인생에서 이제까지 만났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우리는 그녀를 벽돌집 <*철벽녀: 연애를 철벽처럼 차단하는 여자> 이라 불렀습니다.
이 여자는 내가 보아온 중에 가장 멋진 여인이었습니다.
단지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숙녀들은 *쿼터백 <미식축구 강한 어깨를 가진 공격의 핵심> 이나 *라인맨 <미식축구에서 태클하는 체중 많고 키 큰 근육 돼지> 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블라인드 사이드라는 영화가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근육돼지 흑인 마이클 오어가 미식축구를 통해 가족의 사랑과 도움을 통해 어려운 삶의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따뜻한 내용의 실화영화-블라인드 사이드>
그 당시 우리들은 미식축구의 쿼터백 선수들과 런닝백 선수들을 좋아했습니다. 우리들은 춤을 추었고 바로 흥이 겨웠습니다. 나는 그녀와 춤추는 가운데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요청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름이 ‘’트리나‘ 라는 것을 알았고 트리나는 나에게 그녀의 진짜 전화번호를 준 대학생활 동안에 유일한 여인이었습니다.
The next day, we walked to Baskin and Robbins Ice Cream Parlor. My friends couldn’t believe it. This has been 40 years ago, and my friends still can’t believe it. We go on a second date and a third date and a fourth date. Mm-hmm (affirmative). We drive from Chico to Vallejo so that she can meet my parents. My father meets her. My daddy. My hero. He meets her, pulls me to the side and says, “Is she psycho?” Anyway, we go together for a year, two years, three years, four years. By now, Trina’s a senior in college. I’m still a freshman, but I’m working some things out. I’m so glad I graduated in four terms, Nixon, Ford, Carter, Reagan.
다음날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내 친구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40년 전일입니다. 내 친구들은 지금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첫 번째 데이트, 두 번째 데이트, 세 번째, 네 번째 으흠!(긍정적 추임새) 우리는 시카고에서 발레오로 차타고 가서 그녀는 나의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그녀를 만났죠. 나의 아버지! 나의 영웅이신 그녀를 만나고 나를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하는 말이 “ 저 여자 사이코냐?” <*사이코:정신병자> (* 하마 같은 아들이 요조숙녀를 데려 왔으니 혹 여자가 정신병자 아닌가 하는 의구심))
뭐 어쨌든 우리는 일년동안, 2년동안, 3년동안, 4년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이제 트리나는 대학4년생이고 나는 여전히 신입생이었지만 나는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4학기 만에 졸업을 해서 대단히 기쁩니다.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관중들의 웃음) <*대통령 모두 2차 대전 참전으로 4학기 만에 대학졸업 함>
Now, it’s time to propose, so I talk to her girlfriends, and it’s California. It’s in the ’70s, so it has to be outside, have to have a candle and you have to some chocolate. Listen, I’m from the hood. I had a bottle of Boone’s Farm wine. That’s what I had. She said, “Yes.” That was the key. I married the most beautiful woman I’d ever seen in my … You all ever been to a wedding and even before the wedding starts, you hear this? “How in the world?” It was coming from my side of the family. We get married. We have a few children. Our lives are great.
이제 프로포즈 할 시간입니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곳은 캘리포니아이었고 70년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했고 ㅎㅎ, 촛불도 있어야 했고 ㅎㅎ 그리고 초코릿도 준비해야 했고 ㅎㅎ. 그녀는 “좋아요!” 를 외쳤습니다. 그게 포인트입니다. 나는 내 평생 본적 없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결혼식장에 가 본 일이 있을 겁니다. 심지어 결혼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어보셨나요? (웃음) “세상에나 어떻게?” (웃음) 심지어 이런 말이 우리가족 편에서도 나왔다는 겁니다. (*하마 같은 릭과 예쁜 신부를 바라보며~)
우리는 결혼을 했고 몇몇의 아이들도 가졌습니다. 우리 삶은 최대로 행복했습니다.
One day, Trina finds a lump in her left breast. Breast cancer. Six years after that diagnosis, me and my two little boys walked up to Mommy’s casket and, for two years, my heart didn’t beat. If it wasn’t for my faith in God, I wouldn’t be standing here today. If it wasn’t for those two little boys, there would have been no reason for which to go on. I was completely lost. That was rock bottom. You know what sustained me? The wisdom of a third grade dropout, the wisdom of a simple cook.
어느 날 트리나는 그녀의 왼쪽 가슴에 혹을 발견했습니다. 유방암이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뒤 6년 뒤에 나와 두 아이들은 엄마의 관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저의 심장은 뛰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 여기에 서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두 아이가 없었다면 계속 살아갈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완전히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밑바닥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나를 지탱해준 것이 무엇인가 말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중퇴자의 지혜 단순한 요리사의 지혜입니다.
We’re at the casket. I’d never seen my dad cry, but this time I saw my dad cry. That was his daughter. Trina was his daughter, not his daughter-in-law, and I’m right behind my father about to see her for the last time on this Earth, and my father shared three words with me that changed my life right there at the casket. It would be the last lesson he would ever teach me. He said, “Son, just stand. You keep standing. You keep stand … No matter how rough the sea, you keep standing, and I’m not talking about just water. You keep standing. No matter what. You don’t give up.” I learned that lesson from a third grade dropout, and as clearly as I’m talking to you today, these were some of her last words to me. She looked me in the eye and she said, “It doesn’t matter to me any longer how long I live. What matters to me most is how I live.”
우리는 관 앞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트리나는 며느리가 아니고 그의 딸이었습니다. (*트리나가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임.) 나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그녀를 보기 위해 나의 아버지 뒤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3단어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관 앞에서 바로 내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준 마지막 교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냥 서 있거라! 계속 서 있거라!(삶에 흔들리지 말거라) 바다가 얼마나 거칠게 할지라도 너는 포기하지마라!” 나는 아버지로부터 교훈을 배웠습니다. 내가 오늘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는 트리나가 나에게 마지막 한 말도 있습니다. 그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 내가 더 이상 오래 사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 예요!“
I ask you all one question, a question that I was asked all my life by a third grade dropout. How you living? How you living? Every day, ask yourself that question. How you living? Here’s what a cook would suggest you to live, this way, that you would not judge, that you would show up early, that you’d be kind, that you make sure that that servant’s towel is huge and used, that if you’re going to do something, you do it the right way. That cook would tell you this, that it’s never wrong to do the right thing, that how you do anything is how you do everything, and in that way, you will grow your influence to make an impact.
여러분에게 하나만 묻겠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중퇴자인 아버지에 의해서 내 전 인생에 던져진 물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매일 이 질문을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여기 한 요리사가 제시한 여러분들의 삶의 방법은 이 방법입니다. 판단하지마라, 일찍 일어나라, 친절해라. 하인의 수건을 크게 하고 그리고 습관화해라.
만일 무엇을 한다면 확실히(똑바로) 해라. 요리사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고 말입니다. 어느 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모든 것을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사소한 일까지도) 이 방법으로 하면 여러분은 영향력이 성장 할 것입니다.
In that way, you will honor all those who have gone before you who have invested in you. Look in those unlikeliest places for wisdom. Enhance your life every day by seeking that wisdom and asking yourself every night, “How am I living?” May God richly bless you all. Thank you for having me here.
여러분에게 투자한 사람이며 여러분 보다 앞서서 가버린 모든 선배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지혜를 찾으십시오. 여러분 인생을 매일 그러한 지혜를 찾으면서 삶을 향상 시키십시오. 스스로 매일 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를 물어보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커다란 축복이 있기를 ...............
여기 나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 12월 9일 (토요일)
율천 이권행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