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활동을 크게 즐기지는 않지만 SNS에서 인연이 된 이들과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족구인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SNS를 통해 인연도 만들고, 소통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도 언제부턴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이라도 족구인이라는 사실만 확인되면 무작정 친구 신청을 하다 보니 어느덧 SNS 상의 친구가 500명에 육박했다. 오늘 소개할 여수 크러쉬 족구단의 김수정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해준 덕분에 자연스럽게 여수 크러쉬 족구단을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사실 실력만큼이나 이들의 경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경기가 잘 풀리든 풀리지 않던, 동료가 실수해도 선수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실수한 영상마저 SNS에 올리며 함께 즐거워했다. 경기에 패하면 풀이 죽을 법도 했지만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시상식에 참가해 밝은 에너지를 보여주는 팀이다.
여수 크러쉬 족구단의 시작도 SNS였다. 김수정은 경남 거창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거창 아르미 족구단에서 족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2015년 어느 날, 여수에 소재한 부친의 중학교 동문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부친의 기수로 당시 예비 신랑과 함께 족구 선수로 출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와서 물었다. '여수에서 족구하시는 분들은 아니신 것 같은데 족구화를 신고 계셔서 궁금해서 와보았습니다.'하고 물은 것이다. 잠시 대화를 나눈 그는 '선배님의 딸이구나'라는 정도만 알고 말았다.
이후 김수정이 결혼과 출산으로 운동을 1년 정도 쉬고 여수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여수에서도 족구가 하고 싶어 무작정 여수 족구연합회 카페에 '족구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 글을 본 여수 다모 족구단의 총무가 '우리 족구단 회장님께 연락해 보세요'라는 댓글이 달려 연락을 취해 만났는데 그가 바로 2015년 부친의 동문 체육대회에서 말을 걸었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현 여수 크러쉬 족구단의 신현희 감독이었다. 운명과도 같았던 신현희 감독과의 만남과 함께 SNS를 통해 회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모집공고에 육상, 태권도, 한국무용, 발레, 탁구 그리고 축구까지 정말 다양한 운동을 했던 이들이 모였다. 사실 여느 여성 족구팀의 시작이 그랬듯이 족구를 해보지 않았던 이들의 시작은 항상 부족함이 많았다. 서브로 공을 넘기면 그 공은 다시 넘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기본기 하나를 습득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는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며 실력도 점점 향상되어갔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2018년 4월 15일, 창단식을 열어 공식적으로 크러쉬 족구단의 시작을 알렸고, 꾸준히 대회에 참가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회에 출전하면 3위 정도에 꼬박꼬박 입상하기는 했지만 한 끗 차이라고 할 수도 있는 정상의 자리는 크러쉬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대회에서 패하면 그냥 돌아가지 않고 결승 경기까지 항상 관전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배워야 할 부분은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주장 김수정은 이렇게 말했다.
"결승 경기를 보면서 '저 정도 조직력과 구력이 있어야 우승을 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고 나서부터 아무리 먼 곳에서 벌어지는 교류전 및 대회에 최대한 참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전 경험보다 좋은 훈련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꾸준히 참가하면서 감독님과 선수들과 함께 피드백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도록 부단히 연습했습니다."
사실 칼럼에서는 쉽게 이야기했지만 실제 이들의 노력은 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고, 그렇게 흘린 땀은 결국 2021년 마지막 대회였던 '양산 시장기' 우승으로 보답받았다.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정~~말 좋았다'라는 말 외에는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함께해 준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했고,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노력한 것에 대한 중간 점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크러쉬는 이후에도 여러 번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부에 속해 있다.
"정상에 오르기는 했지만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체전부에는 단디나 조이킥스포츠와 같은 많은 강팀들이 있어요. 아직 그들과 맞설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체전부에서 당당하게 맞수로 겨뤄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전진하려고 합니다."
일반부에서는 이미 강자인 그녀들의 목표는 이제 일반부를 넘어 체전부 승격과 함께 족구계의 정상에 서는 것이다. 아직은 가다듬을 것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끝없는 도전 속에서 벽에 부딪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나아갈 것이다.
2024년 족구계의 걸크러쉬의 보습을 보여줄 여수 크러쉬 족구단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주장 김수정과 1문 1답
Q. 팀명을 '크러쉬'라고 한 이유는?
A. 회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통해 결정했어요. 그 당시 많이 쓰이던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걸크러쉬'였어요. 잘 아시다시피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멋진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잖아요. 우리 족구단도 그런 족구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정했습니다.
Q. 연습(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A. 매주 월, 수요일 야간에 조직력 및 기본기 훈련을 하고 있고 일요일 주간에는 여수에 있는 실버부 팀과 시합을 하며 실전 감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Q. 크러쉬의 팀 분위기는?
A. 가족 같은 분위기......를 억지로 만든 건 아니고요 (웃음) 패배의 쓴맛과 승리했을 때의 환호와 그 여운 등을 잊어버리지 않고 단합하면서 서로를 위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경기 중에도 실수한 선수를 꾸짖기보다는 다독이고 끌어주는 모습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다른 팀에서도 '크러쉬는 분위기가 정말 좋아'라고 얘기해 주네요.
최근에 입단 7개월 정도 된 회원이 '포근한 팀 내 분위기와 팀원들 덕분에 족구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서 계속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해주니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팀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의 연령대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정도로 이루어져 있어 젊은 에너지로 패기와 열정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20대 선수들은 학교생활이나 취업 준비 등으로 지속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운동을 하지 못할 때는 먼 곳에서도 개인 운동을 하는 등 팀에 대한 책임감도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있지만 엄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는 절대 아니니 초보자분들도 맘 편히 들어오시면 됩니다. 선수들 대부분이 MBTI가 'F'여서 많은 격려와 공감이 오가는 팀 분위기 내에서 어울릴 수 있습니다.
Q. 크러쉬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A. "느끼는 바를 말씀드린다면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감독님과 주장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모임이든 주춧돌이 단단하지 않으면 와해가 될 수밖에 없는데, 오랜 시간 단단히 지탱해 주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한 역할을 해준 감독님과 주장 그리고 바른 인성을 겸비한 선수들이 우리 팀 최고의 자랑거리입니다."라고 우리 신입회원이 말합니다. (웃음) 참고로 주장은 접니다. (웃음)
Q. 운동을 하면서 혹은 대회에 나가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A. 강승호 감독님의 강습에 한 번 참석했었던 인연으로 추석 특집 '아프리카티비배' 족구대회에 초청받아서 BJ분들과 겨루고 인터넷 방송도 탔던 재미있었던 경험이 있고요, 최근 구례 대회에서 김한솔 선수가 네트에 너무 붙은 리시브를 올려보겠다고 슬라이딩을 했는데 그대로 미끄러져 네트 밑으로 누워서 상대 코트로 넘어가버린 일이 있었어요. 당시에 얼마나 배꼽을 잡았는지 그 당시 영상만 보면 한솔이가 흑역사라고 하면서 머리를 감싸네요. (웃음) 그리고 양구에서 벌어진 2인제 족구대회에 참가해서 남자 선수들과 겨루었는데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정말 재미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A. 부산에서 벌어졌던 '더 이스트배' 족구대회에서 울산 위민과의 경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위성희 선수의 발등 서브가 상당히 강력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수비수들이 그 서브를 제대로 리시브하지 못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선수들이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꼈죠. 하지만 그날 이후로 리시브의 중요성을 피부로 깨달았기 때문에 더욱 정진해서 실력이 향상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기억에 남아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23년 양구에서 벌어진 '전국여성 족구대회' 일반부 준결승이었어요. 예선에서 패했던 강서족구단과 다시 맞붙었는데, 1세트 시작부터 3세트 19점까지 이어지는 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어요. 정말 엄청난 체력 소모가 있었고, 그만큼 집중력을 요하는 경기였는데 팀원들이 서로 믿고 의지해 결국 승리를 거두었죠. 다음에 바로 결승전이 있었는데 그조차도 잊고 선수들과 함께 승리를 만끽했네요. (웃음) 그런데 그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였는지 정작 결승전에서는 힘도 써보지 못하고 패했어요. (웃음) 그래도 지금까지도 우승보다 값진 준우승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Q. 여성 족구인으로 설움(?) 같은 것들이 있었다면?
A.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 제일 서러웠어요. '여자들이 밥이나 하지 족구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너네는 살부터 빼', '모여서 파이팅이나 해', 서브는 받을 수 있냐?' 등등 무시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저런 말들을 들으면서도 버텨내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족구가 남자들만 하는 운동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족구에 진심인 여자 선수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같은 족구인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Q. 족구를 하면서 감사한 분들이 있다면?
A. 감사한 분들 정말 많습니다. 우리와 다른 팀이지만 함께 운동하는 동반자와 같은 언니들에게 정말 너무 감사한 것들이 많아요. 먼저 거창 아르미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저의 우상 (지) 영주 언니! 족구를 처음 시작하고 실력 향상이 더디어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 항상 '넌 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라고 얘기해 주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응원해 주어서 지금까지도 어디서든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가지고 경기할 수 있었어요. 너무 고마운 언니예요. 지금은 각자 아들들의 나이가 동갑이라서 종종 아이들과 함께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번은 인천에서 교류전이 있었는데, 여수에서 인천까지 가려면 5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교류전은 아침 일찍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날에 미리 가서 숙소를 구해서 자야 하나'라고 고민하고 있었죠. 그런데 단디 족구단의 (이) 도희 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먼 곳에서 오느라 힘들 텐데 미리 와서 (문) 현희 언니 집에서 자라는 것이었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또 우리가 전력이 약해서 큰 도움이 안 될 텐데 단디에서는 교류전 하자고 항상 불러주고, 방 잡아 주고는 해요.
저의 친정팀인 거창 아르미도 그렇고, 진주, 전주에 있는 언니들도 교류전 하자고 하면서 불러주시면 항상 먹여주시고 재워주셔서 우리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 같아요. 정말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드리고 받은 은혜 꼭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선수들을 위해주시고,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시는 신현희 감독님! 아직은 감독님 성에 차지 않지만 곧 성에 차는 모습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하며 항상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네요. 감독님! 최고입니다. (웃음) 그리고 감독님 옆에서 우리들을 친오빠처럼 자상하게 잘 챙겨주시는 최용석 코치님께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감사한 분들 더 계시지만 혹시라도 빼먹는 분들이 계실까 두려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Q. 2024시즌 목표가 있다면?
A. 2024년에는 다들 건강하고 지금보다 조직력을 더 갖춰서 조금 더 나은 족구, 결국은 우승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웃음)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대회 출전할 때마다 웃음기 없으신 우리 감독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도록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전국대회 우승이면 되겠죠?
여수 크러쉬 족구단 멤버
감독 신현희 (1972년생, 여수 다모 족구단 소속)
코치 최용석 (1988년생, 여수 JC 족구단 소속)
코치 이용우 (1995년생, 여수 다모 족구단 소속)
공격수 김수정 (1990년생, 여수시 체육회)
세 터 손희호 (1997년생, 육군 중위 출신)
세 터 정다영 (1992년생, 회사원)
세 터 조아라 (1983년생, 여수시 체육회)
좌수비 김한솔 (1996년생, 회사원)
우수비 임혜진 (1997년생, 회사원)
우수비 이인경 (1987년생, 유치원 교사)
우수비 김지영 (2000년생, 대학생)
신입회원 윤지수 (1990년생, 회사원)
취재에 응해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여수 크러쉬 족구단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