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대우호텔 : 현관앞 호텔 로고>
1월 30일
밤사이 도로엔
약간의 비를 뿌린 듯하고
수영으로 아침 운동하기엔 물이 차가울 것 같아
석우에게 전화로 호텔 주변 워킹으로
아침 운동을 대신하자고 제의해
함께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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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아침거리 : 이른 아침엔데도 오토바이 물결은 여전하고>
하노이는
홍강을 낀 삼각주 델타지대로
토양이 비옥하고 평야가 넓으며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 300여개의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라고 한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古都에 걸맞게 유서 깊은
사찰도 많고, 식민지풍 교회나 건물이 많은데
무채식 건물이 빚어내는 조화와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
포장마차와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PC방 등
거리의 풍경은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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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호텔 수영장 : 이 사람이 일부러 그랬나 여기에서도 내 사진은 망쳐
놓고, 남의 사진 망친죄로 앞으로 초상권 침해 항의하지 않기?>
남부 호치민이
경제 중심지라면
하노이는 명실상부한 정치의 중심지다
호치민과 비교를 하면 하노이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우리에겐 날씨가 선선해 좋다
못먹어서 그러나
여인들의 얼굴색도
호치민보다 희고 모두가
하체가 길고 가슴은 풍만하여
늘씬한 몸매를 보인다
다이어트하며
몸매 가꾸기에 몸부림치는
한국 여인들 선망의 대상이 아닐까?
출근하는 이들
배트민튼을 치는 부부
조깅을 하는 중년................
사람사는 도시의 아침은 어디나 비슷하나 보다
호텔방에 올라와 석우가 프론트에 전화를 한다
옆에서 듯자니 웃음이 나온다
영어회화라기는 그렇고 아는 단어를 엮어 끈질기게 따져 든다
'나 수영을 원한다. 할수 있냐? 없냐? 물이 왜 차냐?
따뜻하게 해달라' 대개 이런 요지인 것같다
'이런 때는 쇼핑을 하고 낮에 수영을 하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체크아웃하고 나가는데
괜히 그 넓은 수영장물 데워놓을까 걱정이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
겨우 먼저 온 우리식구들 틈새기에 끼어 아침을 먹고
로비로 나오니 어제 불빛에 잠시 보았으나 오늘 광명에
다시 보아도 베트남 사람같이 꾀죄죄하게 생긴
우리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 준다
오늘 오후에 장거리 여행이라 적은 수지만
우리를 위해서 45일승 대형버스를 빼왔다고
자화자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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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묘소를 가는 길에 하노이의 거리 풍경>
오늘 투어는
오전에 하노이에 있는
호치민(호지명)의 묘소를 구경하고
하노이에서 점심을 한 후 4시간을
하롱베이를 향해 달려간다.
나같이 준법정신이
너무 투철해도 손해를 본다.
휴대폰, 카메라, 반바지 차림으로는
입장을 못한다는 가이드 말에 차에 카메라를
두고 내려 이곳에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우수마발과 사족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넓은 광장 건너편에
베트남 국회와 공산당 본부 건물이 있고
짙은 갈색의 대리석으로 된 웅장한
4각형 건물이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가지 과업을
이룩해낸 베트남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의 묘이다.
모스크바의 레닌묘를 본따 만들었다고 하니.
북한의 김일성이 묘도 이렇게 생겼을까?
우리가 금강산처럼 평양을 구경하게 되는 날도
이렇게 줄을 세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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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으로 보이는 건물이 호치민 묘소, 앉은 줄 오른쪽 끝이 정애 아슬아슬
한 반바지 모습 : 현지사진사가 찍어 가이드가 선물로 준 사진을 집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다시 찍었더니 양영자는 웬 불덩이를 안고 있고>
1975년에 세워진 이 묘는
검은 대리석으로 밑단을 깔고
주홍색 대리석으로 기둥을 세운뒤
그 가운데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정복을 입은 군인들이 요소요소에 도립해 있고
우리들은 2열 종대 줄을 맞추어 입장을 하는데
말도 못하게하고 웃지도 못하게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리 문화하고는 영 안맞다
정애의 바지가 짧아 못들어가나 했는데
다행히 무릎을 덮어 아슬아슬 통과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시원하게 냉방이 되어 있는 방의
유리관 속에 호치민의 시신이 생전에
모습 그대로 자는듯 누워있었다.
관 주위에는 4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는데
산 사람인지 밀납 인형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만져보고 싶었으나
분위기가 엄숙해 숨도 크게 못 쉬는데
뒷사람이 밀려오니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엉겁결에 걷다보니 밖으로 나와버렸다.
긴장의 순간이었다.
묘소 주변은 넓은 잔디광장과 공원으로 되어 있는데
앞에 공산당 본부건물,국 회건물 그리고 그 반대 숲속에는
영빈관, 호치민 생가, 호치민 박물관 등이
호수와 숲속에 자리 하고 있었다.
호치민 묘소 건물을 배경으로
현지 사진사에게
단체 기념사진을 한장 찍었다
가이드에게 카메라를
맡긴 사람들은 여기서 부터는
자유롭게 촬영을 하는데
나는 카메라를 차에 두고와서
한장도 못 찍었다.
좀 지루하겠지만 글을 읽을 수 밖에.......
프랑스 식민지 시대 총독부 건물이
지금은 영빈관으로 쓰인다는데 외관이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호치민이 거주하며 집무를 보았던 집을 보았다.
우리로 말하자면 청와대다
프랑스 총독부 허술한 부속건물 창고같은
조그마한 2칸 집인데 다다미 깔린
침대하나에 나무책상이 안방에 놓여 있고
옆 방에는 식탁하나 놓인 주방이
일국의 대통령 궁이다.
프랑스에서 기증한 승용차 2대가
마치 우리나라 창덕궁 고종황제 어차와 같이
차고에 있는데 인민들은 고생는데
차가 웨말이냐고 한번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아래 관리들이 외국 손님이
올 때면 국가의 원수 집이 너무 허술해서
체면이 안선다고 새로 지었다는 집도
미군 공습에 대비해 콘크리트 방공호만
옆에 더 붙어있지 검소하기는
마찮가지다.
여기서 호치민의 단면을 한번 보자
주인장 이옥임님에 의하면
호치민은 조선시대 정약용이 저술한 목민심서를
항상 머리맡에 두고 목민심서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부정부패 하지 않고 청빈해야 하는 관리의 모습을
베트남 관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자신 휘하의
장병과 부하들에게 그대로 가르쳤다고 하네요
68년 호치민의 전기를 쓴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쟝 라쿠튀르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오늘날 세계의 지도자 중에서 실제로 호치민처럼
창조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을 지키는
수호자이며, 근원임과 동시에 방향을 가리키며
사상임과 동시에 실천이며
국가임과 동시에 혁명이며
고난의 행동자임과 동시에 정치지도자이고
사람좋은 아저씨임과 동시에
전쟁 지도자인 인물은 한 명도 없다."
라고 기록 했다네요
아무리 다른 나라의 이야기지만
아직 보안법이 살아있는데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이글은 이곳에 와서 본 걸 사실대로 쓴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 <주 : 나는 지금도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70년대초 우리는
목을 베어 타도해야 할 공산당 괴수
제1호가 북한의 김일성이고
제2호는 월맹의 호지명이라고 반공판에
단골 메뉴로 올렸었는데
이거 가치관이 혼란스럽다.
아무튼 여기서 보면
호치민(호지명)은
검소하고 청빈하며
자기 민족을 지극히 사랑했으며
일생을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살다간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유언도 베트남이 통일 되거든
자기 시신을 화장하여 베트남 산야에
뿌려 달라고 했다는데..........
베트남은 1976년에 이미 통일이 되었는데
후손들이 유언을 어기고
이렇게 거창한 시설을 하여
외화벌이를 하니 죽어서도
조국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인물 되었다.
유언대로 화장하지 않는 이유가
전인민이 모두 참배를 마친날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다나
인민이될 신생아는 계속 태어나는데
화장을 하지 않겠다는 심산이지 원...........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 같은 곳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가이드의 음료수 선물을 받아
나무밑에 잠시 쉬는데 어디에서
뜬금없는 아리랑이 연주 된다
정애가 아리랑곡에 맞추어 한춤을
멋드러지게 추고 우리는 손벽을 치고
장구만 쳤드라면 영락없이 유원지 나무밑
한국판 음주가무었는데
아무튼 지나가는 서양관광객까지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하고 박수를 했다.
정애의 멋드러진 1인 민속공연이었다.
호치민 박물관
1층은 호치민의 유물관인데
어찌나 검소청빈했던지 유물이 별로 없고
2층은 호치민의 생전 활동 사진관인데
우리글 설명이 없어 눈뜬봉사
경치구경식으로 지나고
3층은 광주 비엔날레 처럼
설치 미술관인데
이곳도 내용을 모르니
오래 머므르지 않고
광춘이와 함께 출구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덥고 다리도 아픈데
마침 광춘이가 마치 아이스크림을 사와
포장을 뜯어 입에 넣으니 이게 웬 아이스께기
이빨부러지게 단단해서 아무리 빨고
깨물어도 녹지 않아 절반밖에 못먹고
슬그머니 쓰레기 통에 넣어버렸다.
.
<문학사원에서>
광대한 호치민 추모시설을 뒤로하고
시내에 있는 문학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며
유생들이 모여 과거 급제를 위한 유학을
공부하던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원이랄까
향교라고 할까?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돼지갈비구이에
버섯전골로 점심을 했다.
4시간을 버스로 간다기에
잠이나 자보자는 심사로
빈속에 유난히도 매운
버섯전골을 안주삼아
잎새주 한병에 7천원씩 2병을 구입해서
서너잔을 연거퍼 마셨더니
낮술이 확확오른다.
광춘이가 잡상인에게 해먹을 산다
야! 저거다 벌어진 가방을 묶을 끈으로
안성맞춤이어서 나도 우리돈 3000원을 주고
한개를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우리 광춘이는 천당을 갈 것이다
불쌍한 잡상인만 보면
거절못하고 갈아준다
.
.
<하롱베이 가는 길에 : 하노이 시내를 벗어난 고속도로를 달린다.
물논에는 모내기가 한창이고........>
유창한 가이드의 안내는
자장가 되어 모두를 꿈나라로 인도하고
차창 밖으론 베트남의 농촌 풍경이 유유히 흐른다.
호기심 많은 순환이만 맨 앞좌석에서
비디오 촬영에 여념이 없다.
고속도로도 잠시 곧
시골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여기는 고속도로에도 2륜 오토바이가 허용되고
2차선 도로에는 중앙선이 노란생명선이
아니고 흰색 점선이다.
눈치 것 서로 추월하라는 뜻이다.
용케도 잘들 빠져 나간다
우리나라 같으면 충돌사고가
빈번할 것같은 데 사고 한건 없다.
.
<산이 없어 들판에 적당한 구역에 공동묘지가 있다. 옥수수도 수확하고>
하노이~하롱베이가
4시간이 걸린다니 우리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시간인데
거리는 160Km쯤 된다나
시속 60킬로 평균이라 시간이 그렇게 걸린다.
벽돌 공장도 지나고
작은 마을도 지나고
나도 슬슬 꿈속으로.........
.
.
<하롱베이 가는 길에 먹음직스러운 파인애플 노점상에서 내렸다>
버스가 멈춰 눈을 떴다
파인애플 파티를 하고 가자고 한다
깎아 놓은 파인애플도 있지만 싱싱한 걸 먹기 위해
직접 깎아 달라고 했는데 우리는 과육을 깊게
깎는데 여기서는 껍질만 얇게 깎고
꺼뭇꺼뭇 씨같은 것은 돌려가면서
칼질을 하니 보기에도 좋고 많은
과육을 먹을 수있는 방법이다.
세콤달콤한 파인애플을 실컷 먹고
버스에 올랐다.
.
.
<하롱호텔 앞 전경 : 버스뒤 초가집에서 오징어 볶음 2사라에 월남소주 2병
을 마시고 비몽사몽간에 호텔에 왔다.>
5시 10분이다
하노이에서 출발 4시간만에
하롱(下龍)베이(灣)시에 도착했다.
겨울에는 항상 기온 관계로
바다에 雲海가 낀다고 한다
오늘도 희미한 안개는
하롱만을 가리어
신비감을 한층 자아내게 한다.
하롱호텔 로비에서 방대표가 모여
제비뽑기를 하였다
바다쪽 방이냐 산쪽 방이냐를 선택하는 것이다
남자들과 라영휘가이드방이 묘하게 바다쪽이었다
광춘이와 나는 현상이에게
바닷가 방을 바꾸어 주고
산쪽 방을 선택했다.
하루밤을 자는데 경치가
무슨 대수야고
돈 안들이고 선심을 썼다
이 선심이
뒤에 작은 소동이 된다
.
.
.
<호텔에서 : 우리나라 연속극 방영을 찾고있는 최광춘님>
짐을 정리하고 버스로 5분 정도 달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했다.
처음으로 베트남소주를 주문했다.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안남미로 빚은 곡주라 뒷맛이 향긋한
누룽지 향이 나며 40도 가까이 되는 술이란다.
혜성이가 제법 술꾼다운 질문으로
술 뒤끝이 어떱니까? 하고 물어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월남 소주를 반주로 저녁을 먹고
식당주인이 소개해준
한국인이 운영하는 노래방에 들려서
모두 즐거운 한 때를 가졌다.
노래 잘한 광춘이는
노래방에서 물만나 고기였다.
호텔에 돌아온 광춘이 기분도 업되고
월남 소주가 입맛에 맞아
적당이 밑자리도 앉혔겠다.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엊저녁 대우 호텔에선
우리 방에서 술파티를 했으니
이번에는 순환이 방에가서
한잔 하자고 갔는데
주인이 밤야경 촬영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이어서 그냥 나와 호텔 앞 초가주막으로 갔다.
원두막처럼 툭 트여 야경도 좋고
민속장식으로 우리나라 동동주 술집 분위기여 좋다
메뉴판을 보고 베트남소주는 어떻게 주문했는데
안주는 글도 말도 안통해 옆테이블
안주를 보고 시켰더니 4각양주병에 담긴
베트남 소주와 오징어볶음이 나왔다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한병을 비우고
라영휘와 석우를 불렀는데 석우만
내려와 또 같은 메뉴를 추가하였다.
새 술에 새 안주에 또 주거니 받거니
가이드가 부르지 말라는
노래까지 신청해 목청을 돋구었다.
순환이가 촬영을 마치고 찾아왔다가
술값이 80불이 넘어 계산하려다 못하고
간다고 해서 이거 바가지는 크게 쓰는 구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싼값이다.
안주와 소주 두탕을 먹었는데
총 24000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꽤나 술에 취해서 건들건들
돌아와 잠자리에 쓰러졌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은
술 때문에 내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들었다.
첫댓글 글 읽을때마다 소박하고 잼있어서 빠져들게 되네요..잘 보고 있습니다..^^
조우님 계속 관심을 가지고 졸필을 읽어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