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武林盟의 憤怒
-매죽헌(梅竹軒)!
무림맹의 후원에 위치한 신검황(神劍皇) 연주백의 처소다.
뒤로는 울창한 죽림이 펼쳦 있고 앞쪽으로는 연못과 소축(少築),
그리고 잘 손질된 정원에
기화이초가 활짝 피어난 채 향기로운 향기를 풍긴다.
따사로운 햇살이 잘 가꾸어진 화원을 비추고 있었다.
소축 안에는 백색 화포를 걸친 노인이
뒷짐을 진 채 부드러운 눈빛으로 화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은은한 자주색 피부에 수염을 정갈히 다듬은 단아한 모습,
나이는 육순 정도,
각진 턱은 그의 성품이 굳강하면서도 냉정함을 느끼게 했다.
전신에는 숨막힐 듯한 위엄이 넘치고,
간혹 두 눈에서 뻗어나오 는 광채는
절정고수만이 지닐 수 있는 무서운 안광이었다.
-신검황(神劍皇) 연주백!
그가 바로 무림맹의 삼태상(三太相)중 일인이며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라도 불리우는 연주백이었다.
문득 나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감찰전주 막대승이 소축안으로 들어와 연주백 앞에 무릎을 꿇었다.
{태상! 연공자가 오늘 아침 자객의 암수에 의해..}
막대승의 목소리는 비통함에 떨리고 있었다.
{죽었습니다. 태상! 죽여주십시오.}
막대승은 이마를 땅에 박았다.
노인의 몸이 느릿하게 돌아섰다.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 노인은갑자기 십 년이나 더 늙게 보였다.
{강아가... 죽었단 말인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는 감정을 억제하고 애쓰고 있음이 역력했다.
{태상, 죽여주십시오.}
막대승이 부르짖듯이 말하자
노인은 문득 휘청거리며 가슴에 손을 짚었다.
{그 애가 죽었단 말이지?}
충격이 너무 큰 것일까?
그는 한동안 그렇게 망연히 중얼거렸다.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은 법,
연주백은 비틀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천웅대전(天雄大殿),
무림맹의 대소사가 논의되는 곳으로
오십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호화로운 대전이다.
천웅대전은 지금 질식할 듯한 침묵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전 중앙에 놓인 옥관(玉棺) 안에 연대강의 참혹한 시신이 안치되어 있고,
무표정히 그 시선을 바라보는 연주백의 눈빛은 떨리고있었다.
그 앞으로 감찰전주 막대승을 위시하여 조중, 장차수, 사공표,
그 외에도 십여 명의 눈빛이 매서운 사람들이 묵묵히 서 있는데
하나같이 전신에 풍기는 위세가 비범한 고수임이 분명했다.
이들은 바로 무림맹을 이끌어 가는 삼전일각(三殿一閣)의 핵심인물이었다.
중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침중하게 굳어 있었다.
연대강은 무림맹의 후계자이며 연주백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연주백은 떨리는 손으로 가만히 시신을 쓰다듬었다.
{강아야! 너의 원한은 이 아비가 풀어 주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연주백은 몸을 돌렸다.
문득 급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앞장 선 인물은 육순 가량 되어 보였다.
일신에는 백삼문사의를입었는데 단정하고 탈속한 느낌이 들었다.
얼굴은 오관이 수려하고 청수했는데 특이한 것은 그의 눈(眼)이었다.
길고 가느다란 눈이 차분하면서도 지혜롭고
심기가 깊은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한 위엄이
만인을위압하는 종사의 풍도가 어리고 있었다.
그 뒤로 그림자처럼 따른 회색 장삼을 입은 삼십대의 청년은
일견해 보아도 매우 어두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타나자 연주백을 제외하고는
모든 중인들이 정중히허리를 숙였다.
{삼가 태상을 뵙습니다.}
일제히 소리치는 그들의 표정은 극히 공손했다.
노인은 바로 태허천존(太虛天尊) 황보승(皇補承)이었고
청년은 항상 그의 신변을 따르는 향사(鄕師)라는 인물이었다.
-태허천존(太虛天尊) 황보승!
불과 이십 세 때 만학(萬學)에 달통하여 과시에 장원을 했으나
그는 관직을 사양하고 심산에 은거하며 계속 학문에 정진했다.
탁월한 지모와 인품, 그리고 병법에 조예가 깊은 그는
이십 삼세가 되던 해 혜천선사를 만나 강호에 뛰어들게 되었다.
사실 전륜교(轉輪敎)가 무너진 데에
황보승의 지모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황보승은 침통한 표정으로 연주백의 손을 잡았다.
{연제, 무어라고 할 말이 없네.}
연주백은 격동을 참지 못하는 듯 전신을 떨었다.
{아닙니다, 형님! 제가 박복한 탓이지요.}
황보승은 나직이 탄식을 흘리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자네가 직접 나설 생각인가?}
연주백은 이 말에 무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우선 철불(鐵佛) 대형을 뵙도록 하세.}
황보승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연대강의 시선을 주시했다.
(강아를 살해한 자들은 그 대가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무림에 또다시 혈풍이 일어난단 말인가?)
황보승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그 날밤 천웅대전은 밤새 등잔이 타오르고
황보승의 주재 아래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이른 아침,
삼십 년 이래 처음으로 무림맹의 정문이 활짝 열리고
수많은 인마의 무리가 쏟아져 왔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무사들은 중원각처를 향해 무섭게 질주했다.
무림맹 내의 감찰전,
귀견수 조중은 핏발이 선 눈으로 사공표를 쳐다보았다.
{상가현 팽씨(彭氏) 농가에 한 달 전부터 묵고 있던 이호자라는자가 오 일 전 사라진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조사한 결과로는 그 자가 자객일 가능성이 제일 많습니다.}
사공표의 설명에 조중은 냉랭히 말했다.
{그 놈은 변장의 명수다. 게다가 교활하기 짝이 없으니
그 자가 설사 범인이라고 해도
벌써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조중의 말에 사공표의 얼굴도 납처럼 굳어졌다.
{팽노대를 끌어내라. 그 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팽노대 뿐!
우리는 그자를 데리고 범인을 추적한다.}
{알겠습니다. 부전주님!}
사공표는 대답과 동시에 밖으로 달려갔다.
조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담사! 네놈을 잡을 때까지는 추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사지옥이라도 네놈을 따라 가리라.)
조중의 눈빛은 한 순간 횃불처럼 무섭게 타올랐다.
항주(杭州) 금룡장(金龍莊)-!
장주인 전육당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연아! 천엽(天葉)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아무래도 일이 잘못된 것 같다.}
복면여인은 눈을 빛냈다.
{엽 오빠의 예측이 틀릴 때도 있군요?}
비꼬는 듯한 어조였으나 그녀의 눈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백부님도 알고 있듯이 삼 일 전 연대강은 우리의 계획대로 죽었어요.
그러나 한 명의 자객이 무림맹에 잡혔고
그 때문에 석무심의 이름이 이미 그들에게 알려졌을 거예요.}
전육당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내가 너를 은밀히 부른 것도 그 일 때문이다.}
{천엽의 연락에 의하면 북천뇌보의 여식 뇌옥연(雷玉燕)이
약혼자인 연대강의 소식을 듣자 일단의 고수를 거느리고 남하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예요?
정혼자가 비명횡사했으니 조의라도 표해야 되지 않겠어요?}
복면여인이 말했다.
{이 일은 원래 계획 속에 들어 있던 일이 아니예요?}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소림사의 달마원주 혜오대사가
북천뇌보에 가있다가 십팔나한(十八羅漢)중 오 인을 거느리고
뇌옥연과 함께 오고 있다는 소식이야.}
복면여인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혜오선사라면 소림장로인데 거기다 오나한(五羅漢)까지...!}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소림이 강호에 나오지 않은 것은 삼십 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뇌옥연과 함께라니...}
전장주는 고소를 머금었다.
{너도 알다시피 천엽의 말은 정확한 사실이다.
북천뇌보와 소림사가 이번 일에 관계한다면
너도 알고 있듯이 현재 진행 중인 계획은 중단해야 한다.}
전장주는 나직이 탄식을 토했다.
{소림은 잠자는 거인이다.
혜오대사가 북천뇌보에 가 있었다는 사실은
소림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
당금무림에서 무림맹과 북천뇌보,
그리고 소림이 힘을 합친다면 황제라도 어쩔 수 없는 세력이다.}
북면여인은 막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문득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전장주의 눈빛이 굳어졌다.
{소림이 움직이고 있는 이상 확실한 사태를 파악할 때까지
우리는 잠적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의 입은 모두 막아야 하겠군요?}
복면여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천엽의 뜻은 그렇다.
석무심은 비록 아까운 인재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좋아요. 하지만 그를 제거한다고 해도
현재 석무심과 담사라는자를 죽일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어요.}
복면여인은 차갑게 대답하자,
{이틀 후면 천위(天威)가 도착할 것이다.}
{그게 정말이예요? 천위오빠가 정말 중원으로 돌아오나요?}
황망히 외치는 복면여인의 어조에 반가움이 잔뜩 실려 있었다.
전장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敎)중에서 석무심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천위밖에 더 있느냐?}
복면여인은 눈빛이 몽롱했다.
{천위오빠를 볼 수 있다니... 이틀 후면....}
그녀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흥분을 억눌렀다.
{기뻐하는 것은 이틀 후예라도 늦지 않으니 그때 하도록 하고
그 전에 우리는 준비를 해야된다.}
{걱정말아요, 백부님! 천위오빠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신념에 차 있다.
전장주는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단정할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된다.
사실 범천대공 연대강도 무공만으로 따진다면
천위에 비해 결코 낮지 않아.
그런데도 일개 자객인 담사라는 자는
그를 죽이고 유유히 빠져나왔단 말이야.}
{흥!}
복면여인은 불복하는 듯 코웃음쳤다.
{그것은 그 자의 무예가 높아서가 아니라
암수를 쓴데다 독수귀라는 자가 먼저 상처를 입혔으니 성공을 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그 자는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어쨌든간에 우리는 조심할 필요가 있어.
담사가 연락을 해 오는대로 준비를 해야 해.}
전장주가 신중히 말하자 복면여인은 나직이 대답했다.
{알았어요, 백부님!}
그녀는 대답과 함께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전장주는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제수씨, 소림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의 존재를 느꼈기때문이오.
남편을 잃은 제수씨의 사무치는 원한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려.)
전장주는 가슴에 스치는 불안감에 문득 피곤함을 느꼈다.
범천대공 연대강의 피살은 강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금무림에 어떤 자가 있어 그를 죽었단 말인가?
강호인의 관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것이 무림맹을 상대로 어떤 단체가 도전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원한 관계인가?
단순한 원한관계라면 모르나,
만약 이것이 방파간의 이해관계에의해 계획된 살인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것은 바로 혈풍을 예고하는 것이다.
무림맹은 당금무림에서 구파일방을 제치고 천하제일세력으로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거대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
그 무림맹이 복수를 내걸고 움직인다면 그 파급은 전강호에 미치는 것이다.
난세천하(亂世天下),
그것은 바로 난세천하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홍무(洪武) 팔년(八年) 오월(五月)-!
점점 기승을 더해가는 초여름의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듯
축 늘어져서 힘든 걸음걸이로
항주성(杭州城) 동문(東門)으로 걸어 들어오는
마삼노인이 한명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에 이빨이 숭숭한 낡은 죽립을 쓴 노인은
먼 길을 걸어왔는지 입고 있는 마삼(麻衫)에는 온통 먼지가 쌓여 있었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노인의 발걸음은
힘에 겨운 듯 간간이 떨리고 있었다.
마삼노인은 시진으로 들어서자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서쪽 대로로 접어들었다.
운상객점(雲上客店)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 앞에 멈추어 선
마삼노인은 옷에 묻은 먼지를 대강 털었다.
잠시 후 노인은 약간 주눅이 든 표정으로 객잔에 들어갔다.
운상객점은 고급주루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제법 깨끗한 곳이었다.
[어서 옵..!]
점소이는 급히 나와 손님을 맞으려다가
노인의 그 초라한 몰골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점소이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낀 노인은
어색한 표정으로 주저 주저 말했다.
{돈..돈은 있네. 음식만 먹고 금방 갈 테니까...!}
{따라 오슈.}
점소이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홱 돌아섰다.
마삼 노인은 점소이가 안내해준 가장 후미진 구석자리에 앉아
머리에 쓴 죽립을 벗었다.
그러자 가느다란 눈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삶에 잔뜩 찌들린 듯한 추레한 얼굴이 들어났다.
나무거죽같이 꺼칠하고 주름진 그 얼굴에서
평생을 고생과 함께 살아온 흔적이든 마삼 노인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떠올리며
갈포노인이 사라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박장을 나온 후에도 거의 일다경 동안
여기저기 거리를 배회하던 갈포노인은 이윽고 한 채의 거대한 장원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한차례 더 미행이 없는지 살펴본 갈포노인은
담벼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역시 나의 예측대로 금룡장(金龍莊)이었군.)
어둠 속에서 갈포노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이 웅장한 장원은 바로 범천대공 연대강의 암살을
네 명의 자객들에게 의뢰했던 바로 그 금룡장이었다.
금룡장의 지하밀실,
평소에 중요한 물품을 두는 곳인 듯
사방 열 자 가량인 이 밀실은 은밀한 분위기였다.
금룡장의 장주인 전육당(田六堂)은 들고 있던 지편을 탁자 위에 올렸다.
{이것이 오늘 저녁 무렵 진대명에게 온 것이다.}
침중하게 말하는 전장주의 맞은편에는
예의 복면여인과 이제 삼십 세 가량된 잘 생긴 청년이 앉아있었다.
기우가 헌앙한 이 청년은 바로 막북동맹(漠北同盟)에 나타나
태양제(太陽帝) 막리극과 비밀회동을 갖었던 모용공자(慕容公子)라는그 사나이였다.
그의 표정은 전날과 다름이 없었다.
무뚝뚝한 표정에 강인해 보 이는 얼굴,
전신에 패도적인 기도가 넘치고 있었다.
복면여인이 탁자 위로 시선을 향했다.
<원각사(元覺寺) 불영탑(佛影搭)에서 이틀 후 삼경에 빚을 받겠소.>
지편에 쓰여진 내용은 그와 같았다.
{담사의 행방을 놓쳤는가 보군요?}
지편의 내용을 일별한 복면여인이 담담히 물었다.
{허허 진대명이 그를 추적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이곳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지.}
전장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흥! 백부님은 그 자를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군요.
그래 봐야 한낱 자객일 뿐인데...!}
전장주의 말에 복면여인은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그래, 알았다.
그 입씨름은 그만하고 앞일에 대해서나 의논해보자.}
전장주는 미소를 지으며 모용성의 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위(天威)야! 네게는 어떤 복안이라도 있느냐?}
모용천위(慕容天威)-!
이 헌앙하고도 패도적인 인상의 청년은 이름이 모용천위였다.
{저로서는 별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숙부님.
련매(蓮妹)가 이미계획을 세웠으니 그대로 따르지요.}
청년 모용천위는 담담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전장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쯧! 너는 다 좋은데 머리 쓰는 일에는
동생인 천엽(天葉)의반도 안되니..거참!}
혀를 차는 전장주의 모습을 보며
모용천위는 말없이 빙그레 미소를 뗬다.
전장주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어그는 모용천위로부터 련매(蓮妹)라고 불린 복면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련아의 계획을 들어보자.}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복면여인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담사에게 지불할 잔금을 석무심에게 주어서
약속 장소로 보내고
천위오빠와 내가 은밀히 뒤를 따라가서
둘다 한꺼번에 해치우는 거예요.}
복면여인의 말에 전장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는 항주에 와있는 무림맹 고수들의 이목은 생각해 봤느냐?}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현재 그들이 장원 부근에서 우리를 염탐하고 있지만
두 사람만 죽고 나면 아무런 증거가 없을 텐데
그들이 더 이상 어떡하겠어요?}
복면여인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만 모든 일에는 조심이 제일인 게다.}
전장주는 침중히 말을 하면서
품 속에서 하나의 가죽주머니를 꺼냈다.
{이 안에 화룡전장(火龍錢莊)에서 발행한 천 냥 짜리 금표가
열다섯 장 들어 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이것도 석무심에게 주도록해라.}
{호호 역시 백부님은 치밀하시군요.}
복면여인이 요염히 웃음을 터뜨리며 가죽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전장주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항주에 자리한 무림맹 절강성 지부의 대청에는
오 인이 팔선탁주위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감찰전주인 막대승을 위시하여
조중, 황보가혜, 학만궁, 그리고 지부장인 원이광 등이었다.
감찰전의 기밀문서담당인 문창필 학만궁의 표정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
그는 그 동안 항주에서 불철주야 동분서주했으나
철혈무정 석무심의 행방은 고사하고
금룡장의 비밀도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다.
학만궁이 막대승의 표정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그 동안 조사한 결과 금룡장은 생각보다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 뿐 아직 별다른 것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가끔 신비한 인물이 드나드는데
그를 쫓던 수하들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막대승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학만궁을 주시했다.
{그래, 그 동안 수하만 희생시키고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가?}
{막전주! 그를 욕할 필요는 없어요.}
황보가혜가 옆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나도 며칠 전 금룡장에서 나온 신비인을 추적했으나 결국 놓치고 말았어요.}
막대승은 흠칫 놀랐다.
태허천존과 봉심도주의 진전을 한몸에 이어받은
황보가혜의 무예수준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새삼 금룡장의 존재가 다시 생각됐다.
막대승은 예리한 눈빛으로 학만궁을 쳐다보았다.
{학당주, 금룡장에 출입하는 신비 인물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
{확실치는 않으나 이삼십 명으로 보고 있읍니다}
학만궁은 대답하면서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몇 번인가 암중으로 그들에 대하여 탐색해 봤지만
얻은 것은아무것도 없었읍니다.}
{지금 금룡장에는 누가 나가 있나?}
듣고 있던 귀견수 조중이 물었다.
{자운유 당주가 나가 있습니다만
이틀 전부터 갑자기 관병들이
금룡장 주위를 경비하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관병들이 왜 금룡장을 경비한단 말인가?}
막대승이 의아로운 눈빛으로 황망히 말했다.
{그것은 금룡장주가 항주태수에게 요사이 장원 주위에
수상쩍은 인물들이 보인다고 경비를 부탁한 것 같습니다.
평소 금룡장은 관부와도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태수가 관병들을 보낸 것입니다.}
막대승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옛날부터 상계(商界)와 관부(官府)는 밀착되어 있지.
일이 생각보다 어렵게 되겠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막대승은 조중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전주, 오늘 밤 나와 함께 금룡장을 탐색해 보세.}
{준비하겠습니다.}
조중은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당주는 자당주에게 연락해서
삼경 무렵 약간의 소란을 일으키도록 하게.}
막대승이 말하자
학만궁은 절을 하고 재빨리 나갔다.